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두 우상이었던 쇼펜하우워와 바그너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의 문제를 이성과 실재의 문제에서 본능과 의지의 영역으로 전회시키던 니체 당대의 철학사조에 있어서 일종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인간 생활의 절반채 되지 않은 협소한 영역에 갇혀있던 서양철학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나아갈 불가피한 홍역이었다 할 만하다. 더구나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로 악명이 높았는데 그의 글을 살펴보면 역시 대다수 염세주의자들과 같이 세상을 비난함으로서 자신을 높이려는 속셈이 없지 않았다. 암튼 세상을 열심히 비난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바그너는 당시 독일 뿐만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했던 국민음악가로 오늘날로 말하면 종합엔터테인먼트라 할까 그런 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개척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니체는 이 두 사람을 빼면 대부분 어용철학자나 삼류 예술가로 보았으리만치 그 두사람이야 말로 젊은 시절의 유일한 위안이 었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의 세계관과 예술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끝내 결별하고 만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저서가 이 유명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결별의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자존심 강한 천재의 고집 때문이라고 내 나름대로는 추측한다. 그들을 너머 더 위대한 예술작품을 세상에 안출해 내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사명이오 한낱 남의 아류에 머무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니체의 작업은 물론 당대의 여러 유행했던 사조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특히 거슬리는 것이 다윈류의 진화론의 영향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초인이라는 현재의 인간을 초극하는 인간이란 설정자체는 진화의 과정과 매우 유사하며 대개의 속류 사회적 진화론에서 처럼 그는 힘이라는 가치를 매우 고귀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니체에 있어서 초인의 길이 사회적 진화론따위가 말하는 그런 적자생존과 힘의 논리에 벗어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니체의 초인은 어떤 정신적인 도덕성을 갖춘 인물 형이상학적 성찰을 득한 인물이 아닌 대지와 육체의 의미에 충실한 현세적 인물인데 어쩌면 이러한 인물이야 말로 서양 근대를 이끌어 온 전형적인 인간상이라 할 만하다. 그것은 니체가 늘 말하던 바와 같이 중세적 인간형이 아닌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그리스적 인간형이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그러한 세계사적 흐름에 민감하면서도 항상 주관없이 남을 따르는 대세추종형이거나 더 심하면 기회주의적 인간을 설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선악의 가치와 주관을 뚜렷이 세우고 미래를 창출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이며 이를 위해서는 목숨을 돌보지 않고 희생하는 돌진형 인간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책이라 할 만한다. 당대의 유행했던 내셔널리즘에 관하자면, 민족이나 국가 군중은 이 책 전편에 걸쳐 짜라투스트라의 비웃음 거리일 뿐이다. 니체는 이 책을 통해 고래이래 특히 혼란한 정세를 틈타 발호하는 퇴행적인 사조나 철학들과 일정부분 사상투쟁을 하고 있어 그의 이른 바 초인의 설 자리를 확보하려 했다. 어쨌든 이제 니체는 쇼펜하우어나 바그너 보다 더 주목받는 인물로 20세기 예술과 철학계에 자리매김되었는데, 그의 정신병원 투병에도 불구하고, 이는 인간의 보다 향상되고 싶은 열정의 심연을 누구보다 잘 응시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죽어 영원을 얻은 흔치 않은 철학자라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