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8시 40분.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마감준비를 하고 있는데 때르릉 전화가 울린다. 며칠 전에 들르신 김씨아줌마다. 전화 목소리에 병력과 약력이 기억났으며 몇 일 전 대화내용이 생각났다.

김씨아줌마는 1년 쯤 전에 갑상선약인 안티로이드를 6알로 시작하셨다. 시간이 흐르면서 4알로, 다시 3알로 줄이는데 성공하셔서 조금 있으면 더 줄어들겠거니 지켜보고 있던 아줌마였다. 가끔 하는 큰 검사는 도시에서 하고, 매달 타서 드시는 약은 동네 단골내과에서 처방 받아 드셨는데 얼마전 검사를 하러 서울을 가셨더랬다. 한 달 쯤 전에 서울에서 받은 갑상선 검사 결과가 나왔고 약을 끊으라는 처방을 받았다. 갑상선약은 서서히 줄이는게 원칙인데 갑자기 끊는다시길래 둘이서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고 며칠 전에 약을 타러 오셨을 때야 그간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이 갑상선약을 끊고 조금씩 몸이 이상해졌는데 원인을 알 수 없이 비실거려서 큰 병이 생겼나 싶어 무척 걱정을 했더란다. 결국 단골내과에서 검사를 새로 했고 수치가 높게 나와 다시 약을 드셨단다. 약을 드시자마자 그 증상이 씻은듯이 나았다면서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신다. 서울 큰병원에서 도대체 어떤 수치가 나왔기에 약을 끊으라고 했는지 연유를 알 길은 없으나 다시 약을 복용하면서 증상이 호전된 것만으로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3알까지 줄인 그간의 시간과 노고는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다시 6알로 새로 시작해야했다. 어쩔 수 없다며 아줌마를 다독거렸고 약을 드렸던 기억까지 떠올랐다. 그런데,
 
대뜸 약이 없다고 하신다. 약 타가신지 좀 되셨는데 그럼 그동안은 뭐 드셨어요? 남은 약이 조금 있었지. 어제까지 남은 약 다 먹고 빈 통은 버렸고, 오늘 이제 약 먹으려고 하니 없더라구. 약을 빠뜨렸나봐?

"어머. 제가 약 드린 기억이 분명히 나는데요. 심바스트CR은 약뚜껑이 파란색이잖아요. 헷갈리신다고 하셔서 보시는 앞에서 뚜껑에 제가 저녁 1알이라고 써드리기까지 했는데요. 한번 더 잘 찾아보세요."
"몰라. 기억이 안 나. 나는 갑상선약 두 통 받은 거 말고는 기억이 안 나."
"네. 그러니까요. 갑상선약 두 통 보여드리고 봉지에 넣으면서 심바스트,고지혈증약에 글 써드렸고 다른 혈압약이랑도 같이 확인시켜드렸잖아요."
"몰라. 기억이 안 나. 나는 약을 먹어야는데. 나는 약을 받은 기억이 전혀 없어."
"그럼 어떡하죠? 음..일단 약을 드셔야되니 내일 병원에 다시 가시구요. 분실약을 재처방 받게 되면 비급여로 타야 되서 돈이 비싸지긴 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새로 처방전을 받아오셔요."
"아니. 나는 약을 안 받았다니까."
"어머니. 저희는 약을 드렸구요. 드린 후 새로 약주문이 들어갔는데 지금 약통 갯수를 세어봐도 주문량 갯수밖에 없어요. 약 드린게 맞아요. 제가 저녁 1알 이라고 글을 쓰는걸 어머니가 보셨잖아요."
"글쎄. 나는 기억이 안 난다니까."

