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문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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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소재와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 사건을 일으키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몰라도 되는 게 아니라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마음에 들지 않을수록 더 정확하게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떤 마음에서 이런 소재를 선택했을까?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세상에 더 많은 악들이 활개를 칠 것 같아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염려하고 경계하는 마음으로 쓴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절절하게 다룰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전체 두 권 중에서 1권이다. 아직 확실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채 1권이 끝났다. 모든 일이 일어날 사건 쪽으로 집중하고 있는 것만 같다. 뭔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로 흐르는데, 바라지 않는 어떤 일이 벌어질 듯한데, 주인공은 점점 내가 기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려 가고 있고.


나쁜 마음 혹은 악의 기운,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해치고자 하는 의도는 선천적인 걸까, 후천적인 걸까. 이런 마음은 본바탕에 감춰져 있다가 솟는 것일까, 이런저런 환경에 의해 자라기도 하는 것일까. 최근 읽는 책들에서 이런 물음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꼭 다른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 내 안에도 잠재되어 있고 기회만 생기면 스멀스멀 피어나려고 꼼지락거리는 것 같은, 아니 어쩌면 이미 몇 번은 발휘했을 내 안의 악의 본성까지.


2권에서는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하니 괜찮다. (y에서 옮김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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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아직 따뜻하다 ㅣ 창비시선 174
이상국 지음 / 창비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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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촌스러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느끼고 있다. 이 말은 내가 도시스럽다거나 세련된 사람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어쩌면 나처럼 촌스러운 사람도 드물 정도로 난 어눌한 편이라고 해야 한다. 그럼에도 촌스러움이 좋다고 느끼는 것, 나는 사람이 촌스럽다는 것과 촌스러움을 좋아하는 일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나는 흙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었으므로 어떤 식물이나 동물도 키워 본 경험이 없다. 그렇다고 시설 좋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던 것도 아니므로 내 어린 시절은 참 삭막했다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놀 수 있었던 곳은 고작 학교 운동장일 뿐이었으며 어떠한 풀이나 곤충과도 친구가 되어 본 적은 없었다. 촌스러움도 전혀 모르고 그렇다고 도시생활의 혜택을 누리지도 못했던 내 어린 시절.

언젠가부터 그 촌스러움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던 내 어린 시절의 환경에 대해 억울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꽃 이름 하나, 풀이름 하나, 곤충 이름 하나도 변변하게 아는 게 없었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른 생명체에게 해로운 것인지 이로운 것인지도 모르고, 하다 못해 나 아닌 생명에 대한 관심조차 없이 살아왔던 것에 대해 누구에겐지 모를 원망의 마음이 생겨났던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정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웠던 것일까.

그러다가 이상국의 이 시집을 보면서 나는 내 속에 숨겨져 있던 촌스러움의 갈망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전까지는 일부러 찾아 읽어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던 시의 그림들이 이 시집 속에서 천천히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집'이 본래 우리에게 그런 것이 아닐까. 제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들어있음을 채 알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그 속을 깨닫게 되는 그런 것. '문을 닫지 못하고 다시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65p)는 언제나 따뜻한 '집'처럼. 이제는 내 속에서 늘 따뜻할 나의 촌스러움처럼. 지극히 촌스러워서 더욱 따뜻한 이 시집처럼. (y에서 옮김20011101)

[인상깊은구절]

슬픔도 꽃도 지천인데

산 내다버리고 오는 물처럼

누가 다시는 세상과 싸우지 않겠다며

늙은 소 같은 어둠 앞세우고 돌아오는데

다 안다 다 안다 하며

물소리가 따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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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ㅣ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1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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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작품이다. 책의 표지가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가을이라 내가 좀 싱숭생숭해졌나 보다.

 

책장은 잘 넘어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글은 잘 읽히지 않았다. 이 현상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이어졌다. 내가 즐겨 읽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는 서술방식을 가진 소설이었다. 나는 왜 등장인물의 독백 형태를 즐기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절대로 중얼중얼일 리가 없는 혼잣말 방식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만다.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좋다는 평이 많은 작품인 것을.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니얼도 엘리자베스도 책 바깥에서 더 자세하게 만났다. 주제는 주목할 만하다. 오늘날의 영국 사회, 영국과 이어져 있을 모든 세계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 멀어 보이는 우리 사정과도 이어져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 대한 관심을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도 드러냈던 것이겠지. 소설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작품으로서.

