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 - 도올문집 4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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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의 조선왕조 개창에 있어서 혁혁한 공을 세운 삼봉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에서 그의 주요한 철학적 입장을 표명한 부분을 발췌하여 도올선생의 평을 덧붙인 책이다. 독일의 대표적 역사학자인 막스 베버에 의하면 세계의 탈미신화야 말로 근대와 이전의 시대를 구분하는 가장 근본적 차이이며 서양역사가 기독교로 부터의 탈미신화를 통하여 합리적인 사회질서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조선왕조 개창의 가장 혁명적인 성격은 당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세속화하여 민중에게 더이상 합리적 질서를 제시할 수 없었던 일종의 미신으로 전락한 불료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삼봉의 투철한 역사의식을 우리는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그의 민주적 민본적 건국이념을 조선건국전에서 살펴본 순간 사실에 있어 우리역사의 근대는 서양의 그것보다 이미 훨씬 앞서 있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 줄 것이다.

삼봉 정도전 하면 흔히 생각하는 것이 "과격한 유교적 원리주의자"이며 불교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유교에 입각해서 대책없이 불교비판을 행하는 성리학적 교조주의자이다. 그러나 불씨잡변에 있는 그의 논설을 보면 그의 불교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당대 동아시아의 어떤 학자들에 비겨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삼봉의 아버지는 중진관료였지만 어머니는 노비이어서 불교의 평등관이 그에게 상당한 매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를테면 같은시대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宋儒들이 불교에 대해서 별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거의 무지한 수준에서 불교를 비판하고 있는데 반해 정도전은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불교를 비판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불교비판이 다소 과장되고 있다는 것과 그러한 비판이 똑같은 입장에서 유교를 비판하는데 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입장은 "교조적 성리학"으로 타락하고 만다. 이러한 삼봉의 위헙한 세계관은 그의 정치적 몰락과 함께 사라지게 되지만 조선후기의 성리학에서 부활하게 되면서 민족문화의 발전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게 된다. 이를 일러 삼봉 사후의 복수라할 만한 것이다.

아울러 삼봉이 저술한 삼봉의 수필을 통해 한 혁명가의 인간적 고뇌와 그로 부터 생산된 사상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이로움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삼봉은 역사적인 인물로 지나친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그는 유교만의 독존이 아니라 여러 학파의 자유로운 비판이 존재하는 그러한 사회를 지향하는데 만족하는 것이 좋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을 모르고 어쭙잔은 지식과 성균관에서 수집한 서적을 근거로 남의 신앙과 학문을 이런 식으로 난도질한데서 조선후기의 극심한 사상통제는 이미 예비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도올 선생은 삼봉의 좋은 점만을 얘기하지만 우리는 그의 잘못됨과 편협함도 합께 배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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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尋牛) 2007-08-23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서평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