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달라지는 순간 - 세계 최고 혁신 전문가 리타 맥그래스가 발견한 변곡점의 시그널
리타 맥그레이스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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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화두는 누가 뭐라고 해도 "혁신"입니다.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썩고, 망가지고,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집니다. 그래서 기존에 잘 되던 방식도 바꾸어야 하고, 잘 안 되던 방식은 더더군다나 바꿔야 한다고들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자 리타 라그레스는 "변곡점을 알아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변곡점이라는 건 곡선의 패턴이 변화하는 징조를 처음 드러내는 점을 가리킵니다. 수학적으로는 두 번 미분을 하면 이 변곡점이 되는 좌표가 방정식으로 도출됩니다. 한 번 미분을 하면 증가에서 감소, 혹은 감소에서 증가로 바뀌는 점이 나오죠. 그런데 이걸로는 불충분하며, 실제로 증감의 양상이 수치적으로 바뀐 시점에서 대응을 하면 이미 늦습니다. 그래서, 증가와 감소의 패턴이 추세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대응을 해야 합니다., 이래야만 선제적, 선취적 대응이 가능합니다.

지난 시기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이자 창립자인 저커버그야말로 혁신과 창의의 대명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아마 이렇게 고평가를 받던 시기가 십 년은 지속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미 페이스북의 쇠락 징조가 보인다고 말합니다. 최고경영진 중 일부가 회사를 떠났고(p60), "아첨꾼들에 둘러싸였다"는 평가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하며, 광고 플랫폼으로서의 매력도 예전같지 않다는 진단도 많습니다. 벌써 SNS의 중요 지분 중 일부를 인스타그램 같은 다른 매체에 내어주기 시작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렇게 "변곡점"처럼 보이는 현상이 목격된다고 해서, 바로 페이스북 주식을 나스닥에서 매도하는 결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겠지만, 변화의 징후는 남보다 먼저 캐치해야 의미가 커지는 법입니다.

전략적 결정에 대한 "자유도와 신호강도는 반비례한다(p95)." 어떤 상황이건 간에, "의미있는(significant)" 정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정보, 이 책에서 "노이즈"라고 표현되는 정보가 있습니다. 유의미한 정보만을 걸러내어 전략 형성의 토대로 삼는 작업이 중요한데, 이제 누가 봐도 상황이 대세를 바꾸었다 싶으면 그때는 내갸 내 사업체의 전략을 바꿔봤자 결과가 달라질 게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아직 이건지 저건지 뭔가 불확실할 때, 영리한 CEO는 재빨리 대세를 감 잡고 타이밍을 포착하여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펼쳐지는 미디어 전쟁에서 넷플릭스는 이미 승자이며, 앞으로 기존의 미디어 거인이나 대규모 극장 등을 다 밀어내고 최종의 패권을 차지할 듯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칸 집행부나 미국의 영화 아카데미 등 기존의 영화 관련 기득권층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이겠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넷플릭스가 시장을 지배하기 이전에도 이미 "블록버스터"라는 스타트업이 이런 종류의 사업을 구상한 적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넷플릭스에 앞서 승자가 되지 못했는가? 저자는 "진입 시점이 너무 빨랐다"고 진단합니다. 변곡점은 그것이 변곡점인지 확실히(그러나 시장의 평균판단보다는 훨씬 흐릿한, 이른 시점에서) 알았을 때 판단해야지, 무작정 일찍만 들어간다고 능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호강도가 너무 낮으면, 자유도가 그저 높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파국적인 결과를 맞을 만큼 상황이 유동적으로 바뀐다는 뜻이죠.

지난 시대에는 테드 터너라는 걸출한 사업가가 시대의 변화를 미리 읽고 CNN을 창업했지만, 우리 시대에는 냇 터너와 재크 와인버그라는 청년들이 플랫아이언헬스라는 기업을 만들었습니다(p185). 광고라고 하는 건 참 추상적이면서도 미묘한 영역인데, 대체 특정 기획이나 상품의 성공 지분 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광고의 덕분이라고 평가해야 할지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처럼 모바일과 온라인이 발전한 시대에는, 어느 미디어에 광고를 집행해야 할지가 몹시도 결정이 어렵습니다. 이 청년들은 "광고 거래소"라는 개념을 구체화하려는 의도였는데, 모두 실패했었다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광고라는 행위와 결과물 자체가 그 모호한 규정, 범주를 탈피하기 어려우니 말입니다.

