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은 가을도 봄
이순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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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라고 다 같은 청춘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 본다. 그래서 이른바 '나때는, 우리 때는'과 같은 '-라떼' 농담이 나오게 된 게 아닐까 싶고. 나는 이 소설에 충분히 젖어들었는데 과연 요즘의 청춘에게도 우리 시대의 그 시절 고민들이 가 닿을 수 있을까를 추측해 보았다. 마치 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60년대의 민주화 운동이나 6.25전쟁 전후의 이념 논쟁 사건이나 더 앞서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 운동에 참여했던 청춘들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내가 느꼈던 거리감을 떠올렸다고나 할까. 내 감정이입 능력이 하찮아서 그랬던 것이라면 좋겠다.

 

박정희 정권의 말부터 전두환 정권의 시작 무렵은, 생각만 해도 한숨이 저절로 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는 데다가 그 문제가 또 문제를 낳아 소용돌이처럼 크게 번져 있는 이 시대에, 이 시대의 청춘은 자신들이 느끼는 절망의 근원이 그곳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을까. 아니, 그곳만이 근원이라고는 할 수 없겠구나, 거기서 또 그 전의 어떤 곳으로 줄곧 이어져 있는 것일 테니. 역사는 어떤 지점이더라도 한 세월의 앞뒤를 똑 잘라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너는 이전의 어떤 상황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존재라고.  

 

작가가 배경으로 제시한 두 곳, 독자에게 춘천은 춘천이 아니어도 좋고, 명진 역시 명진이 아니어도 괜찮겠다. 그무렵 저마다 살던 곳이 다 춘천이거나 명진이었을 테니까. 내게는 춘천과 명진이 한 곳이었고 주인공의 추억과 경험들은 많은 대목에서 내 것과 겹쳤다. 반갑기도 했고 쓸쓸하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고 허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때 느꼈던 분노나 증오심이나 좌절감이나 죄책감이 지금까지도 전혀 사그라들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글읽기는 고달팠다. 그런 시대의 청춘이었던 것이다. 이후의 생을 결코 놓아주지 않을 것임을 그때는 몰랐을 뿐이었으니.  

 

어디에선가 봤다. 실패한 생이란 없는 것이라고. 같은 의미로 본다면 청춘 역시 실패하는 경우는 없겠다. 그저 서로 좀 다르고, 서로 좀 멀어지는 것일 뿐. 그럼에도 회한은 남겠지. 회한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고집을 부리는 이의 욕망만이  딱할 뿐, 그를 비난하거나 나무란다고 당사자가 알아먹기나 할 일인가 말이다. 세상 어디에도 실패의 길로 가겠다고 나서는 청춘이야 없을 테고, 성공으로 가는 길을 찾는 이보다 못 찾는 이가 더 많을 세상에서 흔들리고 있을 스스로를 다잡는 의지만이라도 굳게 품고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요즘의 청춘들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겠지만 제2의 청춘을 누려 보겠노라며 새로 뭔가를 준비하는 세대들에게 권해 주고 싶다. 그때 자신이 품었던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 지금의 자신이 일치하는지 혹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또 혹은 아주 멀어지지는 않았는지 확인도 해 볼겸. 글쎄, 영 멀어진 사람은, 소설 속 '길우'와 같은 인물이라면 아예 이런 책을 쳐다보지도 않겠지만. 아니다, 어쩌면 남몰래 숨어서 읽고는 눈물 글썽일지도 모르겠다. 제 청춘에 조문을 보내면서.

 

나는 조금만 글썽이겠다. (y에서 옮김20200731) 

 

Y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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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 -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발로 떠나는 우리 시 기행
신정일 지음 / 다산책방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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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시집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오면 기쁘다. 내가 무언가를 발견한 기쁨이라고도 할 수 있고 내 기쁨을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좋으니 내가 좋은 만큼 너도 좋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책 속의 시들이 낯선 것은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시들이 대부분이었다. 작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시들을 가려 엮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한쪽에 보태 놓았는데, 골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가끔 등장하는 사진 화면은 얼마나 근사한지, 꼭 이곳으로 찾아가서 이 시들을 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난 그랬다.


