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 이 책을 펼친 당신을 부릅니다. 독자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신이라고 나는 당신을 불러요. 

 
   

 

어라? 이게 소설 맞아? 책 읽는 나를 당신이라고 부른다고? 어머, 웬일이야. 이런 듣기 좋은 말을 해주다니. 하하. 소설을 끌고가는 주인공이 소설 밖으로 살짜쿵 걸어나와선 나에게 윙크를 하는 느낌이다. 이런 자유로운 소설이라니.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당신은 한 글자 한 글자로 바뀌어 나오고 있는 나의 지금 이 순간을 당신의 지금 이 순간에 되살려놓고 있어요. 지금 이 순간을 통과하자마자 죽을 수밖에 없는, 죽고 죽고 또 죽는 말들. 우리는 이 말들의 죽음, 그리고 부활 속에서 지금 만나 시시각각 지금 합해지고 있어요. 사람이 쓰는 말, 아니 글자가 된 말이란 실로 그래요.

 
   

  

와우~ 대박! 어쩜 내 생각과 그리 꼭같아요? 아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당신의 소설을 통해서 마악 알게 된 거겠지요. 난 종종 말이란 것에, 글이란 것에 대해 감탄한답니다. 내 속에 있을 때는 아무 것에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무형물일 뿐인데 내 밖으로 나온 말(이나 글)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더라구요. 나도 물론 타인의 말과 글에 영향을 받구요. 특히나 작가의 소설이나 시를 읽을 때는 더욱 그러해요. 분명 허구로 지어내어 작가가 생명력을 부여한 소산물임을 앎에도 나는 소설 속 등장인물에 몰입해 같이 울고 같이 웃어요. 아..청춘사업은 잘 나가면 질투나구요..ㅎㅎ 그래서 소설 속 경태씨의 연애가 삐걱거릴때 좋아했다지요. 하하하 ^^;  소설 속 경태씨와 연경씨는 내가 소설책을 펴서 한 글자 한 글자 읽는 속도에 따라서 연애를 시작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싸우고, 속으로 욕도 하고, 화해도 하기도 하지요. 그들은 나의 눈빛을 받고서야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지요. 그러나 그 사람들은 애초에 작가 김곰치의 마음 속에서 탄생했기에 내가 그들에게 눈을 맞추는 그 순간, 작가 김곰치가 그들을 만들었던 그 순간은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오고 나의 그 순간과 시시각각 합해지지요.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의 뒤안길에 작가의 그림자를 느끼는건 아마 이런 이유겠지요. 이것이 바로 작가와 독자의 시공을 뛰어넘는 교감일까요?  

 

종이 위의 점과 선, 즉 무심한 물질적 존재로 있던 것들이, 내가 눈길을 주어 읽는 순간, 손에 잡히는 실체라곤 없지만 저 홀로 빛을 내는 것처럼 '의미'라는 것이 스멀스멀, 와글와글 발생해버리는 것입니다. '문자'는, 읽으면, 그래요. 물질 상태로 있던 것이 의미라는 전혀 새로운 것으로 변전이 됩니다. 한마디로 살아버려요. 구약전서 창세기의 상당히 멋스런 구절처럼, 흙을 이겨 형체를 만들고 숨을 불어 생명이 있도록 하였다는 하느님의 행위와 우리의 '읽기'가 비슷하지 않나요.  

.. 

사람의 눈길을 받을 때만 살아 있고, 생명의 눈이 쏘는 빛을 벗는 순간, 죽어요. 문자는 참으로 예민한 것들이 아닌가요.

  

김곰치의 소설 <빛>을 읽는 내내 허수경의 <모래도시를 찾아서>가 겹쳤다. 독일에 터전을 잡고 바빌론으로, 시리아로, 이제는 퇴적층으로만 존재하는 옛 도시로 발굴을 떠나는 허수경에게는 모어인 한국어와 거주지의 언어인 독일어, 그리고 발굴하는 옛 도시의 언어가 제각각의 빛으로 다가온다. 2000년 전의 언어가 적힌 점토판을 발굴해서 들여다봤을 때, 언어의 시체와 같던 점토판에 눈길을 주었을 때, 허수경은 점토판의 단어들이 살아서 옛 영광의 기억과 함께 자기에게 오는 듯한 공시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느낌은 허수경의 에세이를 읽는 나에게도 조금은 전달되는 듯했다.