이후에도 저 두 사람은 "초창기 우리의 컨셉은 완전히 엉터리였다"고 정직하게 술회합니다. 광고 에이전시를 플랫폼에 참여시키는 방식인데 사실 지금은 이 모델이 최종 승자로 굳었습니다. 우리가 유튜브나 구글, 혹은 구글에서 광고를 받는 여타의 사이트에서 어떤 광고를 보면, 이것이 대부분은 저 두 사람이 만든 비드매니저 모델에 기반합니다.

예를 들어 나무위키나 엠엘비파크 같은 데를 들어가도 광고가 뜨는데, 이걸 보기 싫으면 구글에서 메시지가 뜨며 사유를 묻습니다. 이 모델을 냇 터너와 재크 와인버그가 만들고 구글에 판 것입니다. 이런 모델이 정착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며 두 사람은 거의 파산지경까지 갔었고 죽다 살아난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너무 유행만 좇는다"는 비판을 들었으나, 만약 두 사람이 초기 생각만 고집했다면 비드매니저 유형은 아마 다른 사람(들)이 먼저 발견하고 다른 이름이 붙은 채 다른 사람에게 떼돈을 안겨 주고 끝났을 것입니다.

어느 비즈니스 영역이건 영원한 승자는 없습니다. 스티븐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로 재임할 때, 그는 새로운 시대가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리라는 걸 필요한 만큼 실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시대에 MS는 2류로 전락했으며, 평론가들(책에서는 잡지 <뉴요커>를 예로 드네요)은 "새 경영자는 누가 되었든 발머와는 크게 달라야 한다"고까지 꼬집었습니다. 한때 <타임>등으로부터 그렇게나 찬사를 받았던 그였건만 말입니다.

사람은 고정형 사고방식과 성장형 사고방식이 있다고 합니다(p218). 전자는 자신을 승자, 리더로 인식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자기 계발에 투자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 변화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시대에 뒤떨어지고 맙니다. 후자는 어떤 고정된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 상황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유연하게 자신을 상황에 적응시켜 나갑니다. 아마 책에서 말하는 전자 유형은 스티브 발머 같은 이이겠으며, 후자의 예는 후임 CEO였던 사티아 나델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후자 같은 리더라야, 정확한 변곡점이 어디이며 언제인지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짚어낼 수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얼마나 빨리 변화하는지부터 먼저 절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화는 너무 늦게 포착하면 이미 전략 변화를 기할 만큼 여유를 못 잡는 수가 많습니다. 주위에서 너도 나도 대세가 바뀌었음을 눈치챌 때는 이미 늦습니다. 극점이 아니라 변곡점을 잡아채기 위해, 시대와 상황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고 부지런한 공부를 통해 이를 내면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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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도 잘되는 사람들의 비밀 - 성공 vs 실패를 가르는 사소한 습관 20가지
김재성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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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야." 누군가의 사회적 평판이 이에 이르면 참 심각하겠습니다만 사실 이 말은 남보다는 나 자신을 향해 더 자주 쓰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몇십 년 전에는 "머피의 법칙"이란 말이 크게 유행했는데 사실 이런 말을 남들을 향해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잘못된 혹은 과장된) 자기 연민 때문에 자기 자신을 향해 썼을 뿐이죠. 그러나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정말로 있을 리도 없고, 스스로를 과연 그리 여긴다면 "될 일도 안 되는" 결과나 자초하기 쉽습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라도,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뭘 해도 잘 풀리는 인생, 뭘 해도 잘 되는 사람"이 혹 있다면 누구나 그리 되고 싶을 것입니다. 구체적인 롤모델이 있으면 더 좋겠죠. 그런 롤모델이 혹 근처에 없다면,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두루 거쳐 여태 거의 모든 목표를 이루고 산 사람의 이야기를 책으로라도 접하고 구체적인 이상상을 세우면 좋을 것입니다. 비전과 진로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어떤 좋은 기운? 뭐 그런 것도 받을 수 있다면 ㅎㅎ 더욱 좋겠습니다.

