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갓집을 다녀왔다. 아마 2005년도에 불의의 사고를 당한 선후배들 문상 이후로 처음인듯하다. 입을 옷이 없었다. 현재 입고 있는 옷은 등산복 겸 조깅복. 퇴근 후 바로 운동 갈 목적으로 아침 출근시 입었던 옷이다. 그럼 퇴근해서 옷을 갈아입고 가면 되지 않냐, 라고 생각하고 혹시나 기대를 했지만 역시 옷이 없었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안 입는 옷들 죄다 버리면서 오래된 정장을 모조리 버렸기 때문이다. 할수없이 급히 옷가게를 들렀다. 상갓집에 같이 갈 언니가 다행히 옷을 골라줬다. 언니가 입으라는 옷을 이 옷 저 옷 입어보면서, 그 와중에도 옷 갈아입는 재미를 누렸다. 센스쟁이 언니 덕에 눈 낮은 내 수준으로는 고르지도 못할 이쁜 옷을 골랐다.
상갓집을 갔다. 같이 가는 팀 중 먼저 시간되는 사람들은 이미 다녀갔고, 늦게까지 가게를 하는 사람들 세 명이 같이 갔다. 세 명 다 상갓집에 들러본 기억이 가물거리는 여자들인데다 절을 어떻게 하는지, 향을 어떻게 사르는지, 상주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영정사진이 있는 방으로 세 명이 들어가서 당황스런 눈동자만 굴리자 눈치빠른 상주 오빠가 절 하는 거랑 향 사르는 거랑 일러주었다. 절은 두번을 했고 상주와 한 번의 절을 또 했다. 절 하는 틈틈이 나는 영정사진의 주인공을 봤는데 아주 이쁜 아주머니가 곱게 화장을 하고 계셨다. 절을 마치고나서 상주오빠에게 뭐라고 한 마디를 해야할 것 같애서, "어머니가 무척 고우세요" 라고 말을 하려고 준비를 하다가 말았다. 혹시나 실수이면 안되니까. 상갓집에서 저 멘트는 실수일까 아닐까, 궁금하다. 결국 나는 상주오빠의 얼굴만 보고 입도 떼지 못했다.
자리에 앉았다. 언니들은 저녁을 먹었는지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다. 일부러 저녁을 먹지 않은 나는 국과 밥을 달라고 했는데 국이 무척 맛있었다. 고사리 등이 많이 들어간 소고기국이었는데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맛있게 밥을 절반 정도 먹었는데 국이 벌써 바닥이다. 배는 이미 찼지만 밥을 남기기 싫었다. 상갓집에 와서 밥을 남겨서 잔반처리를 누군가 해야만 하는게 미안했다. 미적거리고 있으니 옆의 언니가 국을 한 그릇 추가로 챙겨준다. 처음 국보다 더 많이, 아주 듬뿍. 나는 다시 국과 밥을 먹었다. 반찬으로는 김치를 먹었는데 먹다보니 돼지수육이 보였다. 아..이런데는 돼지수육이 나오는구나. 돼지수육도 쌈장에 찍어 먹었다. 새우장이 보이기에 그것도 조금 먹었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것들이지만 죄다 마구마구 먹었다. 땅콩이 보이길래 그것도 반찬 삼아 먹었고, 마른 오징어도 먹었다. 아직까지 허약체질이어서 술은 옆에서 권하면 억지로 한 잔을 마셔야지, 싶었는데 다행이 아무도 술을 권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술은 마시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결국 밥 한 공기와 국 두 그릇을 다 비웠다. 밥알 한 알까지 다 먹었다. 내가 밥 한 공기를 다 먹은건 몇 년만에 처음이지 싶다. 처음 보는 얼굴의, 영정사진 상의 어머니지만 그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마지막 밥상이라 생각하고 먹었다. 낯선 어머니 영정 앞에서 절을 할 때 눈물도 나오지 않았지만, 몇 년을 투병생활 하시면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시다 어쩜 이제 휴식을 취하러 하늘나라로 가시는 어머니 얼굴이 아직 살아계신 내 친어머니 얼굴과 섞여져서 옆에서 먹으라고 부추기는 느낌이 들어 자꾸자꾸 먹었다.
먹고 있으니 상주오빠가 왔다. 며칠간 운동을 같이 하며 트레이닝을 해주던 상주오빠는 명품 몸매를 만들어야는데, 오늘 저녁 이렇게 많이 먹어서 살 찌면 어떡하냐고 웃으며 말을 건넨다. 많이 울었을 상주오빠의 말간 얼굴에 나는 아무 말 못하고 따라 웃기만 한다. 상갓집에서는 웃으면 안 될거 같앴으나 웃음이 자꾸 나왔다. 먼 길 떠나시는 어머니가 먼저 가신 아버지의 마중을 받으며, 마지막 가는 길에 상갓집에 들러서 금쪽같은 자식들 보고 웃고, 문상 온 사람들 보고 웃는 거 같아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잘가세요" 말을 속으로 속으로 했다. 오늘, 그렇게 한 우주가 멸(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