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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ㅣ 박완서 소설전집 9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처음 접했던 것은 아주 어렸을 적 휴일날 보여주는 텔레비젼의 방화프로를 통해서 였던 것같다. 당시 내가 좋아했지만 자주 볼 수 없던 유지인씨가 자기 동생에 대해 회상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했는데 왠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인지 채널을 다른데로 찰카닥 돌려버렸다. 그리고 가끔 다시 돌려보는 식으로 그러니까 내용은 잘 모르겠고 가끔 오목이 역을 맡았을 이미숙씨가 절규하는 장면 그런 것들은 용케도 내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이런 하찮아 보이는 기억들이 아직까지 기억이 나의 인상이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한 번은 꼭 이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심정을 가졌음은 어인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어찌된 일인가?
박완서란 작가의 이름. 나는 지금까지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왠지 모르게 유치해 보인다고 나 할까. 때때로 그들의 작품에서 강한 느낌이나 인상을 받을 때조차 왠지 남성작가들의 작품에 비해서 어려보이고 도저히 남자로서 공감이 안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특히나 박완서씨의 소설은 아니지만 그가 쓴 몇몇 신문의 칼럼이나 수필집을 읽으면서 그와 나는 애당초 가치관 자체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이 책을 용기내어 읽어보니 내가 품어왔던 따뜻한 겨울에의 염원과는 거리가 있고 오히려 그런 환상을 무참히 깨어 놓는 작품이었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이 내는 중심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매우 애매하였고 그로 인해 지금 이 순간도 키보드를 두드리기가 매우 망설여지는 과연 내가 이 작품을 잘 파악하고 있는지 자신없어 지는 감이 있으나 가히 오기를 부려 이 글을 적어본다.
아시다시피 박완서 작품의 주된 키워드는 속물근성, 소시민의 안일한 삶, 소외된 하층민, 물질 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우리들의 습관속에 깊이 스며든 위선과 거짓을 낱낱이 우리에게 밝혀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깊이 숨기고 우리들이 나날이 흘려보내는 무섭고 가슴시린 감정들을 소설에 정확하게 적용하고 있었고 밤을 새워가며 작가의 사상을 따라가 보면서 어쩌면 한 인간의 심리를 이다지도 꿰 뚫고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경이와 함께 전율감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정말 이 시대 한국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한 거장이 우뚝 서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이 글은 밥한그릇을 더 먹기 위해 전쟁통에 동생을 내 버린 한 7살 소녀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그리고 있다. 하나의 우화같기도 하지만 이 소녀가 커가며 장성해 가면서 결혼을 하고 얘를 낳고 하면서 점점 타락해져 가는 과정을 보면서 이 가공할만한 사건들이 실제로 우리 일상에서 비일비재한 일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한계조차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은 아마도 성악설에 가까울 것같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악에 대해서 어느정도 인식을 할 수는 있지만 도저히 그것을 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들 자신의 악을 인정하면서도 작가는 이를 규제할 만한 사회제도적인 보장을 촉구하는데 까지는 도저히 이르지 않고 아니 그것을 회피함면서 한 개인의 그릇된 점들을 파헤치는데 전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누구라도 이 소설이 많은 사실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게 되더라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공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애시당초 이 작가의 관점은 너무 크게 치우쳐 있었다. 그리고 그가 다루는 주제도 언제나 사회의 부정적인 면들에 시각이 단단히 묶여 있었다. 이러한 문학의 최종적 귀결점을 찾기는 아마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주제의 한계. 작가도 사람인 이상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부정적인 면들은 제한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작가의 저서가 넉넉잡아 한 수레쯤 된다는 것은 결국 작가가 이런 부정적인 소재를 찾고찾다가 나중에는 만들어 내기까지 해야 했다는 것을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예를 들어 이 소설이 페미니즘 소설인가? 작가가 많은 소녀팬(?)들을 가졌으니 그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작가는 여기서 빈민가의 여자들은 자기가 잘못선택해서 지옥같은 수렁에 빠졌고 여성의 사회활동에는 많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난받는다. 그런데 왜 이런 소설을 박완서가 쓰면 페미니즘 소설이고 이문열이 쓴 소설은 반여성적으로 매도되어야 할까? 도대체 왜.왜.왜?
내 생각으로는 이문열의 <선택>이야 말로 진정한 페미니즘 소설로 생각된다.
끝으로 작가 자신도 1987년 판에 내었던 소설에도 이렇게 밝히고 있다는 것을 밝혀 두고 싶다. 작가가 그린 것은 삶의 어두운 현실이었지만 정작 독자들이 꿈꾸어야 할 것은 그 너머 참으로 있어야 할 세계라는 것을 말이다.
작가의 재능에 비에 "대안"이랄 것이 없었기에 아쉬움을 이렇게 거칠게 토로해 본다. 읽으시는 분들의 양해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