김씨아줌마를 설득시키지 못하고 찜찜하게 통화를 끊었다. 머리에 스팀이 들어오는데 조카가 운동 가자고 대기하고 있다. 시계를 보니 퇴근시간이 다 되었다. '그래, 운동이나 가자' 가게 문을 닫고 쌔콤을 켜고 강변으로 걸어간다. 양 손에 짐을 하나도 들지 않았는데도 발이 천근만근이다. 강가에 도착해 계단을 내려가 강둑 한 켠에 깔린 운동길에 발을 디딘다. 무거운 머리와 축처진 몸상태와는 달리 발은 산책의 즐거움을 알아차린다. 갑자기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스치듯 사람들과 지나치면서 '운동 잘 하세요' 속으로 인사를 한다. 저 멀리 있던 징검다리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다. 징검다리 사이로 졸졸 물소리가 새어나온다. 징검다리를 지나치니 낙차가 생기는 미니 둑이 보인다. 미니 둑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귀를 쾌적하게 적시고 흘러내려 내 마음의 답답함을 씻어버린다. 하아! 조금 개운해진다.

' 내일 김씨아줌마에게 전화를 드려서 처방전을 새로 끊어오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약값을 반반 부담하자고 이야기해야지. 나는 약을 드린 모든 상황이 다 기억나지만, 아줌마는 기억이 안 나신다니 어쩔 수 없지. 아줌마가 약을 길바닥에 흘렸건 집에서 못 찾고있건 중요한건 약을 먹어야 되는 것이니 둘다 조금씩 양보를 해서 반씩 부담하면 되겠지.'

이제 산길로 접어든다. 한쪽은 여전히 강물이 흐르나, 반대쪽 너머엔 야트막한 산이 보이고 그 사이에 논과 밭이 바닥에 깔려있다. 물이 가득 차있는 논에선 개구리가 소풍나온 아이들마냥 시끄럽다. 개구리 합창에 신이 난 조카는 개구리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재잘재잘 시끄럽던 개구리가 잠시 숨돌리려 한 박자 쉬는 타임에 조카는 박자를 놓치고 헛바람을 삼킨다. 한참을 조카와 개구리의 합창을 듣고있노라니 어지럽던 머리속 실타래들이 돌돌 뭉쳐져서 멀리 던져지는 느낌이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 40분이 지났다. 산에서 졸졸 내려오는 물에 대롱을 달아놓은 약수터로 먼저 간다. 물맛이 좋다. 이제 스트레칭을 해본다. 헛둘 헛둘. 목도 돌리고 허리도 돌리고 앉았다 일어섰다 해본다. 휴우! 아까보다 조금 더 개운해진다.

'내일 어머니에게 전화를 넣어서 처방전만 일단 다시 끊어오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뭐, 약값은 내가 부담해야지. 엄마같으신 분인데 저리 약 받은 기억이 없다시는데 어린 내가 바득바득 우길수도 없고, 그냥 내가 약값 부담하고, 3만원어치 덜 먹고 다이어트나 하자.'

결론을 내리고나니 이제 답답한 마음이 풀어진다. 원칙대로 하고픈 내 마음의 단단함을 겨우 조금 깨뜨린 것 같다. 삶이란게 살다보면 원칙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그럴 때 내 주장만 내세우다보면, 결국 일은 일대로 엉클어지고 내 마음도 같이 상하고 다친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내가 틀렸을 수도 있고, 또 내가 맞다한들 어른을 이겨먹어서 뭐하겠나. 중요한건 환자가 약을 먹어야한다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이 상쾌하다. 땡기던 뒷목도 풀렸다. 개구리 소리가 산허리에 안개처럼 내려앉는다.

다음날 아침부터 전화를 넣었지만 부재중인지 오후 늦게서야 통화가 되었다.

"아, 약~ 그거 있더라. 내가 빈 통인줄 알고 쓰레기통에 버렸던 거 있잖아? 그게 알고보니 온통이더라구. 흔들어도 알약 소리가 안 나길래 빈 통인 줄 알았더니, 약이 꽉 차서 소리가 안 났나봐. 그래서 내가 약을 어제 먹었어. 이제 걱정하지마~"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6-21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1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06-2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다행이네요!! 안도했어요.

