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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철학사 2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4
라다크리슈난 지음, 이거룡 옮김 / 한길사 / 1996년 12월
평점 :
역사적으로 인도대륙은 전세계 모든 문명 특히 몇몇 주요한 문명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쳐왔다는 것을 우리는 곧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으며, 비록 조선시대를 거치며 그 기억이 많이 퇴색되어 희미해졌지만 신라시대에는 불교라는 종교를 매개로 많은 지성인들이 인도문화와의 직간접의 교류를 시도하고 그들의 앞선 사상체계를 받아들여 스스로의 상황에 맞춰 재창조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것이다.
인도철학사를 읽게 되면 이러한 인도문명의 수준이 이와 같이 일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정도보다 훨씸 심원한 경지에 있었음을 더 절실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도철학을 공부하면서 놀라게 된 사실은 산스크리트어의 문자들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게된 "가장 완전한 문자"인 한글의 한 모형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우리의 미음에 해당하는 글자를 보면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조선시대에 한글창제를 위해 신숙주가 인도에 갔었다는 것이 단순히 놀러 갔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 철학의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그들의 사유구조가 당대의 서구라파의 철학이나 중국의 철학에 비해 오히려 더 아방가드르적이었으며 결코 뒤지지 않는 사상체계를 건립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단순히 여러가지 자유적인 비정통 사상에 의한 인식론 뿐 아니라 자아 성찰 및 도덕적인 삶과 그것에 이르는 수단을 강구하는 데 있어서도 현대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은 불교와 자이나교와 같은 이단 즉 "외도"에 대해 매우 심도 있게 다루고 있으며 그를 통해 한국불교와 인도불교와의 차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또한 인도의 소위 정통 육파사상의 사상에 대해 체계적인 접근을 하고 있으면서 상카라나 라나누사 등의 근래의 천재 우파니샤드 주석가 들에 전재되온 불이론적 인도 철학의 정수를 무난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값이 비싼 것은 흠이지만 그럭저럭 읽어 줄 만하나.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지은이 라나크리슈난이란 인물의 태도이다.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인 것 같다. 대개의 비유럽권 국가에서 철학사를 쓰는 사람들의 고심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물질적영역에서의 서구에 대한 패배는 사상적인면에서 조차 쉽게 씻을 수 없는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비단 인도철학사를 기술하는 문제 뿐아니라 중국철학사의 문제역시 이러한 압박감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국철학사에 관한 저자들이 어느 정도는 서구유럽의 사상에 대한 우위성이나 자신들의 철학체계의 미흡함을 인정하는 보다 인류사적 보편성에 의거하여 자신들의 철학사를 서술하는데 반해 이 책의 저자는 어쭙지 않은 베딴따 사상이 마치 인류적 최종 가치거나 그에 가장 근접한 사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에 의거해 타 학설이나 서양학설을 가차없이 비판하고 있다. (잠깐 딴소리를 하자면 중국의 철학기술자들은 대체로 서양에 대한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소위 한국의 자칭 "동양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마치 전노 군사정권의 정부가 미국에 미국인들보다 더 충성을 표시하듯 중국학에 더 강한 충성을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의 이런 모순된 심리상태를 나타내기나 하는 것처럼 많은 표현들이 일관성을 상실했다. 예를 들어 원시불교에 대하여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상이라고 서두에 칭찬하더니 느닷없이 그 장에 석가모니에 대한 평에서 애써 그의 사상이 우파니샤드에 내재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황당한 말을 한다. 이것은 명백히 모순이다. 물론 이 책은 이렇듯 많은 시각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화적 대립과 이질감을 넘어 그것을 이해하여 자신의 살에 보탤 수 있는 창조적인 원동력을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