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양장) - 백범 김구 자서전
김구 지음 / 돌베개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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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가장 뛰어난 역사가 중의 한 사람인 사마천은 그의 사기열전의 첫 장을  백이숙제를 기록하고서 공자의 말을 상기시켰다.
"도를 같이하지 않는 사람끼리는 함께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
"부귀가 뜻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천한 마부의 일이라도 사양하지 않겠다. 부귀가 천명이어서 나의 뜻과는 상관 없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성현의 도를 쫓겠다."
"추운 겨울이 되어야만, 송백이 다른 초목이 조락한 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세상이 혼탁한 후에야 청렴한 선비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말로는 모두 애국자요 충의지사였으나 탄압이 심해질 수록 째직을 피해 당근을 쫓아다니는 위선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면에서 백범은 일그러진 한국현대사의 꺼지지 않는 등불이라 할 만하다는 것의 나의 생각이다.

백범의 정치활동은 나라사랑과 우국충정과 일관되게 맥이 닿아있다. 소년 장군으로 동학군을 이끄는 접주로 활동할 때도 국모를 시해한 원수를 갚은 것 그리고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자청하던 그 순간 부터 임정과 한국독립당의 주석으로 죽음에 이르던 그 순간까지 그의 행동의 목표는 너무나 분명했다. 그러한 헌신적 노력을 조국을 위해 바치면서도 자신을 푸대접한 조국을 원망하지 않았고 대통령 안 시켜준다고 안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의 끝에 자신의 소원을 오진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이라 말하고 있다. 공자는 평생에 어진 사람이란 평가를 하기를 아꼈는데 백범이야 말로 진정한 인(仁)자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현실정치인으로 백범의 여러가지 실수들에 대해 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싶다. 내가 정치인 김구보다  백범을 하나의 사상가로 백범이 그와 같은 과감한 의거를 실행하게 했던 생각들을 백범사상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정치인 김구는 비록 고지식했으며 이승만 같은 이들에게 이용만 당할 때도 적지 않았으나, 그의 이상과 올곧은 행동만은 한국인의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할 만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책은 그러한 백범의 삶은 직접 기록한 성전이라 할 만하다. 나의 소원이란 글은 이미 하나의 노혁명가의 유언이 되었지만 정치나 무력의 만능이 아닌 보다 다양성을 함축한 문화에 가치를 둔 균형있는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백범이 이러한 나라를 만들만한 방안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며 사실 그는 정치에 있어 여러번 남에게 속은 순진한 인물이기도 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상가들의 사상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구태여 그들을 배우지않는다. 오히려 가까이 백범의 절절한 호소에 더 큰 가치를 두며 그것이 오히려 더 가까운 구체적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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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집 한길그레이트북스 52
조식 지음,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옮김 / 한길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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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남명 조식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뜨겁다. 이유는 아마 그 동안 남명 사상이 퇴계와 율곡에 비해 크게 과소평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남명하면 퇴계학파로 분류되고 따라서 퇴계의 제자라고 아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 그는 퇴계와 동갑인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또한 아직도 그가 조선후기 활동했다는 이유로 그를 성리학자의 범주에 귀속시키고 있는 이들이 있는데 이것도 좀 그렇다. 남명의 거친 글들을 대하면 그는 결국 우리가 말하는 율곡과 퇴계의 조선성리학에 대한 비판론자이자 비관론자였다는 것을 이처럼 알 수 있다. 나는 남명의 글들을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조선성리학을 비판하는 것과 같은 관점이 이제 개화된 세상에서나 사람들의 인식이 깨어져서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발생한 즉시 그 단점이 적나라할 정도로 실랄하게 공격당했던 매우 자명한 관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실린 남명의 을묘사직서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하겠다.

그런 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명이 퇴계에 보낸 서찰 한 편인데 당시 퇴계와 고봉간의 사단칠정론을 두고 하는 듯한 남명의 언급이었다.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건대, 손으로 물뿌리고 비질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天理)를 담론하며...>

글을 읽어보면 정말 실랄한 비판이었다. 그리고 단성현감 사직소에서는 당시의 혼란한 실정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오늘 날 우리가 조선후기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것은 하나의 예언과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조식은 율곡이나 퇴계처럼 소위 천리를 담론하는 글들을 짓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소신이었기도 했지만. 또 그의 별명이 칼을 찬 유학자 였다는 것도 기억할 만하다. 실록에는 그가 늘 방울을 차고 칼을 턱에 받치고서 자신의 마음가짐을 다잡곤 했다한다. 정말 이런 정신으로 바른 말을 했으니 정신이 번쩍 들어 정말 학자로서 효과가 컸을 것이란 생각이다.  오늘날 나태한 수험생들이 있다면 대입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다.

