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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요한 것은 마케팅이다
신윤창 지음 / 행복에너지 / 2021년 2월
평점 :
상품 자체의 가치와 효용보다 마케팅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얼핏은 드는지라 기분이 씁쓸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케팅은 단순히 판매의 테크닉이라든가 광고의 기법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소비자와의 진정한 소통에의 노력이라고 봐야 하겠죠. 또 요즘처럼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고, 코비드 19 때문에 시장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어가는 요즘, 어떻게 나의 물건을 팔 것인가, 어떻게 해야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의 상품을 부각할 것인가의 고민은 그 무엇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합니다. 마케팅에 대해 고민을 등한시하는 기업이나 의사 결정자라면, 애초에 시장에서 살아남는 데 관심이 그닥 많지 않았다고 봐도 억울할 게 없지 싶습니다.
이 책은 일단 그 체제가,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마케팅 원론 교과서의 그것을 매우 빼닮았습니다. 그래서 아마 부제에 "BACK TO THE BAICS"라는 말이 붙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 교과서처럼 다소 딱딱하고 원론적인 설명으로 일관하느냐. 그렇지는 또 않습니다. 교과서처럼 꼼꼼하고 깔끔한 편집이지만, 저자가 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부딪히고 체험한 시장의 현실을, 쉽고 실감 나는 언어로 재구성한 느낌도 물씬 풍깁니다. 독자로서 개인적으로 저자분들만의 현장감 넘치는 감상과 설명, 회고담이 들어 있는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런 장점도 동시에 갖추었습니다.
저자분은 1988년에 "금성사"에 입사하셨다고 합니다. 당시라면 아마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기술의 상징 금성!" 같은 유명한 광고 문구가, 성우 조명남씨의 중후한 목소리로 방송에서 흘러나오던 시절일 겁니다. 저자분의 회고는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무섭게 추격해 오고" "(지금은 없어진) 가전제품 대리점을 방문해 수금 매출을 관리하던" 업무에 종사했다는 요지입니다. 그 즈음만해도 전자제품은 "대리점"을 통해 구입하던 게 일반적이었겠죠. 지금은 하x마트 등 대형 양판점이 유통의 이 섹터를 완전히 대체했지만 말입니다.
"악몽이 현실이 되었다." 1989년이나 그 즈음은 노사분규가 극심하던 무렵으로, 1992년까지 한국의 중소기업 어음 부도율은 사상 최고 수준이어서,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통째 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전국을 감쌀 지경이었습니다. 금성사 역시 이 기간에 삼성전자에게 1위를 내어주고, 다시 1위를 탈환하기 위해 현장의 대리점들을 무섭게 쪼아붙이며 이른바 "밀어내기"를 강행했는데, 30년이 지난 요즘도 전혀 다른 산업과 업종에서 대리점에의 이른바 물량 밀어내기는 대기업(분유, 우유, 편의점 등)의 대표적인 갑질로서 사회적으로 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폭거를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급기야 회사를 그만두셨다는 저자의 회고에서 인간미가 물씬 풍기기까지 합니다.
이어지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다른 방향에서의 영업을 물색하던 중 "안 읽어 본 마케팅 서적이 없을 만큼" 많은 책을 섭렵했다고 합니다. 공부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지만, 퇴직 후에 지인이나 다양한 경로로 인맥을 파고 들 궁리를 할망정 "책을 파고 드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백 투 더 베이식스"입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듯, 난국을 타개하려면 잔머리나 요령보다는 원칙에의 천착을 택해야 오히려 해법이 더 잘 찾아질 것입니다.
책은 모두 6개의 챕터로 이뤄졌습니다. 특히 STP 전략과 4P 믹스가 각각 한 개씩의 장(章)을 차지하는 게 눈에 띕니다. 물론 이 두 개념은 기존의 어느 교과서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만, 이 책에서는 저자의 개인적 연구와 변화한 트렌드에 부응한 업데이트 사항이 특히 강조되어 비중이 늘어난 게 특징이라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마케팅이란, 교환의 과정을 통해 원츠와 니즈를 만족시키는 인간의 활동(p16)." 이 문구는 우리들 독자들도 잘 아는 이 시대의 마케팅 구루 필립 코틀러의 책에서 재인용했다고 저자는 밝힙니다. "영어 문법상 ~ing을 통해 동사가 동명사로 바뀔 수도 있지만, 나는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비단 마케팅이라는 단어뿐이 아니라, 영단어 중 동명사에서 파생하여 현재 그 품사가 명사로 굳은 모든 경우에 이 설명을 적용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기업은 본연의 사명인 "이익 내기"에만 충실하던 1970년대적 사고를 벗어나, 이른바 CSR, 즉 사회적 책임까지도 고려해야 사회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며 생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필립 코틀러 역시 이러한 시대의 조류를 가장 먼저 통찰하여, 근래 내는 거의 모든 저서에 CSR을 반영하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마케터는 니즈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니즈를 찾아 소비자도 몰랐던 것을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것(p31)." 없는 니즈를 만들어낼 수까지 있다면 마케팅 궁극의 경지이겠으나, 윤리적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그에 이르기까지의 노력과 비용이 과다하여 이미 실패라는 결과가 예정된, 부질없고 비효율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unmet needs를 맨 먼저 발견하려면 사회의 변화와 유행의 추세를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모두가 무의식 중에 욕구하였으나 미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그것, 그것을 발견하여 맨 먼저 일깨우는 날카로운 눈을 가진 자가 시장 전체를 차지합니다.
