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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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언제나 인류 문명 발달의 요람이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말은 자라서 제주로 보내고, 사람을 키우려면 서울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일본 속언에는 시골에서 보내는 수십 년보다, 도쿄에서 잠시 꾸는 낮잠의 시간이 더 유익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고 더 생산적인 감정의 표현 방법을 발견하며 더 효율적인 인프라의 도움으로 온갖 편의를 누릴 수 있는 도시야말로 인간 문명과 지혜의 총체, 육화라 부를 만합니다.

"도시의 심장부에 닿으려면 도시의 위장을 지나가야 한다(p220)." 한국에서도 떡볶이, 어묵, 김말이 등 시대를 대표하는 보편적인 분식류는 길거리 음식에서 출발했다는 게 정설이며, 그닥 위생이 좋을 것 같지도 않은 이런 싸구려들을 계층, 성별, 나이 불문하고 길거리에서 호호 불어가며 즐기는 게 일반적인 낭만입니다. 책에도 도시인들이 가장 맛있게 즐길 만한 게 길거리 음식이라는 저자의 단정적인 서술이 있습니다. "멜팅 팟"이라는 미국답게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에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유입된 길거리 음식이 넘쳐나며, 길거리 음식의 유행도 각각의 시기적 특성을 대변합니다. 이탈리아인들이 물밀 듯 몰려올 무렵에는 그들의 음식이, 요즘처럼 라티노들이 남쪽에서 유입될 때는 또 그들 특유의 음식이 물결처럼 트렌드를 만듭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재임 중 타코에 대해 함부로 언급했다가 큰 곤욕을 치른 적 있습니다.

p126에는 프랑스의 마르세유 그 기원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이 나옵니다. 본디 그리스인들은 산과 돌이 많은 척박한 본토의 조건을 극복하고자 무진 애를 썼고, 그 결과로 얻은 문명 발전의 노하우를 축적하여 이를 광범위한 식민 활동의 발판으로 썼습니다. "식민"의 원조는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들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아드리아해를 건너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까지 진출했고, 여기서 몇 걸음 더 건너온 게 남불의 마르세유입니다. 역사책에서 리구리아 족이라는 독특한 문화 단위를 자주 만나는데, 여기서 그 먼 족적 하나를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시는 결코 폐쇄적인 문명 작용의 산물이 아니며, 적어도 둘 이상의 문화와 종족 들이 만나 발전적인 경쟁과 협력 끝에 이뤄지는 게 보통입니다. 한강 유역만 해도 이를 두고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얼마나 치열한 각축을 벌였습니까.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긴 했으나 중국과 인도의 황제들은 의외로 먼 벽지의 항구 등을 벽안의 침입자들에게 허용하고 제한적인 실리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인도는 더군다나 델리의 높은 권위가 아대륙 곳곳까지 속속 미친 적이 사실 드물었기 때문에, 책 p286에서 다루듯 캘리컷 등이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경영되던 시절이 꽤나 길었습니다. "캘리컷은 상업도시였고, 그곳의 주권자는 영리에 밝은 왕이었다.(p288)" 책에서 다루는 무렵만 해도, 문명의 발달 수준이나 물산의 정교함 등에 있어 서유럽의 그것이 동양에 현저히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만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보유한 항해술, 또한 혁신정신과 탐험에의 열기 등은 세계를 압도할 만했겠죠.

바르샤바는 본디 동유럽의 강국으로서, 고골의 장편 <타라스 불바(대장 불리바)>에도 나오듯 널리 중앙아시아의 초원에까지 영향력을 뻗치던 번영한 폴란드의 중심지였습니다. 오스만 투르크가 빈을 포위하여 기독교 문화권의 운명이 풍전등화와도 같을 때 먼 길을 달려와 예니체리를 혼비백산하게 만든 것도 폴란드의 군주였습니다. 이러던 것이 군주와 백성, 귀족 세력의 분열로 인해 국력이 쇠퇴하고, 급기야는 러시아, 합스부르크, 프로이센에 의해 나라가 과분되었으며, 1차 대전 후에야 간신히 자존을 회복했습니다. 허나 필수즈키 원수의 독재는 국가에 부정적 유산만을 남겼으며, 그의 사후 나치의 침략은 특히 수도 바르샤바를 절멸의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책에는 나치가 바르샤바에 가한 반 문명적 폭거가 자세히 묘사되며, 영국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행한 동부 독일 공업 도시들에 대한 초토화 공습도 생생하게 서술됩니다.

