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속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3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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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비행기 좌석표 도면으로부터 시작된다. 18명의 좌석표가 있는 뒤쪽 객실 도면이라는 말에 처음에는 배경이 배인줄 알았다. 시간적 배경이 1930년대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 당시 비행기의 크기와 좌석의 수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정도로 나는 둔하게 시작했다. 

푸아로 경감이 이 객실에 타고 있었다. 그러나 푸아로는 비행기 멀미로 내내 자고 있었고, 그 사이에 사건이 일어난다. 손님 중 한 사람이 죽은 것이다. 그것도 독침으로. 푸아로를 포함하여 객실 안에 있었던 사람이 전부 용의자가 되는데, 푸아로는 자신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서라도 열렬한 태도로 추리해 나간다. 런던과 파리를 오가는 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데 간접 경험으로도 충분할 정도였다.

모처럼 내가 의심한 사람이 범인이었음을 알았을 때는 살짝 미묘한 성취감마저 있었다. 정확한 추리에 의한 건 아니었지만, 범죄 동기에 관해서는 알아낼 방도가 없었지만, 어쩐지 이 사람이? 싶었던 사람을 푸아로가 범인이라고 지적했을 때는 소설을 읽는 내내 어슴푸레했던 내 의심이 인정을 받은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아닐 것 같은 사람을 아니라고 제거하는 방법과 작가의 글을 오래 읽어 온 바에 따른 관습 같은 짐작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표현해 놓은 사람이라면 범인이 아니었지, 또는 범인으로 오해하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겠지, 하면서 추측해 본 과정으로. 

살인을 할 정도로 강력한 동기는 무엇일까. 대부분 돈과 질투와 경쟁심 때문이라고 하던데, 그 본성을 추리소설로 탐구해서 보여 주고 있는 작가의 솜씨가 매번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2021년에도 계속 읽고 즐겨야지. 예스24의 통계에서 2020년에 내가 가장 좋아한 작가라고 알려주기도 했으니. (y에서 옮김2021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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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심령학자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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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배명훈에 대한 내 호감도는 점점 높아져 간다. 이건 독자인 내 입장으로서도 좋은 일이다. 좋아하는 만큼 글을 읽으면서 더 좋아질 것이고 더 행복해질 것이고 나는 더 많은 글을 읽을 수 있을 테니까. 


소설은 세상에 없는 것들을 있는 것처럼 써 놓은 글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없지만 있었으면 하는 이야기, 없지만 있어야 할 이야기, 없지만 없지만 없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꼭 있다고 믿고 싶은 이야기. 그러니 고고심령학자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 소설을 읽으면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고고심령학자들이 생계 걱정없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어디 고고심령학자들뿐이랴. 들먹이지 않아서 그렇지 이 세상에는 돈이 안 되는 가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이 소설은 서울에서 읽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내가 갖고 있는 소박한 꿈 중의 하나로, 어떤 도시 배경의 소설을 그 도시에서 읽었으면 하는 것. 이 소설을 서울의 어느 시원한 카페나 그늘진 공원이나 아늑한 숙소에서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서울을 좋아하는 마음을 한결 높일 수 있었을 텐데.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 주는 소설을 좋아했던 취향을 넘어 내가 SF소설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해 준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이다. 계속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써 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겨 둔다. (y에서 옮김201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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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
시요일 엮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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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찾다니, 연애를 떠올리다니, 연애를 그리워하다니, 내가 참 멋쩍다. 잠시 잠깐의 충동이자 변덕일 것이다. 아주 잊지는 못하고 사는 사랑, 이제는 믿는 것도 믿지 않는 것도 아닌 사랑. 누가 사랑을 어떤 그림으로 보여 주려고 하나, 이 그림이라도 진지하게 들여다 보자는 마음으로 읽은 시집이다.


지상의 사랑은 지상의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하리라는 것을 안다. 아니, 한 사람이 하나 이상, 여러 종류의 사랑을 가졌을 테니 사랑의 형태는 사람 수의 몇 제곱수라고 봐도 되겠다(사랑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는 이가 있다고 해도). 이 시집에는 퍽 많은 시가 실려 있고 읽는 쪽에서는 각자 품고 있을 사랑의 취향과 어울리는 시를 골라 보는 재미를 얻을 수 있겠다. 


나는 전문 한 편, 부분 세 편의 시를 골라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나, 아직 사랑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 나, 아직 연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누구와의 어떤 사랑일까? 이건 사랑이 맞을까? 대상도 감정도 없는데 오직 사랑만 그린다. 이제는 사랑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그럴지도. 이 사랑에는 이름을 못 붙이겠다.



