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상가(喪家)
김형수
무늬만 현란한 시인의 상가였다.
평소 친했던 것들은 오지 못했다.
어제 영양실조로 죽은 시인의 영정 앞에
더불어 슬퍼하고 식음조차 전폐했던
달빛도 주눅 들어 조문하지 못했다.
억지 춘향으로 배달돼 온 꽃들만
매춘부처럼 표정 없이 벌들을 섰다.
한때 빛나던 시절을 증언하는
동창회 이사회 주식회사 이름표들
부의금을 받으면서 계산해보니
지난 50년 동안 시인의 입술이
최하 저수지 하나는 먹어치웠다.
뱃속의 장기들은, 주인이 아무리 게을렀다 해도
최하 양계장 하나를 분뇨 처리했다.
그럼에도 문상객들은 넙죽넙죽 엎어진다.
열의 아홉은 배가 나와 절하는 것도 불편하다.
얼마나 많은 산천초목을 먹어치운 자들인가
얼마나 많은 들판의 곡식과 축사의 짐승들을 바닥낸 자들인가
그러고도 아득바득 국밥들을 먹는다.
육신의 짐칸마다 문명이 과적되어
영혼이 있어도 날지 못한다.
하나 같이 명석한 두뇌들을 가졌지만
사색의 바퀴들도 단거리 수송이 아니면 견디지 못한다.
신발 뒤축도 구겨 신은 채
그저 서둘러 술상을 찾아가며
야~ 씨팔~ 주저앉는 소리들.
주정꾼 둘이 싸우는 틈에 시인이 슬그머니
저승으로 옮겨 가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시. 오늘 내가 가본 상가(喪家)와 다른듯 같은 느낌이다. 상가(喪家)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생각이 들게 해주는 그런 시. 그 주인공을 애도하는 마음만 있다면, 배불리 상가음식을 먹어도, 술잔만 디립다 기울여서 주구장창 마셔대어도, 눈물 뚝뚝 흘리며 슬픔을 표해도, 서먹서먹 자리에 앉아만 있어도, 무슨 상관 있으리. 주인공이 무사히 저승으로 옮겨가길 바라는 그 마음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