목차만 보면 이 책에 아시아 여러 도시에 대한, 특히 21세기 들어 새로이 부상한 여러 활기찬 도시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부족하질 않나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꼼꼼히 읽어 보면,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어 혁신적 방식으로 번영하는, 또 스마트 도시의 미래상을 꼼꼼히 준비하는 여러 신흥 도시들의 모범이 꾸준히 분석되고 언급됨을 쉽게 찾겠습니다. 또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는 한국의 예를 특별히 거론하며, 스마트 시티의 비전을 다이내믹하게 구현하는 송도국제도시가 특별한 경의와 함께 거론됩니다. 도시의 역사는 곧 인간 문명사의 요약판이자 예언록임을, 방대하고 정확하며 재미있는 사례로 증명하는 저자의 놀라운 필력에 홀딱 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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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공주 1
최사규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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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기록이 충분치 않아 구체적으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평강공주와 온달 사이에 벌어진 속 깊은 로맨스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흥미로운 예임에 분명합니다. 좀 부족한 남자가 영민하고 현명한 여성 반려자의 도움을 받아 일약 출세한다는 모티브는 외국의 예에서 비슷한 줄거리를 찾기 힘든데, 은근히 여성에 기대는 성향이 강한 한국 남성의 멘탈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 최사규님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교가 안 된다. 햄릿에 이런 사랑과 비장함이 어디 있었던가?(p8)"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연을 읽고 자랐습니다만 사실 그렇게까지 절절한 느낌을 받지는 못한 듯합니다. 소설 1, 2권을 다 읽고 나서 느낀 바이지만, 만약에 정말로 두 인물 사이에 이런 장대하고도 낭만 넘치는 사연이 있었다면 ㅎㅎ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정사(正史)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이 온달과 평강 이야기가 매우 긴 분량을 차지하며 서술됩니다. 다른 사연에 비해 상세하고 문장(원문인 한문)도 정성들였을 뿐 아니라, 김부식 개인 성향에 비추어 이런 이야기에 그리 관심이 있었을 법하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왜 평강공주는 울보가 되었을까?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어느 에피소드에도 올케에게 모함을 받아 아버지(물론 낳아 주신 친아버지)에게 쫓겨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또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도 그 가진 진정성만큼 이해를 받지 못하는 효녀 코딜리어의 사연이 나오지만, 이 소설(작가님의 성격 규정상 "팩션") 속에서 평강은 계모와 그의 자녀(의붓 남동생)에게 모해의 대상이 됩니다. 물론 궁정에서도 그녀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만, 즉위 후 이성계에게 신덕왕후가 그러했듯, 침소에서 베갯머리 상소를 일 삼는 현재의 배우자(...)에게는 당할 재간이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왕실의 정통성과 자신의 안위, 가정의 참된 평화, 국가의 미래 등을 동시에 걱정해야 하는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 밖에요.

이처럼 배포 크고 사려 깊은 멋진 여성이고, 어지간한 남자를 능가하는(어지간한 남자뿐 아니라 아주 뛰어난 ㅎㅎ 남자들까지도) 여장부(작가 최사규님이 그리 캐릭터 방향성을 잡았습니다)인 평강공주는, 아예 자신이 제대로 왕재(王材)를 발굴하여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하고 기백도 불어넣어,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바로잡으려 듭니다. 역사상으로 여계 상속은 드뭅니다만 고대 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 프랑스의 발루아, 부르봉 왕조 등이 사위가 물려받은 경우였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고대국가가 국운의 상승을 멈추고 휘청거릴 때는, 대개 왕실을 위협할 만한 권위의 귀족 가문들이 발호할 무렵이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절노부, 소노부 등이 그런 포지션이네요.

