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터리지라는 멋진 이름이 있건만 나는 왜 올리버 키터리지의 남편이라고 부를까. 그만큼 올리버 키터리지가 인상이 깊었기 때문이겠지. 그냥 올리버라 해도 되고, 키터리지 부인이라 해도 되는데 나는 꼭 그녀를 올리버 키터리지 씨라고 불러준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그녀이지만 그녀의 전존재감이 내게 푸근하게 다가와 나를 위로해주기 때문이며, 또한 내가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기 때문이리. 이 책을 읽은지는 꽤 오래 되었다. 신간으로 읽었으니 말이다. 예전에 썼건만 어쩌다 잃어버린 리뷰를 복구하는 의미로 이번에 다시 읽었고, 헨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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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터리지는 오랫동안 이웃 마을에서 약사로 일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여름날 약국으로 이어지는 큰길로 들어서기 전 마지막 구간의 가시덤불에서 야생 라즈베리가 송알송알 알이 맺힐 때나 ,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약국으로 차를 몰았다. 은퇴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일찍 일어나 예전의 그런 아침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떠올렸다. 마치 세상이 혼자만의 비밀인 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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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이렇다. 그리고 나는 시작부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에게? 여기서? 여기에 눈물샘을 자극하는 부분이 어디에 있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눈물을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예전의 관리 약사 시절의 나라면 나 역시 이런 대목이 뭐 어떻다구, 생각할 터이다. 그러나 바뀐 내 상황을 들어보면 조금은 공감 지점이 생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현재 만으로 3년 가까이 개국 약사로 일하고 있고, 첫 해에는 일 년 365 일 중 9 일을 쉬어 일년동안 356 일을 아침 아홉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했다. 그 사이에 술주정뱅이로 인해 경찰서도 갔다왔고, 가만 서 있다가 뺨도 맞아봤으며, 욕설은 여러 번 들어봤고, 시비도 참았고, 그리고..고마우신 손님들도 많이 만났다. 나는 아침마다 일어나기 싫었다. 가게 입구가 멀리서 보이면, 등교하기 싫은 아이마냥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그랬다. 그러나 막상 약국을 들어서면 하루를 시작해야 하므로 억지로 억지로 웃는 낯으로 하루를 보냈다. 워낙에 돈 욕심도 없는데다가,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라는 효녀스런 이유 조차 없이, 누군갈 도와줬다 뒤통수를 맞은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청춘을 네모난 공간의 감옥에서 썩는다 싶어 무척 우울했다. 식사시간이 따로 없는 직업상 식사 중 두세 번 일어나면 적게 일어나는 거라 감사해야 하고, 그렇게 일어났다 앉아서 밥 먹다를 반복하면 나중에는 숟가락 들기조차 귀찮았다. 화장실 갈 때도 그 틈에 찾아오신 손님을 기다리게 할 수 없으므로 불안한 마음으로 볼 일을 보기에 늘 시원치가 않았다. 그런 하루가 쌓여서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흘렀다. 일 년 후에도 나는 여전히 약국이 감옥일 줄 알았는데, 어느날부터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헨리만큼 두근거리는 마음에는 못 미치지만, 세상이 혼자만의 비밀인 것처럼 출근길이 행복하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조금은 약국 출근 하는 일이 즐거워진 것이다. 그동안 내게 무슨 일이 생겼길래?
