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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시마 유키오.기무라 오사무 외 지음, 김항 옮김 / 새물결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푸코는 소위말하는 근대의 특징을 합리성의 역사로 규정짓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대세는 그러하지 않았는가 하는 말로 위안을 삼아본다. 하지만 종종 나 역시 그러한 믿음에 배신감을 느끼는 때가 많다. 첫째로 근대의 문명국이로 최소한 그 발전과 문명의 중심에서 그다시 먼 거리를 두지는 않았던 독일의 파시즘화 였을 것이다. 나는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읽으며 그들은 문명을 배신하고 일찌기 전무후무한 파시즘열풍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이란 존재는 말할 수 없이 난해하다고 할 것이다. 열길 물길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알수가 없는 것이라는 옛 말이 이런 비상식이 통용되는 복잡한 세상엔 그 어는 이론보다 더 정확한 현실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면면히 이어오는 일본파시즘도 정말 뿌리뽑기가 이다지도 힘드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히틀러와 그의 동료들의 일자무식과 무교양 무학력이란 면에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일본 파시즘은 항상 미시마처럼 교육 잘 받은 상류층, 지도급 인사들이 더 열성적이라는 면에서 그들과 인접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하나의 호러요 근심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동기는 미지마 유끼오 때문이다. 그가 자위대에서 유명한 할복자살한 사건이 워낙 유명한데 반해 그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어떤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과연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본파시즘의 불씨를 살리려고 목숨을 바쳐가며 그렇게도 애를 썼는지 몹시도 궁금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책에 언급된 그의 사상을 들어보면 뭐랄까 역시 그 행동에 대한 근거가 너무도 빈약하다고 할까. 천황만 인정하면 공산주의에 기꺼이 동의하겠단 사람의 천황관이 고작 천황의 여성문제에 관한 것이라니 너무 하지 않은가? 내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그의 발언은 대화 후 그가 남겼다는 후기에 한 구절이다.
<나에게 생의 원리와 죽음의 원리는 상호 표리 관계에 있고, 나는 무책임, 무윤리의 예술세계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 개인이다. 그런 내가 자진해서 뛰어들어 책임의 쳬계와 도덕의 체계, 그리고 죽음의 원리를 받아들이려는 정치 행동과 그들이 뛰어든 정치행동은 똑같은 방식이겠지만 방향을 달리하기에 그들이 나를 비판하는 것을 당연하다.>
미지마 유끼오도 위험인물이지만 혁명을 위해 동료들 마저 무참히 살해했던 전공투 역시 위험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실망감 속에 누구보다도 우국을 생각했던 양자의 만남이 이뤄진 배경을 생각해 보았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드디어 패전을 한다. 그들의 운은 다하고 더이상 그들을 수호할 신풍 카미카제는 불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은 드디어 몽골제국마저 굴복시키지 못한 일을 성취했다. 미국은 일본의 점령군으로 그들의 미래를 그들의 뜻대로 밀고 나간다. 이 토론이 이루어지던 당시 일본은 더 이상 아세아공영권을 놓고 열강과 다투었던 그 나라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미소대립에서 미국의 편에 서게 된 그저 경제동물이었기에 전공투들이 이제 일본이 다시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그 때 그러한 의문을 제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미지마와 전공투의 젊은 패널의 대화는 의미깊다하겠다. 역시 일본 민족은 화(和)의 민족인지 모르겠다. 비록 미지마를 두들겨 패겠다는 둥 고릴라라는 둥의 위태한 순간이 있었지만 -그 만큼 대화 내용도 미숙했지만 - 어쨌든 대화는 이루어졌다. 또한 이제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들이 모여 과거의 미숙한 운동방식에 대해 다시 진지한 토론을 벌이는 모습에서 일본다운 저력을 볼 수가 있었다. 결론은 사회학적인 고찰로 끝이 나는 듯 하다. 전공투 인사들은 다 그쪽으로 전향을 했으니 그리고 미지마와의 대화는 이렇게 계속 일본 사회의 하나의 화두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다적고 갑자기 우선 리퓨를 쓴 분들께 미안하다는 기분이다. 앞의 두 글에 비해 수준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곳은 어디까지나 솔직한 마음을 적는 것이기에 또한 용서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어쨌든 이 글을 통해 일본의 오늘을 비춰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