저자 김재성 씨는 학력도 경력도 퍼펙트에 가깝습니다. 한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마 90% 이상이, 내 자녀가 이리 성장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만큼이겠습니다. 물론 부모님들에 따라서는 내 아이가 남들과 다른 특별한 이념, 가치, 세계관을 갖추고 이를 실천하는 삶을 살길 더 간절히 바라는 이들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기왕이면 세속의 기준에서도 번듯한 이런저런 성취를 해 주는 걸 마다하지야 않을 것입니다. 속물이건 그렇지 않은 이들이건 간에, 이 저자분의 인생이 멋있어 보이지 않는 이가 과연 있을까 싶을 만큼 멋진 경로이고 성취입니다. 참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멋지고 폼나는 커리어를 만들 수 있을까요?

저자는 말합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 왜 그럴까요?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스포츠웨어 매이커 나이키의 광고에도 한때 "JUST DO IT!'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저 행동으로 옮기고 현재의 과업에 충실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걸, 공연한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니 될 일도 안 된다는 뜻이겠죠.

"실패하는 사람은 한 권의 책을 읽고 세상 모든 일을 다 안다고 여긴다." 참 옳은 말입니다. 견문이 좁은 사람만큼 무서운 게 없습니다. 견문이 좁아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으면 누가 뭐라고 안 하는데, 자신이 견문이 좁은 걸 숨기기 위햐 오히려 남에게 덤터기를 씌우기도 합니다. 실력이 없는데 이를 감추고 자신의 위신(아무 실체가 없습니다)을 세우려니 하나부터 열까지가 다 거짓말이고 지어내는 헛소리입니다. 저자의 말씀대로, 책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읽고 가능하면 많은 양의 독서를 하는 게 세상에 떳떳해지는 길이겠습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억지로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저자 역시 같은 말을 합니다. 어렸을 때는 엄마 손에 이끌려 억지로 공부를 해도 합니다. 허나 성인이 된 후로는 자신이 알아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평생 누가 대신 해 줬으니 앞으로도 누가 이끌어 주겠거니 하는 생각은 자신의 앞날을 망치기나 쉽습니다.

