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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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회복과 유지, 그러니까 따듯한 밥 한 끼, 평온한 잠, 그걸 가능케 하는 노동의 가치와 소중함은 백온유 소설이 짚고 있는 중요한 맥락 같다. 경우 없는 세계는 집과 가족이라는 온기를 상실하고 길 위의 삶에 내동댕이쳐진 청소년들의 삶을 세세하게 재현한다. 이들의 삶은 길 위의 삶을 사는 고양이와 같거나 인수의 가출에 관심이 없고 아들의 자리에 고양이를 데려다 놓은 인수의 집에 가봤을 땐 확실히 묘생보다 비참하다.

이야기는 공장노동자로 자기 몫의 삶을 꾸려가는 성인 인수가 자해공갈로 살아가는 이호를 돌보면서 이호와 같은 삶을 살았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다. 학교 밖 혹은 가족 밖 청소년의 현실을 세세하게 다루는데, 사실적인 내용이 많은데도 르포처럼 정색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하지 않아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음에도 지루하지 않다. 담백하지만 정확한 문장 때문이다. 매우 시급하고 현실적인 현상을 다루되 책임이나 사명 같은 도덕적 무게를 내려놓은 것처럼 읽힌다. 크게 무리한다는 느낌이 없는 것도 인상적이다.

인수가 신체적으로 느끼는 환촉과 환청, 한기가 내내 안쓰러운데 인수가 그렇게 된 것이 유일한 온기였던 경우의 죽음이 원인이다. 경우는 인수의 삶에 유일한 온기였던 인물. 인수는 경우에게 받았으나 경우를 위해 쓰지 못 한 온기를 이호를 돌보는 데 쓰면서 환촉이나 환청, 한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호가 인수의 온기를 거부하지 않아서 서로를 돌보고 돕게 되는 결말이라 한 사람의 힘을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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