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 - 마스다 미리 에세이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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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어떻게 지냈을까.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누구와 어떻게 놀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보냈을까.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시절에 써 놓은 기록물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겠다. 일기나 사진첩 같은. 이 작가에게는 이것이 남아 있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글을 써 낼 수는 없었을 것만 같다. 기억만으로 살아날 에피소드들이 아니란 말이지. 


작가는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 내고 그녀의 말을 들어 주는 형식의 글을 보여 준다. 그리고 함께 나타나는 아기자기하고 다정한 그림들. 순식간에 나도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나도 어린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어린 나와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러나 내게는 없다. 일기가, 그림일기든 글일기든, 수첩조차 없다. 그 시절에는 열심히 기록하는 축에 속했는데 일정 기간마다 다 처분했다. 지나간 시절에 미련 따위는 없다면서.


갖고 있었다면, 품고 다녔다면, 나도 작가처럼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볼 수 있을까? 시점을 바꿔 보자. 지금부터 일기를 쓰는 것이다. 커다란 글씨로 띄엄띄엄, 지금의 내 나이에 일어나고 겪는 일들을 요모조모 적어 보는 어른의 일기. 이번에는 버리지 말고 모아 본다. 모아 두면, 그리고 내가 더 나이가 들면, 아주 나이가 많이 들어서 살아 있다면, 그때 꺼내어 조금 젊은 나와 만나볼 수 있을까? 그 만남은 괜찮을까? 오늘 좀더 궁리해 봐야겠다. 해 볼 만하기도 하고 필요 없는 일이겠다 싶기도 하고. 


다행스럽게도 우리 아이들의 일기는 잘 보관하고 있다. 정작 아이들이 알고 있는지 그걸 모르겠지만. 과거에 매달리는 게 자칫 미련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과거를 아끼는 어떤 태도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더 충실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 나가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기획이 멋있었다. (y에서 옮김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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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로즈 트러메인 지음, 공진호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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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이민자다. 하루만에 돌아올 수 있나, 일주일 혹은 한 달만에 돌아오게 되나, 아니면 일 년 이상 걸리나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집을 떠나서 일터로 갈 수도 있고 일을 찾으러 갈 수도 있고 일을 하기 위한 재충전의 기회를 마련하러 나갈 수도 있고 또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나서 볼 수도 있고. 집을 나서서 동네를 잠깐 돌아볼 수도 있고 차를 타고 조금 멀리 나갈 수도 있고 아주 멀리 나갈 수도 있으며 비행기나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는 일도 마찬가지. 어쩌면 여행과 이민은 돌아오는 마음의 무게로 구별할 수 있는 건 아닐지. 집으로 돌아오고 싶을 때 쉽게 돌아올 수 있나 없나로.


글은 제목부터 고단한 느낌을 자아낸다. 집으로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하면서. 동유럽의 어느 나라, 어느 작은 마을에 살던 남자가, 아내와 일자리를 잃은 남자가, 어머니와 딸을 고향에 두고 영국으로 와서 돈을 번다는 이야기. 영국으로 오는 버스에서부터 사연이 시작되는 이야기. 내 취향이 아닌, 피하고 싶은, 모른 척 하고 싶은, 읽는 마음이 힘들어서 외면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여겼던 세상 모든 삶의 이야기. 몇 날을 아주 열심히 읽었다. 그동안 안 읽으려고 했던 의도를 반성하기라도 한 듯이. 


주인공 남자 레브는 내 마음에 들었다가 안 들었다가 했다. 평범한 사람이었고 평범하게 어리석었다. 일을 할 때는 열심히 일하다가도 엉망진창일 때는 또 엉망진창이 되고 마는. 그렇게 했으면 싶은 상황에 열심히 임하는 태도에는 한껏 응원을 보내다가도 그러지 말았으면 싶은 일을 저지르는 모습에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어 무시하게 되고 마는. 작가의 인물 구현에 내가 흠뻑 빠져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마냥 마음에 드는 인물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내가 몰두할 수 있었던 이유가. 소설이 아닌 듯하기만 한 소설이어서. 