잔혹한 폭력도 등장하고, 한 사람을 넘어 한 가문, 핏줄에 두루두루 원한을 새길 만한 몹쓸 짓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못된 인간들도 나옵니다. 고대이므로 이런 미개한 유형이 있었겠거니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이런 간악한 자들의 악행이 먼 그림자일망정 몸에 닿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1권에서 평강은 드디어 집을 떠납니다. 그녀는 구차한 아귀다툼을 마다한 채, 척박한 벌판에서 야인으로 살아가는 누군가를 만나 그를 환골탈태시킬 것입니다. 미완의 대기를 품어 썩은 누리를 뒤집고 바로세울 큰 인물로 거듭나게 할 그녀는 다름 아닌 여성 구세주인 파티마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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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요한 것은 마케팅이다
신윤창 지음 / 행복에너지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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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자체의 가치와 효용보다 마케팅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얼핏은 드는지라 기분이 씁쓸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케팅은 단순히 판매의 테크닉이라든가 광고의 기법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소비자와의 진정한 소통에의 노력이라고 봐야 하겠죠. 또 요즘처럼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고, 코비드 19 때문에 시장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어가는 요즘, 어떻게 나의 물건을 팔 것인가, 어떻게 해야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의 상품을 부각할 것인가의 고민은 그 무엇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합니다. 마케팅에 대해 고민을 등한시하는 기업이나 의사 결정자라면, 애초에 시장에서 살아남는 데 관심이 그닥 많지 않았다고 봐도 억울할 게 없지 싶습니다.

이 책은 일단 그 체제가,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마케팅 원론 교과서의 그것을 매우 빼닮았습니다. 그래서 아마 부제에 "BACK TO THE BAICS"라는 말이 붙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 교과서처럼 다소 딱딱하고 원론적인 설명으로 일관하느냐. 그렇지는 또 않습니다. 교과서처럼 꼼꼼하고 깔끔한 편집이지만, 저자가 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부딪히고 체험한 시장의 현실을, 쉽고 실감 나는 언어로 재구성한 느낌도 물씬 풍깁니다. 독자로서 개인적으로 저자분들만의 현장감 넘치는 감상과 설명, 회고담이 들어 있는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런 장점도 동시에 갖추었습니다.

저자분은 1988년에 "금성사"에 입사하셨다고 합니다. 당시라면 아마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기술의 상징 금성!" 같은 유명한 광고 문구가, 성우 조명남씨의 중후한 목소리로 방송에서 흘러나오던 시절일 겁니다. 저자분의 회고는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무섭게 추격해 오고" "(지금은 없어진) 가전제품 대리점을 방문해 수금 매출을 관리하던" 업무에 종사했다는 요지입니다. 그 즈음만해도 전자제품은 "대리점"을 통해 구입하던 게 일반적이었겠죠. 지금은 하x마트 등 대형 양판점이 유통의 이 섹터를 완전히 대체했지만 말입니다.

"악몽이 현실이 되었다." 1989년이나 그 즈음은 노사분규가 극심하던 무렵으로, 1992년까지 한국의 중소기업 어음 부도율은 사상 최고 수준이어서,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통째 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전국을 감쌀 지경이었습니다. 금성사 역시 이 기간에 삼성전자에게 1위를 내어주고, 다시 1위를 탈환하기 위해 현장의 대리점들을 무섭게 쪼아붙이며 이른바 "밀어내기"를 강행했는데, 30년이 지난 요즘도 전혀 다른 산업과 업종에서 대리점에의 이른바 물량 밀어내기는 대기업(분유, 우유, 편의점 등)의 대표적인 갑질로서 사회적으로 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폭거를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급기야 회사를 그만두셨다는 저자의 회고에서 인간미가 물씬 풍기기까지 합니다.

이어지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다른 방향에서의 영업을 물색하던 중 "안 읽어 본 마케팅 서적이 없을 만큼" 많은 책을 섭렵했다고 합니다. 공부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지만, 퇴직 후에 지인이나 다양한 경로로 인맥을 파고 들 궁리를 할망정 "책을 파고 드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백 투 더 베이식스"입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듯, 난국을 타개하려면 잔머리나 요령보다는 원칙에의 천착을 택해야 오히려 해법이 더 잘 찾아질 것입니다.

