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가보겠습니다 - 내부 고발 검사, 10년의 기록과 다짐
임은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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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정치권의 숱한 제안에도 아직 검찰에 남아 개혁을 실행하는, 임은정 검사의 ‘계속 가보겠다‘는 다짐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의 진심이 절실히 느껴졌고 앞으로 그의 행보에 의심을 두지 않겠다 생각 들었다. 나도 임은정을 끝까지 지지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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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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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의 이지은이 소설에선 ‘구‘가 되었다. 가슴시린 현실을 아주 느릿하고 건조한 문체로 썼는데, 약간 졸린 듯도 하고. 가슴은 답답한데 사회적인 표출보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요즘 여성이 대부분인 한국소설의 트렌드를 고대로 보여주는 듯. 썩 권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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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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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1년도에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알랭 드 보통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은 외국 작가라고 하니, 정확한 판매 부수는 모르겠지만 아마 상당히 많은 부수의 판매고를 올렸을 것이다.

그런 책을 발매된 지 12년이 지난 지금에야 읽어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이 왜 이렇게 인기가 있으며 왜 그렇게 인구에 회자되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전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인기에 힘입은 유명세 덕분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이 인기가 있다고 하면 너도나도 우르르 따라 하는 군중심리가 발동된 것일 수도 있겠으며, 2011년 당시 '낙수효과'나 '신자유주의'같이 능력주의가 팽배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만 뒤처진 것 같은 개인의 불안이 책의 구매로 직접 반영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마치 주장이 실리지 않은 대학원생의 박사 논문을 읽는 것 같은 생각을 계속하며 여하튼 책을 완독하였다. 보통은 <불안>에서 불안의 원인을 5가지로 분석하고 해결책도 5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원인의 제시와 해결책의 근거가 그동안 꽤나 유명한 철학자들의 주장을 이것저것 짜깁기하여 나열한 것 이상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견이 피력되지 않은 대학원생의 논문은 통과되기 어렵기 마련인데, 보통은 그 유명세로 인하여 막대한 판매고를 올리고 상당한 자본도 획득했을 것이니, 그는 아마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보통의 <불안>에서 다루는 불안은 '지위에 의한 불안'으로 한정하여 다루었다. 이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마 이 책이 인기가 있었던 가장 주효한 원인이 현대인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적 지위'를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원인으로 다섯 가지를 꼽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다 수긍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안되었을 뿐이지, 인생을 어느 정도 살고 자기 호구지책을 스스로 하는 현대인이라면 이 정도 생각은 다 했을 법한 원인들이다.

다만, 삶에 찌든 직장인과 현대인은 이것을 보기 좋게 잘 차려낼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없는 것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중에서 내가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기대'였다. '기대'에서 보통은 사람들의 '질투'에 대하여 주로 다루었다.

사람은 자신이 남보다 낫다는 우월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대를 갖고 있는 자신보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타인-특히 잘 아는 친구-이 더 잘나가는 것처럼 보일 때, 사람은 좌절을 느끼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며 갑자기 세상이 회색빛으로 우울하게 보이는 것이다. 좌절과 상처 난 자존감과 회색빛 우울은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한다.

"이러다 내가 재보다 더 뒤처지면 어쩌지? 빨리 따라잡아야 하는데."라고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따라잡는 게 가망이 없어 보이면 그 친구 험담을 하게 된다.

"겉으론 잘나가는 듯하지만, 가정에 분명 뭔가 문제가 있을 거야. 쯧. 일이 잘 되면 뭘 해? 집안이 안 풀리는데 말이야."

책이 발매된 당시보다 지금이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인스타를 비롯한 각종 SNS에서 타인의 일상이 공개되고 그 일상이 파스텔 빛으로 화려하고 빛나게 포장되어 있으므로 스스로 잘 났다는 기대는 무너지고 타인보다 뒤처진다는 불안이 갈수록 팽배해진다.

보통의 <불안>은 그런 면에서 여전히 인기가 있을 법한다.