시리아의 사무마라는 작은 마을의 발굴현장에서 허수경이 무척 아팠다. 열이 올랐고 50도가 웃도는 더위에도 그녀는 추웠다. 일주일이나 항생제를 먹고나서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왠일인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한국말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이 저 혼자 뿐인 곳에서 누군가 외국어로 말을 건넨다. 그녀는 겨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을 뿐이다. 모어가 아닌 말로 대꾸하기 위해, 말과 몸이 한부분인 양 자연스레 나오지 않고, 말이 머리에서 나와 몸 바깥으로 나가 타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타인의 몸 바깥으로 나와야 하는 그 복잡한 과정을 아픈 몸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길을 받을 때만 살아 있는 문자처럼, 사람의 가슴으로 들어갈 때만 살 수 있는 말을 아픈 몸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순간 허수경에게 외국인 동료의 건네는 말은 귀로는 들리나 가슴으로는 들어오지 않는, 살아 있지 않은 존재이지 않았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에세이를 보면서, 그들의 글투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그들과 일면도 없는 나이지만 그들이 점점 가깝게 느껴지는 건 바로 문자의, 언어의 이런 '생명력' 때문일까. 그들과 같은 언어를 쓴다는게 왠지 다행이다, 싶다. 나는 자주, 김곰치, 허수경, 그들의 책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언어에 빛을 쬐여 부활시켜, 그 '생명력'을 같이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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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02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과 남다른 교감을 나누셨군요^^

달사르 2011-08-02 22:35   좋아요 0 | URL
네 ^^ 방금 2탄 올렸어요. 3탄까지 나오면 좋겠어요. 히 ^^
 

말 없는 문자 메시지의 간격 사이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때르릉 전화를 걸었음에도 차마 받지조차 못하는 사람이다. 목이 쉬어서, 입을 열기가 힘들어서라는 문자가 뒤늦게 도착했고, 보이지 않는 눈물이 어디선가 뚝뚝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건은 꼬리를 물고 자꾸 커져만 가고,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수위를 진작에 넘어섰음에도 전전긍긍하기만 했던 사람은 일이 커다래지고나서야 뒤늦게 문자로 고백을 한다. 그것도 내가 협박과 위로와 걱정을 적당량 섞어가면서 문자를 계속 보내고 나서.

이제 그 사람은 편할 것이다. 뒤에 남겨진 언니와 나는 일수습하느라 이제부터 뼛골이 휠 것이다. 그것도 부모의 걱정을 피해서 몰래 해야겠지. 그 사람 역시 가족이니까. 그래서 미움에도 불구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크다. 저번주에는 일 년만엔가 영양제도 챙겨서 우편으로 보내줬다. 사건은 사건이고, 가족은 가족이니까.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준 건지 모르겠지만, 암튼 난 그 사람이 가장 미울 때 가장 많이 챙겨준 셈이다.

그날 이후로 몇 일이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잠을 도통 이룰 수가 없다. 집마저 임시로 작은 아파트에 있는지라 소음 때문에 밤이 늘 괴롭다. 조금만 더 참아보고 버티기 힘들어지면 수면제라도 먹어봐야 되겠다. 잠을 못 자서 피곤한 나날이 연속이지만 약국에 와서 방긋거리는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미소를 찾는다. 

전화로 박카스 박스떼기 있냐고 묻는 사람들은 빼고...아유..참..(말을 말자..ㅠ.ㅠ)  이래저래 힘든 시간이다. 빨랑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지만, 그럴수록 시간은 더디게 갈 뿐이고!  그나마 매일 밤 퇴근 후 하는 공부가 위안이다. 학생때도 안 하던 공부를 뒤늦게 열씨미 하는건 누구? 덕분이다. ㅋ 내 욕을 많이 해 준 덕분에 나는 정말로 반성하고 공부를 한다. 욕이란게 이렇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하 ^^;  (ㅎㅎ 추가로, 지금 읽고 있는 책이 김곰치의 '빛'이다. 이 책에 신나는 욕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줏어듣고 열씨미 아껴가면서 읽고 있다. ) 

이제 곧 여름 공연들이 시작된다. 더운 여름, 난 악기들과 같이 보내야겠다. 내년엔 저 너른 초원에서 악기를 하나 들고 불 수 있을까? ㅋ  기왕이면 하늘하늘거리는 치마랑 같이 셋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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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3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3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환상도서관'의 세르비아 작가를 검색하면서 제3세계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가만..그렇다면 제1세계랑 제2세계도 있다는 말이야? 그게 어디지? 혼자 궁리를 해봐도 모르겠다. 히힛. 이럴때 도움되는 건 뭐니뭐니해도 문학사전!