후회없는 인생을 살려면 먼저 자신이 제 인생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뛰어난 사람이 누리는 여유 있는 삶은 부러워하면서, 막상 그가 치러야 했을 대가나 노력은 따라하지 않는다면 이는 큰 모순이며, 모순에 그치지 않고 사기나 범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남의 템포에 끌려 가지 않고 주제척인 삶을 살려면 먼저 자신의 실력을 점검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성실한 자세가 중요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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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 서가명강 시리즈 16
구범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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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는 한여름에 청 제국의 황제가 무더위를 피하던 휴양지였습니다. 조선은 당시 조공국이었기에 정기적으로 사신을 파견했는데, 경우에 따라 여기서 청의 황제를 회견하곤 했습니다. 이 열하의 풍습을 잘 기록한 기행문이 박지원의 <열하일기>이며 교과서에도 그 일부가 실릴 만큼 고전으로 평가 받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기록이니 어느 정도는 오류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이런 고전에조차 사실과 다른 점이 기술되어 있다는 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지금 이 책은 바로 그 오류을 여럿 지적하며, 동시에 과연 열하에 황제를 배알하러 간 우리 사신들의 참된 목적과 그 실상이 무엇인지 알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열하일기> 등 배경 지식이 있으면 더 재미있겠으나, 그렇지 않아도 읽어 내려가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건륭제는 참 오만한 황제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여러 차례 원정에 성공한 십전 노인"으로 불러 달라고 했죠. 이 책에도 티벳의 종교 지도자를 접견하는 데 열하의 별장을 할애하여 마치 상대를 엄청 존중하는 듯 생색을 내려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자신을 돋보이려 한 의도였다는 점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건륭제 살아 생전에 청 제국은 최상의 완성된 국력을 자랑했으나, 그가 죽고 화신마저 숙청된 후에는 이 거대한 체제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 빼어난 군주의 "개인기"에만 의존한 시스템은 사실 속으로 곪기 쉽고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점을 이 사례가 보여 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은 본디 불교를 뒤집어 엎고 건국한 나라였습니다. 고려 말 신진 사대부는 집요하리만큼 불교를 공격했고, 건국 이후 수백 년에 걸쳐 불교가 민중에 대해 행사하던 권위를 빼앗았습니다. 이런 조선의 사대부가, 가뜩이나 오랑캐로 경원하던 청나라에 사대하러 가서 그 특유의 봉불 행사에까지 참석했다면, 개인으로서 치욕이고 귀환한 후 본분을 게을리하고 명예를 더럽혔다는 봉박을 얼마나 당해야 하겠습니까? 사실 청나라는 우리가 안으로 반청 정책을 취하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공연히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자충수를 두기를 신중히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외번과 외국을 보아 성세를 자랑하다" 사실 명 제국은 간만에 등장한 강력한 통일 제국이었으며 강역도 최고 넓이였고 무력도 막강했고 시스템도 세심히 정비되었습니다. 청 역시 산햐관에서 뜻하지 않게 행운을 얻지 못했더라면 결코 입관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던 명도 북쪽에서 끊임 없이 도발하는 몽골 족, 오이라트 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이러던 게, 청대에 들어서는 내몽골 전체를 모조히 수하에 넣고(물론 극진히 우대를 했습니다만)오이라트의 일족인 준가르까지 복속하여 최고의 국세를 자랑했던 것입니다. 청나라 황제는 그저 여름 휴가를 열하에서 시원하게 보내려 그리 행차를 한 게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게 지금 자신들이 어느 정도 전성기를 누리는지 똑똑히 확인시켜 행여 다른 마음(과거 자신들이 명나라에 대해 그러했듯)을 먹지 못하게 만들려 든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도를 아마도 알았을 법한 박지원 역시 적정선에서 기록을 꾸려 조선의 미래를 걱정했겠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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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시라이 사토시 지음, 오시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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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은 고전입니다. 기계(산업 자본)의 사용으로부터는 잉여 가치가 창출되지 않고, 오로지 인간에 대한 착취분에서 이게 가능하다는 마르크스의 통찰은 적어도 19세기 자본가의 생리를 완전히 꿰뚫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세기 아니라 현재에 이르러서도, 일부 비뚤어진 기업가는 이런 마인드로 사람(반드시 직원만 가리키는 게 아니죠)을 대하고 기업을 운영한다고 해도 별반 틀리지 않습니다. 노동자는 우리 나라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듯 언제나 자신의 권리를 찾고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 수십 년 전 어느 명석한 사상가의 인사이트를 한 번 정도는 면밀히 살필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자본>은 현대에 들어서도 과연 유효한 이론이 될 수 있을까요? 책에서는 인공지능의 예를 듭니다. 확실히 자본의 생리가 변하지 않았다는 좋은 예를 들기에 이것만한 실증도 없지 싶습니다. 얼마 전 어느 서울 시장 후보가 통번역대학원 졸업자에게 장래 진로로 번역 앱 설계 참여를 권했는데, 사실 이건 큰 실수입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고 해도 말입니다. 왜냐 하니, 이런 시스템은 결국 해당 분야 전공자의 (가뜩이나 좁은) 취업 진로를 더욱 좁히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런 앱에 참여하는 건, 해당 졸업자들로서는 "당장 수입을 올리기 위해 치어까지 모조리 그물로 쓸어담으라"는 식의,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처방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포디즘은 테일러 방식과 결합하여 현대 자본주의의 생산성을 극대화한 아주 좋은 예였습니다. 포드 회장은 노동자들이 자사가 생산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임금을 올려 주기까지 했는데, 사실 이는 조삼모사 정책과 본질에 있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아무튼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이런 방식을 채택했는데 결국은 빈부의 차이가 더 늘어나고 노동자는 일종의 "카-푸어" 상태에서 더 벗어나지 못하고 구조적으로 힘들어진다는 게 이 책의 결론입니다.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겠으나 적어도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자본가 측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업의 지나친 약탈적 행태를 막기 위해서도 이런 지식은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해킹을 당해서 피해자가 속출하는데도 자신들은 알지 못하는 기술적 문제라며 발뺌으로 일관한다? 책에는 일본 기업 세븐일레븐이 2019년에 실제로 보인 한심한 행태에 대해 설명합니다. 과거에는 그래도 기계와 시스템에 대해 최고 경영자가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AI가 완전히 일반화하면 이제 소비자는 두 눈 뜨고 피해를 봐도 어디 가서 누구한테 따져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갈 수 있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어떤 앱을 이용할 때, 오로지 이매일로만 클레임을 걸 수 있고, 목소리를 가진 "사람 담장자"와 직접 소통할 수 없을 때 큰 불편을 느꼈습니다. AI는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찾아내기가 무척 힘들며, 책임 소재의 공방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사회 문제를 유발할 수 있고, 이 문제를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예리하게 분석한 점이 이 책의 탁월한 강점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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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말 공부
임영주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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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도 말을 잘하고 싶어합니다. 이 책은 그런 아이들을 위한 책입니다. 정확한 발성, 그윽한 음색, 청중의 관심을 잡아채는 호소력, ...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런 능력을 두루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말을 잘한다는 것"는 이런 것만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황석영 선생님의 <삼포 가는 길>이라든가, 박경리의 <토지> 같은 명작 소설을 재미있게 정확히 읽고 이해하는 것도 크게 보아 "말 잘 하기"의 준비 과정이라는 겁니다.

