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공주 1
최사규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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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기록이 충분치 않아 구체적으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평강공주와 온달 사이에 벌어진 속 깊은 로맨스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흥미로운 예임에 분명합니다. 좀 부족한 남자가 영민하고 현명한 여성 반려자의 도움을 받아 일약 출세한다는 모티브는 외국의 예에서 비슷한 줄거리를 찾기 힘든데, 은근히 여성에 기대는 성향이 강한 한국 남성의 멘탈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 최사규님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교가 안 된다. 햄릿에 이런 사랑과 비장함이 어디 있었던가?(p8)"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연을 읽고 자랐습니다만 사실 그렇게까지 절절한 느낌을 받지는 못한 듯합니다. 소설 1, 2권을 다 읽고 나서 느낀 바이지만, 만약에 정말로 두 인물 사이에 이런 장대하고도 낭만 넘치는 사연이 있었다면 ㅎㅎ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정사(正史)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이 온달과 평강 이야기가 매우 긴 분량을 차지하며 서술됩니다. 다른 사연에 비해 상세하고 문장(원문인 한문)도 정성들였을 뿐 아니라, 김부식 개인 성향에 비추어 이런 이야기에 그리 관심이 있었을 법하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왜 평강공주는 울보가 되었을까?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어느 에피소드에도 올케에게 모함을 받아 아버지(물론 낳아 주신 친아버지)에게 쫓겨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또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도 그 가진 진정성만큼 이해를 받지 못하는 효녀 코딜리어의 사연이 나오지만, 이 소설(작가님의 성격 규정상 "팩션") 속에서 평강은 계모와 그의 자녀(의붓 남동생)에게 모해의 대상이 됩니다. 물론 궁정에서도 그녀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만, 즉위 후 이성계에게 신덕왕후가 그러했듯, 침소에서 베갯머리 상소를 일 삼는 현재의 배우자(...)에게는 당할 재간이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왕실의 정통성과 자신의 안위, 가정의 참된 평화, 국가의 미래 등을 동시에 걱정해야 하는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 밖에요.

이처럼 배포 크고 사려 깊은 멋진 여성이고, 어지간한 남자를 능가하는(어지간한 남자뿐 아니라 아주 뛰어난 ㅎㅎ 남자들까지도) 여장부(작가 최사규님이 그리 캐릭터 방향성을 잡았습니다)인 평강공주는, 아예 자신이 제대로 왕재(王材)를 발굴하여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하고 기백도 불어넣어,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바로잡으려 듭니다. 역사상으로 여계 상속은 드뭅니다만 고대 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 프랑스의 발루아, 부르봉 왕조 등이 사위가 물려받은 경우였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고대국가가 국운의 상승을 멈추고 휘청거릴 때는, 대개 왕실을 위협할 만한 권위의 귀족 가문들이 발호할 무렵이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절노부, 소노부 등이 그런 포지션이네요.

잔혹한 폭력도 등장하고, 한 사람을 넘어 한 가문, 핏줄에 두루두루 원한을 새길 만한 몹쓸 짓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못된 인간들도 나옵니다. 고대이므로 이런 미개한 유형이 있었겠거니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이런 간악한 자들의 악행이 먼 그림자일망정 몸에 닿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1권에서 평강은 드디어 집을 떠납니다. 그녀는 구차한 아귀다툼을 마다한 채, 척박한 벌판에서 야인으로 살아가는 누군가를 만나 그를 환골탈태시킬 것입니다. 미완의 대기를 품어 썩은 누리를 뒤집고 바로세울 큰 인물로 거듭나게 할 그녀는 다름 아닌 여성 구세주인 파티마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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