  문학사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제3세계문학>
지리적으로는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의 문학으로 국한되고, 이념적으로는 특히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반인종주의 등 적극적인 현실 참여를 특징으로 하는 문학.
 


제1세계는 미국 중심의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
제2세계는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 진영
제3세계는 양자간의 대립 사이에 있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지역
 


 

 좀더 알아보려면, 역시나 나의 바이블 이 책의 도움을 얻어야겠다.
 
# 1955년 4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개최된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이른바 반둥 회의에서 비동맹 국가들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고 그들 간의 연대의 기초가 되었다.
# 1960년 냉전시대의 산물로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가 열렸다.
# 1994년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 이라크전에 소설가 오수연 씨가 반전평화작가로 파견
# 2007년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전주) 개최 등, 지금으로 넘어오면서 기존의 진영적 블록화와는 달라졌다. '시장과 이윤 확장의 세계화'가 아닌 '정신적 가치 확장의 세계화'로서 지구촌 동병상련의 연대를 하기 시작했다.
 


한때 한국문학에서 "작가는 하나의 독자적인 정부"라는 언술이 유행했다고 한다. 말이라는건 묘해서 그 말로 인해 경계가 지어지는 경우도 있고, 허물어지도 하고,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위의 언술은 얼핏 들으면 그만큼 작가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듯하고, 세속 사회의 불평등은 작가가 속한 언어권에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자신의 감성과 직관의 더듬이로 세계를 감지하고 언어로 직조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이 선뜻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2000년 9월 서울에서 국제문학포럼의 발제를 한 파스칼 카자노바는 이런 말을 했다. "거의 백여 년 동안" "문학 분야에서 우수성의 절대적인 기준"처럼 노벨문학상이 여겨져오면서 국제사회에서 한 작가의 작품을 인정하는 동시에 한 국가의 문학을 알리는 이중의 승인 역할을 해왔다고 말을 한다. 그결과 변방의 소수어권 작가들이 세계도서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인정하는 방식인, 보편화될 수 있는 모델에 적합하게끔" 문학이 기능해야하는 것이다.   
   

최근 '엄마를 부탁해'라는 제목으로 어떤 작가가 미국에 진출했다. 이름을 찾는게 예의겠지만 귀찮아서..암튼 나는 이 작가의 책은 아직 읽어본게 없다. 그러나 번역부터 시작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거라는 건 알겠다. 제3세계에 속하거나, 소수어권에 속하는 작가들이 세계도서시장에 진입하려면 상술한 그런 노력이 필요하겠다. 이 작가의 경우도 위와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한국 특유의 정서를 보편화된 모델로 바꾸려고 노력했을까. 아니면 그 정서를 그대로 밀어부쳤을까. 그도 아니면 애초에 보편화된 모델로 글을 썼을까. 궁금점이 커지면 이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보편화를 위한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날것의 제 3세계, 그리고 소수어권 작가들의 작품이 괜히 궁금해진다. 본인도 제3세계에 속하면서 같은 제3세계의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를 하고자 노력하는 오수연 작가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오수연 작가의 작품을 검색하던 중, 선물받게 된 이 책에는 오수연 작가의 에세이가 한 편 들어있다. 이 에세이를 읽어보고 나는 오수연 작가의 책을 한 권 주문했다. 앞으로 한 권씩 한 권씩 읽어볼 생각이다. 이 에세이는 이라크에서 작가가 이류 음악가와 조우한 경험을 써놓은 것이다.  

