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 개정증보판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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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거의 결과가 불합리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다수결로 권력자를 뽑는 선거제도가 더 훌륭한 사람의 당선을 보장하지는 않으며 선거로 집권한 인물이 모두 민주적이고 유능하다는 보장 역시 없다. 폭군, 사기꾼, 거짓말쟁이이나 극도로 무능한 인물도 유권자의 마음을 사면 권력을 쥘 수 있다. 선거제도에 잘못이 있는 건 아니다.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훌륭한 사람의 당선을 보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악한 인물이 권력을 쥐어도 악을 마음대로 행할 수 없게 한다는 강점 덕분에 문명의 대세가 됐다. - P22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며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다. - P29

역사적 사실은 진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며 역사가가 허락할 때만 말을 한다. 역사가는 제멋대로 사실을 만들거나 바꿀 수 없지만 사실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사실과 역사가는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자신만의 사실을 갖지 않은 역사가는 뿌리 없는 풀과 같고 자신의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죽은 것이다.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다. - P30

대학을 마쳐도 반듯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현실을 두고 청년들을 위로하면서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은 일종의 착시일 뿐이다..(중략)..우리 역사에서 모든 청년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decent job)‘가 주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 P41

대한민국은 이제 ‘난민촌‘이 아니지만 국민은 ‘난민촌 정서‘를 지니고 있다. 북한이 호전적 병영국가로 남아 있는 한 그 정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P51

나는 한국현대사를 만든 힘이 대중의 욕망이었다고 생각한다...(중략)...사람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안고 산다. 욕망은 행동을 일으키고 행동은 사회를 바꾼다. 만약 모든 욕망을 다 채워서 어떤 결핍도 느끼지 않는다면 더는 행동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새로운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 - P52

우리는 각자 나름의 철학과 인생관을 지니고 산다. 똑같은 경험을 해도 철학이 다르면 해석이 달라지며, 경험까지 다르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독재적인 방식으로 산업화를 이뤘다는 사실을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평가한다. - P100

로스토는 경제를 움직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라고 봤다. - P109

나는 인간 박정희가 아무 ‘주의자‘도 아니었다고 본다. 민족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반공주의, 군국주의, 자유주의 그 어떤 이념도 그를 온전하게 사로잡지 못했다. 생애 전체를 볼 때 그가 일관성 있게 추구한 것은 권력 하나뿐이었다. - P110

포퍼가 특정한 계획이나 목표에 입각해 사회 전체를 개조하는 사회혁명을 강력하게 반대한 것은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사람은 눈앞의 현실조차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미래를 올바로 설계할 능력은 말할 나위도 없다. - P180

민주주의는 제도와 행태와 의식의 복합물이다. - P190

민주적 제도가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이뤄지지는 않는다. 그에 맞는 생각을 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성숙한 민주사회를 만들 수 있다. 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길게 보면 제도는 의식과 행태의 산물이지만 단기적으로는 특정한 제도가 그에 맞는 의식과 행태를 북돋우기 때문이다. - P252

우리는 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넘어진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우리는 왜 이런가.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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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아는데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박영란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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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억은 그럴 것이다. 필요에 의해, 자극에 의해 떠올려지는 게 기억인지 모른다. - P46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에서도 예전에 하던 그대로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예전에 했던 대로 지금도 여전하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그가 두려워해야 하는 건 바로 그 점이었다. 하던 대로 하는 자신, 달라지려고 애쓰지 않는 자신, 스스로 제어할 힘이 없는 자신을 두려워해야 했다. - P190

나의 복수는 나의 문제이지 그의 문제는 아니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문제를 감당해야 할 순간을 맞을 것이다. 스스로 쌓아 올린 시간을 책임져야 하는 순간, 그 순간은 긴 시간 뒤에 올 수는 있지만, 결코 비켜 가지는 않는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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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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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 P113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행복이 만병통치약이거든."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 P205

콜리는 공감을 느낄 수 없는 개체였지만 공감하는 척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어차피 사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공감이었다. 보경은 콜리를 않혀놓고 몇 번 대화를 한 후에야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들을 수 있는 귀와 끄덕일 수 있는 고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 P271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 P286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살아 있다는 건 호흡을 한다는 건데, 호흡은 진동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 진동이 큰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 P302

옆에 있는 당신이 행복하면 ㄴ저도 행복해져요. 저를 행복하게 학 싶으시다면 당신이 행복해지면 돼요. - P302

힘들면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비록 생명이 무언가를 포기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 - P351

여기에서 만족했다면 나는 내 삶의 2막을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더 빨리 달리고 싶어 하는 투데이의 바람을 모르는 척했더라면. 행복이 고통을 이겼다. 이 순간만큼은 예전처럼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실수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연재의 말을 빌리자면 기회였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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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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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고 장은 생각한 일이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불행하고, 가장 불행한 사람조차 끊임없이 불행하지만은 않으므로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 P11

아무도 나를 치고 가지 못한다. 타인을 해치려는 사람은 자신을 걸어야 하므로. - P35

불행을 통과한 인간에게는 질문이 찾아온다.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오는 질문은 불행한 인간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 불행한 인간은 대체로 자신이 겪은 불행으로 말미암아 질문에 대답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 P59