이성복의 <강>, 송수권의 <산문에 기대어>, 기형도의 <밤눈>을 옮겨 적었다. 이 세 사람의 시집이 이미 나에게 있지만, 그리고 그 시집 속에 이 시들도 들어 있지만 적어 보았다. 시는 읽기만 해서는 섭섭하다. 외우면 제일 좋은데, 그렇게까지는 내가 부지런하지 못하고 그냥 한번 써 본다. 시를 지은 시인의 마음을 천분의 일이라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지난 겨울에 나온 시집인데 이 가을에 더 어울리는 책이다. 쓸쓸함을 좋아하는 사람들, 쓸쓸함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 쓸쓸함이 있어서 삶이 덜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권한다. 잘 읽다 보면 누군가의 시집을 또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리라. (y에서 옮김20071028) - 이제는 품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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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9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9-11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악의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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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CSI시리즈나 크리미널 마인드와 같은 미국수사드라마를 보면서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어른이 되면, 범죄자가 될 수도 있구나. 가해자 입장에서는 장난으로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로 입은 상처는 복수의 근원이 되기도 하는구나. 우리 마음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할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의 힘으로 다스릴 수 없을 일도 생기기는 하겠구나.   


이 소설에도 잘 빠져들었다. 단순히 흥미로 빠지는 것을 넘어 생각할 주제를 하나 이상 던져 주는 것, 작가의 선물인 것 같다. 잘 받았고, 앞으로 이 선물을 잘 활용하면서 살아가야 할 텐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내 속의 '악의'를 어느 정도 안다. 만난 적도 있고, 싫었지만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내 안에 있는 비정하고 잔혹한 면, 냉담하고 무심한 면. 어느 정도 포장을 한 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다가 가끔 드러나게 되는 때가 생긴다. 어쩔 수 없이 혹은 일부러.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기도 하고 그 순간의 내 컨디션과도 관련 있는데, 내가 나를 잘 몰랐을 때는 그저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묵묵히 그리고 슬쩍 인정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이렇게 못된 부분이 있구나, 더한 경우에는 '착해지고 싶지 않아' 할 때도. 


성선설도 있고 성악설도 있다지만, 우리는 내내 착할 수도 내내 악할 수도 없는 것일 테다. 그 마음과 상태를 다스리는 게 교육이고 윤리일 것인데, 그것만으로는 어쩔 수 없이 벗어나게 되는 한계, 그곳에 범죄의 심리가 있는 것일까. 이해는 된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는 없는 지점에 이르면, 누구를 원망할 수 있는 것인지. 


청소년기도 중요하고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고 선생님의 도움도 중요하고, 한 아이가 자라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요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은 고스란히 어른들의 책임이다. 누구를 탓하랴. (y에서 옮김201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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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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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다. 불안한 시대, 불안한 세상, 불안한 사람들, 온통 불안하다, 불안해 보인다. 아니, 아닌가,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늘 그대로였는데 사람만 달라져서, 나만 적응하지 못해서 불안을 느끼는 것인가, 온통 어수선한 마음이라 골라 본 책이다. 읽는 동안에는 불안이 많이 사라졌다. 다 읽고 나니 원래대로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불안이 무엇인지 먼저 정의를 내려놓은 후에 불안의 원인과 해법으로. 나는 둘 중 원인을 서술해 놓은 대목이 퍽 마음에 들었다. 해법이 궁금해서 펼쳤던 책인데 정작 해법에 대한 내용은 좀 시시했다. 작가가 불안의 원인이라고 여긴 네 가지 요소-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있으니 내 불안과 남들의 불안이 차근차근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원인을 알게 되면 그 앎을 따라 해법은 대개 저절로 떠오른다. 무엇보다 내려놓지 못하는 욕망으로 인한 것들이었음을 확인하면서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심지어는 코로나19로 인한 이 불안한 사태마저도 부담을 줄이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워낙 유명한 작가라 달리 말할 것은 없겠고, 이름난 것에 비해 내가 읽은 작품은 별로 없다. 나는 좀 편견을 가졌던 것 같다. 지나치게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여서. 제대로 읽지도 않았으면서, 이 정도로 내 불안을 다스려주는 작품을 쓴 사람이라면 잘난 사람이 맞았던 건데. 