 

 

 

...현실의 뱀은 여기서도 목에 칭칭 감겨 있다. 그럴 때 나는 우드를 혼자 뜯던 우리의 이류 악사를 떠올린다. 그의 이름은 모른다...그냥 이류 악사, 그것도 어울리는 이름 아닌가.
...좋은 놈이건 나쁜 놈이건, 일이 잘 되건 못 되건 우리는 주기적으로 허름한 주점에서 양철 술판에 엎어지지 않나. 이류 음악에 폐부를 찔려 질질 짜기도 하지않나. 그럴 때면 아무나 용서하고 싶고 아무한테나 용서를 빌고도 싶지 않은가. 나는 그것도 인간만이 가진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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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병을 신경성으로 추단한 의사는 정신과에 추천서를 내주었다. 나는 그것을 찢어버렸다. 내 육체가 정신에게 병을 건네주었다면 용서할 수 있으나, 정신이 육체의 정상적인 움직임을 방해했다면 수치스러운 일이다. 나는 정신의 동정을 믿는다



 
 


무슨 차이가 있는걸까. 단순 말장난일까. 심오한 차이일까. 육체가 정신에게 병을 준다면, 노년의 치매, 파킨슨 등이 있겠다.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도파민이 인체의 운동담당부위에 적게 분포할 경우 파킨슨이 생긴다고 했을 때, 이는 작가의 글에 비추어봤을 때 용서할 수 있는 질환이겠다.
 

정신분열증은 뇌의 사고담당부분에서 도파민이 과다분비되어 생긴다. 그래서 남이 안 보이는 것도 보이고, 남이 안 들리는 것도 들리며, 세계를 구한다니 등의 환상, 환청, 망상이 생긴다. 그들 눈에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실지로 생생하게 무언가가 보이고 들리는 것이다. 발생부위는 다르지만 파킨슨이나 정신분열증은 모두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도파민의 많고 적음에 따라 생기는 질환이다. 그렇다면 정신분열증도 육체가 정신에게 병을 주는 쪽일까? 왠지 거부감이 생긴다. 그렇다면 정신이 육체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쪽일까? 이 또한 애매하다.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해서 육체가 불편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일단은 넘어가자.   

 우울증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dysregulation이라고 해서 조금 복잡해졌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시냅스 공간에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하면 생기는 질환이라고 보면 된다. 결국 이것도 부족해서 생기는거니, 이걸 약물로 채워 넣으면 치료가 되는 질환인 것이다. 이 질환 역시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생기는 것이므로 넘어갈까..했다가, 원래는 우울증이 없다가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생기는 경우는 넣을까 말까..고민이 되었다. 헷갈리니 일단 또 넘어가보자.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확실한! 신경성은 무엇일까. 혹시 이런 거? 스트레스후장애. 공황장애? 

나는 저자가 말하는 정신의 동정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정신의 '의지'는 알겠다. 공황장애가 와도 극복하는 연예인들이 요즘들어 꽤 많아졌다. 가수 김장훈이 대표적인 예이겠다. 그들에게는 질환을 거부하는 단계도 있었고, 약을 거부하는 단계도 있었고, 약을 수용하는 단계도 있었고, 자신의 몸 상태를 인정하는 단계도 있었고, 그 과정을 모두 다 거치면서 치료의 단계로 이행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질환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질환과 더불어 같이 살아가고 있다. 공연을 하다가 갑자기 공황장애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생겨서 호흡곤란이 오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걸 다 인정하고 오픈하면서 그는 계속 공연을 하고 자기 일을 한다. 그의 '의지'로.

살다보면 큰 충격을 받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 순간엔 일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모르나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면 그 후유증은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이고 이의 치유가 되지 않고 시간이 더 흘러버리면 공황장애로 이행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심지어는 어떤 환자의 경우 MRI 사진을 찍다가 없던 질환인 공황장애가 생겨서 그날 이후 꼬박 일년간이나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치료중인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일본의 지하철 사린사건이 어느날 일어났듯, 대구 지하철 사고가 순식간에 터졌듯, 누구에게나 큰 충격은 일어난다. 그럴때, 이걸 신경성이라고 보고 부끄러워만 할 것인가. 그런 부끄러운 자신이 보기 싫어서 어디 내던져 버릴 것인가.

