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에 일기를 썼다. 딱히 쓸 게 있지는 않았지만 괜히 손에 볼펜을 들고 뭔가를 끄적여보고 싶었다. 머리에 떠오르는 제목을 우선 적은 다음 날짜를 적다가 깜짝 놀랐다. 익숙한 느낌인데? 이 날이 무슨 날이었지?
아! 그 사람, 생일..이었구나.. 매년 꼬박꼬박 챙겼지만 언젠가부터 챙기지 않게 된 날. 한동안 내 통장의 비번이었던 날.
멀리 있는 그에게 말하고 싶어졌다. "안녕. 잘 지내고 있니?"
머리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언젠가부터는 그에 관해선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았는데 왜 나는 갑자기, 그것도 하루를 마감하는 밤 12시를 고작 1시간 남기고서, 기어이 날짜를 적어버렸는지. 이제는 옛 추억 조차 빛이 바래 조금의 두근거림도 남아 있지 않음에 미소를 슬그머니 지으며 나는 계속 일기를 써내려갔다. 몇 줄을 써내려갔을까. 나는 그에 관해 다시 잊어버렸다.
대신, 서랍에 넣어둔 채 까먹은 것 처럼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알라딘의 내 일기장이 떠올랐다. 많은 글을 썼고, 쓰면서 많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던 내 일기장. 간만에 들어와 옛 글들을 읽어보았다. 마치 다른 차원의 내가 지금 차원의 나를 이해하려는 느낌이었다. 이 사람은 이런 생각들을 했었구나. 이 사람에게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이미 다 까먹어버려 다른 차원의 사람이 된 듯 기억 조차 나지 않는 일들이 꽤 많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반가웠다. "안녕. 잘 있었니?"
눈 내리는 소리가 듣고 싶다.
세상이 다 조용해지는 소리. 그의 속울음이 묻히는 소리. 나의 바램이 바래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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