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쏟다
고만재 지음 / 마들렌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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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아닌 다른 종류의 책이라면 마음들여 깊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책이란, 문학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고 이를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었고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통해 내 안에 지식을 모아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필따위, 은행이나 미용실에서 잠깐 짬이 날 때 비치되어 있는 글모음집을 한 두번 쓰윽 훑어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수필 몇 편을 공감과 동감없이 밑줄 쫙 그은 텍스트로만 대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작년 지자체에서 운영한 <글쓰기 특강>을 수강한 이후로 나는 일상적 글쓰기-수필의 매력에 빠졌다.

거창한 문학이 아니더라도 방대한 지식이 아니더라도, 장삼이사의 글도 충분히 가슴을 울릴 수 있다.

과거 다른 이의 글과 책을 보고 '이것도 책이라고!' '이런 책을 뭐하러 냈대?' '이정도는 나도 쓰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수차례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글이랍시고 몇 줄씩 써보니, 이 세상 모든 글은 다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글 한줄 문장 한 단락 한 편의 글을 써내기 위한 글쓴이의 고뇌는 그 별 것 아닌 글줄, 문단, 한 편의 열 곱접만큼이나 된다는 것을 나는 블로그에 글을 몇 개 쩌내면서야 비로서 알게 되었다.

내가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 함부로 평할 것이 아니다.

고만재님의 수필 <커피를 쏟다>는 철들고 나서 내가 처음 완독한 개인 수필집이 아닐까 한다.

가까운 지인의 선물로 어쩔 수 없이(!) 한 권을 읽었다. 평소의 나라면 유명한 인사가 쓴 책이라도 수필은 내 돈주고 사지도 않을 뿐더러 완독을 잘 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편을 읽을 뿐이다.

고만재님은 태권도 학원을 운영하다 지금은 운동 강사로서 작가로서 유투버로서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사람이다.

고만재 작가가 담담히 써내려간 <커피를 쏟다>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네 일상이고 작가의 개인적 감상이다. 하지만 소소한 개인적 일상과 감상이 그것을 읽는 다른 이에게도 소소한 공감과 따뜻한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고만재님의 <커피를 쏟다>는 내게 이런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커피를 쏟다>는 한동안 잠들어있던 내 글쓰기 세포를 툭툭 건들리더니 다 읽은 지금 내 글쓰기 세포는 이제 분열을 준비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세포들이 개체수도 늘이고 영역도 늘이게 될지, 분열하다가 또다시 멈추게 될지는 또 해봐야 알 일. 해보기 전에는 써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일일 것이니 나는 그저 또 이런 저런 부질없는 이야기를 써봐야 하겠다.


<커피를 쏟다>에는 메모해놓아야 할 화려한 문구도 없다. 문장이 유려하거나 심장을 부여잡게 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저 담백하게 깔끔하게 이웃을 관찰하고 묘사하고 생각을 책 속에 펼쳐놓았다. 자극적이지 않고 색깔이 알록달록하지는 않지만 고소하고 쫀득한 감자전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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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양장)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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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부모일까?


<페인트>는 작가 이희영이 위의 물음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 소설이라고 한다.


저출산이 일상이 되어버린 어느 가까운 미래의 대한민국.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은 "아이는 국가가 책임지고 키웁니다" 는 슬로건을 가지고 설립된 NC(Nation's Children)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만 19세가 될 때까지.

NC의 아이들은 NC에서 13세에서 19세까지 NC에서 엄선하여 골라준 부모 후보들을 직접 면접하여 부모될 사람을 선택한다. NC 아이들이 실사히는 부모 면접(Parent Interview), 이른바 '페인트'에서 아이들은 이들은 나에게 잘해줄 부모인가, 나와 맞는 부모인가를 심층 면접하고 합숙한 끝에 부모를 선택한다.

