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바디스 홍신 엘리트 북스 50
H.시엔키에비치 지음 / 홍신문화사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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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키에비치의 화제작 쿠오바디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무엇이 주제인지 가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상당한 역사적인 고증을 거친 책이란 것만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바로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진리를 느끼게 한다. 한 예로 폭군의 말로는 언제나 비참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깝게는 한국의 수양대군이 그러했으며 멀리 황제를 꿈꾸던 시저의 최후도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공자도 말하였다. "이익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일 수록 원한의 씨앗을 뿌리는 수가 많다"라고 하였고 예수역시 "칼로 일어난자 칼로 망하리라"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그릇된 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 변함없는 진리가 아닐까? 불교에서는 악인도 채 그 열매가 다 익기 전에는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열시 그 열매가 익으면 어김없이 화를 당한다하니 모든 성현의 가르침은 다 같다. 그들 역시 그들이 들어온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네로의 최후는 너무나 리얼리틱한 묘사였다. 그러한 일들은 센키에비치 이전에도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다.

---네로도 이제는 자기의 최후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어디까지나 자기에게 충실한 그는 그 비극의 주역을 마지막까지 연기했다. 그는 어떤 훌륭한 시구를 생각해 내어 후세에까지 그것을 남겨야 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비극 배우와 같은 언조로 자기를 불태워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아아,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 때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백인 부장이 병사들을 거느리고 붉은 수염의 목을 가지러 온 것이다. "자아, 빨리 하시죠!"하고 해방노예들이 외쳤다. 네로는 비수를 목으로 가져갔으나, 떨리는 손으로 약간 찔렀을 뿐이다. 그에게는 푹 찌를 만한 용기마저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에파프로디투스가 네로의 손을 잡고 비수를 깊숙이 찔러넣다. 칼자루까지 목안으로 들어갔다. 네로의 눈은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보기에도 끔찍하고 겁에 질린 커다란 눈이었다. "사형이 집행유예 되었습니다!"하고 백인 부장이 뛰어와서 소리쳤다. "이젠 너무 늦었다!"하고 네로는 가쁜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그게 네놈의 충성이란 말이냐?"... 이튿날 충실한 악테는 네로를 값비싼 보자기로 싸가지고, 향유로 적신 장작으로 화장을 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은 쿠오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말로 끝이 난다. 참으로 의문으로 끝나는 주제가 모호한 작품이다. 하지만 언제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듯 주인공 페트로니우스나 네로 그리고 철학자 킬로의 비극적인 최후로 부터 우리는 가장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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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4대 비극 - 범우비평판 세계문학선 3-1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이태주 옮김 / 범우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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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참담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인내하는 것이 더 고귀한가? 아니면 난관의 바다에 무기를 들고 싸워 없애버릴까?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는 것은 언제나 흥미를 준다. 그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이처럼 망설이는 듯하면서도 운명에 맞서 과감히 싸워나가는 영웅들의 무용담이 있다. 이 4가지 작품 모두 어느 하나 가볍게 다룰 수 없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맥베스를 가장 좋아한다. 멕베스 고금의 독재자의 전형이라할 만하다. 그러나 비록 운명이 그를 저버릴 지언정 그것을 회피하거나 굴복하지는 않는다.