책은 모두 6개의 챕터로 이뤄졌습니다. 특히 STP 전략과 4P 믹스가 각각 한 개씩의 장(章)을 차지하는 게 눈에 띕니다. 물론 이 두 개념은 기존의 어느 교과서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만, 이 책에서는 저자의 개인적 연구와 변화한 트렌드에 부응한 업데이트 사항이 특히 강조되어 비중이 늘어난 게 특징이라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마케팅이란, 교환의 과정을 통해 원츠와 니즈를 만족시키는 인간의 활동(p16)." 이 문구는 우리들 독자들도 잘 아는 이 시대의 마케팅 구루 필립 코틀러의 책에서 재인용했다고 저자는 밝힙니다. "영어 문법상 ~ing을 통해 동사가 동명사로 바뀔 수도 있지만, 나는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비단 마케팅이라는 단어뿐이 아니라, 영단어 중 동명사에서 파생하여 현재 그 품사가 명사로 굳은 모든 경우에 이 설명을 적용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기업은 본연의 사명인 "이익 내기"에만 충실하던 1970년대적 사고를 벗어나, 이른바 CSR, 즉 사회적 책임까지도 고려해야 사회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며 생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필립 코틀러 역시 이러한 시대의 조류를 가장 먼저 통찰하여, 근래 내는 거의 모든 저서에 CSR을 반영하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마케터는 니즈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니즈를 찾아 소비자도 몰랐던 것을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것(p31)." 없는 니즈를 만들어낼 수까지 있다면 마케팅 궁극의 경지이겠으나, 윤리적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그에 이르기까지의 노력과 비용이 과다하여 이미 실패라는 결과가 예정된, 부질없고 비효율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unmet needs를 맨 먼저 발견하려면 사회의 변화와 유행의 추세를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모두가 무의식 중에 욕구하였으나 미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그것, 그것을 발견하여 맨 먼저 일깨우는 날카로운 눈을 가진 자가 시장 전체를 차지합니다.

학교 다닐 때 많이들 배우셨을 SWOT 분석이 p53이하에서 저자의 버전으로 쉽고 선명하게 설명됩니다. 외부환경을 설명할 때 STEP 모델이라고 간추리는 태도도 널리 지지받는 이론 사항인데 이를 잠시 요약하자면 1) 사회문화 2) 기술 3) 거시경제 4) 정책규제 입니다. 저자는 특히 "SWOT 분석은 환경에 근거해야 하며, 전략은 다시SWOT 분석에 근거한 것이어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각각이 따로 노는 분석과 전략은 이미 존재 근거를 상실했다는 뜻이죠. 다시 책의 부제로 돌아가 봅시다. "백 투 더 베이식스" 우리는 흔히 교과서는 교과서, 현실은 현실, 이런 식으로 원칙과 실전을 전혀 별개로 파악합니다. 그러나 이는 이론의 학습과 이해가 불충분한 전략가의 서투른 변명에 불과합니다. 저자의 강조처럼, 개념에 근거한 이론, 이론에 근거한 전략, 전략에 근거한 실행, 이런 식으로 기초와 응용이 혼연일체가 된 마케팅만이 필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시장세분화야말로 개성 있는 나의 상품에 제자리를 확실히 마련해 주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모든 전략의 출발점이 되는 모색의 단계입니다. 저자는 이 이론을 설명하면서, 금성사에서 나와 애경산업에서 마리끌레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할 때의 경험(p95)을 들려 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로 그 마리끌레르가 한국에서는 이 저자분의 작품이었던 거죠(원 브랜드는 프랑스의 그 저널이 시초입니다만).

무엇이든 최초가 되는 게 유리합니다. 저자는 그 예로 한국에서 자양강장제 드링크로 아직까지도 동아제약의 "박카스"만한 게 없음을 지적하며, 심지어 경쟁 제품들조차 그저 박카스로 통칭되는 아이러니컬한 현실을 설명합니다. p109에서는 "결국 모든 시장은, 단 두 마리의 말만이 달리는 경주"라고도 요약하며 "이원성의 법칙"을 거론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아마 학창 시절 본인이 속한 세대가 많이도 듣고 자랐을, 세계적인 팝 아이콘 아바의 어느 노래 제목을 환기합니다. "Winner takes it all" 승자독식의 법칙이란 뜻인데이 표현의 묘미는 it과 동격 관계에 놓인 all의 쓰임이죠. 물론 it이 없어도 문법적으로 문제는 없습니다.

