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골트 이야기
윌리엄 트레버, 정영목 / 한겨레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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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남의 이야기다. 남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란, 호기심이란 뭘까? 남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남일처럼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기막힌 사연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너나 나나 다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를 끌어안게 되는 것?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서로서로 싸우지 않게 될 때까지? 그래,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소설에 그런 힘이 담겨 있다면 정말 좋겠다.


루시 골트. 한 여자 어린이가 노인이 될 때까지의 삶의 여정을 담고 있다. 여정이라니, 이것도 여정이라고 할 수 있나. 태어난 집에서 끝내 벗어나지 않고 오로지 기다리기만 한 삶인데. 그 기다림마저 절반은 무너지고 말았던 삶인데. 자신에 대한 아무런 의욕도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고, 그저 버티고 견디며 기다리기만 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나. 소설을 보면 이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살았다는 사람의 사연을 드물게나마 들어 본 적도 있는 것 같고.


살면서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아주 강렬하게 바라는 일들이 있다. 그런데 내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싶은 일들은 남들에게도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다. 그건 사람에게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이나 무수한 사건사고들, 불행들, 우연이든 아니든, 그 때 그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로 겪게 되는, 그로 인해 남은 생이 송두리째 뒤틀려버리고 마는, 사건의 당사자 한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인들 모두에게 안타깝기 그지없는 영향을 주고 마는 그런 일들.        


소설에는 슬픈 사람들만 나온다. 슬프게 된 배경을 굳이 따져 보자면 잉글랜드와 얽힌 아일랜드의 불행한 역사가 있다. 여기에 개인의 삶이 온전히 개인의 영역으로만 잴 수 없는 근거가 있다. 언제 어느 땅에서 태어나는가 하는 것, 가까이 우리네 처지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사람, 남북 분단 시기에 태어난 사람, 남쪽에서 혹은 북쪽에서 태어난 사람......


루시 골트는 다정한 부모님 아래 태어났으나 잉글랜드와 아일랜드가 심한 갈등을 겪던 1921년을 보내야 했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시기를 지내야 했다. 누구나 루시 골트처럼 되지는 않았으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루시 골트처럼 될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리고 루시 골트는 그렇게 한결같이 한 지점에 멈춘 채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고 살아 버텨내었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살 수도 있나 싶을 정도로 격렬한 의지로, 아무 시도도 하지 않으면서.  


그러니 남의 생에는 함부로 참견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남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제 각각의 간절함과 열렬함과 숭고함이 있음을 알겠다. 행운이나 행복은 그 다음에 오는 것들임. 루시 골트와 호라한의 평생을 지배했던 죄책감이, 온전히 그들의 잘못만으로 생긴 게 아니어서, 그들의 한을 생각하니 가엾어서 못 견디겠다. 책이라도 어루만져야겠다. (y에서 옮김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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