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방정식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6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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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읽고 흥미나 집중 외에 교훈을 얻는다고 하면, 살짝 웃어주는 사람도 있을 듯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교훈을 얻는다. 사람살이라는 게 어떤 상황에서나 누구에게서나 배울 게 있기 마련이니까.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에서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도 없고. 


이 작가의 작품 중에 내 취향에 드는 쪽이다. 앞서 읽은 '방황하는 칼날'은 영 아니어서, '백야행'만큼이나 아니어서 리뷰 쓰기를 접었고, 유가와 교수가 등장하는 이쪽 방면의 글로 골라 읽어야 할 듯하다. 한 사람의 작품인데, 이제까지 나는 한번 매혹되면 모든 것에 빠져들 만큼 적극 수용했는데, 이 작가는 그게 안 된다. 구별이 된다. 이제는 모두를 읽어야 할 게 아니라 골라서 읽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일까. 이 점이 좀 섭섭하기는 하지만.    


소설로 돌아와서, 유가와 교수가 마지막에 교헤이에게 한 말,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 어쩐지 나는 이 말에서 일본인의 마음을 읽는다. 일본인 작가가 일본인 독자들에게 해 주는 말, 경고로든 교훈으로든 격려로든, 좀 멀리 나아가는 듯이 보이는 미래 지향적인 충고. 우리는 각자가 혼자가 아니므로, 누군가 곁에 있을 것이므로, 그가 내 삶에 분명히 도움이 되어 줄 것이므로, 너 또한 다른 사람에게 그러하게 될 것이므로, 그러니 열심히 공부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내가 받은 교훈이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 주고 싶은 교훈이기도 한 것. 


살면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일에 휘말릴 때가 있다. 그 일로 인생 전체에 영향을 받을 때가 있는데, 좋은 경우는 좋으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칫 불행하고 억울해지는 수도 있다. 누구를 탓하랴 하면서 자포자기하게 된다면 그 또한 더욱 불행한 일이고, 한순간의 잘못으로 범죄를 저지르기라도 한다면 그 영향은 어떻게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게 될 테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이 작가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디테일이다. 내가 디테일에 이렇게 빠지는 사람인지 몰랐다. 아마도 내게 부족한 면이기에 더욱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추리소설의 본류인 사건의 흐름과는 관련 없어 보이는 일상적인 부분까지도 세심하고 정성들여 묘사해 주는 작가의 친절함이 나는 좋았다. 다른 사람들은 뭘 먹고 어디를 다니고 뭘 보는가, 그런 데에서 재미를 많이 느끼는 나니까. 당분간 이 작가의 글을 읽는 게 계속될 듯하다. (y에서 옮김201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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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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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줄 알면서도 읽고 막상 무섭다 여겨지면 더 읽기가 머뭇거려진다. 어쩔 수 없다. 내 취향의 한계선이다. 읽을 수 있는 글이 있고 그러기에 부담스러운 글이 있다는 것. 꼭 읽어야 한다고, 꼭 읽었으면 한다고 해도 그럴 것까지야 하면서 뒤로 물러서게 되는 글. 이 작가의 작품 세계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을 어쩌겠는가.


무엇이 무서운 것이냐고 누가 물어온다면? 글쎄, 잔혹한 묘사 부분? 아주 조금이라도 아주 약간이라도 나는 글을 통해 잔혹함을 체감하고 싶지 않다. 상상으로도. 모른 채로 살고 싶을 뿐이다. 어떤 감각은 사는 동안 전혀 발굴하지 않은 채로,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책에 실린 여덟 편의 글에서 모두 무섭다고 느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단 한 편에서라도 이 느낌을 받고 나면 남은 글도 대충 보게 되고 작가의 이름도 멀리하도록 기억하려 한다. '고기와 석류'는 너무 크고 강렬한 인상을 내게 던졌다. 읽는 내 기분을 몹시 불편하도록 만들어 버렸으니 오래 기억하게 될 듯하다. '유니버설 캣숍의 비밀'은 좋았는데, 고양이의 비밀이 근사했는데, 우리 고양이가 더 신비하고 다정하게 보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한번 더 쓰다듬어 주었는데. 그러나 책은 무서움으로만 남았다. 


환상에도 여러 층위가 있고 그 안의 내용도 여러 갈래로 갈라질 것이다. 공포나 괴기나 잔혹은 내가 재미를 느끼는 쪽이 아니다. 단지 그럴 뿐이다. (y에서 옮김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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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나이트 ㅣ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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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것이 이어지면 지루할 수도 있는데 이 작가가 내게 주는 비슷한 인상은 아직까지는 괜찮다. 익숙한 느낌이 지겹지 않다는 건 독자인 내게 좋은 일이다. 


고급 호텔을 사건 배경으로 제시한다.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형사들이 풀어나가는 활약상보다 호텔의 내부 사정을 그린 장면들이 더 재미있었다. 호텔리어가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는 사정이라 신기하기도 했고, 더러 대단하게 보이기도 했고.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점일 것이다.


