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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ㅣ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평점 :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땅 속에 난 세상의 구멍을 무척 좋아한다. 개미 구멍도 좋고, 지렁이 구멍도 좋고. 소꿉놀이 구멍도 좋다. 아이들은 흙만 보이면 어디선가 나무 꼬챙이를 주워와서 땅에 구멍을 낸다. 그러다 어느날 아이들끼리 모여 구멍을 크게 만들어도 본다. 구멍을 점점 깊이 파면 지구 반대편에 닿을거야.
아이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했을까. 여기, 신나게 구덩이를 팔 수 있는 캠프가 있다.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 한때의 영광으로 진주가 비밀스레 숨어있듯이, 지금은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있던 이름뿐인 초록호수 캠프가 그것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매일같이 가로 세로 1.5 미터 장방형으로 구덩이를 판다. 먼저 구덩이를 파는 사람은 일찍 가서 쉬어도 된다. 공부도 안 해도 되고, 놀기만 하면 된다. 아! 물론 오락거리? 전혀 없다. 명색이 캠프인데 노는 건 알아서 놀아야지? 뭐. 물론 피곤하면 그냥 암것도 안하고 쉬든지. 테레비도 잘 안 나와. 테레비는 아이들 두뇌건강만 해치니 필요없지, 뭐.
너무 재미난 일도 매일 하라고 하면 하기 싫은 날도 생기겠지? 그럼 그런 날은 전갈이나 방울뱀에게 시비를 걸어보는 거야. 아주 살짝~만 물리게 말야. 몸에 열이 나는 동안은 구덩이 파는 신나는 일을 잠시 쉴 수 있거든. 그치만 말야. 노랑 반점 도마뱀은 조심해야돼. 구덩이 파는 일을 영영 못하게 될 수가 있거든. 그것만 조심하면 돼.
이런 멋진 캠프에 어떡하면 갈 수 있냐구? 어른들이 생각하는 종류의 잘못을 하게 되면 충분히 갈 수 있어. 아주 명명백백한 잘못을 하기만 하면. 그러니까 이런 거. 길 가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냄새나는 운동화를 머리에 맞고, 무심결에 신어보는 거. 그리고 잠시 걸어보는 거. 그거 정도만 해도 충분히 갈 수 있지. 이건 아주 큰 잘못이거든? 이 운동화가 누구건 줄 알고 함부로 신길 신어! 이 운동화는 도둑맞은 운동화일 수도 있고. 유명인의 운동화일 수도 있고. 엄청나게 비싼 운동화일 수도 있는데. 외관이 허름하고 낡아빠졌고, 썩는 양파같은 냄새가 난다고 무시하지 말라구. 외관과 가치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 운동화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증거, 댈 수 있니? 증인 있어? 하다못해 돈이라도 있어? 없으면 당신은 유죄!! 감옥 가는 거 보다는 캠프가 더 신날 거 같지 않니? 신나게 구덩이 파는 일, 재밌을 거 같지 않니? 같이 구덩이 파러, 가지 않을래?
살다보면 억울한 순간이 종종 옵니다. 나는 분명 안 했는데 내가 하는 거를 누가 봤다고 증언을 할 때, 나는 물건을 안 훔치고 그저 길을 가던 중인데 도둑으로 오인할 때, 친구들이 수군대며 사건의 범인으로 나를 몰아세울 때, 친구들이 내 말을 믿지 않을 때, 그럴 때. 그토록 억울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거 같으세요? 아무리 변명을 해도 안 통하고, 주위에서 온통 내 말을 믿지 않을 때, 미칠 거 같은 억울함에 밤새워 눈물지어도 돌아오는 건 싸늘한 눈빛 뿐일 때, 그럴 때는 도리없습니다. 나를 굽어보며 지켜봤을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요.
시간은 지금은 너의 적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너의 편이 되어 줄거야. <미미 여사의 영웅의 서에서>
시간이 지나면, 너 스스로 정직하면, 너를 믿어주는 그 누군가가 반드시 나타날 거야. <내 생각>
초록호수 캠프에서 덩치 큰 소년인 스탠리 옐내츠는 그냥 원시인이라 불린다. 원시인은 그곳에서 겨드랑이, 엑스레이, 자석, 지그재그, 제로와 같이 한 팀을 이뤄 매일 구덩이를 판다. 이 중에 원시인을 믿어주는 친구가 있을까. 그런 친구를 만나려면 어떡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