보통은 원인을 다섯 가지 둔 것처럼 해결책도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철학은 '이성'을 말한다. 앞서 말한 원인들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을 앞세워서 불안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온갖 철학자들의 유명 문구들을 책 곳곳에 포진하였다. 보통의 말은 별것 없지만, 철학자들의 송곳 같은 말들을 읽는 맛이 쏠쏠하다.


예술은 '공감'을 일컫는다. 이성만으론 부족하다. 불안을 잠재우는 데는 가끔 이성이 필요하지만 대개 공감과 따뜻한 감성이 필요하다. 고대로부터 노래와 연극과 미술이 지속, 유지, 발전되고 있는 이유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피아노'를 5년 안에 꼭 배우리라 다짐을 하였다.

불안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해소하는 방법은 거의 ott나 유튜브나 활자뿐인데, 나도 멋들어지게 악기 하나쯤 다루며 감성을 어루만져서 불안을 누그러뜨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다짐하고 독서토론 멤버들에게 공개 서약을 하였다.


정치는 '복지'를 의미한다고 나는 해석했다. 이것은 능력주의와 연결되어 있는데, 무한히 능력만을 강조하면 사회의 불평등이 악화되고 양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역사에서 우리는 사회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사회가 붕괴되거나,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르는 것을 목격하였다.

고로, 일정 부분의 비용을 치루더라도 복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사회적 불안'이 완화되어 개인의 불안도 덩달아 개선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특정 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지칭하는 것이다. 온갖 불안에 시달리고 타인과 비교를 하다가도, 막상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는 가정을 하면, 현생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불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헤미아는 가치를 부와 소유에 두지 않고 개인의 영혼의 성장과 자유에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 책을 보니, 나는 벌써 보헤미아적인 생각과 생활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벌써 다섯 가지 중 해결책 하나는 실천을 하고 있었다. 장하다!


해결책을 다섯 가지 제시하기는 했지만, 보통은 구체적 방법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생각과 주장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고래로 자주 언급된 유명한 사람의 유명한 말을 적합한 곳에 적절히 언급하였을 뿐이다. 여기에는 쇼펜하우어도 나오고, 마르크스도 등장하며, 랄프 왈도 에머슨도 인용되었고, 톨스토이, 몽테뉴, 버나드 쇼, 라브뤼예르, 루소... 그 외 더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불안'을 해소하는 말들로 잠깐씩 등장한다.


자료를 찾고 적절한 것을 인용하는 수고를 하였겠지만, <불안>이라는 거대 화두를 다루기에는 내게는 불만족스럽다. 지인에게 굳이 이 책을 추천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의 가장 말미에 보통의 주장 같은 문구가 나오는데 그 말을 나도 인용하면서 '불안'을 조금이나마 잠재우고자 한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보헤미안들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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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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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당하게 궁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 P44

"그래도 사람은 개가 젤 낫아야."
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사람이 다른 모양이었다. - P47

서른 넘어 친구 짖ㅂ들이에서 처음 위스키를 마셨다. 오크향은 달콤했고 목 넘김은 황홀했다. 마셔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원히 술과 맞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한계란 그런 것이다. 아버지는 해방 전후의 한계와 여전히 맞서 싸우는 중이었고, 그사이 세상은 훌쩍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 P70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 P110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 - P137

"지한테 득이 안 된다 싶으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리는 것이 민중이여. 민중이 등을 돌린 헥멩은 폴쎄 틀레묵은 것이제."
늙은 아버지는 알았지만 젊은 아버지는 몰랐다. 그래서, 아니 더 정확하게는 살기 위해서, 아버지와 그의 동지들은 입면 어느 마을을 샅샅이 뒤졌다. 사회주의에 등을 돌린 민중들 또한 자신들이 살기 위해 악착같이 식량을 숨겼으므로 몇시간을 뒤졌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쌀 한 줌과 동지의 목숨을 맞바꿔야 하는 보급투쟁이었다. - P175

