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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난민 - 제10회 권정생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83
표명희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평점 :
이 소설이 최선을 다하는 부분은 ‘뿌리 내리지 못 한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공항이 있는 신도시에 잠시 머물게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국적을 얻은 후 그들이 뿌리를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난민에 대한 인식은 난민 캠프라는 말 대신 ‘외국인 임시 보호 캠프’라고 써야하는 상황이 설명한다. 난민은 현 단계에서 잠정적 테러 용의자이며 혐오 대상이다.
섬이라는 공간적 배치가 무언가를 의도한 것처럼 보이지만 난민신청자들의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미분양 사태로 어수선한 신도시의 외경이 낯선 곳에 첫 발을 디딘 난민들의 내면을 더욱 스산하게 만들지, 아니면 모든 것이 새로 만들어진 것 같은 도시를 보면서 기대를 가질지 궁금하기는 하다.
그들은 왜 난민이 되었나. 작품은 인내를 갖고 그들의 상황을 열람하도록 이끈다. 이미 뉴스 등을 통해 대강 알고 있는 사례들을 개별화해서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슬람문화권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여성 명예살인, 중국 내 소수 민족과 한족 간의 종족 갈등, 베트남의 계급 갈등, 아프리카 여성과 프랑스 남성의 자유 연애를 바라보는 편견과 폭력 등. 거기에 자국내 미혼모를 통한 경제적 난민까지.
난민이 되어 국적 취득 전까지 머물게 될 캠프에 오게 된 그들이 잠시 머무는 동안 그들의 사연이 하나씩 공개 되는 방식이다. 짧은 시간에 동병상련의 그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불화하고 끝내 국적 취득의 불가능을 알고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섣부르게 희망을 제시하지 않아서 현실적이지만 난민에 대한 시각의 변경이나 생각의 시작점이 강렬하게 울리지도 않는다. 자칫 뉴스의 심화, 한 걸음 더 정도의 모험을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난민은 콜럼버스처럼 탐험가인가, 아니면 잠정적 테러용의자이며 죽어 마땅한 추방자인가. 미혼모 해나를 통해 간신히 콜럼버스가 호명되기는 해도 난민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실마리는 쉽게 잡혀 나오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경계를 넘어 새로운 땅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뭔가를 느끼지 못한다면 난민에 대한 인식을 재배치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문학이 난민에 대해 새롭게 감각하고, 낮은 단계의 인식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체험’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난민은 발생의 배후 못지않게 난민을 받아들이는 입장의 변화도 중요한 변수다.
한 명의 난민은 대다수의 난민을 대표한다. 심사 없이 그들에게 뿌리내릴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야하는 이유기도 하다. 원래 인간이 이동에 아무런 제약이 없었을 때의 자유, 여행자의 방문을 반겼던 원주민의 환대가 이 시대에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인가.
현재의 우리 감각은 난민과 외국인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외국인을 선택하는 수준이다. 이 작품이 이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