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병을 신경성으로 추단한 의사는 정신과에 추천서를 내주었다. 나는 그것을 찢어버렸다. 내 육체가 정신에게 병을 건네주었다면 용서할 수 있으나, 정신이 육체의 정상적인 움직임을 방해했다면 수치스러운 일이다. 나는 정신의 동정을 믿는다
무슨 차이가 있는걸까. 단순 말장난일까. 심오한 차이일까. 육체가 정신에게 병을 준다면, 노년의 치매, 파킨슨 등이 있겠다.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도파민이 인체의 운동담당부위에 적게 분포할 경우 파킨슨이 생긴다고 했을 때, 이는 작가의 글에 비추어봤을 때 용서할 수 있는 질환이겠다.
정신분열증은 뇌의 사고담당부분에서 도파민이 과다분비되어 생긴다. 그래서 남이 안 보이는 것도 보이고, 남이 안 들리는 것도 들리며, 세계를 구한다니 등의 환상, 환청, 망상이 생긴다. 그들 눈에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실지로 생생하게 무언가가 보이고 들리는 것이다. 발생부위는 다르지만 파킨슨이나 정신분열증은 모두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도파민의 많고 적음에 따라 생기는 질환이다. 그렇다면 정신분열증도 육체가 정신에게 병을 주는 쪽일까? 왠지 거부감이 생긴다. 그렇다면 정신이 육체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쪽일까? 이 또한 애매하다.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해서 육체가 불편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일단은 넘어가자.
우울증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dysregulation이라고 해서 조금 복잡해졌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시냅스 공간에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하면 생기는 질환이라고 보면 된다. 결국 이것도 부족해서 생기는거니, 이걸 약물로 채워 넣으면 치료가 되는 질환인 것이다. 이 질환 역시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생기는 것이므로 넘어갈까..했다가, 원래는 우울증이 없다가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생기는 경우는 넣을까 말까..고민이 되었다. 헷갈리니 일단 또 넘어가보자.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확실한! 신경성은 무엇일까. 혹시 이런 거? 스트레스후장애. 공황장애?
나는 저자가 말하는 정신의 동정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정신의 '의지'는 알겠다. 공황장애가 와도 극복하는 연예인들이 요즘들어 꽤 많아졌다. 가수 김장훈이 대표적인 예이겠다. 그들에게는 질환을 거부하는 단계도 있었고, 약을 거부하는 단계도 있었고, 약을 수용하는 단계도 있었고, 자신의 몸 상태를 인정하는 단계도 있었고, 그 과정을 모두 다 거치면서 치료의 단계로 이행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질환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질환과 더불어 같이 살아가고 있다. 공연을 하다가 갑자기 공황장애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생겨서 호흡곤란이 오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걸 다 인정하고 오픈하면서 그는 계속 공연을 하고 자기 일을 한다. 그의 '의지'로.
살다보면 큰 충격을 받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 순간엔 일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모르나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면 그 후유증은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이고 이의 치유가 되지 않고 시간이 더 흘러버리면 공황장애로 이행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심지어는 어떤 환자의 경우 MRI 사진을 찍다가 없던 질환인 공황장애가 생겨서 그날 이후 꼬박 일년간이나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치료중인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일본의 지하철 사린사건이 어느날 일어났듯, 대구 지하철 사고가 순식간에 터졌듯, 누구에게나 큰 충격은 일어난다. 그럴때, 이걸 신경성이라고 보고 부끄러워만 할 것인가. 그런 부끄러운 자신이 보기 싫어서 어디 내던져 버릴 것인가.
약의 유용성을 인정하나 약에 의존하지는 않고, 언젠가는 극복하리라는 본인의 의지를 믿으면서, 나에 대한 정신의 배신도 견디면서 정신의 '치유'를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정신이 육체의 정상적인 움직임을 방해해도,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그런 나를 인정하고 바라보며, 정신의 '회복'을 믿어줌이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