처음 낯선 경험을 한 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에게 상담인지 하소연인지 헷갈리는 애매한 대화를 하고자 오신 가게 근처 식당 아주머니의 사연을 세 시간동안 들은 날을. 아주머니는 식당 일을 오랜간 하신 탓에 몸이 여기저기 아프신 건 참겠는데 두고두고 지속되는 두통 때문에 못 견뎌하셨단다. 그래서 병원도 여기저기 다녀보시고, 기 치료도 받으시고, 교회도 다니시고, 급기야 이상한 수련 단체까지 다니면서 상담과 치료를 받으셨다. 약국은 특성상 병원이나 한의원 말고 다른 곳에서 하는 치료법은 신용을 하지 않는데, 아시는 분이어서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싶은 심사로 듣기 시작한 것이 두 시간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퇴근 시간인 밤 11시가 넘어서지만 아주머니의 트이기 시작한 물꼬는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 눈물까지 훌쩍이며 집안 일을 하나 둘 털어놓으셨다. "다른 공간이면, 다른 약국이면, 내가 이런 말 안 하는데, 내가 그동안 꾹꾹 눌러 참고 여지껏 살아왔는데, 약사님은 오랜 이웃인 동네 부부의 딸이니 내 딸이나 마찬가지인 느낌이고, 너무 편해서 어쩌다보니 이런 말까지 하게 되네요." 훌쩍이며 하시던 아주머니의 말에 나 역시 따라서 눈물이 고였고, 나는 처음으로 '위로'란 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신경 정신과에서나 할 법한 그런 상담을, 동네 약국에 불과한 곳에 들어와 딸 같은 존재인 나에게 죄다 털어놓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또한 흥분이 되었다. 그때 내 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샘 솟듯 터져서 나왔다. 그 정체는 '측은지심' 일수도 있고, '공감' 일수도 있고, '위로' 일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나는 이분과 아주 깊은 파장에서 공명을 했다는 것이다. 실컷 울고 나신 아주머니의 눈은 아주 맑았고, 나와의 대화가 그 어떤 약보다 더 좋은 효과를 봤다는 걸 나는 느낄 수가 있었다. 말재주가 그리 있지도 않은 나였건만, 그저 들어주고 추임새를 넣어준 정도였건만, 가운을 입은 나의 위치와 딸 같은 존재라는 나의 자리 때문에 그런 좋은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결국 밤 12시에 퇴근을 했지만 나는 그날의 일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이 아주머니에게만은 다시 내방하는 경우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상담을 해주리라 마음 먹었다. 누군가와 그런 특별함이 생기는 것, 그게 바로 오래도록 한 업종을 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특별한 관계가 하나 둘 늘어가는 걸 보는 일, 그게 바로 또한 노년까지 즐기며 한 업종을 할 수 있는 비결일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오래도록 쌓였을 때만, 헨리 키터리지처럼 아침 출근길에서 저런 느낌을 받을 수 있고 퇴직 후까지 출근 길의 행복한 두근거림을 추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아주머니 덕에 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생겨났다. 약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지루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았다. 은근히 기다려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났음을 어느날 문득 느꼈을 때, 나는 왠지 즐거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출근길에 멀리서 약국의 분홍 간판이 보이기 시작할 때 조금 두근거리는 것도 생겼다.
헨리 키터리지의 글에서 또한 느낀 감동 지점은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서두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 늘 게으르기 짝이 없던 내가 아직까지 약국을 하고 있는 걸 알았고, 아프다는 핑계로 문 닫은 적 없는 것도 알았고, 여전히 늦게까지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음에 여행이 허락될 정도로 건강이 회복된다면, 나는 좀더 오래 약국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숨구멍이 될 정도의 여행이 허락된다면 말이다. 나는 나이 들어서까지 헨리 키터리지처럼 그런 은근한 기쁨을 누려보고 싶다. 헨리의 그 기쁨은 같은 업종을 오랜간 종사해온 사람의 습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쁨이니까 말이다. 힘겨운 하루하루가 쌓여 일 년이 되고, 흰머리 희끗해지고 은퇴할 때까지 시간이 흐르다 보면 느끼게 되는 연륜 같은 거..나는 아직 어림도 없지만, 그런 느낌을 감만 잡을 뿐이지만, 오랜 시간 같은 업종을 종사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존경심 같은 거, 그런 게 진하게 느껴지는 글의 서두이다. 그래서 더욱 따뜻한 소설. 소설에서 이런 기쁨을 낚는 일이 바로 소설 읽는 맛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