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8 (완전판) - 비뚤어진 집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도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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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다가 지웠다. 생각대로 써 나가다가 다시 읽어 보니 의도하지 않은 스포일러가 되어 있었다. 이래서는 이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지우기는 했는데, 막상 쓸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아 막막하다. 이렇게 재미있게 읽어 놓고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니. ㅎㅎ


사건이 일어난 집에 살고 있는 인물 모두가 용의자가 된다. 이 인물들이 갖고 있는 악한 본성을 조금 더 부각시켜 드러내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작가는 범인을 찾아 내도록 한다. 나는 이 책에서도 끝까지 속고 말았다. 범인으로 여기면서 살짝 두려워했던 인물에게 사과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을 지경이다. 


이 책에서는 작가가 늘 등장시키는 익숙한 탐정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비뚤어진 집에 살고 있는 여주인공 '소피아'와 연인 관계에 있는 '찰스'의 시선으로 사건을 읽도록 한다. '찰스'의 아버지가 경찰 쪽이라 참고인 신분처럼 활약하는데 그의 생각을 따라 읽는 과정도 흥미롭다. 순식간에 그의 눈으로 장면을 그려 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작가의 솜씨에 매번 놀라게 된다. 


마음이 아픈 글이다. 사람에게 이런 본성이 있다는 것을, 이런 본성으로 누군가를 쉽게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을, 끝내 말릴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게 딱하고 안타깝다.  (y에서 옮김2018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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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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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30년 이상 정도의 기간을 무난하게 살았던 부부, 둘 중에 한 쪽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쪽의 삶은 어떻게 될까? 아주 절절하게 사랑했던 부부까지는 아니고, 그럭저럭 평범하게, 다른 사람에게 한눈 팔지 않으면서 가정을 지켜 온 부부 정도로 가정하여 본다면? 


소설은 건조하게 시작하였으나 읽어갈수록 점점 더 읽는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남들 얘기도 더러 들었고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로 간접 경험도 충분히 했지만 화자의 처지가 내 처지가 된다면? 하고 생각하니 아득해지기만 했다. 시간이 흐르면 또 흘러가는 대로 남은 사람은 살아가겠지 막연하게 그럴 것 같아도, 남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일 뿐 내 것만이 온전히 내 몫일 터. 가늠이 안 된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어디인지 딱히 궁금하지는 않다. 작가의 경험이 고유의 상상력과 결합하여 만들어졌을 글이니 이대로도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어쩌면 작가라는 사람들은 자신이 겪는 극도의 슬픔이나 아픔마저 글로 나타내는 사명을 갖고 태어난 것일까?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살지 못하는 그런 사명. 내 생을 이야기하면서도 지어낸 생까지 보태어 새로운 생을 창조하는 조물주와 같은 사명.


70이 넘은 철학 교수 바움가트너. 10년 전에 작가였던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이후 혼자 살아온 주인공이다. 자녀는 없고 연애는 더러 한 모양이고. 소설은 바움가트너의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일이 있었던 시간대로 나열한다면 자서전이나 전기가 될 모양새다. 지루하지 않게, 읽으면서 더 가깝게 느끼도록 절묘하게 섞어 놓은 작가의 솜씨가 마음에 든다. 이런 맛으로 읽는다. 내가 늙어가는 모습과 오래 비교도 하면서. 


오랫동안 같이 지냈던 짝을 보내는 마음은 어떠할까? 내가 먼저 떠날지 배우자가 먼저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헤아리는 마음만큼은 순수할 정도로 낯설다. 모를 일이다. 몰라서 지금 이렇게 발랄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작가나 예술가가 자신감과 자기 경멸 사이의 그 흔들리는 땅에 살지 않겠는가?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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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2 ㅣ 소설 보다
김지연.이미상.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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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 실린 세 작품은 좀 아쉽다. 세 작품 모두 시작 부분에서는 흥미로웠고 가운데쯤까지도 초반에 느낀 흥미는 이어졌는데 끝 무렵에 이르면서 시들해졌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라고? 내게 더 좋은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하게도 내 생각이 더 좋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이 든 건 사실이니까. 단편소설이 짧은 글이라고 여겼다가도 어쨌든 완성된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 글이니 결코 짧은 글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작가들의 인터뷰가, 아직 내게는 도움이 안 된다. 도움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이너스다. 특히 이번 호에서처럼 작품들에 만족을 못 느꼈을 경우는 더 그러하다. 작품 자체로 알아차려야 할 무언가를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말로 알게 되는 듯해서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작품 밖에서 더 필요한 상황이라면 작품 안에 다 들이지 못했다는 뜻으로도 읽히고. 어떤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는데, 말하지 않는 게 더 낫겠는데, 그걸 또 붙잡아서 들먹이는 것도 군소리처럼 보이고. 앞선 호와 대놓고 비교해 본 건 아닌데 인터뷰 분량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나로서는 반갑지 않다. 


소설 속 인물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늘 조금 모자라다 싶은 작품에서 느낀다. 현실과 똑같아 보여도 안 될 것 같고 현실과 아주 다른 모습이라면 더 안 될 것 같고 현실과 상상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들면서 우리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인물이 등장해 주면 좋은데. 이번 호 세 작품 속의 호두와 목경과 강가는 내가 보기에 현실 쪽 경계를 많이 벗어나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내가 재미를 덜 느꼈던 것 같다. (y에서 옮김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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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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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얻은 세 가지 주제어 : 참혹과 참담, 70세, 젊은이의 키스. 고마운 마음으로 하나씩 써 보려 한다.  