학교 다닐 때 많이들 배우셨을 SWOT 분석이 p53이하에서 저자의 버전으로 쉽고 선명하게 설명됩니다. 외부환경을 설명할 때 STEP 모델이라고 간추리는 태도도 널리 지지받는 이론 사항인데 이를 잠시 요약하자면 1) 사회문화 2) 기술 3) 거시경제 4) 정책규제 입니다. 저자는 특히 "SWOT 분석은 환경에 근거해야 하며, 전략은 다시SWOT 분석에 근거한 것이어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각각이 따로 노는 분석과 전략은 이미 존재 근거를 상실했다는 뜻이죠. 다시 책의 부제로 돌아가 봅시다. "백 투 더 베이식스" 우리는 흔히 교과서는 교과서, 현실은 현실, 이런 식으로 원칙과 실전을 전혀 별개로 파악합니다. 그러나 이는 이론의 학습과 이해가 불충분한 전략가의 서투른 변명에 불과합니다. 저자의 강조처럼, 개념에 근거한 이론, 이론에 근거한 전략, 전략에 근거한 실행, 이런 식으로 기초와 응용이 혼연일체가 된 마케팅만이 필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시장세분화야말로 개성 있는 나의 상품에 제자리를 확실히 마련해 주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모든 전략의 출발점이 되는 모색의 단계입니다. 저자는 이 이론을 설명하면서, 금성사에서 나와 애경산업에서 마리끌레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할 때의 경험(p95)을 들려 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로 그 마리끌레르가 한국에서는 이 저자분의 작품이었던 거죠(원 브랜드는 프랑스의 그 저널이 시초입니다만).
무엇이든 최초가 되는 게 유리합니다. 저자는 그 예로 한국에서 자양강장제 드링크로 아직까지도 동아제약의 "박카스"만한 게 없음을 지적하며, 심지어 경쟁 제품들조차 그저 박카스로 통칭되는 아이러니컬한 현실을 설명합니다. p109에서는 "결국 모든 시장은, 단 두 마리의 말만이 달리는 경주"라고도 요약하며 "이원성의 법칙"을 거론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아마 학창 시절 본인이 속한 세대가 많이도 듣고 자랐을, 세계적인 팝 아이콘 아바의 어느 노래 제목을 환기합니다. "Winner takes it all" 승자독식의 법칙이란 뜻인데이 표현의 묘미는 it과 동격 관계에 놓인 all의 쓰임이죠. 물론 it이 없어도 문법적으로 문제는 없습니다.
마케팅이란 참 오묘합니다. 때로는 저런 소문이 나면 브랜드 가치에 더 큰 손상을 입지 싶은 사건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재부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걸 두고 요즘은 "보도 효과"라 부른다는데, 모 정당의 모 후보가 특정 알파벳의 쓰임새를 알지 못해 엉뚱한 해석을 하여 "회사에서 문서 작업도 한번 안 해 본 사람"이라는 빈축을 샀으나 오히려 미디어의 주목을 받아 현재 지지도가 더 올라간 일 등이 그러한 좋은 예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 선수의 학폭 논란 때문에 오히려 여자배구가 더 많은 주목을 받고 팬이 늘어난 예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단맛을 가미하여 뉴코크를 출시하고선 기존 제품을 대체했다가 오히려 고정 팬들의 큰 항의를 받고 전략을 번복한 소동을 겪은 코카콜라의 예를 듭니다. 괜히 후발주자인 펩시의 전략을 모방했다가 게도 구럭도 다 놓칠 뻔했는데, 이 과정에서 겪은 소동이 오히려 코카콜라에 대한 관심을 높여 결과적으로 더 나은 상황을 만들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경제학자 거셴크론은 "후발자의 이익"을 거론한 바 있습니다만 경영학의 마케팅이론에서 후발주자는 오히려 선두주자보다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어 유리하기도 합니다. 더페이스샵은 초저가 시장을 먼저 개척한 미샤와는 또 차별화한 전략("자연주의")을 구사하여 오히려 1인자인 미샤를 뛰어넘었는가 하면, 본래 대여 시장의 1위였던 블록버스터는 온라인 시장을 무시하는 바람에 넷플릭스에게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는 예들도 이 책에 나옵니다. LG생건의 "팩티브"는 효능이 너무 뛰어나 오히려 3차 처방 시장으로 밀림으로써 제품의 성취가 마케팅상의 우위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음을 증명하는 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책에는 이처럼 한국내 혹은 해외의 매우 재미있는 사례가 많이 실려 있기에, 독자들이 자신의 영업에 참고할 만한 좋은 자료집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가격은 과연 어떻게 책정이 될까요? 물론 완전경쟁 시장에서는 누구나 가격의 수용자이며 결코 어느 한 당사자가 가격을 책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제품을 최초 출시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여태 없던 상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나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 면밀히 시장 조사를 행한 후에야 구체적인 가격 전략을 만들 수 있습니다. p191에는 유보가격, 최저수용가격 등 다양한 개념이 나오는데, 동네에서 피자나 떡볶이 장사를 해도 이처럼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거쳐야 소비자들에게 접근 가능한 가격을 정하거나, 반대로 더 많이 올릴 수도 있었던 수익을 허공에 날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