맥다프는 이러한 비극적 운명의 희생자인 이 독재자에게 비수를 꼿기 전에 의기양양하게 목숨을 보전하여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라고 희롱하지만, 맥베스는 어중이 떠중이에게 욕을 보느니 차라리 용감히 싸우겠다는 선택을 한다. 세익스피어의 운명에 대한 통찰이 이처럼 돋보이는 작품이 또 어디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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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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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두 우상이었던 쇼펜하우워와 바그너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의 문제를 이성과 실재의 문제에서 본능과 의지의 영역으로 전회시키던 니체 당대의 철학사조에 있어서 일종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인간 생활의 절반채 되지 않은 협소한 영역에 갇혀있던 서양철학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나아갈 불가피한 홍역이었다 할 만하다. 더구나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로 악명이 높았는데 그의 글을 살펴보면 역시 대다수 염세주의자들과 같이 세상을 비난함으로서 자신을 높이려는 속셈이 없지 않았다. 암튼 세상을 열심히 비난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바그너는 당시 독일 뿐만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했던 국민음악가로 오늘날로 말하면 종합엔터테인먼트라 할까 그런 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개척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니체는 이 두 사람을 빼면 대부분 어용철학자나 삼류 예술가로 보았으리만치 그 두사람이야 말로 젊은 시절의 유일한 위안이 었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의 세계관과 예술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끝내 결별하고 만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저서가 이 유명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결별의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자존심 강한 천재의 고집 때문이라고 내 나름대로는 추측한다. 그들을 너머 더 위대한 예술작품을 세상에 안출해 내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사명이오 한낱 남의 아류에 머무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니체의 작업은 물론 당대의 여러 유행했던 사조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특히 거슬리는 것이 다윈류의 진화론의 영향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초인이라는 현재의 인간을 초극하는 인간이란 설정자체는 진화의 과정과 매우 유사하며 대개의 속류 사회적 진화론에서 처럼 그는 힘이라는 가치를 매우 고귀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니체에 있어서 초인의 길이 사회적 진화론따위가 말하는 그런 적자생존과 힘의 논리에 벗어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니체의 초인은 어떤 정신적인 도덕성을 갖춘 인물 형이상학적 성찰을 득한 인물이 아닌 대지와 육체의 의미에 충실한 현세적 인물인데 어쩌면 이러한 인물이야 말로 서양 근대를 이끌어 온 전형적인 인간상이라 할 만하다. 그것은 니체가 늘 말하던 바와 같이 중세적 인간형이 아닌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그리스적 인간형이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그러한 세계사적 흐름에 민감하면서도 항상 주관없이 남을 따르는 대세추종형이거나 더 심하면 기회주의적 인간을 설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선악의 가치와 주관을 뚜렷이 세우고 미래를 창출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이며 이를 위해서는 목숨을 돌보지 않고 희생하는 돌진형 인간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책이라 할 만한다. 당대의 유행했던 내셔널리즘에 관하자면, 민족이나 국가 군중은 이 책 전편에 걸쳐 짜라투스트라의 비웃음 거리일 뿐이다. 니체는 이 책을 통해 고래이래 특히 혼란한 정세를 틈타 발호하는 퇴행적인 사조나 철학들과 일정부분 사상투쟁을 하고 있어 그의 이른 바 초인의 설 자리를 확보하려 했다. 어쨌든 이제 니체는 쇼펜하우어나 바그너 보다 더 주목받는 인물로 20세기 예술과 철학계에 자리매김되었는데, 그의 정신병원 투병에도 불구하고, 이는 인간의 보다 향상되고 싶은 열정의 심연을 누구보다 잘 응시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죽어 영원을 얻은 흔치 않은 철학자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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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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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는 취생몽사(醉生夢死)란 말이 있다. 술에 취하여 자는 동안에 꾸는 꿈 속에 살고 죽는다는 뜻으로, 한평생을 아무 하는 일 없이 흐리멍텅하게 살아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세르반테스가 그린 이 돈키호테란 사람이 딱 그러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시절이 바뀌는 줄은 모르고 옛 책이나 읽고서 없어진지 오래가 된 기사의 세계를 동경해  현실을 깡그리 무시한 채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을 계속 연출하며 주위사람들을 괴롭히는 시대착오적 인간이 바로 돈키호테다. 이런 천하에 쓸모있는 인간을 그리는 데 있어서 세르반테스는 놀랄만큼의 끈기와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설득을 관철하는데 성공한다. 엉뚱한 인간일 망정 그 어느 누구도 돈키호테를 미워할 수는 없을 것이다.특히 이상을 위해서 자기 생명조차 내던지고 목적에로 맹진하는 실천형의 인간형인 돈키호테는 세익스피어가 창조한 햄리트형과 함께 가장 흔한 두가지 인간형의 하나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 두 인물형 모두 세기적 천재가 만들어낸 아주 복잡하고도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 아주 세심하게 창출된 인간형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암튼 돈키호테가 햄릿보다는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는 점도 흥미로운 일이고 그러기에 이 작품이 오래동안 빛이 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역시 현실을 무작정 무시하고 세상을 오해하는 삶이 그 다지 쉽지 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세계문학사상 잊혀지지 않을 불멸의 명작임에 틀림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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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경영대전 - 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
홍하상 지음 / 바다출판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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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계급을 나누는데 의례히 사(士)농(農)공(工)상(商)이라하여 가장 낮게 취급되던 것이 바로 상인이다. 아닌게 아니라 몇 달전 한 재벌 회장이 쓴 에세이집을 읽고서 한 참을 웃었다. 책의 내용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일종의 훈수요 훈계라고 보여질 만한 것이었는데 내가 웃었던 것은 의례히 따랐던 한 챕터  끝마다 소위 명사들의 아부성(?) 글들로 보여지는 짧은 글들이 끼어있어씨 때문이다. 그들의 직업은 정치인이요 문학가요 소위 옛날기준으로 최고의 계급은 사(士)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그런 근엄한 그들이 한낱 장사치에 불과한 사람의 출판을 축하하는데 들러리를 선다는 것이 고소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름대로 성공한 재벌회장이 자신이 할 말이 있다면 스스로 당당히 밝히면 그 뿐이지 무엇이 아쉬워 그런 사람들의 들러리성 글들을 끼워 넣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책의 중요한 모태가 된 호암이 직접 남긴 <호암자전>이란 책이 있는데 여기에는 그런 식의 명사들의 군소리가 있지 않다. 서문은 물론 후기까지 직접 자신이 완성했다. 당시의 삼성이 재계1,2위를 다투기는 했으나 오늘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서가 아닌 중진국 한국에서의 기업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나는 이것에서 호암의 장삿꾼으로서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도 호암은 역시 큰 인물임을 확신하는데 주저할 수 없다.