내 부모는 평등한 세상이 곧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에서 기꺼이 죽은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다. 쭉정이들만 남아서 겨우겨우 살고 있노라,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삶을 부러워 미웁기도 했던 것이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P231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옥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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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수 2023-05-2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임승수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쓴 인문에세이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출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썼지만 딱히 홍보할 방법이 없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저자가 이렇게 직접 나서게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책 여러 권을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지하철에 올라 승객분들에게 직접 육성으로 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그래서는 안 되겠지만요). 갑작스러운 댓글에 불편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여러 일로 바쁘시겠지만 1분 정도만 시간을 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문득 제 신간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의 내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21세기 실사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로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아오면서 생긴 독특한 인간관계와 에피소드가 있듯이, 두 딸의 아빠이자 반백살의 남성인 저도 30년째 사회주의자로 살아오면서 그런 삶을 견지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 사회주의자가 된 이후 인생이라는 여행의 경로가 대폭 변경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다 보니 갈림길에서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글치였던 공대생 출신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서는 느닷없이 마르크스주의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선거 날 투표할 때면 지지율이 1%도 안 되는 후보에게 거침없이 한 표를 행사하고, 뜬금없이 와인에 홀딱 빠져서는 대한민국 검사뿐만 아니라 노동 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와인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인생 경로는 명승지 투어 같이 잘 차려진 패키지 여행과는 결이 달라서, 오지 탐험에서나 맞닥뜨릴 돌발 장면들이 순간순간 펼쳐졌습니다.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에는 제가 사회주의자라는 여행 경로를 선택하게 된 이유, 그리고 이 경로를 선택했을 때만 접할 수 있는 풍경, 경험할 수 있는 사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전히 이 여행이 제법 맘에 들어서 설사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사회주의자로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 이야기에 공감하리라 기대한다면 과욕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지 탐험 여행서 같은 흥미진진함을 제공하리라 작은 기대를 해봅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쓴 건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삶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썼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밌게 읽으셨다면 제 책도 ‘실사판’으로서 무척 흥미롭게 읽으시리라 확신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권의 여행서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아래에는 출판사의 책소개 일부를 발췌해서 옮깁니다. 귀중한 시간 할애해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인터넷서점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9181643

”우리는 과연 사회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사회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스며들어있다. 일례로 전 세계가 주목한 코로나19 감염병 대처 방식도 지극히 사회주의식이었다. 국가가 앞장서서 공공 재원과 행정력을 동원해 감염병에 대처했으며 코로나 진단 검사와 치료를 누구나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보건 의료 정책과 더불어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공립학교, 국공립어린이집, 무상 급식, 공공 임대 주택, 부자 증세 등등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복지 및 재분배 정책은 모두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졌다. 그런데 복지를 확대하길 원하면서도 왜 사회주의에는 유독 반감을 가질까?

저자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본격적으로 해소한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가 대세이면서 동시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30년 차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또한 자본주의의 은폐된 착취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를 해설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태생과 최후를 통찰한다.

사회주의로의 강요는 없다. 다만 질문이 시작될 뿐이다. 최악의 빈부 격차, 극심한 이윤 지상주의, 유례없는 환경 파괴,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가 지배하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지켜나갈 것인지. 증오와 배척, 불평등와 불공정 너머의 세계를 꿈꾸며, 우리 삶의 지표에 진중한 화두를 던진다“
 
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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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 작가의 '긴긴밤'은 겨우 125페이지짜리 짧은 동화이다.

그마저도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일러스트 그림이 30페이지가 훌쩍 넘어가기 때문에 글로 채워진 페이지는 100페이지가 채 안 된다. 한번 손에 잡으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시간 안에 독파할 수 있는 책이다.


한 시간 안에 독파할 수 있는 동화책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된다.

쉽게 씌여진, 짧은 이야기 안에는 '나'를 찾아가기 위한 수많은 여정과 질문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같이 독서 모임을 하고 있는 친구가 말하길, 세상의 모든 예술은 두 가지를 말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했다.

하나는 사랑이고, 또 하나는 '자아 찾기'라고 했다.


친구가 생각해서 만든 말인지, 그도 누군가에게서 들은 말인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적어도 내가 접한 책과, 영화와, 연극들은 거의 모두가 사랑과 자아를 말하고 있었던 듯하다.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창희가 주구장창 이야기하더니, 내 '끼리'인 그 친구는 배운 사람이고 나 역시 배운 사람이라는 증명이 성립될지어다.


