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두 명은 줄곧 창밖 어둠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무엇인가를 보기는 하는 것일까. 어둠 속에 볼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어둠은 늘 자기 속에 무엇인가를 담고 있었다. 어둠이 어두운 것은 그 안에 담고 있는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 열려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군인들이 지어 보이는 침울하고 완고한 표정은 그들과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나에게 모종의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불러일으키다니! 나는 무의식중에 불러낸 하나의 단어에 움찔했다. '불러일으켰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내 안에 웅크리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불러내진 것들은 불러내질 때까지 누군가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부름에도 즉각 반응하는 것이다. 심지어 불안은 누군가 불러 주지 않을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퇴근 무렵 약국은 갑자기 바빠졌다. 약속 시간이 빠듯한데 장기 처방전이 왔다. 카톡도 자꾸 띠링띠링 울린다. 몇 십 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약국 문을 닫고 불을 끈 후 정리를 하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폰을 열었다. 여러 개의 문자 중 짧은 문자가 눈에 들어온다.

 

처방 프로그램을 끄고 컴퓨터를 끄려던 내 손이 멈칫했다. 내 마음보다 머리 속 뉴런이 보다 빨리 내 손에 정보를 전달했다. 컴퓨터 끄지마.

 

나는 여기저기를 클릭하면서 음악을 찾아 헤매고 글을 찾아 헤맸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홀로 밝은 컴퓨터는 조용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두둑. 눈물이 자판 위의 두 손등에 떨어진다. 애써 참으며 눈 안에 감추려던 눈물이 어느새 넘쳐 흘러버렸다. 짤막한 일상의 문자였지만 그 속엔 말하지 않은 것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나 역시,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말들을 삼켰고 그 말들은 속절없이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

 

문득, 조용한 어둠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만의 공간에 있을 수 있는 잠시의 이 시간이 한때는 얼마나 진저리났던 시간인지는 더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어둠이 무서워 밤에 불을 끄면 아침까지 절대로 눈을 뜨지 않았던 어린 시절은 저 만치 가버리고 이제는 어둠의 위로에 안식의 한숨을 내쉰다. 한때는 눈물 조차 말라버려 퍼석거리는 감정의 시기도 있었다. 울고 싶을 때 눈물이 나오지 않는 그 갑갑함은, 이산화탄소로 가득한 공간에 입에만 산소 마스크가 물려져 있어 겨우 숨만 쉴 뿐, 온몸의 모공이 막혀 그야 말로 기막힌 상황이랄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어지러운 상황이 나쁜 것 만은 아니다. 그래. 또 기운 내보자. 힘겨움이 다가오면 다시 흘러갈 때까지 지켜봐야지.

 

문단속을 다 마치고 퉁퉁 부은 눈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나섰다. 번화가에 접어드니 책정리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우 리스트를 만들자 해놓고 몇 달째 그대로다. 집에 가면 이승우 책이 도대체 몇 권이나 있는지 좀 찾아보자. 한 번 읽고 나서도 자꾸자꾸 읽고 싶어지는 책을 쓰는 사람.

 

집에 와서 책을 찾으니 제법 높이가 쌓인다. 그중 한 권을 대충 집었다. <한낮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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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불안을..책에게 들켜버린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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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3-31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종 정말 신기할 때가 있어요. 책 말이에요. 저도 어제 아비정전 새로운 스틸컷을 보고 마음이 싱숭생숭...
장만옥은 왜 양조위를 만났을까 ?

노트북이 나열된 책장 앞에 있어 자연히 책이 보이는 구조인데 갑자기 < 모두 다 예쁜 말들 > 이 생각나더군요.
다시 읽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꼭 찾아야겠다는 것... 다 뒤져보았습니다. 한 30분 걸린 것 같네요. 새벽에

코매긔 다른 5권은 찾았는데 딱 그 책만 없더군요. 생각해 보니... 헤어진 여자가 가져갔던 책입니다.
책은 어떤 식으로든 어느 한 시점을 반영합니다.

달사르 2013-03-31 18:3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승우의 많고 많은 책 중-10권도 넘음-에서 하필이면 저 책을 집어들었는지요.
읽다가 악! 소리가 나왔지 뭐에요.

4월이 되어가니 아비정전이 생각나는 거 같애요. 저는 내일이 마침 생일이라 친구에게 아비정전 비디오 사달라고 졸랐답니다. 힛.

<모두다 예쁜 말들>은 다락방님 책소개로 읽게 된 책이네요. 저도 이 책이 무척 좋았던지라, 이 책을 알고 있는 사람 보믄, 괜히 반갑고 그래요. ^^

헤어진 여자라..난 헤어진 남자에게 책 선물 같은 것도 안 했나봐요. 기억에 없다니..ㅠ.ㅠ (추억에 얽힌 책이라..알싸한 무언가가 있네요. 괜히 코 끝이 시큰?)

탄하 2013-04-07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오랜만에 왔나봅니다.
그간 페이퍼가 2개나 올라왔는데 하나도 못 읽고...ㅠ.ㅠ

이승우라는 작가는 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인가봐요.
저도 어느분(dreamout님 아세요?) 서재에서 <지상의 노래>에 감동하시는 페이퍼를 보고 그 책을 샀는데,
음, 제가 늘 그렇듯 사 놓고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다른 분들도 이승우님을 잘 아시는 것 같았어요.
근데 오늘 보니 달사르님까지...!

발췌하신 글을 보니 그 이유를 알 듯 합니다.
저는 요만큼만 읽었는데 벌써 매료되네요. 항..
달사르님은 이승우 작가의 책 중 어떤 것이 가장 맘에 드셨어요?
<지상의 노래> 읽고 다른 작품을 하나 더 읽고 싶네요.

달사르 2013-04-09 21:3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2개나!!!!

정말..올해는 좀 페이퍼를 많이 써보고 싶은 생각인데..올해도 벌써 4월이에요.ㅠ.ㅠ
담에 분홍신님 들를 때 깜짝 놀라게 페이퍼 한 10개 정도 올려보고픈데 말이죠. 마음만 굴뚝. 힛.

아..저도 이승우님을 다른 분 소개(저는 다락방님. 힛.)로 알았어요. 그분도 이승우님 책에 완전 감동받으셨는데요. 제가 감동받은 건 한 일년도 훨씬 지난 뒤..? 일 거에요. 제가 처음에 읽은 책은 어렵기도 하고 감동보다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쪽이어서요. 그래서 담에 다시 읽자..하고 미뤄두고 한참 뒤에 우연히 다른 제목의 책을 읽었는데 그때는 와~했거든요.

그래서 이승우 책 왕창 사놓고 한 두달에 한 번씩 읽고 또 읽고 그래요. 가장 마음에 든 책은..그래서 아직 뽑지 못하고 있어요. 좀더 더 읽어보고 이렇게 페이퍼도 좀 올려보고..일단, 그럴려구요.


지상의 노래는..저도 아주 좋았던 느낌입니당.~~~(좀더 묵혀서 리뷰 쓸려고 아직 못쓰고 있는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