물론, 소설 밖 현실에서든 소설 속 가상 미래에서든 선택은 언제나 옳을 수는 없다. 심층면접끝에 고른 부모도 실생활과 기대와 다르다면 아이들과 부모들은 서로를 포기하고 관계를 종료한다. 그리곤 다시 페인트, 다시 부모 선택의 순환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꽤나 근본을 중시했다. 원산지를 따져가며 농수산물을 사 먹듯 인간도 누구에게서 생산되었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가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page 44)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예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page 111)


-가족이란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먼발치‘라는 말의 뜻은 시야에는 들어오지만 서로 대화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떨어진 거리, 라고 한다. 그게 부모와 자식 간의 마음 속 거리가 아닐까?

(page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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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정유정.지승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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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써보겠다고 마음만 먹었다. 

몇 문장을 쓰고나니 도대체 내가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 나조차도 헷갈리게 되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이 하나를 알고나면 자신이 그것에 대해서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듯, 글쓰기 강좌를 두어번 듣고나서 나도 그쯤은 할 수 있겠다는 오만이 내 속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내 안에 자리잡은 오만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기 위해 자판위에 머물러있는 내 손앞에서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세 줄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못하는 화면 위의 깜빡이는 커서앞에서 '할 수 있겠다'던 내 오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 오만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겸손도 아닌 발끝까지 떨어진 자존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할 말이 없는 작가는 쓸 말도 없다

     할 말이 있어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면 쓸 수 없다

     어떻게 써야 할지 알아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나 같다


인터뷰 작가 지승호가 정유정 작가를 인터뷰하여 그의 소설 작법에 대하여 쓴 책 <이야기를 이야기하다>에서 정유정 작가는 위와 같이 말했다. 


나는 할 말은 있지만 어떻게 써야할지도 모르는 작가 지망생 후보를 희망했지만 직접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아는 것 하나없고 모르는 것 투성였던 것이다. 이런 내가 무료 강좌 두어 번 듣고 글을 써보겠다고 깝죽거리고 있다가 비로소 글을 직접 써보려하니 손은 움직여지지 않고 뇌는 수면 상태로 돌입해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설레발을 쳐댄 것이다. 50쪽짜리 '걸리버 여행기' 동화책을 읽고 그것이 전부일 줄 알고 400쪽짜리 완역본을 읽은 사람앞에서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초등학생처럼. 


정유정 작가는 습작 기간만 6년을 거쳤고 등단 심사에서 몇 십번을 떨어졌다. 글 솜씨가 워낙 좋아 등단도 하기전에 소설을 출판한 이력이 있었던 정 작가는 탈락 심사평을 보고서야 현실 자각 타임을 갖고 다시 공부에 몰입했다. 

좋아하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필사하고 분석하고 해부하고 연구하며 소설을 쓰는 법에 대하여 고시 공부하듯 열심히 했다.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서울대는 너끈히 가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정 작가는 회고했다. 


요즘에는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도 글과 소설을 출한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실제로 그런 방법으로 이름이 활자로 찍혀 책이 출간되고 서점에서 많은 판매부수를 올리고 있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 나는 그들이 쉽게 그것들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조금의 노력을 보태면 나도 그들처럼 될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직접 하고보니 나는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하고 그렇게 쓴 내 글은 쓰면 쓸수록 조악해졌고 허무해졌다. 


     '무엇'만 있고 '어떻게'가 없으면 글이 조악해진다

     '무엇'은 없고 '어떻게'만 있으면 글이 허무해진다


정유정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는 무엇을 쓸 것이며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하여 구체적 방법을 알려준다. 물론 이것은 모두의 방법이 아닌 정유정 자신의 방법이다. 많은 연습생들은 스타의 성공담을 듣고 벤치마킹을 하고있다. 그 성공담과 방법의 일부가 누구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중에 나도 포함될 수 있다. 조악하지 않고 허무하지 않는 것을 쓰기 위해선 뭐든 해야 할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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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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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 내가 계속 내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알았다. 내 인생에는 전혀 방해물이 없었다. 상처도 없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은 잘 되어왔다. 분명히. 그러나 또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아무것도. 나는 자기 배를 항구에 메어둔 상인과 같다. 배를 내보내야 돈을 벌어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배를 바다에서 내보내는 것은 위험했으며 나는 본래 모험에 적합한 인간은 아니었다. - p75

 

상반된 성격의 자매가 있다. 항구에 배를 매어둔 상인처럼 삶을 살아왔던 언니(언니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와 마치 폭풍우에 의해 약간 손상되었지만 여전히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바람을 안고 가는 배와 같은 삶은 살고 있는 동생 니나.