저자는 나아가, "말 잘하기"의 궁극적 경지는 친구들과 잘 소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 의사와 감정을 다른 친구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친구의 뜻을 바람직하게 이해하여 쓸데없는 싸움을 줄이거나 피하고, 좋은 우정을 가꿔 나간다면 이게 진정 "말 잘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예전 나이 많은 분들은 "개성은 개 같은 성질을 가리킨다"며 허무개그를 즐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는 단순한 넌센스퀴즈가 아니라, 종래의 획일적인 사회에서 개인 개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자 기성 세대층에서 이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생기며 그 부산물로 풍자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개성이 없는 사회는 획일주의 사회이며,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타락할 염려마저 있습니다. 인간 문명은 명백히 자유주의, 개인주의로 방향성을 잡았으며 그 반대의 지표는 무슨 미사여구로 위장하든 간에 반인륜, 반인도주의 사회의 징후입니다.

그러나 대인관계에서 정제되지 않은 나만의 개성을 지나치게 내세우면 그것 역시 큰 문제입니다. 요즘 "쎈캐"가 유행이라고 하지만, 이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미를 위해 과장한 면이 큽니다. 현실에서 이처럼 "쎈캐" 놀이에 몰입하다 친구와 싸우거나 학폭 문제에 휘말린다면 본인만 손해이며, 피해를 혹 보게 된 친구에게는 얼마나 또 미안한 일입니까. 그래서 이 책에서는, 욕을 하지 말 것, 친구를 수준 차별하며 가리고 사귀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나쁜 버릇을 정녕 고치지 못하고 남 위에 군림하거나 강한 척하는 친구는 "근주자적"이라며 조심할 것도 가르칩니다. 사실 쎈 게 아니라 쎈척하는 캐릭터들은 약자에게만 강할 뿐, 강자 앞에서는 한도 끝도 없이 비굴한 게 보통입니다.

책에는 정말 좋은 말이 나옵니다. "감정을 들여다보는 초감정 대화법을 만들자(p71)" 아이들한테는 약간 어려운 말일 수도 있지만, 내용은 매우 쉽습니다(실천이 어려울 뿐). 즉, 내 감정을 내가 먼저 정확히 읽자는 겁니다. 내 감정이 정리가 안 되었는데 내 감정(과 의사)를 어떻게 남에게 전달하겠습니까. 또, 내 감정이 정확히 나 자신에게 파악되면, 이를 출발점으로 상대의 감정 또한 나 자신이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나를 알고 남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게 <손자>에 나오는 가르침인데, 비단 "싸움"이 아니라 "교유, 사귐, 친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감정)를 알고 남을 알면 대체 싸울 일이 없고, 마음이 맞는 친구와는 기분 좋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친구들 사이에도 인기 최고가 됩니다.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불리한 상황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p92)." ㅎㅎ 아이들에게는 솔직히 좀 어렵지 않나 싶은 말씀인데, 그래도 요즘 아이들은 영악하고, 불리한 상황이 있으면 아 내 잘못도 있으니까 받아들여야겠다는 식의 수동적이고 자포자기 반응이 아니라 가능하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영리한 의도를 품는 게 보통입니다. 영리해져야지 하고 마음만 먹으면 아무 소용 없고 어떻게 해야 영리한 결과가 생길 수 있는지를 어른들이 (이런 걸 관심 있어하는 애들에게) 가르쳐야 하겠지요. 책에서 내리는 결론은 "(바른, 적절한) 태도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입니다. "말투도 볼멘소리에다 흥분해서 말하니 말의 앞뒤도 엉망진창이 되기 쉽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모든 것을 친구와 공유해야 할까?" 아이들 중에는 이기적인 애들도 있지만, 반대로 또래 눈치를 너무 보거나, 필요 이상으로 애들 사이의 도덕과 기준에 맞추려 드는 애들도 있습니다. 힘이 없고 애들한테 휘둘려 다녀서 꼭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의리 때문에, 착해서 그러는 애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애들은 모든 걸 친구에게 오픈 안 하면 오히려 죄의식을 느낍니다. 누구라고 해도 그럴 필요가 없으며, 공개와 공유는 적정 선까지만 유지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괜히 나중에 불필요하고 예측 못하던 결과가 생기기 쉬우며, 오히려 친구 사이의 우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공유의 태도는 다른 친구에게 강요해도 안 됩니다. "너 그걸 나한테 말해 주지 않다니 참 이기적이다." 저자는 "이기적이다 어떻다 같은 말로 친구의 성격을 함부로 판단하는 자체"가 나쁜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남의 성격을 함부로 판단하면, 남도 내게 그렇게 할 수 있는데 그런 대접을 받으면 기분이 좋을까요? 내가 받아서 기분이 나쁠 것 같으면 나도 남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유지해 주는 것도 우정이다(p101)."