달사르 2011-06-29 11:19   좋아요 0 | URL
히히. 넹~ 다락방님을 제 블럭에서 보니 엄청!! 반가운데요? ^^
다락방님이 이렇게 읽어주시니 약국일기를 좀더 적어볼까..하는 생각이? ^^

2011-06-29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5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외상을 잘 준다. 그리고 하루가 가기 전에 외상을 준 사실조차 잘 까먹는다. 어려서부터 시력이 나쁜 사람들은 커서 사람을 잘 분간하지 못하는 얼굴맹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아주 심한 얼굴맹이다. 약국 오픈 하는 날 들른 이모 얼굴을 보고도, '아, 손님이 오셨구나' 라고 생각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나마 이모의 음성을 듣고서 퍼뜩 눈치를 채어 이모의 존재를 인식한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시력이 나쁜 대신 귀가 밝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외상 이야기를 하다가 얼굴맹 이야기를 왜 하는걸까. 외상이란건 장부에 기록해봤자 다음에 그 사람이 내방했을 때 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놓은 상태라야 제 기능을 하는 법이다. 내가 외상을 준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을 못하는 상태라면 외상을 기록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게다가 나는 엄청나게 게으르다. 손으로 일일이 손님의 특징과 외상금액을 적는게 귀찮다. 결정적으로 나는 모월 모일에 누가 무엇을 사면서 외상을 얼마를 했고, 가 적혀있는 장부가 내 가게에 존재하는 것이 싫다. 외상장부의 존재는 장부에 기입된 물질로서의 금액을 넘어서는 심적인 부담을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간 사람에게 준다. 게다가 그 부담은 외상장부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지어준다. 그 부담이 얼마나 큰지. 나는 그 부담을 가지기 싫다.  

만약 내가 얼굴맹이 아니라 한 번 본 사람도 기억해내고, 외상을 가져갈 때 무엇을 사고 얼마를 남겼는가까지도 기억해내어서 그 사람이 내방할 때마다 그 사람을 보기 전에 외상값부터 떠올린다면, 내 마음 속은 얼마나 잡다한 것들로 가득차 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납으로 된 추를 단 듯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그 사람에게 외상값을 달라는 말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를 머리 속에서 굴리며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 나를 상상하는건, 내게는 좀 지치는 일이다. 게다가 겨우 말을 꺼냈는데 그 사람이 미처 외상값을 들고 오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외상을 했다는 걸 까먹었을 때 얼마나 서로 민망하겠는가. 한때는 시력이 나쁜 걸, 얼굴맹인 걸 안타까워도 했다. 관리약사 시절 복약지도를 몇 십 분에 걸쳐서 해드린 손님들 중 나의 그런 마음씀이 좋아서 다음 번에 내방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치자. 저번에 해주신 말씀 중에요, 라거나 저번에 너무 고마웠습니다, 라는 말들을 듣게 되면 나는 그야말로 당황을 하게 된다. 저번에 해준 말이 뭐였지? 저 사람이 누구지? 당황해서 귀 밑까지 빨개진다. 나도 나지만 그런 나를 보고 자기를 기억해주지 못해 서운해하는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수록 미안한 일이었다. 나의 이런 얼굴맹 증상은 노력을 해도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손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손님의 이름을 공부하듯 외워도 몇 일 지나서 손님이 내방하면 그야말로 머리가 하얘지는거다. 자주 내방하시는 분의 경우에 한해 겨우 얼굴을 기억하는 정도랄까. 그러니 외상장부가 내겐 무용지물이었고, 나는 외상장부 없이 약국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사람들이 외상을 값지 못해 안달이 아닌가. 잠시 화장실을 갔을 때 외상값을 갚으러 오신 손님은 직원분께 외상값을 갚지 않고 내가 볼 일 끝나기를 기다리신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실례지만, 언제 외상을 하셨는지.."라고 말을 하면 이야기가 그렇게 길게 나올 수가 없다. 언제 무엇을 샀는데 금액이 얼마 모자라서 몇 일날 갚기로 했는데 이렇게 늦게 갖고 와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곁들이면서 말이다. 그런 일이 꽤 오래 반복되었다. 나는 외상을 떼여도 어쩔 수 없다는 자세로 외상을 드렸는데 외상을 드리는 족족 외상을 갚으려 드시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겠나 말이다. 외상값 갚기가 반복되던 어느날인가, 나는 묘한 기쁨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차피 기억에 없으니 외상값은 내게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외상을 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 외상이 마음의 빚으로 존재했고 그 외상을 갚기까지 나를 생각하고, 내 가게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빚인 외상을 갚으면서 홀가분해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 역시 따라서 홀가분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따뜻한 뭔가가 나를 찌르르 훑고 지나가는 여운이 있었다.  

