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블린 사람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7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종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이 책으로 나는 먼먼 나라의 도시 하나를 얻는다. 더블린, 가 보고 싶다고 열망하게 되는, 그러나 가게 될 것 같지는 않은, 마음에 드는 도시라고, 좋아하는 도시라고 말하게 될.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다. 도시 하나를 얻다니. 더블린을 배경으로 삼은 글을 몇 번 봤다. 호감을 가졌고 이 책으로 굳힌다.
작가가 쓴 율리시스를 읽어 보려다가 포기하고 대신 잡은 책이다. 더블린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1900년대 초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들인데 나는 시공간을 초월하고 읽었다. 지금 여기,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누추한 모습과 바꿔 놓는다고 해도 전혀 달라질 게 없을 것만 같은 모습이다. 사람도, 집도, 인물 간의 갈등도, 각 인물들이 꿈꾸는 이상향도, 인물들이 지닌 내면의 소박한 편견이나 허물까지도.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자각, 다 조금씩 모자라거나 넘쳐서 스스로를 고생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에 불쌍하다가도 괘씸해지고 마는 이중성까지 느끼게 된다. 우리는 나아질 수 없는 존재인 것만 같다는 절망마저 친숙해졌으니. 이미 백 년이나 지났으나 여전한 우리.
더블린에 대해 인터넷 자료로 찾아보았다. 영국과의 역사, 영국과의 관계, 영국에 대한 아일랜드인들의 애증 등 어딘가 우리네 처지와 비슷한 점이 있다. 약자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했을 테니, 국가 차원에서도 험난한 시절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일랜드 기근은 얼마나 혹독한 사건이었던가. 세상의 일부를 열고 얻는 좋은 방법 하나, 훌륭한 소설을 읽는다는 생각이 단단해졌다.
책을 읽은 후에 동네를 걸었다.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고 길고양이를 보고 가게의 간판을 읽고 빈 가게에 허전함을 느꼈다. 어쩐지 모든 풍경이 전과 많이 달라 보였다. 더블린이라는 이름 대신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이름을 넣고 내가 방금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낱낱이 담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생각만 한 것이지.
아무 특별할 것이 없는 보통의 사람들,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내내 버티는 사람들, 서로 눈치 보고 서로 미워하면서도 서로를 견디는 사람들, 더 나은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은데도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 하찮은 위선과 부질없는 욕망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고 제 삶을 망가뜨리면서도 아닌 척 하면서 허영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 어쩌자고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물리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내용으로는 내 취향이 전혀 아니었는데. 작가의 글솜씨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율리시스는 아직 힘들겠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으로 넘어가 보나 어쩌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