옮겨 보는 책 속의 시 한 편


<전동균-내 곁의 먼 곳>


잎 진 큰 나무 아래서 비를 맞는 건

즐거운 일


툭 툭 갈라지는 나무껍질을 쓰다듬으며

나는 중얼거리네

내 입술과 귀를 불태우는 그 말에게

묻고 대답하고

침묵하면서


먼 곳으로 가네, 새살처럼 돋아나는 

통증을 안고


떠나는 것들, 돌아오는 것들의 발소리 분주한

이 저녁 속의

다른 저녁에게로


젖은 몸으로

허공과 싸우듯 허공을 껴안는

나뭇가지의 투명한 불꽃들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무엇으로든 빚어질 수 있어요 저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어요


견딜 수 없는 사랑을 부르는

빗방울, 빗방울들

떨림으로 가득 찬 나의 눈동자들


어느 훗날 쓸쓸한 거리에서
차를 다 마신 표정의 나무를 만난다면
가지 끝에 달린 꽃의 물음이
내 표정에 드리울 때면
당신이 마시고 간
차 한잔의 인사라고 생각할게요(심재휘의 ‘가슴 선반’ 중에서) - P70

저 여름이 손바닥처럼 구겨지며 몰락해갈 때 아, 당신이 먼 풀의 영혼처럼 보인다 빛의 휘파람이 내 눈썹을 스쳐서 나는 아리다 이제 의심은 아무 소용이 없다 당신의 어깨가 나에게 기대오는 밤이면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모든 세상을 속일 수 있었다(허수경의 ‘레몬’ 중에서) - P100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한강의 ‘파란 돌’ 중에서)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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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태퍼드 미스터리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양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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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하는 마음, 이게 묘하다. 나는 좋아하는 편이다. 질투하는 내 마음도 건강하게 여기고 남들이 질투한다고 하는 마음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다만 경계가 있어야 한다. 부러워하는 것, 부러워서 나도 그렇게 해 봐야지 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이 경계를 넘어서 시기하는 마음이 되어 버리면 아주 곤란하다. 아니, 곤란한 정도를 넘어서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이다. 나는 내가 이 경계를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아서 편한 마음으로 내 질투를 즐긴다.

 

이번 책에서는 작가가 늘 등장시키던 탐정을 고용하지 않았다. 완전히 낯선, 작품 속 등장인물들에 의해 사건이 해결되는데 이건 이것대로 재미가 있다. 행여 푸아로 경감이나 마플 여사가 나오나 중반까지 기대하기도 했는데 아니어도 괜찮았다. 작가도 가끔 다른 분위기를 생각했을 것이다.

 

중심 소재는 질투다. 이게 정도를 넘어서면 무서워질 수 있다. 미국 범죄수사 드라마를 한창 볼 때도 이런 소재로 벌어지는 사건을 많이 만났다. 어려서의 질투심이 트라우마로 남아 어른이 된 뒤에 범죄를 저지른다거나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견딜 수 없어 질투심에 살인을 하는 행위 등 인간 사이의 위험한 관계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하는 소재였다. 이 책에서도 그랬다. 해결이 되기 전까지 이런 배경이 전혀 나오지 않아 마지막에 더 극적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작가가 늘 관심을 갖고 다루고자 했다는 인간의 악한 본성들, 단지 재미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서 이만큼 오랜 세월 이 작가의 책을 읽게 되는 것일 테다. 도덕이나 윤리 수업을 이런 책을 활용하면 어떨까, 괜히 짐작해 본다. (온라인 교육 시절이 되고 보니 집에서 책을 읽을 시간도 많을 텐데, 아니다, 도리어 컴퓨터 게임을 하는 시간만 더 많아지는 건가? 책읽기 수업은 더 멀어지는 건가? ... 중얼중얼) (y에서 옮김20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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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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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혔다. 글의 고운 결도 잡혔고 결따라 포개놓은 작가의 생각도 내 힘 닿는 대로 찾아 읽었다. 애잔한 거리, 도달할 수 없는 그리움, 그것이 실제의 삶이든 소설 속 상상의 삶이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먼 배경, 터키로 가서, 또 백 년 전으로 가서, 그때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과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의 삶을 굳이 비교하자는 것도 아닌데 비교가 되면서 끊임없이 이어져 오는 사람살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지금 내 옆에 누가 있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또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헤아려보게 한다. 후회하는 일 없도록, 미안해하는 일 없도록.

 

소설을 읽기 전에 이 작가가 쓰는 시처럼 읽힐지도 모를 구절들을 만나게 되기를 기대했다. 소설 속에 시가 나오기는 했지만 내 기대에는 부족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어찌 시를 기대하느냐고 나무란다고 한다면, 글쎄, 나는 여전히 이 작가의 시를 더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 소설로 구현된다고 하던데, 이 작가가 고고학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소설 속에 담아보려고 했는지 확인하는 것도 흥미있었다. 작가의 체험과 상상을 글 속에서 내 식으로 구분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y에서 옮김201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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