마케팅이란 참 오묘합니다. 때로는 저런 소문이 나면 브랜드 가치에 더 큰 손상을 입지 싶은 사건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재부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걸 두고 요즘은 "보도 효과"라 부른다는데, 모 정당의 모 후보가 특정 알파벳의 쓰임새를 알지 못해 엉뚱한 해석을 하여 "회사에서 문서 작업도 한번 안 해 본 사람"이라는 빈축을 샀으나 오히려 미디어의 주목을 받아 현재 지지도가 더 올라간 일 등이 그러한 좋은 예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 선수의 학폭 논란 때문에 오히려 여자배구가 더 많은 주목을 받고 팬이 늘어난 예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단맛을 가미하여 뉴코크를 출시하고선 기존 제품을 대체했다가 오히려 고정 팬들의 큰 항의를 받고 전략을 번복한 소동을 겪은 코카콜라의 예를 듭니다. 괜히 후발주자인 펩시의 전략을 모방했다가 게도 구럭도 다 놓칠 뻔했는데, 이 과정에서 겪은 소동이 오히려 코카콜라에 대한 관심을 높여 결과적으로 더 나은 상황을 만들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경제학자 거셴크론은 "후발자의 이익"을 거론한 바 있습니다만 경영학의 마케팅이론에서 후발주자는 오히려 선두주자보다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어 유리하기도 합니다. 더페이스샵은 초저가 시장을 먼저 개척한 미샤와는 또 차별화한 전략("자연주의")을 구사하여 오히려 1인자인 미샤를 뛰어넘었는가 하면, 본래 대여 시장의 1위였던 블록버스터는 온라인 시장을 무시하는 바람에 넷플릭스에게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는 예들도 이 책에 나옵니다. LG생건의 "팩티브"는 효능이 너무 뛰어나 오히려 3차 처방 시장으로 밀림으로써 제품의 성취가 마케팅상의 우위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음을 증명하는 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책에는 이처럼 한국내 혹은 해외의 매우 재미있는 사례가 많이 실려 있기에, 독자들이 자신의 영업에 참고할 만한 좋은 자료집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가격은 과연 어떻게 책정이 될까요? 물론 완전경쟁 시장에서는 누구나 가격의 수용자이며 결코 어느 한 당사자가 가격을 책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제품을 최초 출시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여태 없던 상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나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 면밀히 시장 조사를 행한 후에야 구체적인 가격 전략을 만들 수 있습니다. p191에는 유보가격, 최저수용가격 등 다양한 개념이 나오는데, 동네에서 피자나 떡볶이 장사를 해도 이처럼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거쳐야 소비자들에게 접근 가능한 가격을 정하거나, 반대로 더 많이 올릴 수도 있었던 수익을 허공에 날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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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최대환 지음 / 파람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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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현재 천주교 의정부교구에 소속, 봉직 중이신 최대환 신부님입니다. 언제나 계절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고, 깊은 밤 후 아침이 다시 찾아오듯 사방천지를 환히 밝히며 돌아오기 마련이지만 믿음이 약한 우리들은 혹한 중 과연 신춘을 다시 맞을 수 있을지 불신을 가득 품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봄은 반드시 돌아오며, 봄을 다시 맞으리라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진짜 신비한 것은 정체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모두 드러내기 마련이지요."(p25) 이 구절은 체스터튼이 창조한 캐릭터 브라운 신부의 말이라며 저자 최 신부님이 인용하는데 브라운 신부는 명탐정으로 유명하며 이 외에도 주옥 같은 명언을 여럿 남긴, 추리물 팬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매력덩어리죠. 제가 기억하는 그의 명언은 "당신은 이성을 비난했는데, 그것은 아주 천박한 신학입니다(진지한 성직자라면 결코 이성을 매도하지 않는다는 뜻)."라며 가짜 신부 노릇을 한 대도 플랑보의 정체를 드러내며 한 말이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 나오는 프로스페로는 위트 있고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이지만 사실 그는 과거의 아픈 경험 때문에 깊은 원한을 품음직도 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마음에서 우러나온 용서만이 자신의 삶에 참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점, 현명하게도 잘 깨닫고 있었습니다. 최 신부님은 셰익스피어의 이 작품에서 "용서야말로 궁극의 해법"이라는 오랜 진리와 결론을 다시 확인합니다. 잘 알려진 주제의식이긴 하나 역시 고전을 읽는 독자가 선제적으로 이런 공감을 지니고 있어야 해당 명대사가 눈에 더 잘 띄일 것입니다.