그와 그의 문도들의 활약을 극화한 <정인홍과 광해군>이란 조여항씨가 지은 소설이 있는데 극적인 효과를 위해 상대당파에 대해 지나치게 깍아 내린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그런대로 아주 거짓은 아니다. 한 6할은 진실이라고 보장할 수 있다. 당세의 영웅이었던 대유 조식과 의병장 정인홍을 저버린 역사에 대해 나역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은 없다.

또, 성리학에 대해 이런식으로 한마디 하자면 이상하게 아직 우리사회에는 아직까지 아주 니까짓게 무엇을 하느냐는 식으로 호통을 치며 훈계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이런 분들 때문에 정말 피곤하다. 대부분 그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이다. 조식과 더불어 나는 그들에게 역시 분개한다. 하나는 그들의 우물안 개구리식 신토불이 사상과 둘째는 그들의 개구리 세계관이 가져온 학문적 졸렬함. 전자에 나는 분개하며 그들의 엉터리 학문에 대해서 전혀 상대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다. 정말 이 자리에서 조선 성리학을 변호하고 싶은 분들께 꼭 권하고 싶은 남명의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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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시마 유키오.기무라 오사무 외 지음, 김항 옮김 / 새물결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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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코는 소위말하는 근대의 특징을 합리성의 역사로 규정짓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대세는 그러하지 않았는가 하는 말로 위안을 삼아본다. 하지만 종종 나 역시 그러한 믿음에 배신감을 느끼는 때가 많다. 첫째로 근대의 문명국이로 최소한 그 발전과 문명의 중심에서 그다시 먼 거리를 두지는 않았던 독일의 파시즘화 였을 것이다.  나는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읽으며 그들은 문명을 배신하고 일찌기 전무후무한 파시즘열풍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이란 존재는 말할 수 없이 난해하다고 할 것이다. 열길 물길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알수가 없는 것이라는 옛 말이 이런 비상식이 통용되는 복잡한 세상엔 그 어는 이론보다 더 정확한 현실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면면히 이어오는 일본파시즘도 정말 뿌리뽑기가 이다지도 힘드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히틀러와 그의 동료들의 일자무식과 무교양 무학력이란 면에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일본 파시즘은 항상 미시마처럼 교육 잘 받은 상류층, 지도급 인사들이 더 열성적이라는 면에서 그들과 인접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하나의 호러요 근심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동기는 미지마 유끼오 때문이다. 그가 자위대에서 유명한 할복자살한 사건이 워낙 유명한데 반해 그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어떤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과연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본파시즘의 불씨를 살리려고 목숨을 바쳐가며 그렇게도 애를 썼는지 몹시도 궁금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책에 언급된 그의 사상을 들어보면 뭐랄까 역시 그 행동에 대한 근거가 너무도 빈약하다고 할까. 천황만 인정하면 공산주의에 기꺼이 동의하겠단 사람의 천황관이 고작 천황의 여성문제에 관한 것이라니 너무 하지 않은가? 내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그의 발언은 대화 후 그가 남겼다는 후기에 한 구절이다.

<나에게 생의 원리와 죽음의 원리는 상호 표리 관계에 있고, 나는 무책임, 무윤리의 예술세계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 개인이다. 그런 내가 자진해서 뛰어들어 책임의 쳬계와 도덕의 체계, 그리고 죽음의 원리를 받아들이려는 정치 행동과 그들이 뛰어든 정치행동은 똑같은 방식이겠지만 방향을 달리하기에 그들이 나를 비판하는 것을 당연하다.>

