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배운다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6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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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미 지나온 시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경험만큼의 지혜가 있게 마련이다. 노인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도 그런 뜻에서 나온 것일 텐데. 사랑이라는 감정도 비슷하게 적용될 것 같다.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젊은 사랑을 젊은이들만큼 간절하게 여기지 않는 것도. 로라의 나이든 친구 존처럼 충고를 해 주는 사람의 말은 듣는 게 좋은데.


사랑, 그래, 배워야지. 주는 법도 받는 법도. 이걸 잘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면 대체로 문제를 만들곤 하더란 말이지. 작고 사소한 문제라면 그렇게저렇게 넘겨 갈 수도 있는데 어떤 이의 어떤 문제는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에게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그 사회의 뿌리부터 흔들어 버리곤 하기도 하니. 못 배운 사랑 때문에 불행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는 일 또한 얼마나 불행해지는 일인지 모르겠다.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명확하지 않지만 그다지 구별해야 할 필요성은 못 느꼈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책임을 느낀다고 했는데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는 마음의 시달림이 더 강하게 와 닿았으니까. 그런 과정을 추리의 기법으로 읽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겠고. 나는 추리 대신에 철학으로 읽었다.  


1부의 로라와 2부의 셜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이었다. 이 작품이 정녕 이 작가의 작품이란 말인가 의심하면서 읽었다. 마침내 3부, 사건을 뛰어넘는 전개에 이르러 감탄했다. 이렇게 펼쳐 나가려고 그렇게 암담하고 지루하게 끌었던 것이구나 싶었다. 루엘린을 통해 보여 주는 종교적인 서술 부분에서는 그다지 공감을 하지 못했지만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고려해 볼 때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종교 자체가 아니라 종교를 다루는 태도에 대해서) 특히 그를 중심으로 로라와 셜리의 삶을 요약하는 대목은 명쾌하기도 했고.


사랑,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삶, 어떻게 사는 것일까'만큼이나 답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다 다르니까. 다 다르고 다 답이고. 내 답이 네 답이 되지는 못하고 네 답 또한 내 답이 될 수 없다는 그것 하나만 맞는 것 같고. 그러니 아무리 깊은 사랑이라고 해도 강요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부모가 자식에게든 연인이 연인에게든 형제자매 사이라고 해도.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는 것만이 힌트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배울 수 있는 사랑은 그것밖에 없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 보게 되는데. 이 작가는 이제 나를 이런 경지로 이끌어 가는구나. 잘 읽었다.  (y에서 옮김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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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골트 이야기
윌리엄 트레버, 정영목 / 한겨레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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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남의 이야기다. 남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란, 호기심이란 뭘까? 남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남일처럼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기막힌 사연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너나 나나 다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를 끌어안게 되는 것?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서로서로 싸우지 않게 될 때까지? 그래,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소설에 그런 힘이 담겨 있다면 정말 좋겠다.


루시 골트. 한 여자 어린이가 노인이 될 때까지의 삶의 여정을 담고 있다. 여정이라니, 이것도 여정이라고 할 수 있나. 태어난 집에서 끝내 벗어나지 않고 오로지 기다리기만 한 삶인데. 그 기다림마저 절반은 무너지고 말았던 삶인데. 자신에 대한 아무런 의욕도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고, 그저 버티고 견디며 기다리기만 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나. 소설을 보면 이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살았다는 사람의 사연을 드물게나마 들어 본 적도 있는 것 같고.


살면서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아주 강렬하게 바라는 일들이 있다. 그런데 내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싶은 일들은 남들에게도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다. 그건 사람에게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이나 무수한 사건사고들, 불행들, 우연이든 아니든, 그 때 그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로 겪게 되는, 그로 인해 남은 생이 송두리째 뒤틀려버리고 마는, 사건의 당사자 한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인들 모두에게 안타깝기 그지없는 영향을 주고 마는 그런 일들.        


소설에는 슬픈 사람들만 나온다. 슬프게 된 배경을 굳이 따져 보자면 잉글랜드와 얽힌 아일랜드의 불행한 역사가 있다. 여기에 개인의 삶이 온전히 개인의 영역으로만 잴 수 없는 근거가 있다. 언제 어느 땅에서 태어나는가 하는 것, 가까이 우리네 처지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사람, 남북 분단 시기에 태어난 사람, 남쪽에서 혹은 북쪽에서 태어난 사람......


