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똥 쪼물이 -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저학년 부문 우수상 수상작 신나는 책읽기 51
조규영 지음, 안경미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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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활론의 가능성을 아동문학의 개성과 특질로 한정하는 것은 이것이 가진 인식의 힘과 가치를 스스로 낮추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세상의 질서를 뒤흔들어보는 새로운 감각의 훈련이기 때문이다. 지우개똥에 눈코입을 그린 후 숨을 불어넣자 자신을 만든 사람과 닮은 생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꽤 그럴싸하다. 이 작품을 이끌고 가는 지우개똥들은 당연히 아이들의 아바타다.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고 분신을 만들어야 지우개똥들과 울보도장이 유진이()과 깐깐 선생의 대리전을 벌일 수 있다. 현실의 불가능이 물활론적 세계에서는 가능해진다. 지우개똥들의 승리는 풀죽은 아이들이 강력한 외부의 힘과 질서를 뒤집어보는 체험이다. 이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경험한 감각이 현실세계에서도 작동하기를 바라는 것이 이 동화의 진심이겠다.

현실의 대리전 양상을 펼치고 현실의 약자가 승리하는 구도는 익숙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훈계가 아니라 칭찬이라는 것도 상식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우선 짧은 문장이 주는 시적 리듬이 지루하지 않다. ‘지우개똥으로 만든 어떤 것에 숨을 불어넣자 생명 있는 어떤 것이 된다.’는 시적 순간은 이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쓰고 지우는 행위로 생겨나는 지우개똥들이 쓰는 이의 마음을 닮았고 -쓰거나 달다로 존재의 본질을 증명하는 상상이 즐겁다. 두려운 상대-울보도장에 맞서 힘껏 싸워 준 지우개똥들이 없어지지 않고 현실의 아이들에게 그들만의 작은 신-요정이 되어 줄 것 같은 마지막 장면도 안심이 되면서 여운이 길다. 깐깐 선생이 자신의 실수를 배우고 깨닫고 실수를 고칠 줄 아는 어른이어서 다행이다. 물활론적인 즐거운 놀이가 힘이 된다는 믿음은 헛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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