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이런 배경도 이야기가 발생한 지점도 나를 몹시 흥분시켰다. 그들의 발자취가 닿은 곳들의 황량한 살풍경이 나를 귀신처럼 홀렸다. 고산과 극지는 자신의 황량함을 흑백의 이원 대립적 색채 가혹하리만큼 극도로 간결하게 표현했다. 인류의 가치관마저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는 양극으로 갈라졌다. 용기와 비겁함, 휴식과 전력 질주, 위험과 안전, 착오와 올바름 등 매정한 자연환경의 본질은 모든 것을 이토록 간결하게 나누어버렸다. 내 삶에도 이토록 명확한 선들이 있어 인생의 우선순위가 단순해지기를 원했다.
_ 흘림 중 - P18
지형의 위험과 풍경의 아름다움, 무한한 공간, 이 모든 것의 철저한 쓸모없음 따위가 말이다. 하지만 다른 점은 산의 높은 해발고도가 극지 탐험의 고위도를 대체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결점‘은 있었다. 그들은 그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죄악 곧 인종 차별, 성차별, 뿌리 깊은 우월 의식, 더러는 사그라들 줄 모르는 속물주의에 포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용기엔 날카로운 자아 중심주의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이러한 습성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봤던 모든 건 미지의 찬란한 빛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불가능할 정도로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_ 흘림 중 - P20
이것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산이 아니라. 내가 꿈꾸어왔던 ‘완벽한 산‘이다.
_ 흘림 중 - P23
17세기와 18세기 초반의 전통적인 상상력에 따르면, 자연경관이 인류에게 얼마만큼 진가를 인정받느냐는 주로 농업 생산력에 달려 있었다. 목초지, 과수원, 방목장, 방대한 면적의 농경지-이곳들이야말로 풍경의 이상적인 구성 요소였다. 다시 말해 ‘길들인(개간된 경관, 쟁기질이 되어 있다거나 울타리가 쳐져 있다거나 도랑이 만들어진, 인간이 질서를 부여한 풍경들만이 매력적이었다.
_ 흘림 중 - P35
만약 많은 상인이나 군인, 순례자, 선교사가 그래야 했던 것처럼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한다면 산허리나 산과 산 사이를 다녔지, 결코 정상을 타고 넘지는 않았다.
_ 흘림 중 - P37
존 러스킨이 공간의 끝없는 명쾌함이자 지치지 않는 빛의 성실성"이라고 부른 공기의 복잡한 미감은 의심할 여지 없이 19세기 후반의 사상을 다채롭게 했다.
_ 흘림 중 - P37
초기 산악인들을 움직이게 한 감정과 태도는 오늘날까지 서양인들의 상상 속에서 번창하고 있으며 오히려 흔들림 없이 고착되어 성행중이다. 산악 숭배는 수많은 사람에게 본능이 되었다. 솟구침, 사나움, 차가움, 이 모든 것을 이제 무의식적으로 숭배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이미지들은 더 거친 야생에 대한 간접 경험에 굶주린 도시화가 진행된 서구 문화에 스며들었다.
_ 흘림 중 - P40
다시 말해 풍경을 바라볼 때 우리는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그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본다.
_ 흘림 중 - P41
산은 늘 그곳에 남아 있고, 그들의 물리적 구조는 지질과 날씨의 영향에 의해 차차 재구성되겠지만, 산에 대한 인류의 인식을초월해 산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_ 흘림 중 - P42
우리가 산을 자연의 엄청난 힘이 천년이라는 무수한 세월 동안느릿느릿 공들여 완성한 ‘기념비적 작품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상상력은 숙연한 경외감으로 가득 찰 것이다.
-레슬리 스티븐 1871년 - P49
적설은 햇살 아래서는 금빛으로 반짝였지만 그림자 아래서는 마치 연골처럼 보드랍고 매끄러운 회백색으로 보였다.
_ 거대한 돌 책 중 - P51
한 화산 분화구의 꼭대기에서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던에드먼드 핼리는 그 ‘불타듯 붉은 전령사‘를 추적한 뒤 자신의 이름 따 ‘핼리혜성‘이라 명명했으며, 1759년에 그것이 정확하게 되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군주들의 사망, 들판을 뒤덮는 폭풍우, 가뭄, 난파선, 역병, 지진 등 문명화된 땅을 폐허로 만들 재앙이 임박했다고 예언한 수천 장의 팸플릿이 유럽 전역에서 인쇄되었다.
_ 거대한 돌 책 중 - P53
버넷은 최초의 지질학적 시간여행자이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 탐험가, 모든 국가 중에서 가장 낯선 국가인 ‘머나먼 과거‘에 다다른 한 명의 정복자였다.
_ 거대한 돌 책 중 - P61
그 깊고 끝없는 시간의 심연을 탐구하다보니 마음이 점점 황홀해지는 듯했다.
_ 거대한 돌 책 중 - P65
산의 현재 외관은 지구의 지형을 결정하는 침식과 융기의 끊임없는 순환 주기 속의 한 단계에 불과했던 것이다.
_ 거대한 돌 책 중 - P67
산에 오르는 경험은 위로 향하는 공간 이동일 뿐만 아니라 세월을거꾸로 넘나드는 시간 이동이기도 하다.
_ 거대한 돌 책 중 - P70
비록 우리는 ‘돌‘이시간을 지연시키는 항노화, 항부패화석총, 비석, 기념비, 조각상)의거대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우리 자신의 가변성과 비교할 때에만 맞는 말이다. 더 큰 지질학적 연대의 맥락에서보면 암석은 다른 어떤 물질만큼이나 연약하고 변하기 쉽다.
_ 거대한 돌 책 중 - P80
산의 단단한 바위가 시간의 마모에 얼마나 취약한지 깨닫는 일은 반드시 인류의 몸이 섬뜩할 정도로 덧없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도록 하기 때문이다.
_ 거대한 돌 책 중 - P81
우선, 지구의 과거 연대에 대한 19세기의 매혹을 강화했다. 찰스 라이엘이 지질학 원리에서 영리하게 관찰한 화석들은 ‘생생한 언어로 쓰인 ・・・) 자연의 오래된 기념물들이며, 지질학과 같은 고생물학은 사람들에게 ‘풍경‘을 ‘역사서‘로 읽는 방법을가르쳐주었다. 확실히 19세기 전반에 지질학은 인기 있는 과학이었다. 심지어 1861년 빅토리아 여왕조차 광물학자를 고용했다.
_ 거대한 돌 책 중 - P87
협곡과 산봉우리는 대문자로 쓰인 글씨 같았고, 계곡물과 개울은 얽히고설킨 조각 같았으며 산등성이의 꼭대기와 계곡의 밑바닥은 근사한 세리프 같았다.
_ 거대한 돌 책 중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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