약의 유용성을 인정하나 약에 의존하지는 않고, 언젠가는 극복하리라는 본인의 의지를 믿으면서, 나에 대한 정신의 배신도 견디면서 정신의 '치유'를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정신이 육체의 정상적인 움직임을 방해해도,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그런 나를 인정하고 바라보며, 정신의 '회복'을 믿어줌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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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3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3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또한번 자매는 뭉쳤다. 생의 굵은 마디는 주기를 가지는 느낌이다. 벌써 십 년도 훨 넘었다. 그때, 언니와 나는 어마하게 큰 사건을 둘이서 끙끙대며 해치웠다. 이번에도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다. 뇌경색이란 질환이 호락호락하지는 않기에 신경쓸만한 일들은 우리 둘의 선에서 대부분 해결한다. 언니는 혼자서 몇 일을 끙끙 앓다가 저번주에 나에게 털어놓았다. tv에서나 나올듯한 금융사기를 다시 한 번 겪은 것이다. 해당종금에는 기자들이 들이닥쳐 사진을 찍어가고 난리였다고 하더니 정작 기사로는 나오지 않는다. 모종의 뒷거래가 있었음일까. 언니는 수시로 가게에 내려와 상의를 했고, 퇴근후엔 내 방에 둘이 모여 쑥덕모의를 했다. 그렇게 둘이서 뭐든지 이야기를 나눠야 짐이 조금은 덜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그날을 떠올린다. 그날보다 더 힘든지 아닌지 비교해본다. 조금은 덜 힘들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또 견뎌내야지.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이 없다는 부모님의 자식 사랑 못지 않게, 자식은 부모님의 아픔이 본인의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이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견뎌낸다. 생리학적이기만 했던 가족의 울타리는 아픔이라는 아교가 섞이면서 견고한 울타리가 된다. 서로의 불편, 아픔을 먼저 생각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견디는 것이다. 

시무룩해 있던 월요일, 멋진 선물을 하나 받았다. 계기는 오수연 작가 때문이었는데 나는 책을 받자마자 좋아하는 김훈 작가의 에세이를 먼저 읽었다. 


  

 아버지를 묻던 겨울은 몹시 추웠다. 맞바람이 치던 야산 언덕이었다.  언 땅이 곡괭이를 튕겨내서, 모닥불을 질러서 땅을 녹이고 파내려갔다.  벌써 30년이 지났다. 그때 나는 육군에서 막 제대한 무직자였다.

 아버지는 오래 병석에 누워 계셨고, 가난은 가히 설화적이었다. 병장 계급장을 달고 외출 나와서 가끔 아래를 살펴드렸다. 죽음은 거역할 수 없는 확실성으로 그 언저리에 와 있었다. 아래를 살필 때, 아버지도 울었고 나도 울었다.

 


그리고,
나도..울었다.. 

김훈의 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부모의 아래를 봐드리는다는 건, 부모의 늙어감을 보는 서글픔과는 다른 의미이다. 나를 몸으로 낳아주신 당신의 그곳을 봐드린다는 건, 한때는 수풀이었을 그곳의 이제는 듬성한 공간을 본다는 건, 생의 지난함을 견뎌내는 존재의 노골적인 적나라함과 같다. 풍선같던 그곳은 시간이 흘러 점점 가라앉았지만 후유증은 오래도록 남아 당신의 육체를 두고두고 괴롭혔다. 그리고 두 자매는 정신적인 상흔을 견뎌야했다.

한때는 복수를 꿈꾸었다. 마음의 칼을 모질게 갈아도 보았다. 그러나 최고의 복수를 계속 꿈꾸던 나는 해답이 '잊어버림', '놓아버림'임을 어느순간 깨달았다. '원수'를 가슴 속에 계속 담아두는 일이 내게는 힘겹기도 했지만, 철저하게 잊어버리는 일이 제일 큰 복수임을 알고 나는 아주 행복하게 손을 놓아버렸다. 그러나 목표를 정하고 갈았던 칼은 부메랑처럼 내게 돌아왔고 그 칼은 놓아버렸음에도 나에게 생채기를 냈다. 그 생채기조차 견디며 시간을 흘렸고, 이제는 일 이년에 한 번 정도나 자매는 그때 일을 떠올린다. 이번에도 사태가 커져서 둘이서 감당하기 버겁게 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때 일을 입에 올린다. 

 
"우리, 그때 참 잘 견뎠어. 그때 일에 비하면 지금 이런거 쯤이야..  우리, 이번에도 견딜 수 있겠지?
서로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니가 있어서, 나는 견딜 수 있었어." 

"언니, 나도 언니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어."
 

벌써..열흘이 지났다. 열흘을 견뎠다. 그러니까, 이 글은 책 선물에 감사하다는 그런 긴 편지라고 하면 되겠다. 당신의 책 선물 덕에 많은 위안을 받아서 행복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그 말을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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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7-16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이 서로 힘이 돼주시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씩씩하게 잘 견디시길...

2011-07-16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8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1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3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3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