흡족했던 요소는 등장인물들의 됨됨이다. 이를테면 나쁜 사람이나 나쁜 관계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속인다거나 해친다거나 가로챈다거나 하는 따위.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나쁜 게 주변 인물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내 읽기를 더욱 격려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또 많으니까. 물론 도움이 안 되는 인물들은 나온다. 고향 마을의 관리 같은 사람, 대사관에 근무하는 안내인 같은 이들.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 관료인들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인가. 


신기하게도 레브가 만나는 이들은 모두 레브를 도운다. 대부분 영국에 온 이민자들이다. 이민자들끼리 소소한 연대의식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그동안 내가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쁜 사람들을 많이 봤던 것일까, 의심부터 했는데 레브가 만나는 이들은 좋은 사람들이기만 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사람 덕분에 살 수 있겠다고, 살고 싶다고 믿으라는 듯이. 


음식이라는 소재, 이 소설에서 또 내 마음에 들었던 요소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먹는 것이 사람을, 삶을, 관계를, 희망 등등을 키운다는 것을 확인한다. 요리사는 앞으로도 중요한 직업이 될 듯하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알약 하나만 먹고 사는 시대가 온다고 해도 사람이 직접 한 요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찾을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니.    


집을 떠나서 집을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비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그리고 집이 있는 그 마을이 조금이라도 이전보다는 바람직한 모습의 사회로 자리잡고 있기를. 마음이 아프다. (y에서 옮김20230709)




Y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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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카머 - 시, 꿈, 돌, 숲, 빵, 이미지의 방
윤경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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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카머는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한 실내 공간을 지칭한다. 호기심을 북돋는 경이로운 사물들의 방이라 풀어 말할 수 있다.(12쪽)" 책 제목으로 쓰이기도 한 '분더카머'라는 말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낯선 외국말, 뭔가 있어 보이는 말, 그래도 쉽게 쓰게 되지는 않을 것 같은 말, 이렇게 낱말 하나로 이것과 이어진 세계까지 얻었다. 

 

분더카머라는 말을 자꾸만 되뇌는 동안 떠오른 다른 말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 제목이었다. 분더카머가 어떤 사물을 모아 놓은 방이라는 쪽에 가까운 반면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정신의 영역으로 채워져 있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 구분하기는 했는데 이는 내 방식일 뿐이다. 나의 분더카머? 나의 '자기만의 방'? 겹칠 듯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작가들이 서랍이라는 말을 쓰는 걸 종종 보았다. 기억 속 서랍 따위로. 기억 안에 서랍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어떤 걸 뽑아서 또는 몇몇을 엮어서 글을 쓴다는 식으로 하는 말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나는 작가가 분더카머라는 말을 쓸 때마다 작가의 기억 속 서랍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럴 듯하군, 대상이 사물이든 기억이든 자신의 과거 어느 지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면 분더카머라고 하든 '자기만의 방'이라고 하든. 분더카머는 이만큼이나 강하게 독서 중인 내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말이었던 셈이다. 도무지 떨칠 수 없었으니까.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었다. 낯선 말이 계속 나왔고, 그게 외국어였고, 작가가 외국에서의 경험담을 들려 주는 내용으로 이어지는데 예술 용어와 수많은 작품까지 등장하면서 내 가엾은 배경지식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었던 탓이다. 게다가 만연체로 이어지는 작가의 서술 방식도 쉽게 읽지 못하게 만든다. 이어지는 쉼표에서는 꼭 쉬었다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 달라는 듯. 그만큼의 호흡을 기대한다는 듯. 또 작가가 자신이 어렸을 때의 일화를 말해 주는 대목에서는 묘한 친숙함에 다소 가까이 다가간 듯 싶다가도 금방 예술 속 세계로 바꿔 놓은 표현들에 홀로 부딪히며 물러서고 말았다. 일화는 일화, 예술은 예술. 내 일상의 한계로 인한 구분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섭섭하지는 않았다. 예술이 되지 못하는 일화라고 해서 소중하지 않다거나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나마 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 예술 쪽으로의 한 발짝 정도?