미지마  유끼오도 위험인물이지만 혁명을 위해 동료들 마저 무참히 살해했던 전공투 역시 위험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실망감 속에 누구보다도 우국을 생각했던 양자의 만남이 이뤄진 배경을 생각해 보았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드디어 패전을 한다. 그들의 운은 다하고 더이상 그들을 수호할 신풍 카미카제는 불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은 드디어 몽골제국마저 굴복시키지 못한 일을 성취했다. 미국은 일본의 점령군으로 그들의 미래를 그들의 뜻대로 밀고 나간다. 이 토론이 이루어지던 당시 일본은 더 이상 아세아공영권을 놓고 열강과 다투었던 그 나라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미소대립에서 미국의 편에 서게 된 그저 경제동물이었기에 전공투들이 이제 일본이 다시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그 때 그러한 의문을 제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미지마와 전공투의 젊은 패널의 대화는 의미깊다하겠다. 역시 일본 민족은 화(和)의 민족인지 모르겠다. 비록 미지마를 두들겨 패겠다는 둥 고릴라라는 둥의 위태한 순간이 있었지만 -그 만큼 대화 내용도 미숙했지만 - 어쨌든 대화는 이루어졌다. 또한 이제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들이 모여 과거의 미숙한 운동방식에 대해 다시 진지한 토론을 벌이는 모습에서 일본다운 저력을 볼 수가 있었다. 결론은 사회학적인 고찰로 끝이 나는 듯 하다. 전공투 인사들은 다 그쪽으로 전향을 했으니 그리고 미지마와의 대화는 이렇게 계속 일본 사회의 하나의 화두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다적고 갑자기 우선 리퓨를 쓴 분들께 미안하다는 기분이다. 앞의 두 글에 비해 수준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곳은 어디까지나 솔직한 마음을 적는 것이기에 또한 용서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어쨌든 이 글을 통해 일본의 오늘을 비춰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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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99인 1 친일파 99인 1
반민족문제연구소 엮음 / 돌베개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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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록을 한 번 훑어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진정 이 한국이란 나라에는 선한 사람 지조 있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는 것일까. 춘원 이광수같은 거물인사야 어느 정도 친일파로 잘 알려져 있지만 소위 국민 음악가 홍난파까지 끼어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더더욱 슬픈 사실은 이 99인의 친일파가 초기에는 나름대로 애국애족을 부르짖던 사람들이 상당수라는 것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지금까지 남한에서 지성인으로 대접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무슨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건 간에 우국지사들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을 때에 그와 같은 행동을 하고도 여전히 자신들의 과거를 숨기고 명예를 지켜내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 그 사람 박정희를 생각했다. 나 역시 한 때 그의 민족적 민주주의라든가 애국애족이라는가 하는 현란한 거짓말과 에 속아 본적이 있었으나 이 사람의 과거를 다시 정리해 보면서 크나큰 실망을 느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최소한 대통령으로서 박정희에 대해서는 인정할 것은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물론 박정희시대에 대한 평가가 그가 정권을 잡기 10년 전에 팔팔한 젊은이였을 때의 실수까지 들춰내어 박정희시대는 애시당초 글러먹었다는 선입견에 이루어져서는 안될 것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역시 분노 스러운 바가  많다. 여기 실린 대다수 친일파들과 마찬가지로 한국현대사에 강한 인상을 남긴 그 사람도 친일로 돌아선 이유는 조선이 독립할 가능성이 없어서 일찌감찌 단념하고 제 살길 가는 게 현명하다싶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고금에 영웅이라면 이태리의 가리발디 같은 정말 숭고한 인물이어야지 않을까. 박정희 그는 영웅이 되고자 하는 쉬운 길이라 생각한 길을 택했으니 참다운 영웅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가 멸망할 조선민족을 조소하고 때론 연민을 느끼며 이것이 영웅이 되는 가장 용이한 최단거리의 길이라 확신하며 천황폐하의 은덕에 무훈으로 보답할 적에 그와 대치하며 조국의 독립을 바라며 싸우는 그의 눈에 어리석어 보이는 무수한 영웅과 투사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친일파 청산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발간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허나 아직 첫걸음이라 부족한 점이 적지 않은 듯 싶다. 무엇보다도 객관성을 확보하기 보다 도 다분히 독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려는 면이 많은 면에서 아직도 이 책은 5공 시절의 운동권논리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점이 될 것이다.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별게 아닌 것도 사실이니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친일파 중에서 경찰 출신들에 대해서는 더욱 크나큰 분노를 느낀다. 일제때는 우국지사들을 고문하던 그들이 버젓이 활동할 수 있었고 빨갱이 잡는 애국자로 변신할 기회까지 주었던 것은 누가 무어라해도 명백한 대한민국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닌가 한다. 또한 이미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죽어서 친일파 청산이 제한된 의미만을 가질 것이므로 이런 논의들을 좀 더 담담하고 여유있게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싶다. 이젠 친일파를 미워하기 보다도 그런 인물들이 또 다시 등장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선자 이중인격자들이 창궐할 태세가 갖춰진 대한민국이다. 그렇다. 우리가 친일파 청산을 하는 것은 이런 변변치 않은 인물들을 미워하는데 촛점을 둘 것이아니라 그런 인간들이 이 땅에 다시 발붙이지 못하도록 국민을 계몽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누구를 응징하기 보다 자기 자신부터 이런 악인위선자를 이길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해서 더욱 바람직할 것 같다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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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불교사 1
에띠엔 라모뜨 지음, 호진 옮김 / 시공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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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지 이미 수백년이라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싯다릇타는 인도의 힌두교의 여러 신 중의 하나로 동화되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 오히려 불교는 이제 우리들의 종교가 되어버렸다. 우리 민족 문화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을 쉽게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지금도 여러 권 남아 있는 원효의 저작들은 현전 최고의 역사서인 <삼국사기>보다 500년이나 빠르다. 역시 외래 종교였던 불교가 조선500년의 탄압과 근세의 타종교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면서 오히려 더 풍부한 문화 유산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이는 불교라는 종교가 인도에서 만들어졌으나 실은 한국인들에게 더 적합한 종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런 나의 추정을 뒷받침하듯 초기불교의 사제격인 사문(samana) 이 바로 시베리아 일대의 유목민들의 무당인 샤먼과 같은 어원일 것이라는 설이 있다. 따라서 오랜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우리 민족에게는 더 없이 적합했으리라 생각이 된다. 특히 가부좌 같은 것은 온돌방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근대 한국 불교계의 충격은 역시 인도와의 접촉일 것이다. 인도에서 들어왔다는 흔적조차 희미해진 불교가 다시 그 기원을 보다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범어나 파리어로 된 경전을 한역(漢譯)을 통하지 않고 직접 들여오고 있고 그러는 와중에서 여러가지 오류가 드러나고 있다. 이제 한역경전을 보는 것은 코미디를 보는 것과 같은 일로도 생각될 정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고타마와 그의 제자들이 걸었던 길에 대해서 전면적인 재인식을 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꽤 훌륭한 책으로 보인다.

