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1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기억력도 관찰력도 없는 나로서는 퍽 어이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뭐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 화도 안 나고 따로 절망스럽지도 않고, 그래, '바로 이런 게 나의 소소한 행복이지.'라고 받아들이는 자신을 본다. 흠, 꽤 많이 너그러워졌단 말이야.  


제목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그러니 의심이 살짝이라도 들었다면 주문하기 전에 확인을 했을 것이다. 작가가 새 만화를 낸 줄로만 알았지. 이전에 나온 책을 출판사가 바뀌었다고 새로 낸 것처럼 등장할 줄 알았나. 책을 받고 4장까지 읽다가 아무래도 본 듯한, 그제서야 치에코 씨의 남편의 직업이 구두 수선공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던 나를 확인하는 순간의 당황스러움. 마스다 미리의 책이 있는 책장으로 갔다. 1권부터 4권까지 나란히 꽂혀 있는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이라니.





 

두 권을 나란히 놓고 본다. 흐흐. 이건 참, 책을 모으는 것도 아니고. 출판사 이름만 다르고 겉부터 속까지 똑같다. 이렇게 된 바에야 한번 더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속을 펼쳐 본다. 정말로 세세한 내용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으니까. 신기하게도 치에코 씨 부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알콩달콩이다. 내가 나한테 무안해서 옛 책의 리뷰를 찾아 읽지도 못하겠다. 


이런 이벤트, 이 환한 봄날에 선물처럼 받은 것으로 여기겠다. 2권, 3권, 4권은 더 안 사지 않겠는가. (y에서 옮김20210409)  


만화책의 묘미는 우선 그림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인가, 내가 빠져드는 그림인가. 일반적으로 잘 그렸다는 평가말고, 오로지 내 기준으로만 받아들이는 그림.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글과 작가의 생각. 괜찮았다, 이 작가의 그림과 글.


행복이 거창하고 거대한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평화와 안정,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정과 존중, 그 이상이 필요 없는 감정이리라. 이 만화에 등장하는 치에코와 사쿠짱은 그 속에 있는 짝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기대면서 서로의 내일을 기대하고 도와주는 주인공들. 부러울 만한 관계. 


그림이 화려하지 않아서, 단순하고 소박해서 좋다. 이렇게 편하고 간단해 보이게 그려도 팬이 생길 수 있구나. 지겹거나 지루하지 않은 단순한 매력. (y에서 옮김201401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슬픔이 나를 깨운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90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갖고 있는 시집을 또 샀다. 무엇보다 내 리뷰가 없었고, 읽었다는 기억은 당연히 없고, 그런데 이 시인의 시집을 갖고 싶기는 하고, 사고 다시 보니 이미 책장에 있다. 어떤 사람은 좋아하는 가수의 시디를 여러 장 산다고도 하던데, 이참에 나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기로 한다. 고작 시집 두 권이라 민망한 마음도 들지만.


리뷰는 없어도 시집은 있으니 오래 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새로 구한 시집으로 새로 읽는다. 시집의 장점 중 하나가 거듭 읽어도 거듭 새로워진다는 것. 제목처럼 슬플 때는 더더욱.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하찮은 슬픔 몇 조각이 나를 좀 깨워 주기를 감히 바라면서.


시집 초판본은 1990년. 책장에 꽂혀 있는 시집이 초판본이다. 이번에 내가 산 것은 2023년판. 모르고 있다가 숨어 있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다. 그래, 그때 내가 이 시집을 샀구나, 삭막하기만 했던 젊은 어느 날이었을 텐데.



오랜 시간을 건너 새로 읽는 시들은 썩 편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의 어떤 감정도 건들이지 않았다. 슬픔도 평온함도 무너짐까지도. 이런 날도, 이런 시집도, 이런 생도 있는 것이다. 다 내 마음에 들 수는 없지 않겠나.

나는 아직 무사히 쓸쓸하고
내 쓸쓸함도 무사하다네 - P17

홀연히 너를 만나도 좋겠는데
무연하기만 해라, 우리는.
나는 콧노래를 부른다.
거울을 향해 걷는 듯
끊임없이 나인 듯한 것들이
마주 걸어와
나를 투과한다. - P52

햇빛이 오래 앉았다 간 자리
바람이 오래 만지작거린 하늘 - P60

어디로 갈까, 보고 싶은 사람도 없고
가고 싶은 데도 없다 - P1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 오랜만에 여행을 가다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등장인물들의 나이대가 흥미롭다. 아버지는 70세, 어머니는 69세, 직장에 다니는 딸은 40세. 같이 산다. 부모는 딸에게 결혼을 하라고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함께 살면서 서로를 챙긴다. 이제는 거북하지 않아 보이는 가족의 한 모습이다.

 

셋이서 여행을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만화로 여겼는데, 여행 에피소드는 가끔 나온다. 노부부의 여행이야기와 딸의 홀로 여행 이야기. 생각만큼 쓸쓸하지 않고 도리어 아늑해 보이는 생활의 한 형태. 큰 듯 작은 듯 이렇게 바뀌어 가나 보다. 가족의 모습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19가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들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상황 이후로 우울한 말들을 보고 듣는다. 전세계가 고령 인구 문제로 고민하던 차에 한 가지 해결방법이 되고 있다는 것. 어떤 나라들에서는 일부러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까지. 장수가 더 이상 축복이 되지 못한다는 세상에서 마음 퍽 무거워지는 이야기들이다.

