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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 열전 1 ㅣ 동양고전신서 25
사마천 지음, 박일봉 엮음 / 육문사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사마천을 위대한 역사가라고 흠모해 왔던 나는 인터넷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위대한 역사가인 만큼 오직 사실만을 기록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의혹이 가는 부분이 적지 않음을 느꼈다.
특히 우리 역사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조선 열전>. 이것을 첨 읽었을 때 교과서에 나온 얘기가 이걸 보고 쓴 것인가 부다 하면서 그 역사적 사실의 진위 여부는 긴가민가했다. 그래도 사마천이 쓴 것인데 하는 마음에 조선을 멸하고 세웠다던 한사군이 한반도에는 없었을 거라고 무심히 생각했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 관련 자료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인터넷 자료를 읽고 다시 한번 사기의 <조선 열전>을 정독해 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왕험성이 함락되었다"는 말은 없었다. 오히려 조선왕 우거가 내란으로 망했지만 황험성은 당당히 버텼다는 기록만 있었다. 사마천 조차 왕험성의 함락은 끝 내 언급하지 않고 그 토착지배자를 군후로 삼았다는 것으로 이 기사가 끝나고 있는 것이다. 그저 토착인을 책봉했다는 것은 잘 춰주어야 조선과 명의 관계가 될까말까한 일인데? 사마천은 전쟁의 승패나 원정의 성패에 대해는 끝내 침묵하고 있으므로 무제의 조선 원정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한사군은 완전한 픽션이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사군 운운하는 것은 마치 한나라에 마치 황우석같은 거짓 공로를 보고하는 자들이 있었으리라 생각했지만, 사마천은 또한 원정으로 참혹하게 처벌된 무제의 장군들을 제시했다. 즉 무제역시 원정의 실패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럼 역사를 왜곡한 것은 사마천 자신이었을까. 어쩜 무제 자신이 전쟁에서의 승리보다 오히려 실패를 승리로 바꿔 기록을 남길 사가를 원했기에 그 본보기로 대대로 유력 사관 가문의 사마천을 그토록 불구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무제는 원정의 실패를 알았다. 사마천도 진실에 관한 최소한의 실마리는 남겨 놓았다. 그는 어떤 압력때문에 진실을 기록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한사군은 사마천 당대로 부터 수백년간 중국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는데 이는 아마도 그 지역에서 한과 조선을 오가며 허다한 거짓보고를 해 온 중국인이나 그에 영합하는 조선인들 때문일 것이다. 이는 조선이 문자를 아는 사람이 드믄 문맹지대였던 시대에나 가능한 사업이었을 것이다. 역사기록이 뚜렸해지는 4세기에 이르면 낙랑군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인데 이는 문자상으로만 존재했던 것이 한반도에서 문자기록이 보편화되자 그야말로 문자상에서 없어지느 것이라고나 할까? 아직도 "학문"의 그럴듯한 탈을 쓴 신판 사대주의자들이 식민사학의 영향이 너무도 뿌리깊고 한국에서 나의 이 주장을 야유할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칭해준 낙랑군의 마지막 태수가 누구더냐? 그것은 백제의 근초고왕이 낙랑의 마지막 태수가 아니더냐. (이는 백제의 요동요서경영과 관련된 것이다) 그보다 삼백년 전에는 무엇이 달랐을 거라고 변변한 학식도 없이 진정 너희는 국가의 체통을 그닥 손상하고 싶더냐? 그런데도 낙랑군이 한반도에 존재했다고 학문의 탈을 뒤집어 쓰고 우길 것인가? 너희가 학문적 실증을 외치지만 너희는 당시 한반도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중국사기꾼의 기만도 분별할 줄 모르는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졸개들 뿐이다.(오늘 따로 유난 흥분되는구나)
이런 점만 없다면 정말 사기는 정말 세계에서 몇 손가락에 드는 명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