고타마의 출발은 그가 카필라의 왕좌를 버리고 사문들에게 합류하면서 시작된다. 여기서 그는 극단적인 고행을 체험한 끝에 다시 생각을 고쳐서 극단적인 고행을 버리고 중도적인 생활을 도모하게 된다. 아시다시피 코타마 사상의 핵심은 팔정도, 사성제, 삼법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팔정도야 말로 아라한의 이상이 잘 나타난 붓사시대 생생한 최고의 가르침이라 할 만 한다. 흔히 말하는 제법무아라를 자아의 부인이 왜 불교에서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이유는 아마도 인도철학과의 비교에 의해 더 분명해 진다. 인도 철학에서는 각기 브라흐마나 아트만 같은 어떤 초자아를 불변의 최고원리로 보고 여타 인도 전통의 인습들을 합리화하고 있기 때문에 정도정법을 추구하는 코타마의 입장에서 이들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를 단순히 자아를 부정하는 종교라고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불교는 참자아를 바로 보고 그것이 병들었을 때는 정화를 통해 건전한 자아와 생활관을 확립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따지고 보면 사마나 즉 샤먼의 역할이 그것이 아닌가? 즉 카르마 업을 씻어내는 과정에서 참된 도에 의해 모든 것이 멸하여지는 경지 그것이야 말로 참자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타마는 인생의 불행을 바깥에서 찾지 않은 사람이다. 즉 안에서 나에게서 찾았던 사람이었으며 그런 면에서 누구보다 참된 자유를 옹호했고 사상적인 면에서는 완전히 개방적이었다. 그런 면에서 고타마는 옳게 본 것이었다. 요즘 한국인들을 보라.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은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다. 뭐 대단찮은 사상가니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에게 한 번 자신들이 한 말에서 이러 저런한 의문점을 발견해서 그들에게 질문해 보라. 아마 90프로 이상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의 뜻을 자신도 모른다는 것을 시인하게 될 것이다. 자신도 모를 얘기를 곧 잘 지껄이는 사람들. 그들에게 주관이니 줏대가 있을리 없다. 남이 무슨 말을 하면 이리 저리 잘 쏠린다. 이는 자신의 마음을 부처로 섬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혹하고 기대하는 탓이다. 그러나 고타마는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긍정한 사람이었으니 현대 한국인들은 오히려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섣불리 남과 같아지는 걸 좋아한다. 월드컵 때 너도 나도 똑같은 옷을 입고 익명성 안에서 절규하는 모습을. 이건 자기는 이렇다할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며 자신감이 없는 사람에게 개성이 있을리 없지 않은가.  우리는 조선중기 이후 500년을 이렇게 살아왔다. 소위 성리학자들을 보라. 아직도 이들을 변호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가 우습지만 그들의 이야기에서 어떤 진지하게 고려할 중요성을 갖는 주장이 있던가. 대단찮은 얘기를 하면서도 주자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생각은 피력하지도 못하는 하류들의 행진 바로 그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고타마 이후에도 그렇다. 부파 불교가 주장하는 개념들은 보다 복잡한 인도철학의 전개와 보조를 맞춘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껏 한역경전을 보았던 수준으로 불교를 평하는 것은 뱁새가 황새따라가기일 것이다. 물론 인도의 당대 다른 경쟁적 종교사상들과 불교 중에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를 말하는 것은 인도의 문헌연대가 불확실하므로 어려울 지라도 여러 학파의 논쟁 끝에 인도불교가 발전해 왔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이런 저런 이유로  요즘 한국 불교는 고타마 당시로 돌아가서 주체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누구나가 자신의 마음을 부처님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몰개성시대 고타마가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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