"이쁘게 말하면 행복 에너지를 부른다(p114)" "왜 전화를 안 받아?" "내가 몇 번이나 전화 했잖아?" 특히 엄마라든가 윗사람한테 이런 이쁘지 못한 말투는, 내 의사를 전달도 하지 못하고 혼만 나는, 원치 않던 결과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좀 억울한 상황이라 해도 "일단은 잘 듣는 능력"을 갖추는 게 "말 잘하는 능력"의 전제라고 합니다.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을 수 없습니다. 비꼬는 말, 기분 나쁜 말도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경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요즘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이라고 해도 사소한 자극이든 뭐든 바로 폭발하고 보지, 일단 참고 보는 식의 반응을 만나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습니까. 참는다고 해도 그건 권력 관계가 그리 정해지다 보니 인내를 강요받는 거겠죠. 그러나 상대에게 굴종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성숙한 인격으로 상황을 객관화해서 보고, 성숙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단호하게 "No"라고 할 때는 그렇게 해야 하겠지요.

말끝을 정확히 맺으면 스마트해 보인다고 합니다. (p160) 우물우물 말을 삼키지 말고, 정확히 아웃풋 하라고 합니다. "당당하고 멋진 나"가 곧 "상대에게 존중받는 나"라고 합니다. 사실 좀 미숙한 아이들은 말을 얼버무리고 내가 힘든 걸 표시하면 상대가 나를 배려할 줄 압니다. 그러나 물론 그런 좋은 상대방도 있겠지만, 2차 관계 위주의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특히 누가 부탁 같은 걸 할 때 내가 들어 주기 어려운 부탁은 오해의 여지 없이 "들어 줄 수 없다"고 딱부러지게 말해야 합니다. 상대가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을 범위 안에서 말입니다.

여튼 "싸가지 없고 짜증나는 말투"는 남한테 환영 받지 못합니다. 말은 최대한 이쁘게 해야 하고(p189), 남에게 오해 받을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고객을 상담하는 분들의 경우 친절하고 자신이 먼저 활기 있고 신 나 하는 어조로 말을 하면, 설령 짜증나는 일이 있어 항의를 하려 전화를 한 고객도 차마 폭언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는커녕 그럴 마음을 먹은 사람도 죄의식을 느끼죠. 반면 일이 힘들고 내가 왜 박봉에 이런 일을 하고 무시를 받냐며 피해의식에 쩐 사람은, 상대에게 안 나올 폭언도 스스로 자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일에 자신 있는 사람은 상대에게 존중을 스스로 만들게 자세를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말이나 행동을 다듬고 외면도 잘 가꾸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큰 물의를 빚은 연예인도 단정하게 꾸미고 나와 포토라인 앞에 서니까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줄어들고 "뭔 일이 있나?"라며 동정을 갖게 하는 경향마저 있습니다. 잘 가꾼 외모가 이미 보는 사람한테 이미 예의를 갖춘다는 느낌을 주고 시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외모 문제가 아니라 예의 범절의 범주로 들어가는 겁니다.

말하기 전에 손이나 코나 어디를 매만지는 버릇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도 최근에 어떤 유튜브를 보는데 말하는 사람이 뭐 결정적인 말만 하면 꼭 코를 만지고 시작을 해서, 아 저 사람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또 시작하는구나, 혹은 저 사람은 저런 식으로 거짓말 예고를 하고 시작하는 건가 해서 참 불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듣는 사람에게 신뢰를 주지 않고 어떻게 소통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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