 

책장은 넘겼으나, 읽기는 했으나, 다 읽은 듯 여겨지지 않는 이 난감한 기분이라니. 그런데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한 기분이라니. 내 의식의 분더카머 안에 '분더카머'라는 이 낱말만큼은 확실하게 담을 수 있었다는 이것 때문이려나? (y에서 옮김20220308)

 

그것은 넓고 낯선 여행지에서 신기루마냥 일시적으로 되찾은 너저분하나 따스한 내 좁은 방의 풍경이었고, 책 읽기라는 일생의 업이 야기하는 무거운 근심과, 그저 근심이라 한마디로 눌러 말할 수 없는 더 심각하고 부정적인 마음과 삶의 양상들과, 다 내버려두고 오로지 화사한 꾸밈 속에서만 지내고 싶은 더 실현하기 요원한 바람이 끊임없이 다투고 화해하는 내 두개골과 흉곽 내부의 해부도였고, 예술의 기원에 유년의 놀이도 있다는 경험적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장난감으로서의 작품이었다. - P10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어쩌면 불구자다. 어떤 기관이 취약해지는가. 어떤 기능이 멈추는가. 라멜리의 책 바퀴는 독서 중에 발생하는, 단지 다리만은 아닌 다른 상상적 신체 기관이나 정신적 활동으로 전이되는, 독자의 불구성에 대해 사유해볼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독자가 문학에, 인간이 언어에, 치러야 하는 공정한 값이기도 할 것이다. 기분 전환과 치유 대신 부분적 불능에 모종의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우리는 훨씬 치명적인 불구의 상태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생을 한순간이나마 연장하거나 구원받는지도 모른다. - P34

동어반복에 가장 격렬한 반감을 보인 비평가는 롤랑 바르트이다. 『오늘날의 신화』(1957))에서 바르트는 보수 우파 성향의 중산층과 소시민들이 구사하는 특유의 화법을 폭로하고 비판한다. 다른 삶의 발명 가능성과 세계의 변혁을 부정하고 그러한 희망과 실천을 제압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에게 이익과 기득권을 보장하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보수 우파는 특정 계급이 전유해서 굳고 퍼졌을 뿐인 언어 사용법과 그것에 의한 세계 재현을 자연의 보편 원리로 승격시키려 한다. 현 체제를 초월적 자연으로 상정하고 합리화하는 언어, 그것이 바로 특정 이익 집단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신화이다. 커다란 악을 은폐하기 위해 마치 백신인 양 작은 악을 방패 삼아 미리 반성하고 고백하는 말, 노동의 산물인 사물들에서 역사성을 제거하는 말, 타자를 부정하고 동일자로 포섭하려는 말, 세계와 사태의 복잡성을 이분법적으로 축소하며 판관으로 나서는 양비론 등과 마찬가지로, 동어반복은 순수한 화법을 넘어 정치적 차원에서 권력자와 소시민 계급을 포함한 대중이 사회의 현 상태를 유지하고자 유포하고 체득하고 실행하는 수사법이다. - P99

선물의 메타포, 그러나 메타포야말로 선물, 한 마디 말에서 다른 한 마디 말로 옮아가는 우편물 그 자체, 포장과 우표를 무한히 갱신하며. 메타포를, 다른 말로 옮긴 말을, 다른 곳의 다른 사람에게 그것과 닮은 다른 말로 옮기는 사람이다. 스스로 메타포를 밀봉한 유리병이 되어 시간과 공간 멀리 헤엄쳐 떠나는 사람이다. 주의 깊은 사람은, 시인은, 번역인은. 손과 심장의 사람은. - P155

욕망을 피하는 법은 간단하다. 잊으면 된다. 모르면 된다. 마음은 고요히 날개 접은 새가 된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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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이어달리기 - 마스다 미리 그림에세이
마스다 미리 지음, 오연정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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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책은 따지지도 않고 사서 본다. 딱히 특별한 게 없다는 점, 바로 그 진한 평범함이 좋아서 계속 보고 있는 것인데. 이 책에서는 어째 살짝 거부감 혹은 지루함 같은 것이 생겼다. 정도를 넘어 섰나, 내가 너무 많이 다가갔나, 이번만큼은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글 때문이다. 나는 이 작가의 만화를 좋아한다. 단순하고 간결하고 심심한 듯하면서도 속뜻은 깊이 품고 있는 장면들. 나른하고 따분한 일상마저 새 마음으로 되짚어 보게 하는 그림 옆의 대사들이 좋았다. 이걸 오로지 글로만 써 놓은 책이니, 이래서야 새로움이 안 보인다. 게다가 앞서 만화에서 이미 본 듯한 에피소드들도 제법 겹치는 느낌이다. 그렇겠지,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메모를 해야 할 테고 그 메모가 다시 그림이 되고 글이 된 것일 테니. 그런데 같은 내용을 겹쳐 쓰고 있다면, 아니 꼭 그렇게 하지는 않았더라도 이미 본 듯한 느낌을 거듭 받게 된다면, 이건 독자로서 좀 서운해지는 대목이다. 계속 보고 싶어지는 이유로는 적당하지 않으니까.