종교학자들은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라는 구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p20). 사실, 원시 종교와 고등종교라는 명명법을 너무 쉽게 구사하면, 그것은 무속 신앙 종사자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형식적으로는 대형교회나 성당, 사찰 등에 등록되었지만, 영혼과 내세에의 깊은 성찰 없이 그저 현세에서의 기복을 구하는 데 그친다면, 그런 이들은 결코 고등종교 신도라 불릴 자격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해당 종교에서는 "묵상"의 습관화를 강조하곤 하죠. 저자는 이를 두고 "머무름의 체험 기회(p21)"라 부릅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어느 누구라도 한 자리에 오래 "머문다"는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찰나의 통과만 일삼는 우리의 행태가 내면에 남기는 흔적이라곤 고작 "공허와 불안, 허무감"일 뿐입니다.

p77에는 베토벤의 서한 몇 구절이 인용됩니다. "Muss es sein? Es muss sein!" 여기서 es는 별 뜻 없는 비인칭에 가깝고, 영어로 옮기면 Must it be?이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나? 그래야만 한다! 대체 베토벤은 무엇이 그래야만 한다고 외치는 걸까요? 그런 음악적 천재의 귀와 눈에 무엇이 보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플라톤이 궁극의 이상을 간파하고 세속의 둔재들에게 "이데아"를 설파했듯, 베토벤도 "그래야만 하는 그 무엇"을 혼자 발견하고는, 약해지는 자신의 의지를 다잡으려 저리 외친 듯도 보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결단이 모여서 다져진 신앙인의 삶 안에서, 주님과의 만남은 필연"이라 정리합니다. 만해 한용운에게 "님"은 불법(佛法)과 조국이었듯, 베토벤에게 있어 "주님"은 음악의 완성과 인생의 진리 터득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우리들 모두도, 각자의 생에서 소중히 간직하고 성취하고 싶은 자신만의 주님이 있을 것입니다. 신앙 여부와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유가에서는 "위인지학이 아니라 위기지학"을 강조합니다. 남 보라고 행하는 효행이나 공부, 독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알차게 다지고 가꾸는 수행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p93 이하에서 "단식의 참된 의미"에 대해 논합니다. 마침 요즘은 기독교에서 중시하는 사순 주간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사야 예언자가 단식의 의미를 사회적 차원으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외쳤다"면서, 종교에서 강조하는 덕행이나 수련은 결코 개인적 만족의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듯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남 보란 듯이 단식과 고행을 행한 일부 율법학자와 바리새파들을 두고 "회칠한 무덤"이라 비판하며 그들의 위선을 호되게 질타했습니다.

p119에서 저자는 계속하여 신앙인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합니다.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사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도 이 청빈의 미덕을 강조하고 실천에 옮겼으며, 가톨릭은 내, 외부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물질적 타락과 부패를 경계하는 열렬한 움직임이 일어난 바 있었습니다. 이런 숭고한 운동은 무엇보다 내부의 모순과 불의에 각별한 경계를 두어야 하겠으며, 어떤 불순한 정치적 목적이나 위선적 행태에 악용되는 일이 결코 없어야만 그 본지를 달성할 수 있을 듯합니다. 표리부동한 인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운동의 목표는 역효과와 일탈로 엇나가기 일쑤 아니겠습니까.

사순 주간이니만치, 닭이 울기 전에 자신의 스승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일화가 묵상의 소재를 더욱 우리 곁에 가깝게 가져다 주는 듯합니다. 서슬 퍼런 공권력이 자신들 같은 신흥 세력에 대해 높은 적대감을 갖고 한밤중에 몰려와 스승을 나포해 가는 공포의 순간, 제아무리 혈기 왕성한 이였다고 해도 감연히 저항하거나 떳떳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 어려웠을 겁니다(복음서에 따라, 베드로가 한 군인의 귀를 잘랐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를 치유하는 기적을 베풀었다는 기술이 있습니다). 독자를 가슴 아프게 하는 대목은, 그가 자신의 잘못을 바로 깨닫고 통회와 부끄러움이 담긴 눈물을 흘리는 장면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 모두의 약함, 불신, 비겁함을 적나라하게 대변하기에, 신앙인들이 두고두고 읽으며 자신을 추스르는 교본으로 삼기에 충분합니다.