루시 골트는 다정한 부모님 아래 태어났으나 잉글랜드와 아일랜드가 심한 갈등을 겪던 1921년을 보내야 했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시기를 지내야 했다. 누구나 루시 골트처럼 되지는 않았으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루시 골트처럼 될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리고 루시 골트는 그렇게 한결같이 한 지점에 멈춘 채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고 살아 버텨내었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살 수도 있나 싶을 정도로 격렬한 의지로, 아무 시도도 하지 않으면서.  


그러니 남의 생에는 함부로 참견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남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제 각각의 간절함과 열렬함과 숭고함이 있음을 알겠다. 행운이나 행복은 그 다음에 오는 것들임. 루시 골트와 호라한의 평생을 지배했던 죄책감이, 온전히 그들의 잘못만으로 생긴 게 아니어서, 그들의 한을 생각하니 가엾어서 못 견디겠다. 책이라도 어루만져야겠다. (y에서 옮김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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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시간 -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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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하게 되는 생각인데, 어떻게 이런 소재를 붙잡을 수 있을까 하는 것. 정말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는 순간들, 특별히 기억할 만한 사건이 없어 맹숨맹숭하게 흘러 넘기는 순간들을 그림으로 잡아 놓고 있다. 그리고는 머물게 한다. 쉬이 놓쳐 버린 소중한 삶의 순간들 안으로 불러 들여서.

 

내가 차를 좋아했던가? 혹 지금은 차를 좋아하나? 커피든 홍차든 녹차든 쥬스든. 흠, 일상적으로 마시기는 하는 것 같은데 막상 좋아한다고 하는 느낌은 없다. 한때 나도 차를 마시는 우아한 습관 정도 가져보리라 시도도 해 보았지만 실패했고, 믹스 커피 대신에 커피콩도 갈아서 원두커피로 마셔 보고도 있지만 그것도 귀찮다 싶고. 게다가 디저트라니(나는 디저트를 거의 먹지 않는 쪽이다, 이유는 이미 배가 부르니까).

 

그럼에도 차를 마시는 시간은, 이런 시간에 대해서만큼은 욕심이 난다. 여유롭다. 잠시 생각을 내려 놓고 주위를, 자신을 살피는 여유가 좋다. 다른 사람들을 살펴 보는 재미도 은근하고, 내가 나를 돌아보는 관심도 기특해진다. 지금 나는 어느 만큼 와 있나, 앞으로 어디로 가려고 하나, 조심해야 할 것과 부추겨야 할 것들을 짚어 보는 시간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리 어렵지 않은데도 잘 만들지 못하는 시간, 나는 오늘 나에게 이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뭘 마시지? 흠, 딱히 마시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이 어려움, 그래서 번번이 포기하고 말았거늘. (y에서 옮김2017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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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필로소퍼 2025 32호 - Vol 32 : 나는 연결되었다. 고로 존재한다 ㅣ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32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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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잡지를 언제까지 구해 읽게 될까. 이번 호까지만 보고 그만둘까? 계속 읽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를 안겨 주나? 사소한 허영? 그럴 듯한 지적 변명? 보잘 것 없는 명분? 잡지를 읽는 마음이 늘 스산하다. 품격 있는 글에 비해 내 처지나 내 주변의 상황이 나아지지 못한 채로 민망하기만 하여. 그래도 다음 호를 구해 놓았으니 그 책까지는 봐야겠다.


    이번 호의 주제는 연결이다. 나-너-우리. 글쎄? 회의적이 된다. 우리가 정말 연결되어 있다고? 요즘 들어 점점 더 부정적으로 보이는 세상이다. 과연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우리 세상은, 우리 지구는, 우리 인간은? 물음만 떠올려도 답답해진다. 이럴 바에는 우리 모두 각자의 섬으로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 일이겠지. 서로 믿어야 하고 서로 격려해야 하고 서로 이해해야 하고 서로 도와야 하고 서로 받아주어야 하는 일이겠지. 아득하고 또 아득하더라도, 우리 세대에 안 된다면 다음 세대에 기대서라도. 길지 않은 글을 한 편씩 읽으면서 나는 혼자 무너지고 있는 마음을 잡아 세운다. 내가 뭐라고 싶다가도 나라도 제대로 해 보는 거지 하는 마음을. 


