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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말 공부
임영주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도 말을 잘하고 싶어합니다. 이 책은 그런 아이들을 위한 책입니다. 정확한 발성, 그윽한 음색, 청중의 관심을 잡아채는 호소력, ...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런 능력을 두루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말을 잘한다는 것"는 이런 것만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황석영 선생님의 <삼포 가는 길>이라든가, 박경리의 <토지> 같은 명작 소설을 재미있게 정확히 읽고 이해하는 것도 크게 보아 "말 잘 하기"의 준비 과정이라는 겁니다.
저자는 나아가, "말 잘하기"의 궁극적 경지는 친구들과 잘 소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 의사와 감정을 다른 친구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친구의 뜻을 바람직하게 이해하여 쓸데없는 싸움을 줄이거나 피하고, 좋은 우정을 가꿔 나간다면 이게 진정 "말 잘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예전 나이 많은 분들은 "개성은 개 같은 성질을 가리킨다"며 허무개그를 즐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는 단순한 넌센스퀴즈가 아니라, 종래의 획일적인 사회에서 개인 개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자 기성 세대층에서 이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생기며 그 부산물로 풍자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개성이 없는 사회는 획일주의 사회이며,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타락할 염려마저 있습니다. 인간 문명은 명백히 자유주의, 개인주의로 방향성을 잡았으며 그 반대의 지표는 무슨 미사여구로 위장하든 간에 반인륜, 반인도주의 사회의 징후입니다.
그러나 대인관계에서 정제되지 않은 나만의 개성을 지나치게 내세우면 그것 역시 큰 문제입니다. 요즘 "쎈캐"가 유행이라고 하지만, 이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미를 위해 과장한 면이 큽니다. 현실에서 이처럼 "쎈캐" 놀이에 몰입하다 친구와 싸우거나 학폭 문제에 휘말린다면 본인만 손해이며, 피해를 혹 보게 된 친구에게는 얼마나 또 미안한 일입니까. 그래서 이 책에서는, 욕을 하지 말 것, 친구를 수준 차별하며 가리고 사귀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나쁜 버릇을 정녕 고치지 못하고 남 위에 군림하거나 강한 척하는 친구는 "근주자적"이라며 조심할 것도 가르칩니다. 사실 쎈 게 아니라 쎈척하는 캐릭터들은 약자에게만 강할 뿐, 강자 앞에서는 한도 끝도 없이 비굴한 게 보통입니다.
책에는 정말 좋은 말이 나옵니다. "감정을 들여다보는 초감정 대화법을 만들자(p71)" 아이들한테는 약간 어려운 말일 수도 있지만, 내용은 매우 쉽습니다(실천이 어려울 뿐). 즉, 내 감정을 내가 먼저 정확히 읽자는 겁니다. 내 감정이 정리가 안 되었는데 내 감정(과 의사)를 어떻게 남에게 전달하겠습니까. 또, 내 감정이 정확히 나 자신에게 파악되면, 이를 출발점으로 상대의 감정 또한 나 자신이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나를 알고 남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게 <손자>에 나오는 가르침인데, 비단 "싸움"이 아니라 "교유, 사귐, 친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감정)를 알고 남을 알면 대체 싸울 일이 없고, 마음이 맞는 친구와는 기분 좋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친구들 사이에도 인기 최고가 됩니다.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불리한 상황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p92)." ㅎㅎ 아이들에게는 솔직히 좀 어렵지 않나 싶은 말씀인데, 그래도 요즘 아이들은 영악하고, 불리한 상황이 있으면 아 내 잘못도 있으니까 받아들여야겠다는 식의 수동적이고 자포자기 반응이 아니라 가능하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영리한 의도를 품는 게 보통입니다. 영리해져야지 하고 마음만 먹으면 아무 소용 없고 어떻게 해야 영리한 결과가 생길 수 있는지를 어른들이 (이런 걸 관심 있어하는 애들에게) 가르쳐야 하겠지요. 책에서 내리는 결론은 "(바른, 적절한) 태도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입니다. "말투도 볼멘소리에다 흥분해서 말하니 말의 앞뒤도 엉망진창이 되기 쉽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모든 것을 친구와 공유해야 할까?" 아이들 중에는 이기적인 애들도 있지만, 반대로 또래 눈치를 너무 보거나, 필요 이상으로 애들 사이의 도덕과 기준에 맞추려 드는 애들도 있습니다. 힘이 없고 애들한테 휘둘려 다녀서 꼭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의리 때문에, 착해서 그러는 애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애들은 모든 걸 친구에게 오픈 안 하면 오히려 죄의식을 느낍니다. 누구라고 해도 그럴 필요가 없으며, 공개와 공유는 적정 선까지만 유지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괜히 나중에 불필요하고 예측 못하던 결과가 생기기 쉬우며, 오히려 친구 사이의 우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공유의 태도는 다른 친구에게 강요해도 안 됩니다. "너 그걸 나한테 말해 주지 않다니 참 이기적이다." 저자는 "이기적이다 어떻다 같은 말로 친구의 성격을 함부로 판단하는 자체"가 나쁜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남의 성격을 함부로 판단하면, 남도 내게 그렇게 할 수 있는데 그런 대접을 받으면 기분이 좋을까요? 내가 받아서 기분이 나쁠 것 같으면 나도 남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유지해 주는 것도 우정이다(p101)."
