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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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20대에 읽었을 때 왜 이렇게 불필요한 일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쏟는지 의문을 가지며 마초적인 헤밍웨이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고 K는 말했다. 그래서 K는 이 소설이 이렇게까지 칭송받을 만 한가,라는 생각도 같이 했다고 덧붙였다.

그런 K가 나이 50이(K의 나이는 올해 한국 나이로 지천명이 되었다) 되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었다. K는 나에게 '역시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나 봐요'라고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경력을 단절하고 노안이 오기 시작한 K는 소설 속 주인공인 산티아고 노인이 청새치를 잡으려고 바다 저 멀리 나가고 고기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상어 떼와 싸우는 것을 보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경력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러곤 묻는다.

나에겐 경력은 무엇일까요? 나도 산티아고처럼 계속했으면 어땠을까요? 지금은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127쪽짜리 짧은 소설이다. 이번 독서 모임에서 발제는 내가 맡았다. 유명하고 분량이 짧아서 이 책을 선택했는데 무슨 생각거리가 이리도 많은지.


노인, 고독, 친구

산티아고에게는 마놀린이라는 친구가 있다. 마놀린은 열두세 살 정도 된 소년이다. 소년은 산티아고를 부모처럼, 스승처럼, 친구처럼, 반려자처럼 따르고 존경하고 함께 하고 보살핀다. 청새치를 잡기 위해 먼바다로 나가 혼자 고군분투할 때 산티아고는 끊임없이 소년을 찾는다.

"그 애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도와줄 수도 있고, 이걸 구경할 수도 있을 텐데."

산티아고도 마놀린을 자식처럼, 제자처럼, 동무처럼, 동반자처럼 지켜보고, 가르치고, 즐기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 마놀린은 아마 노인이 죽을 때까지 그와 함께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을 것이다. 배우며 혹은 가르치며.

그래서 노인은 청새치와의 싸움에서 그가 한 말처럼 "파멸당할 순 있어도 결코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곁에서 함께 하며 말을 건넬 누군가가 있는 삶이 절대 실패한 인생일리가 없다. 노인은 실패하지 않았다.


청새치, 먼바다, 상어 떼

산티아고는 84일째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마놀린은 아버지의 지시로 고기를 많이 잡는 고깃배를 타야만 했다. 85일째 되던 날, 산티아고는 평소보다 조금 더 멀리 나간 바다에서 자기의 조각배보다 더 큰 5.5m짜리 청새치를 잡았다. 노인보다 크고 힘이 좋은 청새치를 잡느라 항구에서 멀어져 사흘을 떠돌았다.

물고기를 동여 매고 항구로 돌아가는 노인의 조각배를 상어 떼들이 습격했다. 정확히 말하면 노인의 배가 아니라 청새치를 습격했다. 커다란 청새치는 노인뿐만 아니라 상어들에게 너무도 매력적인 고기덩이였다.

노인은 고기를 지키기 위해 상어 떼와 싸웠다. 작살이 부서지고 칼을 맨 노가 망가면서 상어와 싸웠지만 청새치의 살점은 모두 뜯겨나갔다. 노인이 항구에 도착했을 때 노인의 배에 매달려 있는 것은 5.5m짜리 뼈뿐이었다. 모두들 노인의 노고를 치하했다. 소년은 울었다. 관광객이 물었다. 저 뼈는 무슨 뼈인가요? 카페를 지키던 청년이 말했다. "아마, 티뷰론(상어) 일 거예요."


사흘을 싸우고서 가지고 온 것은 뼈만 남은 고기. 아무것도 팔 수도 없고 빵으로 바꿀 수도 없는.

뼈를 보곤 청새치가 아니라 상어라고 하는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

노인은 무엇을 위해 그 먼바다까지 나갔다 온 걸까?

노인을 무엇 때문에 상어 떼와 그 치열한 싸움을 한 걸까?


"그놈들한테 내가 졌어, 마놀린. 놈들한테 내가 완전히 지고 만 거야" 노인이 이렇게 말하고,

"할아버지가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에요.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라고요." 마놀린은 이렇게 대답했다.


누군가는, 삶이 계속되는 시간 이렇게 목숨을 다해 열심인 적인 있었을까, 라며 노인을 존경할 것이고

누군가는, 고기는 다른 날 잡으면 되지, 매번 목숨을 바칠 수가 있을까, 라며 노인을 탓할 것이다.

모두가 옳고 전부 다 맞다.

책을 읽을 때는 '나라면 이렇게까지는 안 할 텐데'라고 생각했다.

읽고 나서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 인생이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가!

무엇을 하기엔 늦은 나이는 없지만, 과연 내가 해오던 대로 말고 산티아고처럼 자신의 일 하나에 목숨을 걸 만큼 깊이 빠질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풀어야 할 숙제다.


꿈꾸는 이상적인 노인

마지막 질문은 이상적인 노인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는 거였다.

K는 꼰대가 아닌, 즉 지적질하지 않는 노인이라고 했고, L은 역시 건강-청새치를 끝까지 따라갈 수 있는-이라고 했다. O는 마놀린처럼 누군가와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라고 했고 M은 L처럼 건강한 노인이라고 했다.


나는 <노인과 바다> 속 산티아고를 통해 이상적인 노인의 모습을 보았다.

남들은 보잘것없다고 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한참 동안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지치고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해내고,

이거다, 싶은 일의 형태를 발견하면 결과를 기대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고,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가르치려 하지 말고,

물건에 욕심내지 않고,

내가 가진 삶을 살아내는 기술을 조건 없이 전수해 주고,

'네가 보고 싶었다'라고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내가 졌다'라고 인정할 줄 아는,


아, 나는 산티아고가 될 수 있을 것인가

5년에 한 번씩 <노인과 바다>를 반복하며 이상적 노인을 복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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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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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에 감동을 받긴 쉽지 않다. 여기도 마찬가지. 소문에 비해 감동은 비례하지 않았다. 작가의 담담한 문체 조금은 밋밋한 표현이 쓸데없는 포장을 하지 않은 과자같다. 별것 아닌 7개의 작은 것도 서사를 담아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에는 감탄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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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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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쓴다면 작품 속 <무구>나 <하늘 높이 아름답게>처럼 쓰고 싶다. 땅에 발을 딛은 우리 곁에 있을법한 그들의 이야기 혹은 내 이야기. 젊은 작가의 소설을 주로 보다 찾은 연륜 있는 작가의 작품. 마치 흐르는 시냇물 속에 박혔다가 마침내 햇빛을 받아 영롱한 빛을 내는 최상급의 보석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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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 류시화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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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내가 ‘이 책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게 한 몇 안 되는 책. 몇 개 동의하지 못하는 내용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두고 두고 보면서 되새김하고 싶은 인생 조언들이다. 시덥잖은 자기계발서나 심리와 위안을 가장한 조언 책들보다 휠씬 낫다고 생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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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가보겠습니다 - 내부 고발 검사, 10년의 기록과 다짐
임은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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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정치권의 숱한 제안에도 아직 검찰에 남아 개혁을 실행하는, 임은정 검사의 ‘계속 가보겠다‘는 다짐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의 진심이 절실히 느껴졌고 앞으로 그의 행보에 의심을 두지 않겠다 생각 들었다. 나도 임은정을 끝까지 지지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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