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칭찬을 받으리라 잔뜩 흥분해 있던 나는

화도 못 내고

억울한 마음에 방안을 멤돌았다.

아직은 목을 보호해야할 때라 밖에 싸돌아 다니지도 못한다.

 

당신 눈에는 고작이겠지만

나는

나는

아픈 와중에도

당장 해야할 일조차 미루며

그일에만 매달렸다구.

그런데 이게 다야. 이게 다냐구? (꽥!)

 

 

방안에서 소리나지 않게

고래고래 고함을 치다가 얌전히 의자에 앉아서 책을 폈다.

 

 

 

 

 

 

 

 

 

 

 

 

 

 

 

 

달이라..

 

몇일 전

내게 약주를 선물한 분과 같이

하늘의 달을 봤다.

누군가와 같이 하늘의 달을 보는 기분

오랜만이다.

 

 

그리운 사람과 같이

사방이 확 트인 너른 곳에서

하늘에 무수히 박힌 별과 달을 보며

공간의 흐름 속에 같이 흐르자 했던

오랜 약속이 떠올라 울컥했지만 웃으며 말했다.

 

"달이네요"

 

 

 

신경숙의 글은 처음 읽는다.

장편소설도 아니고, 단편소설도 아니고, 그저 짧은 소설이다.

 

신경숙의 글은 마치 약국에서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같다. 이빨 빠진 할머니가 말하기 전부터 당신이 먼저 웃으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몇 마디 만으로 어떤 내용일지 다 알겠고, 뒤에 하는 말들은 그저 맞춰주기 위해 들어줄 뿐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듣다보면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박장대소의 웃음이 터지진 않지만,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귀를 쫑긋 세우며 듣게 되진 않지만, 어디에서 웃어야할지 몰라 머뭇거리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그 선한 얼굴을 대하면 그만 어떤 이야기라도 좋아, 라고 생각되고 마는 것이다.

 

신경숙이 쪽지처럼 숨겨둔 유머는 찾지 못했지만(반 개 정도는 찾기도 한 듯), 어쩜 할머니들은 잘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아니, 내가 할머니가 되면 그때는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그저 달에게 힌트를 구할 뿐이다.

 

 

 

오늘처럼 신경질이 나는 날엔

나도 달에게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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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4-2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는 고단한 몸을 이끌고 시장에 가 떡볶이와 막걸리를 사왔어요. 달사르님에게도 사발 가득 막걸리를 따라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크게 한 입 삼킨 뒤에 크- 하는거죠. 안주로 떡볶이도 괜찮은 궁합이었어요. 그렇게 주거니받거니 하다보면 괜찮아질까요, 달사르님?

달사르 2013-04-22 17:33   좋아요 0 | URL
고단한 몸에 넣어주는 막걸리는, 하루를 힘겹게 보낸 우리들에게 주는 선물 같아요.
등산 후 산자락에서 파전에 막걸리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고단한 하루 끝자락에 목을 타고 가는 막걸리가 보약입지요. 반가운 지인이 옆에 있어 주거니받거니 마시면 운치까지 있겠어요.

떡뽁이는 언제라도 반가운데, 술 친구로도 괜찮았군요.
오늘, 월요일인데 하루 잘 보내고 계십니까. 일요일 쉬지 못하고 일한 주 다음 날의 월요일은 되려 피곤한 줄 모르겠더라구요. 화요일이나 수요일 정도 되면 축 늘어지구.

저는 씩씩거리던 화가 다 풀렸구요. 이제 반성모드로 들어갔습니다. ^^

탄하 2013-05-0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위에서부터 쭉~~보다가 이거 날짜 보고는!
제가 소주이야기에 댓글 달고 곰방 올리신거네요.

신경숙의 글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동안의 작품성격을 보면 '유머'와 친한 작가는 아닌 듯..ㅡ.ㅡ;

요즘 이 책이 많이 나가나봅니다.
단편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그저 짧은 소설.
어쩌면 작가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썼을지도 모르겠네요.
달을 바라보며 마음 속의 이야기를 하듯, 그렇게...

달사르 2013-05-10 15:1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본인은 나름 '유머'라고 생각을 해서 읽는 입장에서 약간 난처했다고나 할까요.
그왜 있잖아요. 아주 진지한 친구의 경우.
자신은 농담이라고 하고는 조용히 웃는데, 맞장구쳐야 될 순간이 언제인지 몰라 눈을 굴리게 될 때. 근데 그 친구가 너무 순해서 "야, 이거 안 웃기거든?" 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그런 경우.

이 책 읽고나니, 신경숙의 다른 진지한 책은 어떨까? 라는 생각은 들었는데요. 지금은 말고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