 

노인이 된 부모님과 결혼하지 않은 자녀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 우리 현실에서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 곧 될 것이다.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쉽지 않고,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죽음을 두고 나이만 자꾸 먹는 것도 고단하고, 사이에서 부양할 의무만 늘어나는 듯한 기분에 시달리는 청춘도 고달프고. 살 만한 세상에 대한 전망이 필요한 시대다.

 

여행도 이제는 매력이 없어지고 말았다. (y에서 옮김202004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장미와 주목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3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 소설이 아니지만 추리 소설이라고 해도 썩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은 구성이다.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를 궁리하지 않고서는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소설이기에. 제목이 인상적이다. 짧은 시간 피었다 지는 장미나 천 년을 산다는 주목이나 같은 값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 그럴 것 같다. 저마다의 생은 저마다의 시간만큼 귀중할 것이니 짧고 길고는 문제가 아닐지도.

 

이 작가의 글은 재미로만 읽어 나가다가도 금방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 속 인물 중 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럴 만한 사람이 없으면 관찰자가 되어서라도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혹은 어떻게 했던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시간적인 거리도 공간적인 거리도 아득히 멀기만 한 곳에서 남긴 이야기를 읽으며 골몰해 본다.

 

화자는 사고로 장애인이 된 휴 노리스다. 그의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고 때로 관여하면서 소설은 전개된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교류하는 존 게이브리얼과 관심을 갖고 지켜 보는 이사벨라. 화자 노리스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통해 그들과 스스로를 끝없이 탐색한다. 우리 모두 그러면서 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해라는 문제가 온다. 이해하는가? 이해할 수 있는가? 이해했는가? 이해한다고 믿었던가? 그때는 이해했으나 지금은 이해가 안 되는가? 이해하는 일이라는 게 이토록 변덕스러운 노릇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믿고 지낼 수 있는 것일까? 다들 같은 수준이니까 그냥 그러고 사는 것일까? 이해했다가 안 했다가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 고마웠다가 실망했다가 그렇게? 

 

글쎄, 이 작가의 작품을 거듭 읽으면서 해 본 생각인데 작가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선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있는 듯하다. 아니면 선하지 않은, 악한 본성을 더 잘 그려 내었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범죄에 관한 추리 소설이 주요 작품이다 보니 특별히 범인의 특성에 주목하고자 한 것을 이렇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번번이 인간의 나쁜 의도에 대한 뛰어난 서술을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정치도 사랑도 이 작품에서는 헛되기만 하다. 헛된 일에 목숨을 거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장미의 순간이나 주목의 순간만큼 내 생의 순간도 나 아닌 이의 순간도 똑같이 귀하고 의미 있다는 말, 깊이 새겨 본다. (y에서 옮김201907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딸은 딸이다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숨김 없이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도 능력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남의 마음을 그려 내는 것보다 내 마음을 그려 내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추측하는 것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둘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추측하는 게 좀 덜 힘들 것 같다. 내 마음을 내가 지켜 보는 일, 제대로 한다면 이게 참 곤란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다.


작가가 보여 주는 여자의 마음, 이번 책은 엄마와 딸의 마음을 그려 내고 있다. 엄마는 엄마라서, 딸은 딸이라서, 친한 듯 친하지 않을 수도 있는 관계. 나는 이런 사정이 우리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데 더 놀랐다. 이런 마음의 지도도 인간의 역사에서는 보편적인 모습이었구나, 우리나라나 영국이나 지금이나 옛날이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나 엄마와 딸의 관계나 참 묘하게도 신경이 쓰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다는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가까운 가족끼리도 이렇게 엄청난 갈등을 품고 있을 수 있다니. 


질투라는 감정이 보다 근원적인 문제인 것일까. 내가 제일 잘나고 싶은 마음, 내가 제일 먼저이고 싶은 마음, 내가 제일 대접받고 싶은 마음 따위들. 그래서 질투에 사로잡히고 말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일까. 엄마든 딸이든, 혹은 세상의 그 누가 되든. 심지어 어떤 이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질투하기도 하니까.  


사는 게 편하니까,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까, 이런 문제로 갈등을 겪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이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체로 가진 쪽 사람들이라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는 상황으로 등장한다. 그러니 미묘한 심리 다툼이 가능한 것일 테다. 네가 날 어떻게 여기느냐, 네가 날 어떻게 대하느냐에 온 신경을 기울이면서 그에 맞춰 대응하려고 하니 자연히 힘겨루기가 되는 모양새다. 이 소설의 특징은 이걸 엄마와 딸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고. 


나도 한번 생각해 본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딸을.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내 처지를. 소설 속 상황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그런가 공감대를 못 찾겠다. 아니면 먹고 사는 문제가 있어서 우리 사이를 방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이렇게 적나라하게 인간의 심성을 보여 주는 작가의 글에는 감탄하게 된다. 아무렴, 이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y에서 옮김201902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