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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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언제나 인류 문명 발달의 요람이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말은 자라서 제주로 보내고, 사람을 키우려면 서울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일본 속언에는 시골에서 보내는 수십 년보다, 도쿄에서 잠시 꾸는 낮잠의 시간이 더 유익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고 더 생산적인 감정의 표현 방법을 발견하며 더 효율적인 인프라의 도움으로 온갖 편의를 누릴 수 있는 도시야말로 인간 문명과 지혜의 총체, 육화라 부를 만합니다.

"도시의 심장부에 닿으려면 도시의 위장을 지나가야 한다(p220)." 한국에서도 떡볶이, 어묵, 김말이 등 시대를 대표하는 보편적인 분식류는 길거리 음식에서 출발했다는 게 정설이며, 그닥 위생이 좋을 것 같지도 않은 이런 싸구려들을 계층, 성별, 나이 불문하고 길거리에서 호호 불어가며 즐기는 게 일반적인 낭만입니다. 책에도 도시인들이 가장 맛있게 즐길 만한 게 길거리 음식이라는 저자의 단정적인 서술이 있습니다. "멜팅 팟"이라는 미국답게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에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유입된 길거리 음식이 넘쳐나며, 길거리 음식의 유행도 각각의 시기적 특성을 대변합니다. 이탈리아인들이 물밀 듯 몰려올 무렵에는 그들의 음식이, 요즘처럼 라티노들이 남쪽에서 유입될 때는 또 그들 특유의 음식이 물결처럼 트렌드를 만듭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재임 중 타코에 대해 함부로 언급했다가 큰 곤욕을 치른 적 있습니다.

p126에는 프랑스의 마르세유 그 기원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이 나옵니다. 본디 그리스인들은 산과 돌이 많은 척박한 본토의 조건을 극복하고자 무진 애를 썼고, 그 결과로 얻은 문명 발전의 노하우를 축적하여 이를 광범위한 식민 활동의 발판으로 썼습니다. "식민"의 원조는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들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아드리아해를 건너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까지 진출했고, 여기서 몇 걸음 더 건너온 게 남불의 마르세유입니다. 역사책에서 리구리아 족이라는 독특한 문화 단위를 자주 만나는데, 여기서 그 먼 족적 하나를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시는 결코 폐쇄적인 문명 작용의 산물이 아니며, 적어도 둘 이상의 문화와 종족 들이 만나 발전적인 경쟁과 협력 끝에 이뤄지는 게 보통입니다. 한강 유역만 해도 이를 두고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얼마나 치열한 각축을 벌였습니까.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긴 했으나 중국과 인도의 황제들은 의외로 먼 벽지의 항구 등을 벽안의 침입자들에게 허용하고 제한적인 실리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인도는 더군다나 델리의 높은 권위가 아대륙 곳곳까지 속속 미친 적이 사실 드물었기 때문에, 책 p286에서 다루듯 캘리컷 등이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경영되던 시절이 꽤나 길었습니다. "캘리컷은 상업도시였고, 그곳의 주권자는 영리에 밝은 왕이었다.(p288)" 책에서 다루는 무렵만 해도, 문명의 발달 수준이나 물산의 정교함 등에 있어 서유럽의 그것이 동양에 현저히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만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보유한 항해술, 또한 혁신정신과 탐험에의 열기 등은 세계를 압도할 만했겠죠.

바르샤바는 본디 동유럽의 강국으로서, 고골의 장편 <타라스 불바(대장 불리바)>에도 나오듯 널리 중앙아시아의 초원에까지 영향력을 뻗치던 번영한 폴란드의 중심지였습니다. 오스만 투르크가 빈을 포위하여 기독교 문화권의 운명이 풍전등화와도 같을 때 먼 길을 달려와 예니체리를 혼비백산하게 만든 것도 폴란드의 군주였습니다. 이러던 것이 군주와 백성, 귀족 세력의 분열로 인해 국력이 쇠퇴하고, 급기야는 러시아, 합스부르크, 프로이센에 의해 나라가 과분되었으며, 1차 대전 후에야 간신히 자존을 회복했습니다. 허나 필수즈키 원수의 독재는 국가에 부정적 유산만을 남겼으며, 그의 사후 나치의 침략은 특히 수도 바르샤바를 절멸의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책에는 나치가 바르샤바에 가한 반 문명적 폭거가 자세히 묘사되며, 영국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행한 동부 독일 공업 도시들에 대한 초토화 공습도 생생하게 서술됩니다.

목차만 보면 이 책에 아시아 여러 도시에 대한, 특히 21세기 들어 새로이 부상한 여러 활기찬 도시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부족하질 않나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꼼꼼히 읽어 보면,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어 혁신적 방식으로 번영하는, 또 스마트 도시의 미래상을 꼼꼼히 준비하는 여러 신흥 도시들의 모범이 꾸준히 분석되고 언급됨을 쉽게 찾겠습니다. 또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는 한국의 예를 특별히 거론하며, 스마트 시티의 비전을 다이내믹하게 구현하는 송도국제도시가 특별한 경의와 함께 거론됩니다. 도시의 역사는 곧 인간 문명사의 요약판이자 예언록임을, 방대하고 정확하며 재미있는 사례로 증명하는 저자의 놀라운 필력에 홀딱 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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