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풍경을 통해 체현되는 가장 가치 있는 자질은 아마 우리가 오늘날 ‘그릿grit‘이라고 부르는, 회복력과 절제력의 융합이다. ‘그릿‘이란 필요하다면 앞으로 향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 투지다. 앞사람의 발자취를 따라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대범함이다.
_ 공포를 좇아서 중 - P157
"산에 오르고 싶으면 올라라. 하지만 기억하라, 신중함 없는 용기와 역량은 무의미하며 순간의 부주의가 일생의 행복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절대로 서두르지 말고 모든 걸음을 잘 살펴라.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어떻게 끝날지를 잘 생각하라."
_ 공포를 좇아서 중 - P167
산에게 사랑하는 이를 빼앗긴 모든 부모, 자녀, 남편, 아내, 동료, 완전해져야만 할 망가진 그들의 삶. 산에서 정기적으로 큰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은 극도로 이기적이거나 그들을 사랑해주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없다고 여겨져야만 한다.
_ 공포를 좇아서 중 - P169
온 유럽 대륙에 존재하는 마모되고 깎이고 주름지고 고랑 진 기반암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에 의해 평평해진 게 사실이라면, 지표면 위에 거대하고 모나게 솟아난 암석 덩어리들도 이와 같은 힘에 의해 배치되었을 것이다. 이는 암석들이 처음 생겨난 지점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했고, 빙하 또한 이처럼 유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_ 빙하와 얼음 중 - P185
런던의 얼음은 ‘자신을 확장하면서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균열을 일으키며 이웃을 모조리 공포에 떨도록 만드는 이 적대적인 산의 얼음과는 매우 다른 야수였다.
_ 빙하와 얼음 중 - P192
지질학은 ‘빙하기‘가 지구 역사상 적어도 한 차례는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물리학은그것이 미래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제안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인류가 빙하기로 구분되는 시대에 살았다는 개념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런 발상은 너무 두렵고 또 너무 절대적이어서, 녹지대가 많고 기후가 온화한 영국이 그것을 일반교양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다. 적어도 기독교인들은 이런 사건을 ‘추위‘로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천부의 정화제‘라고 인식하면서 공포감을 누그러뜨렸다.
_ 빙하와 얼음 중 - P206
오늘날의 우리는 ‘빙하기‘라는 아이디어가 19세기의 세계관을그 얼마나 극적으로 다시 썼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빙하기라는개념은 거의 모든 과학 분야-자연사, 화학, 물리학에 영향을미쳤고 사람들에게 인류학, 자연사, 신학에 대한 많은 지식을 재고하도록 했다. 더 즉각적인 영향은 사람들이 익숙한 풍경들을 갑자기 매우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 것이다.
_ 빙하와 얼음 중 - P213
빙하는 19세기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두 가지 개념을 혼합시켰다. 바로 ‘강대한 힘‘과 ‘광대한 시간이었다.
- 빙하와 얼음 중 - P223
사실 속도에 대한 인류의 필요는 모든 것에 있어서 능률성, 기능성을 숭배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이러한 ‘속도 숭배 가치관은 인류와 자연 세계의 부조화를 가속화했다.
_ 빙하와 얼음 중 - P225
현대사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불안한 잠재의식은, 얼음(태양의 죽음)이나 불(핵 홀로코스트)에 의해 지구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_ 빙하와 얼음 중 - P227
바야흐로 우리는 잇따라 산봉우리를 향해 올라간다. 작고 상냥한 여러 목소리가 부른다. "더 높이 올라오세요"라고. - 존 뮤어, 1911년 - P233
대다수 종교는 하나의 수직적 축선을 운용해 천국이나 그런 상태의 유사물을 위쪽으로 향하게 하며, 그역(가령 지옥)은 아래로 향하게 한다. 등산은 그러므로 ‘신성‘에 접근하는 근본적인 방식이다.
_ 고도 중 - P240
어쨌든, 결국에는 단지 지질학적인 우발성에의해 그 어떤 다른 경물보다 더 높은 데 있는 산속의 암석이나 눈덩이, 고도 공간 속의 표석, 산의 기하학이 창조한 허구적 이야기, 의미가 전혀 없는 듯한 하나의 뾰족한 끝 등이 등산 산업의 광범위한 융성을 불러왔다.
_ 고도 중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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