 

12살이나 나이가 많은 언니는 이혼남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어지러운 1930~40년대의 독일에서 커다란 근심 걱정 없이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니나는 1930년대 초반에 스무 살 성인이 되었고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던 흔히들 말하는 굴곡이 많은 인생의 바다로 뛰어들게 되었다.

 

20살 연상 남자와의 사랑, 반나치 활동과 이로 인한 투옥, 결혼과 이혼, 아빠가 다른 두 번의 임신과 출산, 소설가로서의 성공, 상점 점원의 생계활동, 친척 할머니의 죽음, 자살 시도.

 

광기와 허무가 같이 점령했던 시대, 니나는 19살부터 이 모든 인생을 담담히 겪어냈다. 아니, 담담히 겪어냈다기보다 니나 스스로 뛰어들었다는 것이 맞다. 니나가 20살 연상이면서 니나를 지독히도 사랑했던 슈타인 박사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더라면 니나도 언니처럼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큰 파도에 노출되고 부서질 위험이 없는 편안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니나는 프로포즈를 거절했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던 반나치 활동에 참가했으며 사람들과의 논쟁도 서슴치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운명이 없어. 그런데 그것은 그들 탓이야. 그들은 운명을 원하지 않거든. 단 한 번의 큰 충격보다는 몇백 번의 작은 충격을 받으려고 해. 그러나 커다란 충격이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거야. 작은 충격은 우리를 점차 진창 속으로 몰아넣지만, 그건 아프지 않지. 일탈이란 편한 점도 있으니까. 혹은 마치 파산 직전에 있는 상인이 그것을 숨기고 여기저기서 돈을 융통한 후 일생 동안 그 이자를 갚아가며 늘 불안하게 사는 것과도 같지. -p131

 

니나는 삶에서 작은 충격보다는 큰 충격을 원했다. 그리고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녀는 삶에서 다른 사람보다 한층 더 전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몇몇 등장인물들은 니나가 사는 인생을 부러워했지만 이해하지 못했고 수용하지 못했다. 때로는 심지어 니나의 모든 것을 사랑한 슈타인 박사조차도. 소설에서 니나의 삶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맡은 니나의 언니조차 초기에는 동생을 전혀 알지 못했다.

 

슈타인 박사의 일기를 읽으면서 또 니나와 대화를 나누며 비로소 인생의 한가운데에서 회피하지 않고 슬픔과 아픔조차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니나에 대하여 그녀의 언니는 비로소 니나를 이해하게 되고 정반대로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마흔 여덟의 나이에 깨달게 되었다.

 

니나가 떠나고 아마도 안락한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갔을 니나의 언니는 슬픔을 선택하며 아픔을 받아들이는 삶을 새로이 살았을까? 당시로는 꽤 늦은 나이었던 마흔 여덟의 나이에?

 

우리가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니나의 언니에게도 그리고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니나가 슈타인 박사에게 했던 한마디 말은 여전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제멋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렸어요. 저는 남들을 따라서 사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있어요. 내 말을 이해해 주길 바라요. 당신도 살기 위해 한번쯤은 그 고상한 조심성을 방기해도 결코 해가 되지 않을 거예요.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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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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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찬사가 넘쳐나길래 큰 기대를 갖고 읽음. 역시 기대는 저버리라고 있는 것임을 확인함. 포우같은 긴장은 없고 포와로나 셜록보다 치밀하지 않으며 미야베 아유키처럼 심장이 쫄깃하지도 않다. 10년전보다 지금은 CSI와 의학드라마가 넘쳐나서인지도 모르겠다. 후속시리즈는 안 읽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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