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들 순간들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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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방은 그 자체로 작은 도서관이다. 명목상으로는 여행중에 읽게 될 책들, 하지만 대부분은 읽는다는 직접적인 필요보다 여행지인 장소에 어울린다고, 그러므로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고 느끼는 책들이다. 그 책들은 그곳에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그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_ 연인 중 - P11

그들은 책과 여행가방으로 대표되는 어느 한 세대의 마지막을 살았던 사람들이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_ 연인 중 - P12

우리가 베를린에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다. 은둔할 수 없다면, 집이 아니다. 은둔할 수 없다면, 여행이 아니다. 베를린은 내 인생의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시작된 도시이다. 내가 그것과 비로소 만난 도시이다. 베를린은 그것을 내게 주었다. 하지만 나는 베를린을 좋아하지 않으며, 언젠가 베를린을 떠날 수 있기를 남몰래 소망한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두 번 다시 베를린에 올 일이 없게 되고 마침내베를린을 영영 잊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베를린에 두고 온 가방이 있더라도
베를린에 죽은 자를 두고 왔더라도
그리고 베를림에서 연인과 재회했다 할지라도.

_ 연인 중 - P22

그와 별개로, 우리는 눈을 감으면 언제나 사랑과 암흑을 본다. 내가 일곱번째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은 오직 우연이라고, 나는 말한다. 혹은, 한남자가 달에 발을 디뎠던 그날 흑백텔레비전 앞에 모여앉은 가족들을 등지고 아무도 모르게 집밖으로 걸어나갔던 내가 바로 일곱번째 아이였던 것일까. 내가 최초로 당신에게 발을 디뎠던 그날, 브레히트, 마리 A. 에 대한 기억.

_ 일곱번째아이 중 - P36

사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가장 적절한 장소이다. 잠시 동안 빛이 넘실대는 정원을 내다보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우리는 밤의 정원에 있다. 밤새도록 나이팅게일이 운다. 잠 속에서도 꿈속에서도 나는 그소리를 듣는다. 잠시 동안 나이팅게일의 소리를 듣고 있었을뿐인데, 어느새 우리는 수많은 세월을 늙어버린 다음일 것이다. 그것이 환희라면.

_ 낙엽을 헤치며 걷는 사람 중 - P38

나는 식물이 의지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좋은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고, 승리하는 쪽은 항상 야생이었다. 농업은 인간의 개입에 불과했다.

_ 낙엽을 헤치며 걷는 사람 중 - P41

5월의 정원은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꿈이다. 한여름의정원은 어떤 격렬함의 구현이다. 그러나 가장 신비한 것은 겨울의 정원이라고 나는 말한다. 겨울의 정원을 책으로 비유한다면 ‘모든 이를 위한 것은 아닌not for everyone‘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_ 낙엽을 헤치며 걷는 사람 중 - P43

나는 길이 보이지 않는 숲에서 방향을 잃은 채 오직 낙엽을 헤치며 가는 중이다. 그것이 나의 글쓰기이다. 그러나 나는 내 공포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
‘내 글은 아무도 모르게 달아나는 중이다. ‘글자 그대로 읽히는 것‘으로부터.

_ 낙엽을 헤치며 걷는 사람 중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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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uor1 2015년 8월 5일 오후 8:23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른 사람들은 산을 훼손하는 일이 많다. 힘들여 산에 오른 사람은 산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쉽게 오른 사람은 산을 가볍게 보기 때문이다. 기계의 힘을 빌린 사람들은 기계의 힘과 자신의 힘을 자주 혼동한다. - P225

@septuor1 2015년 8월 21일 오전 8:57

어느 나이가 되면 독서도 근면성이나 학구열 외에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현실의 가혹함을 받아들이고, 자기를 무너뜨리고 개조할 준비가 필요하기에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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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 2014-2018 황현산의 트위터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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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uor1 2015년 6월12일 오전 10:30

난초를 키운 적이 있다. 잘해준다고 한 일이 자주 난초를 죽이곤 했다. 잘해주는 것이 항상 잘해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공부한 방식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선생, 자신들의 희망을 자녀들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자주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 P174