작가는 살인 사건 속에 현재 일본 사회가 가진 문제를 포함해서 펼쳐 보인다. 추리 소설을 계속 읽다 보니 알게 된 점인데, 범죄자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게 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하는가 하는 것도 작가의 개성 중 하나의 요건이 될 것 같다. 어쩌다 나쁜 마음을 품게 되었는가, 누가 그런 나쁜 짓을 저지르도록 했는가, 누구 때문에 나쁜 일에 빠져 들게 되었는가, 개인의 문제인가, 가족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속 범죄자에게는 딱하다 싶은 사연이 있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다른 추리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이 작가의 글이 내게 주는 좋은 점, 읽고 나면 바로 잊어버려도 좋다는 것이다. 읽는 동안에는 내도록 흥미진진한데 사건이 해결되고 난 뒤부터는 그때까지의 감흥이 급격히 사라진다는 말이다. 책의 마지막 쪽을 덮을 때 쯤이면 다시 되짚어 볼 필요가 없어 홀가분해지는 것이다. 마치 뒤끝 없는 영화를 본 것처럼. 여운이 남지 않아 그 점이 도로 마음에 드는 그런 소설. 


이 소설의 후속편이 또 나올 듯하다. 다음 배경은 로스앤젤레스의 호텔이 되지 않을까. (y에서 옮김201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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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간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600
시의 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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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를 쓰고 시인이 쓴 시는 자기의 말을 전한다. 시를 자꾸 읽다 보니 시인이 전하는 말과 시가 전하는 말이 구분되어 들리는 듯하다. 증명은 못하겠는데 나는 느낀다. 시인의 말인지 시의 말인지. 틀렸다고 해도 상관없고 착각이라고 해도 괜찮다. 심지어 시인이 주장한다고 해도 나는 끄덕여 줄 테다. 속으로 아니라고 하면 되니까. 시인을 벗어난 시의 말, 근사한 것도 있고 실망스러운 것도 있다. 

이 책의 일러두기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 이 책은 문학과지성 시인선 501부터 599까지 총 99편의 시집 뒤표지 글을 묶었다.

시라고 해도 좋을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이것이야말로 읽는 이의 선택이겠다. 시인이 써 놓은 말인데 시집 속을 벗어난 시로 읽든 시집을 낸 시인의 감흥으로 읽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덧소리로 읽든. 나는 시인들이 쓴 시가 하는 말로 읽었고. 둘의 차이점을 말하라고 한다면? 거리감? 책임감 회피? 잔소리? 변명? 같은 것들... 그래서 이 말을 듣는 내게 좋은 점은? 시인도 시를 쓰면서 쓸쓸해 하는구나, 표현의 수준은 우리 서로 다를지라도 감정의 결은 다를 바가 없구나, 어쩌면 나도 내내 내 안의 시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살아왔겠구나, 깨닫는 시간이 있더라는 것. 

기획을 한 이들의 의도가 참신해 보였다. 이미 나온 글을 다시 모아 책으로 낼 때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을 텐데. 이 출판사라서 가능했을지도. 이곳에서는 앞으로도 시집들이 계속 나오리라는 것을 믿으니까. 세상이 아무리 메마르고 부서져 나간다 해도. 

분명하지 않은 말들 안에서 분명한 망설임을 읽게 되는 시절이다. 어느 한때도 낙원으로 불리지는 않겠지만 조금은 살 만한 시대라고 여기면서 지내고 싶다. 불안해서 참 힘들다. (y에서 옮김20250201)

다시 올 수 없고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나날의 삶을 더욱더 절실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 P15

사막을 횡단하는 고래, 태평양을 건너는 낙타. 젊은 시절에 나를 숨 쉬게 해준 이미지들이 아직도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짠맛 없는 바다가 없듯이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삶은 없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다른 세상은 없다. 좀더 나은 사람을 향하여 갈 뿐이다. 세상은 딱 그만큼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 P23

건강한 슬픔은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 아름답게 한다. 나는 당신에게 그런 슬픔을 안겨주고 싶다. - P50

새들의 농담에도 웃지 않는 신호등

뒷걸음질 치다 밟은 햇빛의 발

페인트칠이 덜 마른 기침

눈 마주칠 때마다 멈춰 서는 시계 - P53

나와 당신이 읽고 쓰는 동안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발견했다면, 이 세계를 흐르는 시간이 한 뼘은 더 넓어졌을 것. - P98

사라지는 일에 하루하루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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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이브 ㅣ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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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에 내가 왜 이렇게 빠져드는가, 책을 읽을 때마다 해 보는 생각이지만, 그리고 이때마다 나를 위한 변명을 마련해 보게 되는데, 이게 내 마음에는 썩 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참 성실하다는 것, 자신의 직업에 참 충실하고, 그 충실함에서 근거한 추리력으로 나를 이끌어들인다는 것, 내가 그 충실함을 배우고 싶어한다는 것. 


일본 혹은 일본인에 대한 막연한 나의 비호감과는 별도로 이런 소설에서 지극히 성실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일본인의 모습을 보노라면 어쩔 수 없이 호감과 존경심을 느끼게 된다. 인간에 대한 선의가 저절로 솟는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래서, 나는 이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다는 뜻이다. 호텔리어 나오미도 예뻐 보였고, 형사 닛타도 멋있어 보였고, 나의 몇 시간을 들인 것이 조금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위로가 되었노라고.


시기적으로 매우 바쁜 때다. 개학을 했고, 일정에 따라 하루 한 시간도 밀려드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 싶은 참에 이 책이 출간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책을 받고는 그냥 읽었다. 모든 일을 잠시 외면하고. 그럴 수 있도록 집중하게 하는 재미를 주는 글이니까. 위로? 충분하다. 나는 이 글을 올린 후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될 테니까. (y에서 옮김201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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