사실 나에겐 왠지 이 책이 <호암자전>의 주석서로 생각될 뿐이다. 호암자전은 저자인 이병철 회장의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한가지 흠이라면 한자가 많은 국한혼용으로 쓰인데다가 일본명 역시 음을 병기하지 않고 한자로 표기하여 요즘 젊은이들이 읽기가 어렵다. 그래서 저자 홍하상씨가 젊은이들을 위하여 그에 대한 주석서를 썼다고 생각되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역시 내가 호암자전과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무엇보다도 자유당이래 그가 어떤 변화속에서도 재계 수위를 지켜왔다는 점에 주목 그 저력을 발견하고자 했기 때문이며 많은 독자들이 그러기 위해 이 책을 살펴본다고 이해하고 있다. 이제 글로벌 삼성이 된 지금 그의 성공은 결코 운일 수 없는 것이다. 일찌기 춘추전국의 대사상가 노자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대지약우(大智若愚). 범인에게는 큰 지혜는 마치 어리석은 것 같아 보인다는 통찰이다. 마찬가지로 대기업가 이병철은 단 한장의 졸업장을 가져보지 못한 학교부적응아였다. 비록 일본 와세다유학까지는 했지만... 놀랍게도 거상인 호암이 평생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책으로 논어(論語)를 꼽았던 것이다. 논어가 어떤 책이던가. 바로 인간관계의 도리를 기술한 책이요 그 중심에는 인(仁)이라는 최고의 규범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호암이 최고의 기업경영의 원칙으로 삼았던 인간경경의 모태가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의 결론은 이러하다. 호암의 그런 성공의 뒤에는 무엇보다 논어가 가르치는 마치 어리석어 보인 듯하면서도 기본을 지키는 성실한 마음가짐과 봉사심이야 말로 오늘날의 삼성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점이다. 사족을 달자면 일본의 앞선 경제성장과정이 그에게 일정한 매뉴얼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 저자의 말대로 그것이 한국 기업의 경영매뉴얼이 되었다는 점도 놀랍다. 사실 이병철은 그가 일본의 삼대째 이어온 이발소에 큰 충격을 받을 만큼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임도 분명하다.

한편, 이 책을 읽으면 이병철의 시대를 앞서가는 예리한 시장관찰과 한 발앞서는 그의 경영전략을 한국현대사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수 있는 점이 참으로 좋다. 어떻든 간에 이병철은 한국경제사의 거봉이고 다시 생각해도 "자랑스런 한국인"의 범주에 든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잊고 지냈다. 이것은 한국인의 돈버는 것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과 인습때문이다. 덧붙여 그렇지만 호암이 모든면에서 뛰어난 인물이고 그를 따라해야 한다는데는 공감할 수 없다. 우선 그는 돈버는 것을 너무 중시한다는 점에서 중용에 어긋나 있는 것 같다. 자신은 한국금융의 근대화를 위해서라지만 국가 금융을 완전히 장악했던 자유당 말기나 대중매체 진출 등 같은 일들은 지나친 탐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하긴 돈을 너무 경시해서도 안되겠지만 온 나라사람들이 돈 벌려고 눈이 뻘건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있을까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저 기업인을 기업인으로 봐 줄 수 있는 풍토가 더 시급하고 그런 연유에 서로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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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16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