"이쁘게 말하면 행복 에너지를 부른다(p114)" "왜 전화를 안 받아?" "내가 몇 번이나 전화 했잖아?" 특히 엄마라든가 윗사람한테 이런 이쁘지 못한 말투는, 내 의사를 전달도 하지 못하고 혼만 나는, 원치 않던 결과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좀 억울한 상황이라 해도 "일단은 잘 듣는 능력"을 갖추는 게 "말 잘하는 능력"의 전제라고 합니다.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을 수 없습니다. 비꼬는 말, 기분 나쁜 말도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경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요즘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이라고 해도 사소한 자극이든 뭐든 바로 폭발하고 보지, 일단 참고 보는 식의 반응을 만나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습니까. 참는다고 해도 그건 권력 관계가 그리 정해지다 보니 인내를 강요받는 거겠죠. 그러나 상대에게 굴종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성숙한 인격으로 상황을 객관화해서 보고, 성숙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단호하게 "No"라고 할 때는 그렇게 해야 하겠지요.
말끝을 정확히 맺으면 스마트해 보인다고 합니다. (p160) 우물우물 말을 삼키지 말고, 정확히 아웃풋 하라고 합니다. "당당하고 멋진 나"가 곧 "상대에게 존중받는 나"라고 합니다. 사실 좀 미숙한 아이들은 말을 얼버무리고 내가 힘든 걸 표시하면 상대가 나를 배려할 줄 압니다. 그러나 물론 그런 좋은 상대방도 있겠지만, 2차 관계 위주의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특히 누가 부탁 같은 걸 할 때 내가 들어 주기 어려운 부탁은 오해의 여지 없이 "들어 줄 수 없다"고 딱부러지게 말해야 합니다. 상대가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을 범위 안에서 말입니다.
여튼 "싸가지 없고 짜증나는 말투"는 남한테 환영 받지 못합니다. 말은 최대한 이쁘게 해야 하고(p189), 남에게 오해 받을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고객을 상담하는 분들의 경우 친절하고 자신이 먼저 활기 있고 신 나 하는 어조로 말을 하면, 설령 짜증나는 일이 있어 항의를 하려 전화를 한 고객도 차마 폭언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는커녕 그럴 마음을 먹은 사람도 죄의식을 느끼죠. 반면 일이 힘들고 내가 왜 박봉에 이런 일을 하고 무시를 받냐며 피해의식에 쩐 사람은, 상대에게 안 나올 폭언도 스스로 자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일에 자신 있는 사람은 상대에게 존중을 스스로 만들게 자세를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말이나 행동을 다듬고 외면도 잘 가꾸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큰 물의를 빚은 연예인도 단정하게 꾸미고 나와 포토라인 앞에 서니까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줄어들고 "뭔 일이 있나?"라며 동정을 갖게 하는 경향마저 있습니다. 잘 가꾼 외모가 이미 보는 사람한테 이미 예의를 갖춘다는 느낌을 주고 시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외모 문제가 아니라 예의 범절의 범주로 들어가는 겁니다.
말하기 전에 손이나 코나 어디를 매만지는 버릇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도 최근에 어떤 유튜브를 보는데 말하는 사람이 뭐 결정적인 말만 하면 꼭 코를 만지고 시작을 해서, 아 저 사람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또 시작하는구나, 혹은 저 사람은 저런 식으로 거짓말 예고를 하고 시작하는 건가 해서 참 불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듣는 사람에게 신뢰를 주지 않고 어떻게 소통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