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당하게 궁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 P44
"그래도 사람은 개가 젤 낫아야." 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사람이 다른 모양이었다. - P47
서른 넘어 친구 짖ㅂ들이에서 처음 위스키를 마셨다. 오크향은 달콤했고 목 넘김은 황홀했다. 마셔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원히 술과 맞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한계란 그런 것이다. 아버지는 해방 전후의 한계와 여전히 맞서 싸우는 중이었고, 그사이 세상은 훌쩍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 P70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 P110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 - P137
"지한테 득이 안 된다 싶으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리는 것이 민중이여. 민중이 등을 돌린 헥멩은 폴쎄 틀레묵은 것이제." 늙은 아버지는 알았지만 젊은 아버지는 몰랐다. 그래서, 아니 더 정확하게는 살기 위해서, 아버지와 그의 동지들은 입면 어느 마을을 샅샅이 뒤졌다. 사회주의에 등을 돌린 민중들 또한 자신들이 살기 위해 악착같이 식량을 숨겼으므로 몇시간을 뒤졌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쌀 한 줌과 동지의 목숨을 맞바꿔야 하는 보급투쟁이었다. - P175
내 부모는 평등한 세상이 곧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에서 기꺼이 죽은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다. 쭉정이들만 남아서 겨우겨우 살고 있노라,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삶을 부러워 미웁기도 했던 것이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P231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옥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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