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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인문학을 공부하고 명상하고 사유 바깥으로 횡단하는 인문학자들이 모여사는 행복한 공동체가 있다.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난다. 도대체 나는 정체가 무엇인가. 아줌마면 아줌마 답게 아이 잘 키우고 살림 잘하고 살면 될 일이지 어쩌자고 자꾸 마음이 이리 저리 넘나들기만 하는가. 고통스러울 정도다.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상위 1%의 삶은 확실히 나와 분간이 가는데 대체 이런 사람들의 삶은 분리가 안된다.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공부에 대한 열망때문인지, 이즈음 거의 확신하는 공동체 삶에 대한 희망 때문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책 속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 만큼이나 내 현재와 미래의 삶을 기획해보다 말다 했다. 내 몸이 무겁게 느껴지고 질투를 겸한 절망으로 책을 접는것은 오로지 내 탓이다. 행동하지 않은 자의 구구한 변명이다.
"각각은 모두 하나의 '코뮌'이 되어 또 다른 인접계열들과 접속을 시도해 갈 것이다. 중심은 많을수록 좋다. 별이 많을수록 밤하늘이 찬란한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그리고 지구촌 곳곳에 크고 작은 코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를! 길이 길을 만들고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 삶이 온통 길이 되기를! 사람들이 한 곳에서 다른 낯선 곳으로 건너갈 수 있는 길이. "
공동의 삶이 기획되고 유지되고 진화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크든 작든 함께 하는 삶의 방향을 알 수 있었다. 화폐가 없어도 최소한의 화폐와 각자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함을증명해 주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또 한 번 가슴이 쓰라렸다. 공동체 삶을 꿈꾸는 나는 화폐를 대신해 무엇을 나눌 수있을까? 화폐를 대신할만한 무엇이 나에게 있을까? 그야말로 나란 사람은 안락한 가정주부로 남편이 노동한 대가에 얹혀 사는 사람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칠때는 정말 부끄러웠다. 거의 자학의 수준이다.
나는 수많은 사람의 결 속에 어디쯤 속해 있을까. 내가 정작 괴로운 것은 자꾸 몸에 맞지않는 옷을 어떻게든 입어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나이 먹도록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헤매고 있는 꼴이라니. 수유+너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여우가 못먹은 신포도 같기도 하고 '강남좌파' 같기도 하고, 상위 1% 같기도 하다. 절대 비아냥이 아니라 부럽다 못해 이런식으로 비겁하게 질투를 하는 것이다. 진심은 그들 모두를 존경한다. 그들의 노동으로 얻어낸 글과 책들을 내가 이렇게 잘 받아먹고 있다. 문제는 내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책상 앞에서 거의 망상에 가까운 사유나 하면서 몸만 비대해지는 나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 때가 되어야 나는 길앞에 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