그 느낌을 알고나서는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손님들에게 외상을 구애하기 시작했다. 주로 호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에게 구애를 했는데 오늘 저녁에도 고등학생이 영양제를 사러 들렀다. 공부를 한참 해야되는 시기여서 영양제를 먹고는 싶은데 가진 돈은 원하는 약값에서 5000원이 모자랐다. 고민하는 학생을 앞에 두고 내 입에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그럼 모자라는 건 외상해" 란 말이 나왔다. 망설임없이 나온 내 말을 듣고 눈이 동그래진 학생은 저를 믿으시는 거예요? 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저는 오늘 여기 처음인데..라고 말을 흐리는걸 보면서 이렇게 말을 해준다. "그럼 그래도 되지. 몇 일 내로 시간이 있을 때 들러서 갚으면 돼. 너야 어차피 이 지역 사람이잖아. 그러면 처음 봐도 아는 거와 꼭같아." 내가 또 기쁘게 외상을 주는 건 처방전을 들고 온 학생이 약값이 모자라는 경우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외상하면 안되냐는 말을 차마 못하고 내일 다시 들러서 약을 짓겠다고 말을 한다. "약 먹는 게 급하니 약은 먼저 가져가고 외상해" 라고 말을 하면서 나는 또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분명 짧은 시간 내에 학부형이 내방해서 우리 아이가 여기서 외상을 했다는데, 아이가 꼬옥 갚으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왔어요. 너무 늦지 않았지요? 아이에게 그렇게 편하게 외상을 주셔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등의 말을 할 것이다. 나중의 일을 상상하면서 외상을 주는 순간부터 나는 미리 미소를 짓는 것이다.

약국을 한지 이제 오래되었다. 약국 초기의 얼굴맹 증상은 이제 많이 없어졌다. 줄기차게 내방해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일까. 그들의 시시콜콜한 사는 이야기들 덕분일까. 그들의 사연을 하나둘 듣고 있노라면 그 사연이 열쇠가 되어서 그들의 얼굴과 연결을 시켜주는 느낌이 든다. 얼굴을 아는 반가운 손님이 문득 선물처럼 외상값을 갚으러 오는 날, 얼굴을 알기에 그 기쁨은 이제 배가 된다. 참 따뜻한 마음의 빚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6-10 0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0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9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5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인의 상가(喪家) 

                                                                  김형수 

 

무늬만 현란한 시인의 상가였다.

평소 친했던 것들은 오지 못했다.

어제 영양실조로 죽은 시인의 영정 앞에

더불어 슬퍼하고 식음조차 전폐했던

달빛도 주눅 들어 조문하지 못했다.

억지 춘향으로 배달돼 온 꽃들만

매춘부처럼 표정 없이 벌들을 섰다.

한때 빛나던 시절을 증언하는

동창회 이사회 주식회사 이름표들



부의금을 받으면서 계산해보니

지난 50년 동안 시인의 입술이

최하 저수지 하나는 먹어치웠다.

뱃속의 장기들은, 주인이 아무리 게을렀다 해도

최하 양계장 하나를 분뇨 처리했다.

그럼에도 문상객들은 넙죽넙죽 엎어진다.