그냥 운이 없었던 거죠. 나쁜 사람의 이유 같은 것에 귀 기울여줄 필요 없어요. - P165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일이고요. 왜 특별히 쟝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라는 말이에요?"
"아니죠. 엄청난 일이 일어났죠. 삶에는 원래 엄청난 일이 계속 돼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부터 봐요. 불행을 특별 대우해주면 불행이 잘난 척을 해요......." - P184

그렇게 많이 가지고도 여전히 잃는 걸 두려워하는 게 신기했다. - P230

거의 생기지 않을 일에 대한 대책은 준비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계엄사령부 조사실에 갇힐 때를 대비하지 않은 건 장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무도 장을 도울 수 없었다. 그럴 만큼 누군가를 도와본 적이 없었다. 장은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했다. - P240

마침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왔을 때 장은 불행이란 단어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한참이나 모자람을 깨달았다. 지난날의 견해가 오만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불행의 일부를 감경받는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장의 불행을 덜어 가려고 하지 않았다. 장은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전부 내 것이라고? 이렇게나 크고 많은 것이? 이 정도 불행이면 모두가 함께 나눠야 공평하지 않은가? 비록 내가 누군가의 불행을 나눠 가진 적이 없더라도 말이야. 그의 불행은 온전히 그의 것이기만 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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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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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쉬지 않고 꾸준히 노를 저어 나갔고, 속도를 잘 유지한 데다 이따금씩 조류가 소용돌이치는 곳을 제외하고는 수면이 잔잔했기 때문에 별로 힘들지 않았다. 그는 자기 힘의 삼분의 일가량을 조류에 떠맡기도 있었다. 차츰 날이 밝아 오기 시작하자 이 시간에 저어 나오려고 했던 거리보다 휠씬 더 멀리까지 나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P32

"할아버지는 내게 자명종 같아요."소년이 말했다.
"내 나이가 자명종인 거지. 한데 늙은이는 왜 그렇게 일직 잠에서 깨는 걸까? 하루를 좀 더 길게 보내고 싶어서일까?" 노인이 대꾸했다. - P25

노인이 말을 걸자 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새는 너무 기진맥진한 상태여서 제대로 낚시줄을 살펴볼 겨를도 없어 보였다. 가냘픈 발가락으로 낚시줄을 꽉 움켜잡고 있는 동안 아래위로 흔들거렸다.
"줄은 튼튼해. 아주 단단하다고. 간밤에는 바람 한 점 없었는데 그렇게 지쳐서야 되겠니." 노인이 새에게 말했다. "새들은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저 새들을 노리고 바다까지 날아오는 매들이 있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것에 대해 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 봤자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고, 머지않아 매들에 대해 알게 될 테니 말이다.
"실컷 푹 쉬어라, 작은 새야 그러곤 뭍으로 날아가 인간이나 다른 새나 고기처럼 네 행운을 잡으려무나." 그가 말했다. - P56

"하지만 난 저놈을 꼭 죽이고 말 테야. 아무리 크고 아무리 멋진 놈이라도 말이지." 그가 다시 말했다.
하긴 그건 옳지 않은 일이긴 해,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난 녀석에게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참고 견뎌 낼 수 있는지 보여 줘야겠어.
"나는 그 아이한테 내가 별난 늙은이라고 말했지. 지금이야 말로 그 말을 입증해 보일 때야." 그가 말했다.
지금까지 그는 그런 입증을 수천 번이나 해 보였지만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지금 또다시 그것을 입증해 보이려고 하고 있었다. 매 순간이 새로운 순간이었고, 그것을 입증할 때 그는 과거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 P67

좋은 일이란 오래가는 법이 없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한낱 꿈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기는 잡은 적은 없고, 지금 이순간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혼자 누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 P104

노인은 고물 쪽에 누워서 키를 잡고 하늘에 휜한 불빛이 비쳐 오기만을 기다렸다. 고기는 반밖에 남지 않았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운이 있으면, 어쩌면 앞쪽 반만이라도 가져갈 수 있겠지. 내게도 조금쯤은 운이 남아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럴리 없어, 하고 그는 말했다. 너무 멀리까지 나왔을 때 너는 이미 운수를 망쳐 버리고 만 거야.
"바보 같은 생각은 이제 그만하시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키나 잡아. 이제부터라도 행운이 찾아올지 어떻게 알아."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 P118

침대가 얼마나 편안한 물건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었지. 한데 너를 이토록 녹초가 되게 만든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이냐,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어. 다만 너는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 P121

"바다는 엄청나게 넓고 배는 작으니 찾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을 테지." 노인이 말했다. 그는 자기 자신과 바다가 아닌, 이렇게 말 상대가 될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지 새삼 느꼈다. "네가 보고 싶었단다. 그런데 넌 뭘 잡았니?" 노인이 물었다. - P125

늙어서는 어느 누구도 혼자 있어서는 안 돼,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걸. 잊지 말고 저 다랑어가 상하기 전에 먹고 기운을 차려야지. 아무리 먹기 싫더라도 아침에는 꼭 먹어야 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돼, 하고 그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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