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
시요일 엮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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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찾다니, 연애를 떠올리다니, 연애를 그리워하다니, 내가 참 멋쩍다. 잠시 잠깐의 충동이자 변덕일 것이다. 아주 잊지는 못하고 사는 사랑, 이제는 믿는 것도 믿지 않는 것도 아닌 사랑. 누가 사랑을 어떤 그림으로 보여 주려고 하나, 이 그림이라도 진지하게 들여다 보자는 마음으로 읽은 시집이다.


지상의 사랑은 지상의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하리라는 것을 안다. 아니, 한 사람이 하나 이상, 여러 종류의 사랑을 가졌을 테니 사랑의 형태는 사람 수의 몇 제곱수라고 봐도 되겠다(사랑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는 이가 있다고 해도). 이 시집에는 퍽 많은 시가 실려 있고 읽는 쪽에서는 각자 품고 있을 사랑의 취향과 어울리는 시를 골라 보는 재미를 얻을 수 있겠다. 


나는 전문 한 편, 부분 세 편의 시를 골라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나, 아직 사랑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 나, 아직 연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누구와의 어떤 사랑일까? 이건 사랑이 맞을까? 대상도 감정도 없는데 오직 사랑만 그린다. 이제는 사랑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그럴지도. 이 사랑에는 이름을 못 붙이겠다.



옮겨 보는 책 속의 시 한 편


<전동균-내 곁의 먼 곳>


잎 진 큰 나무 아래서 비를 맞는 건

즐거운 일


툭 툭 갈라지는 나무껍질을 쓰다듬으며

나는 중얼거리네

내 입술과 귀를 불태우는 그 말에게

묻고 대답하고

침묵하면서


먼 곳으로 가네, 새살처럼 돋아나는 

통증을 안고


떠나는 것들, 돌아오는 것들의 발소리 분주한

이 저녁 속의

다른 저녁에게로


젖은 몸으로

허공과 싸우듯 허공을 껴안는

나뭇가지의 투명한 불꽃들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무엇으로든 빚어질 수 있어요 저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어요


견딜 수 없는 사랑을 부르는

빗방울, 빗방울들

떨림으로 가득 찬 나의 눈동자들


어느 훗날 쓸쓸한 거리에서
차를 다 마신 표정의 나무를 만난다면
가지 끝에 달린 꽃의 물음이
내 표정에 드리울 때면
당신이 마시고 간
차 한잔의 인사라고 생각할게요(심재휘의 ‘가슴 선반’ 중에서) - P70

저 여름이 손바닥처럼 구겨지며 몰락해갈 때 아, 당신이 먼 풀의 영혼처럼 보인다 빛의 휘파람이 내 눈썹을 스쳐서 나는 아리다 이제 의심은 아무 소용이 없다 당신의 어깨가 나에게 기대오는 밤이면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모든 세상을 속일 수 있었다(허수경의 ‘레몬’ 중에서) - P100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한강의 ‘파란 돌’ 중에서)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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