    읽는 재미는? 글쎄, 이번 호는 별로다. 그럼에도 어느 한 편 소홀하게 넘기지 못하겠다. 의무든 성의든 책값 때문이든 나는 읽고 생각하고 금방 잊는다. 어느 한 동작의 태도라도 읽기 전과 다르게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간절해지는 세상이다.




    오늘날 인터넷의 문제는 너무 깊이 연결되어서가 아니라 악의적인 소수의 영향력이 너무 부풀려졌다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인간이 겪는 거의 모든 갈등이 그렇듯 말이다. - P12

    진정한 연결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또는 새로운 경험과 한 번에 하나씩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보다 먼저 존재한, 그리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주변의 모든 것과 이어진다는 의미다. - P16

    사랑과 죽음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은 우리가 필멸의 존재임을, 그러나 결코 혼자가 아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분노, 폭력, 혐오의 본질과 뿌리를 연구하는 것은 아마도 조금 더 현명해지기 위해서다. 이 세상을 풍부하고 온당하게 성찰하는 것은 여러 다양한 생각과 가능성과 목소리를 포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유익할 목적과 행동을 최선을 다해 좇기 위해서다. - P32

    연민이 "네 마음 이해해"라고 말하고, 공감이 "너와 같은 마음이야"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동정은 "실컷 울어. 나 어디 안 가니까"라고 말하는 것이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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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리시아의 여정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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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같으면 그러하지 않았을, 나 같아도 그러했을, 수없이 이어지는 선택의 순간들에 내린 결정과 행동의 소용돌이. 펠리시아가 끌고 가는 소설 속 여정은 내내 나를 어지럽히고 괴롭히고 안달나게 했다. 그럼에도 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건 순전히 작가의 글이 품고 있는 매력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이 책을 이토록 천천히 끈질기게 읽어낸 이유를 모르겠다.


    예전에 한창 열심히 본 미국 범죄수사 드라마인 크리미널마인드의 장면들이 소설의 장면과 겹치면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드라마의 배경은 미국이고 소설의 배경은 영국이며, 비슷한 범죄나 위험한 일은 세상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인데,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볼 수 있을 만한 일이라 더 마음을 놓을 수 없었으리라. 저러면 안 되는데, 저래서는 안 되는데, 온통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읊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뒤따라가는 펠리시아의 여정. 이런 여행, 내가 참 싫어하는 건데. 이렇게 하여 펠리시아라는 이름은 이제 나에게 특별한 고유명사로 기억될 것 같다.


    소설 문체는 줄곧 현재형으로 이어진다. 갑작스럽고 커다란 충격을 주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게 아닌데도 긴장감이 떠나지 않는다. 뭔 일이 생길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언제 어느 순간에? 게다가 얼마나 정밀하고 촘촘하게 인물들의 행동을 그려 놓았던지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거리를, 집을, 카페를, 자동차 안을... 등등. 아니,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순간들로 찍히고 기억으로 남는다.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어느 한 대목도 허술하지 않게.  


    힐디치가 펠리시아에게 늘어 놓는 거짓말은 참으로 감탄스럽다. 이만한 거짓말이라면, 이렇게성실하고 치밀한 거짓말이라면, 그리고 행동마저 그러하다면, 이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나는 괜찮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해지는데. 살면서 정녕 힐디치 같은 사람만큼은 만나지 말아야 하는 건데,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하게 굴면서 나쁜 속을 감추는 힐디치들이 우리 주변에 또 얼마나 많이 흩어져 있을 것인지. 


    사람은 정말 착할까? 아니면 잠깐만 착했다가 다시 착하지 않은 쪽으로 돌아서서 오래 머무는 것일까? 좋은 소설을 읽었는데 읽은 마음의 뒤는 내내 어지럽기만 하구나. (y에서 옮김20210703)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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