'자아 찾기'에는 어떤 공식이 있다.

첫째, 집을 떠나야 한다.

둘째, 온갖 고생을 해야 한다.

셋째, 반드시 집으로(혹은 사랑하는 이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신화의 오딧세이아도 독일의 헨젤과 그레텔고 집 떠나 개고생하다 집으로 돌아갔다. 가까이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무리도 무언가를 찾아 길을 떠나 개고생을 했고, 우리나라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이도 집을 떠나 온갖 고생과 모험을 하다가 급기야 나라까지 세우기도 하였다.

'긴긴밤'에서 집 떠나는 고생을 하는 건 흰코뿔소 노든과, 까만 점이 있는 정상적이지 않은 알 양동이를 든 펭귄 치쿠와 그 알에서 태어난 이름 없는 펭귄, 이 세 동물들이다.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코끼리와 함께 했던 코뿔소 노든은 제대로 된 코뿔소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코뿔소가 되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내와 딸을 잃었고, 동물원에 갇혀 폭격을 맞기도 했으며, 그 폭격으로 절친한 친구 앙가부를 잃었다. 노든은 복수를 위해 다시 길을 떠났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펭귄 알을 부화하기 위해 스스로 책임을 맡은 치쿠라는 펭귄과 함께였다.


노든과 치쿠는 알을 위해 바다를 향해 걸었다. 사막을 지나고 풀숲을 지나면서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치쿠는 너무도 힘들었다. 부리에는 알을 잘 부화시키기 위해 알 양동이를 꼭 문 채, 윔보와의 약속을 위해 어른 펭귄으로서 알 펭귄을 탄생시키기 위해 맡은 바 막중한 책임을 다했다.

치쿠는 다음 세대 펭귄을 위해 책임을 끝까지 다하며 자신을 희생했다.

지금 우리는 펭귄 치쿠만도 못한 어른들 천지인 세상에 있다.

치쿠는 자신의 희생으로 알 펭귄을 탄생시켰는데, 사람 세상에는 요구하고 강요하고 가르치는 어른 사람이 가득하다.

치쿠의 죽음에 묵직한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왔다.


코뿔소가 되기 위해 그리고 복수를 위해 길을 떠났던 노든은 자신의 목적은 잠시 잊고 갓 태어난 어린 펭귄을 바다로 데려다주기로 하고 둘은 바다로 가는 길을 향해 여행을 계속했다.

바다는 너무 멀었고 둘은 바다로 가는 길도 몰랐다.

바다로 가는 길에 둘은 수없이 많은 '긴긴밤'을 만났다.

여러 '긴긴밤'동안, 둘은 도망치기도 하고, 서로 보듬어 주기도 했으며, 밤새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를 찾고, 집으로 가는 길에 '긴긴밤'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많은 '긴긴밤' 속에서, 노든을 잃을 것이 두려워 코뿔소로 살 테니 같이 있자고 말하는 어린 펭귄에게 노든은 어린 시절 코끼리 할머니가 했던 그 말을 어린 펭귄에게 말했다.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코뿔소로 태어나 펭귄으로 자란 어린 펭귄은, 어느 날 노든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순탄했던 코끼리 고아원을 떠난 것이 후회되지 않느냐고.

그때 노든은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나도 예전 일들을 수없이 돌이켜 보고는 해. 그러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

떠나본 사람만이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떠나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떠나본 사람이 '자아'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고,

떠나보지 않은 사람이 '자아'를 찾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직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할 자신이 없는 나는,

떠나본 사람인가, 떠날 사람인가

돌아온 사람일까, 돌아갈 사람일까


한번 읽었을 때보다

두 번 읽은 지금이 더 머리에 생각이 많아졌다.

세 번 읽으면 어떻게 될까?

네 번쯤 읽어도 되지 않을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는데,

책장 속 어린 왕자처럼, 두고두고 보고 싶어졌다.

내일 주문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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