 

한 사람의 작품을 시간을 두고 계속 보게 된다는 건 작가가 그려내는 작품 속 세상에 대한 매력도 있겠지만 작가 자체에 대해서도 짙은 호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게 얼마나 신비하고 오묘한 즐거움을 주는 일인지, 한번이라도 겪어 본 이라면 알 일이다. 더구나 서로끼리는 잘 모르는, 작가와 독자 사이라면 더더욱 신기한 인연이 되는 셈.

 

이쯤 해서 에세이라는 장르에 대해 또 생각해 보게 된다. 요즘 들어 자신의 신변잡기에 대해 쓴 에세이 형태의 글이 아주 많이 발표되고는 있지. 책으로도 넘쳐나는 것 같고. 에세이라는 게 또는 산문이라는 게 어떤 특징의 글인지에 대해 배웠던 오래 전 시간이 떠오른다. 작가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 그래서 일기도 이 속에 포함된다. 일기, 일기라, 그러고 보니 일기 같은 글들도 인터넷 공간에서 많이 보인다. 에세이스트라는 표현도.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가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작품들에 대해 요즘 들어 특히 인색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분명히 후하게 대접해 주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글쓰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어느 한 때에는.

 

뭘까, 이 피로감은. 이른바 TMI 같은 건가? 더 이상 당신의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감정은 알고 싶지 않아요, 같은 마음? 너무 넘쳐 흐른다 싶기는 했지. 적당하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경계인가. 한 발 더 나가고 들어오고 차이로 작품이 되기도 하고 쓰레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라.

 

감질나게 담겨 있는 그림만큼은 여전히 좋았다. (y에서 옮김202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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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6
토마스 만 저자, 홍성광 역자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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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을 읽을 때에 내가 갖는 흥미 중 큰 하나는 배경이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이야기인가 하는 것.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배경이 되는 사회를 읽고 역사를 읽고 문화를 읽는다. 사람 사는 내용은 덤이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거기나 여기나 별 다를 바가 없다고 여기므로. 


이 소설, 독일의 뤼베크가 배경이다. 지도에서 찾아본다. 덴마크와 가까운 북부 독일 지방이다. 독일에서 이 책은 1901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민음사에서는 2001년에 내놓은 책이고. 번역문에서 느낀 약간의 답답함이 이 시간의 차이 때문인 것인가, 끝내 답을 모를 의문을 가졌다. 


토마스 만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들어 보았고, 작가의 작품은 이 책으로 처음 읽었고, 아직 머뭇거려진다. 2권까지 읽고 나면 다른 책도 더 보고 싶어질까 그만둘까 결졍을 하게 되겠지. 


염상섭의 삼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소설이다. 대를 잇는 이야기라면 비슷한 구성이 될 수밖에 없을 테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의 이야기. 이들이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장사로 돈을 많이 번 부유한 가족 이야기라면 부를 유지하거나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사건사고도 많이 생길 것이고. 긴 이야기의 소재로는 퍽 적절하다. 이들의 사연을 세세하게 채우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 될 것이니 독자는 그들이 들려주는 개개인의 사정을 재미있게 읽으면 되고.


1권이 끝나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3대 째가 되는 아들 토마스와 딸 토니에게로 완전히 넘어 왔다. 토마스는 아들을 낳았고 토니는 두 번의 이혼을 했다. 나는 이들의 사연보다 1860년대 독일의 사정이 더 궁금하다. 너무 몰라서 토마스와 토니의 이야기보다 이 시기의 독일 역사를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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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0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7-20 2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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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1 14: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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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2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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