 

1. 참혹과 참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 본 뜻은 다음과 같다.

참혹 : 비참하고 끔찍함

참담 : 끔찍하고 절망적임

 

내가 참 좋아하지 않는,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 단어들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 이 책이라서, 이 작가라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으니까. 참혹한 일과 참담한 마음을 어쩌자고 이토록 절절하게 그려 놓았는지 모르겠다. 

 

글은 대체로 무겁다. 작가가 바라보는 대상이 가벼울 수 없어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헤아리는 작가의 시선이 차가웠다가 따스해졌다가 몇 번을 반복하는데 이렇게 바뀌는 온도에 마음이 울렁이기를 몇 차례, 나는 점점 더 빠져들었다.     

 

이순신을 부르는 작가의 말에서는 내 몸이 굳었다. 세월호를 부르는 작가의 말에서는 내 영혼이 떨렸다. 이국종을 부르는 작가의 말에서는 내 눈이 감겼다. 이승복을 이용한 권력은 한탄스러웠고, 그 권력 뒤에 숨은 권력자들에게는 화가 일어났다. 옛날이고 지금이고 그 권력 때문에 참혹에 빠지는 백성의 처지가 참담했다. 나는 도무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으로 읽었다. 참혹과 참담을 애써 멀리 하고자 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던 모양이다. 남의 것이 아니었던 것, 내 것이었던 참혹과 참담이었다. 피하려고만 해 온 내가 무척 괘씸했다. 꽤 오래 시달릴 듯하다. 그래도 작가의 마음과 다르지 않아 다행스러웠고 또 한편으로는 깊이 서글펐다.       

 

2. 70세

작가의 나이다. 벌써 이렇게 되셨구나. 내가 먹은 나이는 고려하지도 않고 작가의 나이에만 놀란다. 작가가 보여 주는 70세의 정신, 강렬하게 본받고 싶다. 

 

작가는 늙어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될 일을 말해 준다. 내가 앞으로 70세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으나 나이를 먹을수록 부끄러울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몸으로도 태도로도 젊은이들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해를 입히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확하게 보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3. 젊은이의 키스

작가는 글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키스하는 모습을 찬양한다. 처음에는 의외라고 여겼는데 글을 읽다 보니 점점 같은 마음이 되어 가는 자신을 느꼈다. 내가 이 대목에서 얼마나 고루한 사람이었던가. 길이나 공공장소에서 서로 끌어안고 있는 젊은이들을 볼 때면 괜히 삐죽이고 눈흘기고 그랬는데. 아마도 내가 못해 봐서 심술이 났던 것이겠지.  

 

우리의 젊은이들에 대한 작가의 건강한 기대가 좋아 보였다. 기대하는 이 태도는 배워야 할 일이다. 청춘을 나무라고 무시해서 좋을 게 뭐가 있겠나.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고달파도 청춘은 살아서 우리 기성세대가 걸어온 길을 걸을 것이다.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오라고 하는 대로 오지 않는다고 나무란다면 그 또한 기성세대의 오만이고 착각이다. 청춘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문제는 늘 기성세대 쪽에 더 많아 보였다. 어린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눈부심이 고스란히 읽혀서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경건해지고 무거워지고 쓸쓸해진다.  (y에서 옮김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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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의 순례자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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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갖고 있지 않지만 종교의 원리나 종교인의 양심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 중에 덜 떨어진 사람이 있을 뿐, 악에 유혹되는 가여운 영혼이 있을 뿐.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 과학처럼 종교에는 잘못이 없는 것일 테니까. 


중세 잉글랜드의 수도원이 배경. 나이 들어서 수도사가 된 주인공이 활약하는 소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당시 살았을 사람들의 삶과 갈등과 사랑과 용서를 상상으로 재구성하여 보여 주는 소설이다. 아주 재미있다. 시리즈를 이어갈수록 더 재미있다. 등장인물들이 고리에 고리를 물고 인연을 쌓아가는 장면을 확인하는 일도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만큼이나 흥미롭다. 각 권에서는 독립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지만 인물들의 관계를 고려하면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번 권에서는 고행의 순례자가 중심 인물로 등장한다. 왜 고행을 하면서 순례를 하려는 것인가. 순례 자체에 종교적 관심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더더욱 의아한 장면인데 캐드펠 수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끝내 밝혀낸다. 그 이유를 알고 난 후에도 내가 순례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종교인이 될 자질은 아주 없는 게 분명하고. 그게 뭐지? 그런 것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길이 된다고? 아무리 종교가 마음을 진정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는 해도... 소설은 재미있게 읽고 있으면서 종교 대목에서는 계속 삐딱해져 있는 채로. 


스티븐 왕과 마틸다 황후가 왕권을 잡기 위해 싸우는 내전 중인 잉글랜드. 스티븐 왕의 부인 이름도 마틸다라 마틸다 왕후와 대비하여 부인은 왕비 마틸다로 부른다. 나는 소설을 읽다 말고 자꾸 이 시기의 역사를 살핀다. 실제와 허구가 어떻게 맞물려 펼쳐지고 있는지를 짚어보고 작가의 역량에 계속 감탄하면서. 


글의 맨 마지막에서 캐드펠이 휴 베링어에게 건네는 진실이 대담하다. 출생의 비밀이란 이야기라는 장르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 대목만큼은 너그럽게 이해한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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