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페퍼민트 ㅣ 창비청소년문학 112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열아홉은 육아도 간병도 돌봄도 가능하다. 시원처럼 간병 혹은 돌봄을 그 나이보다 6년이나 먼저 시작했다면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몸을 책임지고 보살필 만큼 능숙해질 수도 있다. 그게 시원의 삶인데 매우 특별하지만 원하지 않았던 일, 자기 삶의 주도권을 거의 행사하지 못하는 점에서 나쁜 삶이다.
감염병 후유증으로 삶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삶도, 아내를 간병 하느라 이전의 질서에서 모두 해체당한 남편, 아빠의 삶도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이 불행하고 나쁜 일이 자기 잘못으로 생긴 일이 아니라는 점, 그 일의 당사자들이 이 사건을 자발적으로 끝낼 수 없다는 점에서 시원의 가족이 처한 상황은 더욱 불행하거나 나쁘다. 원망과 분노는 더러 견디는 힘이 될 수도 있지만, 감염병 전염은 개인의 부주의를 탓할 수는 있으나 원망과 분노의 대상은 아니다. 그렇기에 시원과 시원의 가족이 처한 상황은 오롯이 가족의 일이 되었고 겹으로 불행하다. 이런 일 외에도 전저긍로 개인이나 가족이 감당하는 간병 혹은 돌봄의 사례와 그들이 겪는 고통, 손실, 불안, 체념, 원망 등은 이미 오래된 현실의 일이다.
『페파민트』는 이미 부패가 완료되어 가는 중, 처리가 임박한 상황, 임계점을 재현하는 것 같다. 터지기 직전의 사정이 자세하고 길게 이어지니 불안의 강도를 낮추되 시원과 시원 가족의 삶, 그 삶의 발원지(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잘못을 물을 수는 없는) 친구 해원과 가족의 삶을 흥분하지 않고 들여다보게 한다.
작품 속 간병인 최선희 선생님 말처럼, 결국 누군가를 간병 하게 되고 누구 한 명은 우리 손으로 돌보는 게 자연스럽고, 우리도 누군가의 간병을 받게 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155쪽)이다. 하지만, 이게 누군가의 삶을 짧든 길든 송두리째 지워야 하는 일인 데다 언제 끝날지 모르고 끝낼 수도 없는 상황일 때조차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산소호흡기를 땠던 일로 시원의 아빠가 구치소에 수감 되고, 식물인간인 엄마의 몸을 전문요양원에 보내면서 시원의 일상을 일부 돌려주고, 해원과 가족에게 더 책임 추궁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간병의 시간을 재편했는데 현실적인 최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문학적 사건 외의 일을 거듭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엔 충분하다. 그러니까 간병과 돌봄의 차이라거나, 의료적 사망 선고의 불합리라거나, 연명치료, 개인적 책임인 간병을 사회적 돌봄으로 전환할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것 같은.
해원의 일상을 듣는 시원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서, 또 시원의 일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던 해원의 마음도 진심인 듯해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싶은 시원의 마음도 그것이 핵심인 것 같아서, 생기발랄하고 선량하며 따뜻했었을 시원 엄마의 정신과 육신의 변화가 안타까워서, 누군가 좋은 마음으로 병든 육신을 돌봐 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최선희 선생님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해일도 보이는 게 다는 아닐 것 같아서, 자기 손으로 끝내고 싶었던 아빠, 남편의 마음도 알 것 같아서, 그리고 그만 끝내고 싶은 마음과 그럴 수 없는 마음 사이에서 서서히 허물어져 가는 시원을 구조하는 게 급박해서 작품보다 독자가 더 열이 올랐던 것 같다.
부디 시원과 시원 아빠의 일상이 이전보다 가볍고 더러 자기 자신을 위해 웃어주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해원도 부디 사로잡히지 않기를. 그래도 불행은 아직 많이 남았을 것 같은. 그 불행이 나에게도 올 수 있다는 걸 알면 돌봄의 연대를 생각하기 조금 더 쉽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