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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로즈 트러메인 지음, 공진호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이민자다. 하루만에 돌아올 수 있나, 일주일 혹은 한 달만에 돌아오게 되나, 아니면 일 년 이상 걸리나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집을 떠나서 일터로 갈 수도 있고 일을 찾으러 갈 수도 있고 일을 하기 위한 재충전의 기회를 마련하러 나갈 수도 있고 또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나서 볼 수도 있고. 집을 나서서 동네를 잠깐 돌아볼 수도 있고 차를 타고 조금 멀리 나갈 수도 있고 아주 멀리 나갈 수도 있으며 비행기나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는 일도 마찬가지. 어쩌면 여행과 이민은 돌아오는 마음의 무게로 구별할 수 있는 건 아닐지. 집으로 돌아오고 싶을 때 쉽게 돌아올 수 있나 없나로.
글은 제목부터 고단한 느낌을 자아낸다. 집으로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하면서. 동유럽의 어느 나라, 어느 작은 마을에 살던 남자가, 아내와 일자리를 잃은 남자가, 어머니와 딸을 고향에 두고 영국으로 와서 돈을 번다는 이야기. 영국으로 오는 버스에서부터 사연이 시작되는 이야기. 내 취향이 아닌, 피하고 싶은, 모른 척 하고 싶은, 읽는 마음이 힘들어서 외면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여겼던 세상 모든 삶의 이야기. 몇 날을 아주 열심히 읽었다. 그동안 안 읽으려고 했던 의도를 반성하기라도 한 듯이.
주인공 남자 레브는 내 마음에 들었다가 안 들었다가 했다. 평범한 사람이었고 평범하게 어리석었다. 일을 할 때는 열심히 일하다가도 엉망진창일 때는 또 엉망진창이 되고 마는. 그렇게 했으면 싶은 상황에 열심히 임하는 태도에는 한껏 응원을 보내다가도 그러지 말았으면 싶은 일을 저지르는 모습에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어 무시하게 되고 마는. 작가의 인물 구현에 내가 흠뻑 빠져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마냥 마음에 드는 인물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내가 몰두할 수 있었던 이유가. 소설이 아닌 듯하기만 한 소설이어서.
흡족했던 요소는 등장인물들의 됨됨이다. 이를테면 나쁜 사람이나 나쁜 관계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속인다거나 해친다거나 가로챈다거나 하는 따위.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나쁜 게 주변 인물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내 읽기를 더욱 격려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또 많으니까. 물론 도움이 안 되는 인물들은 나온다. 고향 마을의 관리 같은 사람, 대사관에 근무하는 안내인 같은 이들.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 관료인들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인가.
신기하게도 레브가 만나는 이들은 모두 레브를 도운다. 대부분 영국에 온 이민자들이다. 이민자들끼리 소소한 연대의식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그동안 내가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쁜 사람들을 많이 봤던 것일까, 의심부터 했는데 레브가 만나는 이들은 좋은 사람들이기만 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사람 덕분에 살 수 있겠다고, 살고 싶다고 믿으라는 듯이.
음식이라는 소재, 이 소설에서 또 내 마음에 들었던 요소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먹는 것이 사람을, 삶을, 관계를, 희망 등등을 키운다는 것을 확인한다. 요리사는 앞으로도 중요한 직업이 될 듯하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알약 하나만 먹고 사는 시대가 온다고 해도 사람이 직접 한 요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찾을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니.
집을 떠나서 집을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비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그리고 집이 있는 그 마을이 조금이라도 이전보다는 바람직한 모습의 사회로 자리잡고 있기를. 마음이 아프다. (y에서 옮김20230709)
Y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