@septuor1 2015년 7월 2일 오전 9:06

발전이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이 있다. 발전이 느린 사람에게는 대개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승부심이 매우 강하고 무얼 알게 되든 자신이 옛날에 했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그걸 사용한다. - P192

@septuor1 2015년 7월 7일 오후 2:33

정말이지 인문학은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될 말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하는 것이다. - P197

@septuor1 2015년 7월 15일 오후 11:14

바보는 흉내내고 영리한 자는 훔친다는 엘리엇의 말을 빌려 표절을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엘리엇의 레토릭일 뿐이고, 그 내용은 표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 P206

@septuor1 2015년 7월 19일 오전 10:12

실제로 6·25가 발발했을 때, 국가안위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생각하는사람들이 수만 명 무고한 사람을 죽여 구덩이에 묻었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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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는 마음 - 매혹됨의 역사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노만수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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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장사꾼과 도둑이 넘쳐나지만 산에는 죄악이 없다. 산꼭대기는원자화되고 사회적으로 방탕한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낭만적, 목가적인 열망의 결정체이자 도시에 속박된 영혼을 해방시켜주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상징 부호가 되었다. 도시의 군중 속에서는 외로울 수 있지만 산꼭대기에서는 고요함을 찾을 수 있다.

_ 고도 중 - P266

지금, 21세기의 시작점에서도 수백만 명의 상상력은 영국의 등산가이자 작가인 조 심프슨이 말한 "위대한 고도가 부르는 침묵의 소환, 즉 인류를 끊임없이 위로 끌어당기는 등산이라는 매력적인 역중력에 영향을 받기 쉽다.

_ 고도 중 - P279

가장 흥미로운 해도와 지도에는 모두 "미답Unexplored"으로 표기된 곳들이 있다.

- 아서 랜섬, 『제비호와 아마존호』, 1930년 - P283

물론 나의 꿈은 예전에는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어딘가로 가고 싶은 열망과 이전에는 아무도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하고 싶은 갈망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서양의 상상 속에 깊이 뿌리내린 ‘선취특권‘과 진기한 ‘원형‘에 대한 욕구다.

_ 지도 밖으로 걸어가기 중 - P295

"미지의 심연까지 잠입해서 새로움을 발견하라." 미지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_ 지도 밖으로 걸어가기 중 - P296

미지의 산악 지대를 경험하는 데필요한 것은 장거리 수평 여행 -가령 남극까지 가기 위해 남항하는 데 필요할지 모를 1년이라는 세월 또는 북극까지 가기 위해 배만큼 높은 파도와 배만큼 큰 빙산과 싸우며 북쪽으로 항해하는 수주의 시간이 아니라 경쾌한 ‘수직 여행‘이었다.

_ 지도 밖으로 걸어가기 중 - P300

지도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공간만 고려한다. 지도가끊임없이 자신을 수정하는 풍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는 없다. 수로는 항상 흙과 돌을 운송한다. 중력은 바위를 산허리에서 잡아당겨 더 낮은 곳으로 굴린다. 뇌조는 모이주머니에서 쓰기 위해 석영 조각들을 집어삼키고 다른 곳에서 배설한다. 물체와 돌은 부지불식간에 계속 운반되는 것이다. 다른 변화도 끊임없이 일어난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는 작은 개울을 건널 수 없는 급류로 바꿀 수 있다. 빙하의 입에서 흘러나온 융빙수는 토사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추상적인 미의 무늬로 조각할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차원의 풍경들이다.

_ 지도 밖느로 걸어가기 중 - P307

지구의 모든 미지의 공간을 일소하고 싶다는 영국인의 본능적 욕망은 대영제국의 정치적 야망에 완전히 부합했다.

_ 지도 밖으로 걸어가기 중 - P309

티베트인과 네팔인은 왜 초모룽마Chomolungma(세계의 ‘어머니 여신‘을 의미하는 에베레스트의 티베트어)나 사가르마타Sagarmatha(‘바다의 이마‘ 또는 ‘하늘의 여신‘이라는 뜻의 네팔어)처럼 웅장한 산이 한 인간의 이름으로 명명되어야 하는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지금도 그렇다).