"성모의 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이렇게 시작하는 성가가 있을 정도로 가롤릭에서는 5월에 특별한 의의를 부여합니다. 저자는 p228에서 프란츠 베르펠의 <벨라뎃다의 노래>를 인용하는데, 이분은 2차 대전 말 나치의 유대인 탄압이 극에 달했을 때 스페인 국경의 루르드를 찾아 그 유명한 성모 발현의 기적을 떠올리며 여태 거리가 멀었던 신앙에 대해 눈을 뜨는 체험을 책에 담았다고 합니다. "시대의 어둠과 천박함을 이기는 가장 큰 힘!". 사실 우리는 매 순간 사악한 유혹과 나 자신의 탐욕 때문에 온갖 불순하고 위험한 충동 앞에 굴복하고 이를 합리화하는 타락에 빠집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인 봄에, 정작 나의 영혼과 정신만큼은 더럽고 차가운 흙탕물 안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슬픈 일도 없겠습니다. 신은 그를 끝 없이 갈구하고 만나려는 굶주리고 가난한 영혼 앞에 좁은 문을 열어 보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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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행복
김미원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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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안고 태어났지만, 그럼에도 삶은 살아갈 만하다." 석가모니는 네 개의 큰 괴로움에 대해 말했는데 그 중 하나가 "태어남"이었습니다. 아프고, 늙고, 죽는 건 괴로움이라 할 만하지만, 만인의 축복을 받고 세상에 나오는 과정인 "태어남"이 왜 괴로움이어야 하는지는 정말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삶은 태어날 때부터 불확실성의 연속입니다. 모든 것이 우연한 확률에 의해 좌우되기에 우리는 근원에서부터 불안을 안고 살게 됩니다. 근원적으로 불안을 떨칠 수가 없기에 우리는 삶에 대해 자칫 절망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 만하다." 독자인 저는 이렇게 이 책의 결론을 해석했습니다.

p22에는 "늙음의 초라함"애 대해 작가님의 긴 상념이 등장합니다. 예이츠, 마르케스, 그리고 괴테의 의도에 대해 말씀을 하시는데, 정말 그렇지 싶습니다. 파우스트는 무슨 큰 욕심이 있었거나 결정적인 영적 타락을 겪어서가 아니라, "타인이 내 늙음을 보는 게 두려워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게 작가님 말입니다. 사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처럼 많은 지식을 쌓고 교양을 완성한 분이, 고작 "젊음이 주는 쾌락"이 탐 나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을 리 없습니다. 아마도요. 그의 동기는 이처럼 아주 단순하고, 같은 인간으로서 이해 할 만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p22에 인용되는 예이츠의 <비잔티움의 항해> 일부가 있는데, 이 시의 서두가 바로 어느 미국 영화의 제목으로도 쓰인 "노인을 위한 나라(가 전혀 아니다)"라는 구절입니다.

