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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1 - 의협의 나날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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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가에 보내는 편지>

작가여~ 아무리 연의(演義)를 염두해 두고 썻다고 하지만

이순신과 원균.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누가 보아도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삼척동자라도 그들의 실적이나 업적을 통해 능히 알만한 것을 가지고

글의 내용은 둘째치고

최고학부를 나와 해군사관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그대가 이런 것을 쓴다는 것이 나는 더욱 충격입니다.

그래서 불초하지만 저역시 지식인임을 자부하는 사람으로서 심히 당황스럽고 부끄러움 마음 가실 길 없습니다.

그대는 그저 단지 원균이 책상물림을 하는 문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에게 면죄부를 주시는 것인가요.

말이 나왔으니 도대체 요즘 작가들 연의라는 어정쩡한 판타지에 빠져드는 이유가 무얼까요.

그대들은 혼돈스럽기 그지없고 불공평한 세태를 한탄하여 이런 판타지를 지었다지만,

나는 오늘 날 이런 연의류만 난무하는 어딘지 미덥지 못한 문인들이 더 걱정이며

그들이 시류를 걱정하고 영웅을 대망하는 대신 자기성찰을 더 해서

"난 왜 이런 연의류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내게 딱히 적성이 맞는 것도 아닌것 같은데"고 진지한 고민을 하였으면 합니다.

그래서 국민들도 좀 좋은 책을 읽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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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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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해가 되면 으레 과거에 대한 후회가 앞선다. 이건 아니다 싶어 결심을 하고 올핸 조금 달라져야 겠다고 굳게 마음먹건만 어느새 흐트러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신상태가 야기한 보잘것 없는 성과들과 자신의 모습에 내심 초조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추운 겨울이 더 춥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러한 때 다시 한번 결의를 새롭게 하기 위해 이 책을 다시 살펴보았다.

사실 난 불교를 좋아한다. 구도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길을 석가모니가 갔다고 생각하므로 그 분에게 많은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역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후렴구를 포함하는 숫다니파타도 자주 읽는다. 그것은 불교의 가장 초기의 경전으로 분석되고 있는데, 나는 그 글을 읽으면 마치 부처님의 목소리를 듣는듯한 감흥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그와는 다르다. 그것은 마치 절규에 지쳐 실패한 인생에 대해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너 때문이야"라는 미움과 저주의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인간만사 아무도 알 수 없다. 새옹지마. 도스도예프스키는 자신의 도박빚을 갚기 위해서 역사상 엄청난 대작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만일 여기 나오는 주인공 혜완이 작가 자신의 심적 대변자라 한다면 이 소설이 나온 동기는 말 할 것도 없이 작가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이혼일 것이다. 그래서 도스도예프키 처럼 경제적 곤궁을 피하려고 이 소설을 썼건 이혼을 통해 새로운 문제의식을 심화시킨 결과 이와 같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어쨌든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결과가 좋으면 좋은 것이지만 작가의 결혼생활이 불행했던 것만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불행의 이유가 깊이 생각하면 너무나 우습다. 그건 다름 아니라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며 또는 남자는 다 자세히 살펴보면 "짐승"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세여자의 결혼 생활-혜완 자신의 이혼 경험, 능력은 있으나 바람둥이 남편을 둔 경혜, 바람둥이면서도 뻔뻔한 남편을 둔 영선에서 각종 후배 등등의 사회생활에서 간간히 나타난다. 이런 것은 하나의 사회의 관습처럼 된 것이라  강철로 만든 난공불락의 벽이기에 부딪힐 때 마다 세 여인에게서 일종의 절규와 한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뻔한남자역 중에 그래도 좀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세명의 여자를 모두 "작업" 대상으로 삼았던 그 그지발싸개같은 대학선배와 문선우라는 혜완에게 변함없이 위안이 되어주는 남자친구였다. 하지만 혜완은 남자란 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할 수 있는 존재인지 잘 알기에 선우의 구혼을 냉정히 거리를 두고 우선 자신이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 부터 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차차 자신의 일이 자리잡혀간다고 생각되던 찰나, 사고가 생긴다. 영선의 절규는 자살로 변하고 그녀의 부고가  혜완과 경혜앞에 찾아들었을 때 그렇게 그들은 영선의 무덤앞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보내야만 했다. 여기서 느끼는 혜완의 감정은 조금은 복잡한 것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친구의 무덤 앞에선 혜완의 독백은 그 자신이 시행착오로 부터 얻은 결의가 얼마나 모질고 확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약하자면 "네가 이렇게 된 건 말이야 결국 그 구닥다리 사랑과 헌신을 무조건적으로 남편에게 배푼 너 자신 때문이야!"