_ 지도 밖으로 걸어가기 중 - P313

당시 젊은 조지프 콘래드를 아프리카로 끌어들였던 지리상의 미스터리들은 모두 풀렸다. 유일하게 원래의 모습그대로 분명하게 남아 있는 지역은 티베트 고원이었고, 그 남쪽 끝자락이 에베레스트산, 이른바 ‘제3극‘으로 불리는 미지의 마지막 요새였다.

_ 지도 밖으로 걸어가기 중 - P319

우리는 미지의 영역이라는 개념을 위쪽과 바깥쪽으로, 최후의 미개척 영역인 우주로, 또한 안쪽과 아래쪽으로, 다시 말해 원자와 유전자라고 하는 가장 깊숙한 방으로, 혹은 인간 정신의 가장 깊숙한 내면으로, 조지 엘리엇이 "우리 안에 지도가 그려지지 않은 나라"라고 부른 곳으로 옮겼다.

_ 지도 밖으로 걸어가기 중 - P321

"평펑 내리는 첫눈은 하나의 자연현상일 뿐만 아니라 ‘마법 같은 사건‘이다. 이 세상에서 잠자리에 들고 난 후 깨어나니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는데, 이게 매혹적이지 않다면 어디서 그런 마법 같은 세상을 찾을 수 있겠는가?"

_ 지도 밖느로 걸어가기 중 - P325

그리고 당신이 겪었던 경험들은 그곳에 부재했던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등산 여행을 마치고 일상생활로 복귀한 나는, 몇 년 만의 귀국이었으나 아직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을 가득 품고 있는 이방인의 감정을 종종 느꼈다.

_ 새로운 천국이자 새로운 지구 중 - P336

산의 덧없는 아름다움을 보충해주는 또 하나의 매혹이 있다.
즉, 바람, 강한 눈보라, 폭풍우, 눈 회오리, 총천연색 환일, 브로켄 유령, 코로나, 무홍 등 이 무상한 자연현상은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기상 효과의 경계 범위에서 맴돈다.

_ 새로운 천국이자 새로운 지구 중 - P347

언뜻 보기에 눈은 경치를 단순화하고 들쭉날쭉한 복잡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바위는 구체로, 나무는 첨탑으로, 산꼭대기는 원뿔로 변한다. 이러한 풍경은 간결한 유클리드기하학의 아름다움과 일치성을 드러내 보인다.

_ 새로운 천국이자 새로운 지구 중 - P357

19세기의 티베트는 마치 스위스의 18세기와 같았다. 유럽과 영국, 미국의 음울한 도시 풍경과는 정반대로 매혹적인 고지의 아르카디아였다.

_ 에베레스트산 중 - P381

맬러리는 왜 평야보다산에 오르는 마음에서, 그리고 ‘산‘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_ 에레베스트산 중 - P449

경이감은 모든 열정 중 으뜸이다.

-르네 데카르트, 1645년 - P453

산은 인류의 지속 가능성과 인류 계획의 오만함에 뜻깊은 의문을 던지고있다. 산은, 우리 안에 내재된 ‘겸손‘을 불러일으킨다. 산에 오르는마음은 겸양이라고.

_ 눈토끼 중 - P454

산은 현대적 생활 방식 탓에 너무나 무의식적으로 침출되어 유체 이탈해버릴 수 있는, 이 경이감이라는 대단히 귀중한 능력을 인류에게 되돌려준다. 더불어 산은 그런 경이감을 일상생활에서 쏟아내라고 재촉한다.

_ 눈토끼 중 -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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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는 마음 - 매혹됨의 역사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노만수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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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더 높은 산에 올랐을 때 고도가 선사하는 가장 흥미롭고 아름다운 효과 중 하나, 즉 구름층이 뒤바뀌며 자신이 문득 구름 위에 있는 것 같다는 전율을 느낀 것이다.

_ 고도 중 - P249

그러나 개인이 산에 오를 때 발견하는 즐거움과 흥분은 천국에 가고 싶다는 부연 설명이 아니라 산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즉 고도에 대한 세속화된 감각이 새롭게 생겨났다.

_ 고도 중 - P250

고도는 개인의 영혼을 고무시키는 동시에 소멸시키는, 이른바역설이다. 산의 꼭대기를 향해 여행하는 사람들은 반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반은 소멸-자아 망각을 사랑한다.

_ 고도 중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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