사실은 저도 요즘 "양치질을 했나? 방금 쓰레기를 버리고 왔나?" 같은 게 깜빡깜빡할 때가 있었는데요. 이 책에도 p45에 작가님의 모친께서 기억이 작년이 다르고 올해가 다르다고 하신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인간이란 누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정신의 기능이 감퇴하는 경향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건 또 아닙니다. 작가님은 바로 뒤 페이지에 "이번 생일 용돈을 슬쩍 안 드리고 넘어가려 한 딸의 계산을 정확히 알아채고 지적하는 엄마의 놀라운 계산 능력"에 감탄합니다. 이렇게 손익을 정확히 계량하는 분이 설마 치매이겠는가 이거죠. 쓴웃음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로 안심이 되고,... 이게 바로 자녀의 심리이고 안도입니다. 우리 독자 모두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공감할 수 있는 대목 아니겠습니까.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헤어스타일도, 얼굴도, 표정도 변한다(p106)." 마음에 안 드는 이유는 바로 "늙어서"입니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데, "내가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정확히 사실을 전달하는" 사진은 나의 육신과 겉모습이 얼마나 늙었는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사진에 찍힌 대상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수잔 손택의 명언으로 책 p108에 나옵니다. 같은 페이지에는 16년 동안 단골로 지내 온 사진관의 아저씨가 페암에 걸려 마침내 가게 문을 닫게 된 사연도 나옵니다. 사멸해 가는 모든 것의 슬픈 운명을 어쩌면 파수꾼처럼 지켜 온 사진사, 그도 자신의 노쇠와 사망이라는 필연을 거부할 수 없었다는 결론에 독자로서 참 슬퍼지더군요. 책에는 몇 년 전 타계한 명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출연한 <스토커>라는 영화의 줄거리 일부가 소개도 되는데, 참 특이한 내용이라서 나중에 따로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신지 책 곳곳에는 깊은 묵상의 결과일 듯한 여러 심오한 깨달음의 문장이라든가 성경 구절의 인용도 나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 데 백 년이라는 세월을 쏟습니다만 마지막 7일, 즉 홍수가 실제 닥치기 직전 7일 동안은 적지 않은 회의에 싸이기도 했겠다는 말씀(p118)을 하시네요. 백 년도 참고 그 노고를 기울였는데 고작 7일을 못 참겠나 싶지만, 인간이란 본래 다 된 죽에 주저않고 콧물을 빠뜨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성숙함과 인내, 침착함, 감정을 통제하는 이성이 두루 필요합니다.

p177에는 원초적 욕구 충족을 위해 언제든 동기까지 배신할 수 있는 인간의 이기심을 꼬집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한 구절이 나옵니다. 작가님은 탈북민을 위해 봉사도 하신다는데, ㅎㅎ 탈북 청소년이라고 하면 으레 못 먹고 못 입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거칠어진 피부 등을 떠올리겠으나 김 작가님이 만난 청소년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답니다. 그런가 하면, 음식을 권하는 작가님한테 저들은 살 찔 것 같다며 사양하더랍니다. 여기서 우리 독자들이 좀 느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작가님 말은, 탈북자 하면 이러려니 하던 선입견이 자신의 내면에도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확인하는 스스로가 몹시 부끄럽더라는 겁니다. 독자로서 저는, 채 그런 느낌(부끄러움)도 갖지 못하고 "그 청소년들 (탈북자면서) 별나네" 비슷하게 여겼을 뿐이었습니다(처음에는 말이죠). 아니 왜, 탈북 청소년들은 다이어트에 신경 쓰면 안 되겠습니까? 별날 게 애초에 뭐가 있습니까? 작가님따라 저도, 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네요. 무슨 권리로, 제가 그들에게 선입견을 갖는다는 건지 원. 에휴.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는 지난 시대 특정 세대에서 필독서로 꼽혔으나 오늘날의 우리가 읽어도 훌륭한 고전임은 변함 없는 사실입니다. 그 책에 보면, 저도 기억이 나는데 "위선보다는 위악이 낫다"는 말이 나오죠. 작가님은 p201에서 "그 말에 반대하지만, 주인공 니나 부슈만의 (그) 냉소가 좋아서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고 하시네요. 그리고는 작가님의 지인인 S라는 분에 대한 개인적 회고가 이어집니다. 어쩌면 루이제 린저도, 자신의 주변에 S님 같은 지인이 있어 캐릭터의 창조에 많은 영감을 받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의 영혼에는 커다란 난로가 있다."로 시작되는 가상의 상황에서 던지는 질문은 바로 고흐 자신이 쓴 서간문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지난 시대 불우하게 살다 치열한 삶을 마감한 고흐를 우리는 주저 없이 아낌없이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그가 혹 지금 내 곁에 살고 있는, 소외되고 광인 취급 받는 가난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작가님처럼, 우리 스스로가 별 의심 없이 쏟아내곤 하는 고상한 감정의 인위적 폭발에 대해, 그 진정성이 사실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의 매 순간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적립될수록), 우리가 존재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도 쉽게 청산될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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