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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 1
최인호 지음 / 문예출판사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참으로 진부한 언어로 전락해 버린 셈이 되었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를 고결스럽게 다뤄보고 싶은 욕방을 갖고 있다. 「사랑」이란 언어는 오늘날 대중가요로, 소설로, 영화로, 종교로 가장 흔하게 쓰여지는 낱말일 것이다.
거의 모든 예술 형태에 문화에 사회현상에 「사랑」이란 낱말이 조미료처럼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생명을 지니지 못한 死語로 소멸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누구나의 가슴속에 들어 있으나 퇴화되어 버린 「사랑」의 감정에 지휘봉을 들이대고 불꽃을 일궈보고 싶다. 나는 문명의 숲속에서 화폐해가는 현대인의 마음 속에 불을 일궈 밭을 가꾸는 「火田民」의 역할을 하고 싶다.
이것이 초판 책 날개 씌여있는 작가의 말이다. 대학시절 나는 가끔씩 다혜 앞에 나타날 수 없었던 민우의 모습을 떠올려 본 적이 있었다.
다혜가 민우를 처음 만난 것은 봄날의 오후였다. 우연히 마주친 다혜의 집에서 민우는 다혜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너무나 수줍고 순결한 <피리 부는 소년> 민우는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며칠 뒤부터 민우는 용기를 내어 다혜에게 편지를 쓴다. 내용은 조금 싱겁다. 도서관 앞 분수대에서 기다리겠노라는... 이게 두 사람의 사랑은 시작하는 듯 하지만 민우는 뜻하지 않은 시련으로 끝없는 나락에 빠지게 된다. 그 해 겨울에 이미 민우는 기지촌의 고용 지배인으로 양공주 출신의 은영과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모질게도 세월은 흘러 친구 현태에게 지금은 그의 애인이 된 다혜를 만나고 싶다하는 민우의 청을 현태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엔 늦었어. 넌 이제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그것은 정말 현태 뿐아니라 다혜나 민우를 위해서 좋은 일이었을까. 현태와 다혜의 웨딩마치가 울리던 즈음엔 가슴 속에 다혜에 대한 그림움과 고민을 품은 민우는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는다.
이 것이 이 책의 줄거리다. 혹은 너무 통속적이고 상투적 이야기가 아닌가도 싶다. 또한 민우라는 지나친 순결컴플렉스를 가진 인물을 등장시키고 미화함으로써 독자들을 비현실적인 환상적인 세계로 몰고간 혐의를 작가에 둘 수 있으리라. 하지만, 볼래 진정한 사랑이란 그렇 듯 순결하고 진실한 것을... 오히려 현태식의 사랑을 현실적이라 하여 사랑이라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사랑에 거짓을 섞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야 말로 거짓이요 환상이요 비현실인 것이다.
이 순간 아득한 기억 속에 민우를 떠올려 본다. 나의 젊은 기억들도... 그가 그랬듯 어느 골목 다혜의 집앞을 서성이며 혹시 있을 지도 모를 다혜의 모습을 찾아 본다. 동명의 영화에서 현태가 민우에게 던진 말이 생각 난다.
「너는 더 이상 지난 날의 피리 부는 소년이 아니야 ! 」
도대체 민우는 나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그는 어디로 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