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란 - 오정희 짦은 소설집
오정희 지음 / 시공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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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퍽 수월하다. 한 편 한 편의 분량이 짧은 소설들이니까. 그러나 읽고 나서 금방 잊어버리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도 되는 글들이 아니다. 읽은 글이 다음 글을 부르고 다음 글이 앞에 읽은 글과 이어진다는 것을 곧 느낀다. 아주 상쾌하거나 경쾌한 느낌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보다는 반대쪽의 감정들이 줄지어 일어난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불쾌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가 다시 약간 두근거렸다가, 나 자신을 돌아보든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든 대상을 향하는 마음이 비슷해진다. 우리들, 이대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하기야 요즘 시절에는 이만큼의 보통의 삶도 쉽지 않다고들 하지만. 소설 속 화자들의 나이를 지나온 내 입장에서는 소설 속에서 보이는 생활 모습들이, 이만큼의 삶이 보통 정도는 되리라 여기고 있지만, 누군가 아니라고 하면 또 아닌 것이니까. 그래서 삶은 결국 개별적인 것이고 누구도 같은 모양으로 꾸려 갈 수 없는 것이며 내 삶과 남의 삶을 비교도 평가도 할 수 없는 것이리라. 


책 속 작품 몇몇은 기억에 남아 있다. 교과서에 실려 있던 작품(소음공해, 돼지꿈)도 있고 어딘가에서 인연을 맺어 읽었던 것이리라. 그때 받았던 인상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아직도 여전히 좋아서, 좋은 글이란 이런 인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각자 짚어 보면서도 서로를 아우르는, 아우르며 살아갈 방향을 가늠해 보는, 비록 짧은 편편의 글들이지만 작으나마 삶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도록 해 주는 글들. 크고 긴 것들에게만 위대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까지도.  


자녀를 다 키운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독자로서, 글쓴이의 의도를 내내 궁리해 본다. 온전히 내 것으로 돌아와 고이는 크고 작은 문제들.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친구 사이, 이웃 사이, 손님과 주인 사이 등등에서 빚어지는 생활의 온갖 조각들. 늘 그래왔듯이 답은 없고, 더 좋은 쪽으로 더 행복한 쪽으로 더 함께 하는 쪽으로 머리를 기울일 수밖에 없겠다.


사소함에서 보석 같은 반짝임을 찾아 얻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y에서 옮김20220905)



'Y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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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4 - 완결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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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씨와 사쿠짱은 꽤 괜찮은 부부 모델이다. 이렇게 온화하게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면서 함께 살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될지, 만화라서 가능한 것인지, 내가 잘 몰라서 그럴 뿐 많은 부부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을 가볍게 해 본다. 실제의 삶에서는 이 만화 속 부부보다 훨씬 속좁고 철없는 두 사람이 아웅다웅 투닥거리며 사는 날이 많아 보이니까.(남들 말할 것도 없이 나의 경우부터)


예쁜 모습 보여 주고 있어서 좋다. 둘이서 맛있는 것 찾아 먹으러 다니고 기념품도 사고 소소한 일상을 소중하게 보내고 있는 모습을 단순한 그림으로 보고 있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가 바라는 게 그리 크고 위대한 게 아닌데, 이런 책을 보고 있으면 알게 된다. 크지 않다고 생각했던 욕심조차 마냥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님을.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을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해 주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을 나 또한 주저 없이 함께 하는 것까지. 나랑 완전히 다른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고 아껴줄 수 있으면 이렇게 되려나. 또 그게 일시적인 게 아니라 오래오래 지속되려면 서로서로 얼마나 마음 써야 할 것인지.


작가의 이름을 보고, 보는 만화다. (y에서 옮김201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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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봄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4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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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서전 같은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 속 인물인 셀리아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인 모양인데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지는 모르겠다. 굳이 그걸 확인하자는 의도가 없이 읽어도 좋았고 글 자체만으로도 작가의 혼란스러웠을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독자로서 이러면 된 거지.