 

불안을 해소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예술을 권한 작가의 의도가 탁월해 보였다.(종교는 아직까지 내게 너무 먼 핑계같기만 해서 말을 않겠다.) 왜 인류가 그토록 오랜 기간 기아와 싸워 오면서도 밥이 안 되는 예술 활동을 지속해 왔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삶이 힘들수록, 정신이 괴로울수록, 미래가 불안할수록 보이지 않는 마음의 바탕에서부터 힘을 키워 준 것이 예술이었으리라. 같은 차원에서 사회 구성원의 불안도가 높다면 이들이 기댈 예술 세계가 그만큼 빈약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를 외부와 격리하게 되고 만 지금의 상황에서 불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 나가는지 내 자신의 마음 움직임을 잘 지켜보려 한다. 나, 좀 단단해진 것 같으니. (y에서 옮김20200224)

어떤 것-예를 들어 부나 존중-의 적절한 수준은 결코 독립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준거집단, 즉 우리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여 결정된다. 우리가 가진 것은 그 자체만으로 평가할 수 없고, 중세 조상의 생활과 비교하여 판단할 수도 없다. 역사적 맥락에서 우리가 놀라운 번영을 이룩했다고 강조하는 소리를 들어봤자 전혀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오직 우리가 함께 자라고, 함께 일하고, 친구로 사귀고, 공적인 영역에서 동일시하는 사람들만큼 가졌을 때, 또는 그보다 약간 더 가졌을 때만 우리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 P56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수많은 불평등을 고려할 때 질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우리가 모두를 질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축복을 누리며 살아도 전혀 마음이 쓰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보다 약간 더 나을 뿐인데도 끔찍한 괴로움에 시달리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우리의 준거집단에 속한 사람들만 선망한다는 것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다. - P57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 P78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 P80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 P130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어떤 동지애가 이룩된다 해도, 노동자가 어떤 선의를 보여주고 아무리 오랜 세월 일에 헌신한다 해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위가 평생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 지위가 자신의 성과와 자신이 속한 조직의 경제적 성공에 의존한다는 것, 따라서 자신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감정적인 수준에서 변함없이 갈망하는 바와는 달리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늘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 P134

그녀의 섬세한 영은 여러 사람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훌륭한 결과물들을 내놓았다. 그녀의 본성은 지상에서 위대한 이름을 가지지 않은 통로들을 통해 발현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가 주위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은 끝없이 멀리 퍼져나갔다. 세상의 선은 역사적으로 거창하지 않은 행동들 덕분에 확장되기 때문이다. 당신이나 나나 더 나쁜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았던 것은 반은 드러나지 않은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다 지금은 사람이 찾지 않은 무덤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덕분이다. - P175

존 드라이든의 말을 빌리면, "풍자의 진정한 목적은 악의 교정"이다. - P210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실제로 또는 예술작품을 통하여-것일 수도 있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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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집 볼뤼빌리스 ㅣ 국민서관 그림동화 98
막스 뒤코스 지음, 길미향 옮김 / 국민서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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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그리면 좋은 게 퍽 많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이 책으로 또 하나의 좋은 점을 얻는다. 그래, 그림을 잘 그리면 세상에 유명한, 좋은, 갖고 싶은 모든 것들을 내 마음대로 가질 수 있겠구나. 자신의 그림으로 그려낼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일 테니. 가져도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물욕 따위 가볍게 저버려도 좋을, 내가 그린 그림만으로 충분할, 색다른 경지.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 중 어느 쪽에 더 눈을 두는가, 독자 개인의 성향에 따른 선택일 테다. 아직까지 내가 그림책을 제대로 본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근까지도 그림책에서 그림보다 글에 더 주목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림 한 쪽 한 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동안 내가 그림책을 헛짓으로 본 게 아니었던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무래도그림책을 온전히 본 게 아니라 그림책 안의 글만 본 셈이었던 것 같으니.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 버린 그림책들이 얼마나 많았으려나.


이 책 속 그림들은 독특하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예술가들의 작품을 그림 속 그림으로 담아 놓았다. 이렇게 명작들로 채워 놓은 집이니 멋질 수밖에 없다. 가구 하나, 소품 하나하나가 다 세상의 명작이라니. 나도 이 방식으로 내 집을, 내 방을, 내 마당을 그려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이럴 수 있으려면 당연하게도 내 오랜 체험과 생각 안에 멋진 작품들이 많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안다. 나의 빈약한 미술 세계가, 이렇게 짙은 아쉬움과 섭섭함을 남기고 말았다니.   


글은 이 그림들을 따라 흐른다. 집 안 곳곳에 아빠가 숨겨 놓은 비밀을 딸이 찾아 나간다는 이야기. 주인공의 집이 이토록 크고 거대하며 속속들이 비밀을 품고 있다는 게 동화 속 설정이라 약간 낯설기는 하지만, 그래서 현실이 좀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동화니까 다 받아들이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나도 이렇게 생긴 의자를 하나 가져 보았으면. 그림으로 그려서 가질 수밖에 없으려나. (y에서 옮김20220411)


<볼 체어 - 핀란드 출생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에로 아르니오가 만든 반구 모양의 의자, 1963~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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