열의 아홉은 배가 나와 절하는 것도 불편하다.

얼마나 많은 산천초목을 먹어치운 자들인가

얼마나 많은 들판의 곡식과 축사의 짐승들을 바닥낸 자들인가



그러고도 아득바득 국밥들을 먹는다.

육신의 짐칸마다 문명이 과적되어

영혼이 있어도 날지 못한다.

하나 같이 명석한 두뇌들을 가졌지만

사색의 바퀴들도 단거리 수송이 아니면 견디지 못한다.

신발 뒤축도 구겨 신은 채

그저 서둘러 술상을 찾아가며

야~ 씨팔~ 주저앉는 소리들.

주정꾼 둘이 싸우는 틈에 시인이 슬그머니

저승으로 옮겨 가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시. 오늘 내가 가본 상가(喪家)와 다른듯 같은 느낌이다. 상가(喪家)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생각이 들게 해주는 그런 시. 그 주인공을 애도하는 마음만 있다면, 배불리 상가음식을 먹어도, 술잔만 디립다 기울여서 주구장창 마셔대어도, 눈물 뚝뚝 흘리며 슬픔을 표해도, 서먹서먹 자리에 앉아만 있어도, 무슨 상관 있으리. 주인공이 무사히 저승으로 옮겨가길 바라는 그 마음만 있다면.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6-08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8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9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5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상갓집을 다녀왔다. 아마 2005년도에 불의의 사고를 당한 선후배들 문상 이후로 처음인듯하다. 입을 옷이 없었다. 현재 입고 있는 옷은 등산복 겸 조깅복. 퇴근 후 바로 운동 갈 목적으로 아침 출근시 입었던 옷이다. 그럼 퇴근해서 옷을 갈아입고 가면 되지 않냐, 라고 생각하고 혹시나 기대를 했지만 역시 옷이 없었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안 입는 옷들 죄다 버리면서 오래된 정장을 모조리 버렸기 때문이다. 할수없이 급히 옷가게를 들렀다. 상갓집에 같이 갈 언니가 다행히 옷을 골라줬다. 언니가 입으라는 옷을 이 옷 저 옷 입어보면서, 그 와중에도 옷 갈아입는 재미를 누렸다. 센스쟁이 언니 덕에 눈 낮은 내 수준으로는 고르지도 못할 이쁜 옷을 골랐다.

상갓집을 갔다. 같이 가는 팀 중 먼저 시간되는 사람들은 이미 다녀갔고, 늦게까지 가게를 하는 사람들 세 명이 같이 갔다. 세 명 다 상갓집에 들러본 기억이 가물거리는 여자들인데다 절을 어떻게 하는지, 향을 어떻게 사르는지, 상주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영정사진이 있는 방으로 세 명이 들어가서 당황스런 눈동자만 굴리자 눈치빠른 상주 오빠가 절 하는 거랑 향 사르는 거랑 일러주었다. 절은 두번을 했고 상주와 한 번의 절을 또 했다. 절 하는 틈틈이 나는 영정사진의 주인공을 봤는데 아주 이쁜 아주머니가 곱게 화장을 하고 계셨다. 절을 마치고나서 상주오빠에게 뭐라고 한 마디를 해야할 것 같애서, "어머니가 무척 고우세요" 라고 말을 하려고 준비를 하다가 말았다. 혹시나 실수이면 안되니까. 상갓집에서 저 멘트는 실수일까 아닐까, 궁금하다. 결국 나는 상주오빠의 얼굴만 보고 입도 떼지 못했다.