라는 친구에게는 조금은 모질어 보이는 그 저주와 원망의 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혜완의 그 말은 옳은 말이다라고 느낀다. 어쩌면 그러한 넘을 수 없는 벽에서 오는 절규들은 혜완에게는 결국 하나의 무수한 "소음"들에 불과할 것이며 이제 혜완의 앞에는 그런 고칠 수 없는 일들 말고 때론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최소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아가 독립된 자기 자신의 성취를 하기 위해서는 해야할 급박한 과제가 있을 것이다. 마치 잘거 다 자고 놀거 다 놀로 하는 학생이 명문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푸념들에 일일히 솔깃해 한숨이나 쉬고 남탓이나 하는 사람에게 행복한 미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므로 이제는 단호히 영선의 푸념과 원망들을 냉정히 무시해 버리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자신의 진짜의 미래를 위해서 자잘한 불평들은 잠시 마음에서 털어내고 새출발을 통해 정진해 나간다. 좋은 소설이고 좋은 결심이다. 비록 가슴깊은 곳에서 다소 억울하게 죽은 영선의 목소리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로인해 때로는 이미 굳게 결심한 자신의 마음 어딘가에서 아프게 울리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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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 스티븐 킹 걸작선 1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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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신진작가들이 모여 문학가의 미저리 열풍을 개탄한 기억이 난다.

시도 때도 없이 작가한테 전화해서 인생이 어떻다는 둥 작가를 작업대상으로 삼거나

요즘 티비드라마처럼 각본을 고치려고 까지...

정말 인스턴트 세상이

XX 같은 놈들을 많이 산출해 냈다는 생각이다.

그래 지놈들 좋은 대로 세상이 굴러가고 지놈들 좋은 대로

남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인가.

예끼. 텔레비속에나 쳐박히거라. 

 

이러저러한 문학에 리뷰를 남기기 전에 문학계에 또 다른 걱정스런 현실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미저리 시리즈. 공포소설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다. 그 안에는 인간 심리의 은밀한 부분까지 잘 간파하고 있다. 젊다는 것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철없는 치기하나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자신의 장난감 다루듯 해서야. 쯔쯔. 그런 면에서 100개 소설을 읽고 여기에 리뷰를 남기는 것 보다 미저리를 읽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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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 / 창비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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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외교관들의 미숙하고 불성실한 근무태도가 많은 국민들을 분노스럽게 하고 있다. 자국민들이 이역 땅에서 사형을 당하도록 면담한 번 하지 않고 이를 추궁하는 방송국 측에 태연히 잘못이 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답하는 대한민국 외교관들. 그들은 비록 외무고시라는 어설픈 선발방식을 통해 외교관이 되었지만 실은 공연히 세금이나 축내는 "오적"과 같은 부류의 하나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쓴 홍세화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그의 많은 동기들이 그와 같은 어설픈 외교관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교는 공무원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요 민간외교가 두나라의 이해와 발전을 위해  보다 중요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민관외교는 이 책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서가 가장 좋다. 홍세화가 20년에 걸쳐 만났던 다양한 계층의 프랑스인들과의 만남은 매순간이 한국사회와 프랑스사회의 접촉이자 산 외교의 현장이었다. 이 글을 베스트셀러화함에 의해서 프랑스 사회를 널리 소개하는데 성공한 홍세화야 말로 누구보다 훌륭한 한국과 프랑스의 민간외교관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내 최고의 학부를 나온 엘리트로서 20년간 일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이러한 일에 바쳐온 한국사회에 흔치 않은 "노블레스 오블레쥬"의 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박정희 시대에 서울 문리대를 다니며 유신말에 남민전이라는 조직에 가입했던 작가가 조직이 적발되면서 뜻하지 않는 프랑스 망명을 겪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사회를 경험하게 되는 일종의 수기라고 해 둘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당장 한국이면서도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므로써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던 그야말로 철저한 "이방인"이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의 기록이다. 또한 그와 함께 또 다른 세계와 만나고 점차 그에 익숙해 져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기도 하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그리고 있는 프랑스는 항상 그가 항상 돌아가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갈수 없는 조국 한국과 분리될 수 없는 "홍세화식의 프랑스"라는 점인 것 같다. 그 때문에 100여년 전 파리꼬뮌의 전사들의 묘지에 찾아가서도 문리대시절의 비슷한 꿈을 꾸었던 지난 시절과 그 때의 동료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도 한국과 한국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나타난다. 그래서일까 저자가 주장하고픈 "똘레랑스"란 것도 한국사회에 비교해 너무 강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글에서도 최근 문제가 되는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의 폭동의 씨앗이 무엇인지 언급은 되어 있지만 저자는 그것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비록 이러한 한계가 있지만 새로운 사회를 택시운전사의 눈을 통해 거의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책은 혼란한 한국사회에서 벗어나 그럭저럭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작가가 남민전의 동료들의 석방소식을 듣고 안도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는 역시 작자가 비록 몸은 프랑스에 있어도 여전히 한국사회에 많은 미련을 갖고 있다는 한 예이다. 또 이런 좀 갑작스런 끝은 2탄 <세느강....>을 염두에 둔 포석같이도 느껴진다. 홍세화의 한국생활 중 그의 아버지의 일은 나같은 세대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동숭동시대는 EBS의 <지금도 마로니에에는>같은 드라마로 대충 이해가 되긴 하지만 말이다.