 

소설가는, 소설가 중에 어떤 소설가들은 운명처럼 소설을 쓸 자질을 받고 태어나나 보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게 재미있다고 여기는 사람,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지어 낼 줄 아는 사람, 이야기를 짓는 게 억지로 해내는 일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술술 풀려 나온다고 여기는 사람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오랜 세월을 이야기만 만들어 내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 속 셀리아처럼, 그리하여 결국은 이 작가처럼.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나 행동을 글로 묘사하는 것도 큰 재주일 것이다. 나는 이게 참 쉽지 않던데, 관찰 자체가 서투르고 기억력마저 떨어지다 보니 얼마 전에 본 사람을 떠올리는 것도 안 되곤 하는데, 이런 일을 잘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해 보인다. 내가 못하니까 이런 내용을 묘사하는 글에 더 쉽게 빠져드는 것도 있을 것 같고. 사람을 탐구하는 일만큼 새로우면서 끝이 없을 일도 없겠다.

 

주어진 소명을 잘 받아들이고 주어진 능력을 잘 발휘하면서 살아간다면 본인에게도 주위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이 작가가 자신의 능력을 잘 키워서 글로 써 준 덕분에 재미있게 읽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 될 것이다. 젊어서 한때 불행한 일을 겪기는 했겠지만 그 또한 잘 이겨내었을 것이고, 사람 사는 모습이라는 게 이쯤 되면 다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게 되는 것일 테지. 

 

사람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 이건 정말 가능한 일일까. 나는 지금도 내가 몰랐던 나의 새로운 면을 느끼곤 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 말해 무엇하랴. 안다고 했던 것도 아는 게 아닐 수도 있고, 이해한다고 여겼던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이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이라 도리어 더 살만한 세상인가 싶기도 하고. 모르겠다. 모를 게 사람 마음이고 사람 일이구나. (y에서 옮김201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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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3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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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행복이라는 게 거창하고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온다고 들었다. 별다른 걱정이 없는 것도 행복일 수 있고, 어제와 오늘이 같은 것도 행복일 수 있고,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라는 예측만으로도 행복으로 느껴야 하리라는 것. 나도 그런 나이에 이른 것일까,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작가의 책을 어지간히 읽은 셈이다. 작가의 성향에도 익숙해졌고 가치관에도 공감을 많이 하는 편이라 특별히 색다른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그래도 읽는 내내 좋았다. 이렇게 작은 순간을, 이렇게 사소한 기억을, 이렇게 평범한 고마움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니. 나는 내 생에 거만했다는 반성이 저절로 일었다.


수없이 되풀이해 보는 일이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 고마움을 느끼고 행복을 느껴야 할 순간들은 참으로 많다. 지금 아프지 않은 것,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다는 것, 이 책 다음에 읽을 책이 있다는 것, 읽고 싶은 책을 살 돈이 있다는 것, 점심 때 무엇을 먹을까 고민해도 괜찮다는 것, 가족이 있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현재로서는 지진이 나서 국가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네팔을 떠올리기만 해도 내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것인지.(보편적인 공감대 형성에서 벗어나 있는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내 한계로서의 다행스러움으로)


그리고 이 마음의 여유를 내 밖으로 돌려서 살펴야 할 것이다. 작은 실천이라도, 작은 마음씀씀이라도, 내 삶에 주어진 고마운 여운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받은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y에서 옮김201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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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2 - 그녀는 카페오레 꿈을 꾼다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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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니까 재미있는 갈등 구조가 되는데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오해를 하고 갈등을 겪는 일이 현실에는 많이 있다. 그렇다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다 알아낼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덜 안다고 오해가 안 생기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사건에서 위험한 사고까지 더러 겪다 보니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더 든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모르면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 


화자 아오야마는 탈레랑 커피점의 바리스타인 미호시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대놓고 이 호감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2권에서는 미호시의 자매인 미소라가 등장한다.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들이 서로 간의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과 더불어 절묘하게 이어진다. 커피에 대한 여러 종류의 정보들은 덤으로 주어지고 있고. 이런 저런 커피들을 이야기를 따라 다니면서 얼마나 자주 마신 느낌인지. 


소설의 구성 면에서 이런 혼합적인 방법이 내게는 퍽 매력적이다. 관심이 생기는 소재 하나와 이를 바탕으로 이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 커피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인간들의 심리나 욕망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나의 독서에 안성맞춤인 셈이다. 


살면서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게 좋은데 이번 호에서는 생긴다. 풀어 나가는 방식이 딱 소설스러워서 흥미는 좀 떨어졌다. 그래도 미호시와 아오야마가 밀고 당기는 추리 과정은 재미있다. 미호시가 커피를 갈면서 궁리를 한다는 설정도 귀엽고.


젊은 남녀의 발랄한 이야기, 아직 4권이 남아 있고 무슨 일이 더 생길지 기대가 된다. 교토도 지금은 한창 뜨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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