자리에 앉았다. 언니들은 저녁을 먹었는지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다. 일부러 저녁을 먹지 않은 나는 국과 밥을 달라고 했는데 국이 무척 맛있었다. 고사리 등이 많이 들어간 소고기국이었는데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맛있게 밥을 절반 정도 먹었는데 국이 벌써 바닥이다. 배는 이미 찼지만 밥을 남기기 싫었다. 상갓집에 와서 밥을 남겨서 잔반처리를 누군가 해야만 하는게 미안했다. 미적거리고 있으니 옆의 언니가 국을 한 그릇 추가로 챙겨준다. 처음 국보다 더 많이, 아주 듬뿍. 나는 다시 국과 밥을 먹었다. 반찬으로는 김치를 먹었는데 먹다보니 돼지수육이 보였다. 아..이런데는 돼지수육이 나오는구나. 돼지수육도 쌈장에 찍어 먹었다. 새우장이 보이기에 그것도 조금 먹었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것들이지만 죄다 마구마구 먹었다. 땅콩이 보이길래 그것도 반찬 삼아 먹었고, 마른 오징어도 먹었다. 아직까지 허약체질이어서 술은 옆에서 권하면 억지로 한 잔을 마셔야지, 싶었는데 다행이 아무도 술을 권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술은 마시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결국 밥 한 공기와 국 두 그릇을 다 비웠다. 밥알 한 알까지 다 먹었다. 내가 밥 한 공기를 다 먹은건 몇 년만에 처음이지 싶다. 처음 보는 얼굴의, 영정사진 상의 어머니지만 그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마지막 밥상이라 생각하고 먹었다. 낯선 어머니 영정 앞에서 절을 할 때 눈물도 나오지 않았지만, 몇 년을 투병생활 하시면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시다 어쩜 이제 휴식을 취하러 하늘나라로 가시는 어머니 얼굴이 아직 살아계신 내 친어머니 얼굴과 섞여져서 옆에서 먹으라고 부추기는 느낌이 들어 자꾸자꾸 먹었다.  

먹고 있으니 상주오빠가 왔다. 며칠간 운동을 같이 하며 트레이닝을 해주던 상주오빠는 명품 몸매를 만들어야는데, 오늘 저녁 이렇게 많이 먹어서 살 찌면 어떡하냐고 웃으며 말을 건넨다. 많이 울었을 상주오빠의 말간 얼굴에 나는 아무 말 못하고 따라 웃기만 한다. 상갓집에서는 웃으면 안 될거 같앴으나 웃음이 자꾸 나왔다. 먼 길 떠나시는 어머니가 먼저 가신 아버지의 마중을 받으며, 마지막 가는 길에 상갓집에 들러서 금쪽같은 자식들 보고 웃고, 문상 온 사람들 보고 웃는 거 같아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잘가세요" 말을 속으로 속으로 했다. 오늘, 그렇게 한 우주가 멸()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6-08 0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8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8 0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8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8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8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8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목만으로 소설을 쓸 생각을 했고, 결국 3권까지 나오는 있는 <1Q84>와 하루키. 제목에 이미 그 내용이 다 들어있었고, 하루키는 그저 제목에서 그 내용을 끄집어내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를 얼마나 제대로, 잘 끄집어내느냐 하는 것이겠고, 그건 작가의 역량에 속하는 부분일테다. 

작가가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물론 아파트를 짓듯이 차근차근 계획대로 글을 써내려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루키의 표현처럼 제목만으로, 단어 하나만으로 이야기를 자아낼 수 있는 스타일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후자에 가깝다.  

근사한 생각이 떠올라 머리속에서 요리조리 내용을 정리해봤자 막상 글로 옮기려 들면 한 줄도 못 쓰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단어 하나로 줄줄이 글이 쏟아지는 적도 있으니 말이다. 이영진 시인의 시도 읽고나서 그 감동을 '저수지'란 단어 하나에 집중했는데 글이 저절로 써졌다. 글을 쓰려고 생각했을때만해도 학창시절의 기억은 머리 속에 있지도 않았으나 글을 써내려감과 동시에 숨어있던 기억이 떠올랐고 글로 옮겨져버렸다.   

글을 다 쓰고나서는 혼자서 계속 갸웃거리고 있다. 단어에는 어떤 힘이 있길래 저절로 글이 되게 하는 걸까.

(퇴근해야해서, 나중에 연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6-07 0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7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9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6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