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을 잘 준다. 그리고 하루가 가기 전에 외상을 준 사실조차 잘 까먹는다. 어려서부터 시력이 나쁜 사람들은 커서 사람을 잘 분간하지 못하는 얼굴맹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아주 심한 얼굴맹이다. 약국 오픈 하는 날 들른 이모 얼굴을 보고도, '아, 손님이 오셨구나' 라고 생각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나마 이모의 음성을 듣고서 퍼뜩 눈치를 채어 이모의 존재를 인식한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시력이 나쁜 대신 귀가 밝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외상 이야기를 하다가 얼굴맹 이야기를 왜 하는걸까. 외상이란건 장부에 기록해봤자 다음에 그 사람이 내방했을 때 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놓은 상태라야 제 기능을 하는 법이다. 내가 외상을 준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을 못하는 상태라면 외상을 기록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게다가 나는 엄청나게 게으르다. 손으로 일일이 손님의 특징과 외상금액을 적는게 귀찮다. 결정적으로 나는 모월 모일에 누가 무엇을 사면서 외상을 얼마를 했고, 가 적혀있는 장부가 내 가게에 존재하는 것이 싫다. 외상장부의 존재는 장부에 기입된 물질로서의 금액을 넘어서는 심적인 부담을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간 사람에게 준다. 게다가 그 부담은 외상장부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지어준다. 그 부담이 얼마나 큰지. 나는 그 부담을 가지기 싫다.
만약 내가 얼굴맹이 아니라 한 번 본 사람도 기억해내고, 외상을 가져갈 때 무엇을 사고 얼마를 남겼는가까지도 기억해내어서 그 사람이 내방할 때마다 그 사람을 보기 전에 외상값부터 떠올린다면, 내 마음 속은 얼마나 잡다한 것들로 가득차 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납으로 된 추를 단 듯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그 사람에게 외상값을 달라는 말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를 머리 속에서 굴리며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 나를 상상하는건, 내게는 좀 지치는 일이다. 게다가 겨우 말을 꺼냈는데 그 사람이 미처 외상값을 들고 오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외상을 했다는 걸 까먹었을 때 얼마나 서로 민망하겠는가. 한때는 시력이 나쁜 걸, 얼굴맹인 걸 안타까워도 했다. 관리약사 시절 복약지도를 몇 십 분에 걸쳐서 해드린 손님들 중 나의 그런 마음씀이 좋아서 다음 번에 내방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치자. 저번에 해주신 말씀 중에요, 라거나 저번에 너무 고마웠습니다, 라는 말들을 듣게 되면 나는 그야말로 당황을 하게 된다. 저번에 해준 말이 뭐였지? 저 사람이 누구지? 당황해서 귀 밑까지 빨개진다. 나도 나지만 그런 나를 보고 자기를 기억해주지 못해 서운해하는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수록 미안한 일이었다. 나의 이런 얼굴맹 증상은 노력을 해도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손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손님의 이름을 공부하듯 외워도 몇 일 지나서 손님이 내방하면 그야말로 머리가 하얘지는거다. 자주 내방하시는 분의 경우에 한해 겨우 얼굴을 기억하는 정도랄까. 그러니 외상장부가 내겐 무용지물이었고, 나는 외상장부 없이 약국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사람들이 외상을 값지 못해 안달이 아닌가. 잠시 화장실을 갔을 때 외상값을 갚으러 오신 손님은 직원분께 외상값을 갚지 않고 내가 볼 일 끝나기를 기다리신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실례지만, 언제 외상을 하셨는지.."라고 말을 하면 이야기가 그렇게 길게 나올 수가 없다. 언제 무엇을 샀는데 금액이 얼마 모자라서 몇 일날 갚기로 했는데 이렇게 늦게 갖고 와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곁들이면서 말이다. 그런 일이 꽤 오래 반복되었다. 나는 외상을 떼여도 어쩔 수 없다는 자세로 외상을 드렸는데 외상을 드리는 족족 외상을 갚으려 드시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겠나 말이다. 외상값 갚기가 반복되던 어느날인가, 나는 묘한 기쁨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차피 기억에 없으니 외상값은 내게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외상을 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 외상이 마음의 빚으로 존재했고 그 외상을 갚기까지 나를 생각하고, 내 가게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빚인 외상을 갚으면서 홀가분해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 역시 따라서 홀가분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따뜻한 뭔가가 나를 찌르르 훑고 지나가는 여운이 있었다.
그 느낌을 알고나서는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손님들에게 외상을 구애하기 시작했다. 주로 호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에게 구애를 했는데 오늘 저녁에도 고등학생이 영양제를 사러 들렀다. 공부를 한참 해야되는 시기여서 영양제를 먹고는 싶은데 가진 돈은 원하는 약값에서 5000원이 모자랐다. 고민하는 학생을 앞에 두고 내 입에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그럼 모자라는 건 외상해" 란 말이 나왔다. 망설임없이 나온 내 말을 듣고 눈이 동그래진 학생은 저를 믿으시는 거예요? 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저는 오늘 여기 처음인데..라고 말을 흐리는걸 보면서 이렇게 말을 해준다. "그럼 그래도 되지. 몇 일 내로 시간이 있을 때 들러서 갚으면 돼. 너야 어차피 이 지역 사람이잖아. 그러면 처음 봐도 아는 거와 꼭같아." 내가 또 기쁘게 외상을 주는 건 처방전을 들고 온 학생이 약값이 모자라는 경우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외상하면 안되냐는 말을 차마 못하고 내일 다시 들러서 약을 짓겠다고 말을 한다. "약 먹는 게 급하니 약은 먼저 가져가고 외상해" 라고 말을 하면서 나는 또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분명 짧은 시간 내에 학부형이 내방해서 우리 아이가 여기서 외상을 했다는데, 아이가 꼬옥 갚으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왔어요. 너무 늦지 않았지요? 아이에게 그렇게 편하게 외상을 주셔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등의 말을 할 것이다. 나중의 일을 상상하면서 외상을 주는 순간부터 나는 미리 미소를 짓는 것이다.
약국을 한지 이제 오래되었다. 약국 초기의 얼굴맹 증상은 이제 많이 없어졌다. 줄기차게 내방해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일까. 그들의 시시콜콜한 사는 이야기들 덕분일까. 그들의 사연을 하나둘 듣고 있노라면 그 사연이 열쇠가 되어서 그들의 얼굴과 연결을 시켜주는 느낌이 든다. 얼굴을 아는 반가운 손님이 문득 선물처럼 외상값을 갚으러 오는 날, 얼굴을 알기에 그 기쁨은 이제 배가 된다. 참 따뜻한 마음의 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