스위스나 프랑스가 어린시절 부터 줄기차게 살기좋은 나라라고 손꼽혀 온 것도 더욱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별로 튀거나 재밌는 내용이나 표현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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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 1
최인호 지음 / 문예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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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부한 언어로 전락해 버린 셈이 되었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를 고결스럽게 다뤄보고 싶은 욕방을 갖고 있다. 「사랑」이란 언어는 오늘날 대중가요로, 소설로, 영화로, 종교로 가장 흔하게 쓰여지는 낱말일 것이다.
거의 모든 예술 형태에 문화에 사회현상에 「사랑」이란 낱말이 조미료처럼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생명을 지니지 못한 死語로 소멸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누구나의 가슴속에 들어 있으나 퇴화되어 버린 「사랑」의 감정에 지휘봉을 들이대고 불꽃을 일궈보고 싶다. 나는 문명의 숲속에서 화폐해가는 현대인의 마음 속에 불을 일궈 밭을 가꾸는 「火田民」의 역할을 하고 싶다.

이것이 초판 책 날개 씌여있는 작가의 말이다. 대학시절 나는 가끔씩 다혜 앞에 나타날 수 없었던 민우의 모습을 떠올려 본 적이 있었다.

다혜가 민우를 처음 만난 것은 봄날의 오후였다. 우연히 마주친 다혜의 집에서 민우는 다혜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너무나 수줍고 순결한 <피리 부는 소년> 민우는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며칠 뒤부터 민우는 용기를 내어 다혜에게 편지를 쓴다. 내용은 조금 싱겁다. 도서관 앞 분수대에서 기다리겠노라는... 이Ž’게 두 사람의 사랑은 시작하는 듯 하지만 민우는 뜻하지 않은 시련으로 끝없는 나락에 빠지게 된다. 그 해 겨울에 이미 민우는 기지촌의 고용 지배인으로 양공주 출신의 은영과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모질게도 세월은 흘러 친구 현태에게 지금은 그의 애인이 된 다혜를 만나고 싶다하는 민우의 청을 현태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엔 늦었어. 넌 이제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그것은 정말 현태 뿐아니라 다혜나 민우를 위해서 좋은 일이었을까. 현태와 다혜의 웨딩마치가 울리던 즈음엔 가슴 속에 다혜에 대한 그림움과 고민을 품은 민우는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는다.

이 것이 이 책의 줄거리다. 혹은 너무 통속적이고 상투적 이야기가 아닌가도 싶다. 또한 민우라는 지나친 순결컴플렉스를 가진 인물을 등장시키고 미화함으로써 독자들을 비현실적인 환상적인 세계로 몰고간 혐의를 작가에 둘 수 있으리라. 하지만, 볼래 진정한 사랑이란 그렇 듯 순결하고 진실한 것을... 오히려 현태식의 사랑을 현실적이라 하여 사랑이라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사랑에 거짓을 섞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야 말로 거짓이요 환상이요 비현실인 것이다.

이 순간 아득한 기억 속에 민우를 떠올려 본다. 나의 젊은 기억들도... 그가 그랬듯 어느 골목 다혜의 집앞을 서성이며 혹시 있을 지도 모를 다혜의 모습을 찾아 본다. 동명의 영화에서 현태가 민우에게 던진 말이 생각 난다.

「너는 더 이상 지난 날의 피리 부는 소년이 아니야 ! 」

도대체 민우는 나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그는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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