 

브렉시트, 이민, 난민, 정체성, 방랑...... 또 있다. 노인, 죽음, 사회적 소수자, 사랑 혹은 우정에 대하여. 세상 사는 문제가 어느 새 전 세계인들의 공통 과제로 압축되어 가는 것 같다. 이제는 나만 잘 살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라고 하는 것처럼. 이렇게 모자란 대로 이 소설을 품는다. (y에서 옮김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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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토리노를 달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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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 보고 싶어하는 것, 보기 위해 다른 뭔가를 시도하는 것, 끝내 보고 마는 것까지. 이것도, 이것도 우리가 가진 본능 중 하나일까? 그럴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오랜 기간, 누구나 할 것 없이 구경을 하러 떠돌아다닌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쉽게 말해 제 눈으로 봐야 위험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고, 위험하지 않다는 판단을 한 이후에는 또 얼마나 나를 안심시켜 주고 만족시켜 주는가에 따라 더 오래 구경하고 싶었을 테니.  

 

썩 유쾌한 말은 아니지만 구경 중에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만 미치지 않는다면 물 구경, 불 구경, 싸움 구경이 최고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영화가 그래서 흥행하는 것일 테다. 내 것이 아닌 재난, 내 것이 아닌 싸움이니까. 갈등도 그런 것일까. 나만 싸우지 않는다면, 남들 싸움은 재미를 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소설도 드라마도 스포츠도 전쟁까지도 한 겹 유리벽만 놓인다면, 내놓고 즐기고 숨긴 채 즐기고 그렇게 된 걸까, 우리 인간이라는 종들은.

 

올림픽 경기를 구경하겠다고 올림픽이 열리는 나라까지 제 땅으로부터 지구 반 바퀴 돌아가는 사람이 있다. 예상 외로 많을 것이다. 직접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구경만 하는 것 뿐일 텐데, 그 구경을 위해 돈도 시간도 체력도 들이는 구경꾼들. 나처럼 못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단하다 싶을 것인데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또 거기에 그만한 명목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취미든 꿈이든 욕망이든.   

 

이 작가의 에세이는 처음 읽은 셈이다. 에세이의 일반적인 형식이 아니라서 절반은 소설로 읽힌다. 고양이가 말을 하고 사람처럼 구니까. 흠, 이런 형식으로 독백체를 확장하면 재미있는 글쓰기가 될 듯도 하다.(학생들에게 글쓰기를 하라고 할 때 시도해 볼 만한 형식이다, 좋아하는 사물을 의인화하여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글을 써 보라고.)

 

동계 올림픽은 하계 올림픽보다 대중적이지 않은 것도 맞다. 책을 읽으면서 동계 스포츠와 관련된 많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작가가 하려고 하는 말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 것은 없었지만. 어떤 대상에 대한 작가의 애정, 그게 사물이든 사람이든 동계 스포츠든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을 대상이 있다는 것은 없는 것보다 분명히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는 게 그만큼 풍요로워지니까.    

 

앞으로 이 작가가 동계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작품을 써 낸다면 훨씬 친숙해지겠구나 싶다. 그러면 된 게 아니겠는가. (y에서 옮김201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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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되찾다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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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을 외우지는 못했으나 이 작가의 글을 연달아 읽고 있다. 이러고 싶을 만큼 흥미를 느끼고 있는데 읽고 난 후의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다. 읽는 재미는 있으나 남는 느낌이 거북하다고 해야 하나? 글이나 작가의 문제가 아니라 다루고 있는 현실 쪽에서 받는 거북함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왜 이런가, 사람은 왜 이런가, 우리는 모두 왜 이렇게 사나 등등등.


표지는 산뜻하고 제목도 가벼운데 글의 내용은 발랄하지 않다.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모의를 하고 이런 행동을 하다니. 어른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경고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아이들이 바르게 이롭게 자라지 못한다면 어떤 어른이 되고 말 것인가. 지금의 사회 문제를 앞선 세대가 남긴 과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과 상통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불안해지고 두려워진다.


작가의 전개 솜씨는 매력적이다. 계속 찾아 읽고 싶을 만큼. 글을 읽어도 안 읽어도 시간은 흐를 테니 읽으면서 보내는 것이 더 나은 일이 아니겠나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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