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여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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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묘하다. 뭔가 결정적인 단서를 품고 있을 것만 같은 '세 번째 여인'이라는 말인데 나는 소설의 끝에 이를 때까지 아무 눈치도 채지 못했다. 세 번째가 그런 뜻이었다고? 그 여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흠, 내가 알아챌 수 없는 경지였군.

푸아로 경감이 거의 혼자 궁리하고 있는 글이다. 가해자인지 희생자인지, 연기인지 실제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인물을 뒤따라가게 한다. 그리고는 물음만 던져 주고 단서나 답은 읽는 이가 한번 찾아 보라는 식인데 이제 약이 오르지도 않는다. 알려 주는 내용도 다 못 알아먹겠는데 그 안에 숨겨진 관계나 정보를 어떻게 찾아낸단 말인가. 추리를 잘 하려면 상상도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인지. 참 멀리까지도 왔다.

현실에서 노마와 같은 상황을 맞이하는 사람이 혹시라도 생긴다면, 어쩌면 어딘가에 실제로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참 어렵고 힘들 것 같기도 하다. 푸아로 경감이나 올리버 부인처럼 같이 궁리해 주는 사람이 없기라도 한다면. 글 시작에 노마가 살인을 저질렀을 것 같다고 푸아로 경감에게 말하는 것을 보면 분명 노마가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게 구성상 자연스럽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게 확실한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과정, 저질렀든 그렇지 않았든 그 모든 상황들을 추리해 내는 일은 길고도 고단한 일일 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려진 진실 뒤에서 고통을 받고 있을지, 새삼 끔찍하고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신기한 점 하나, 백 년 전 런던에서 사는 세 여인이 아파트를 빌려 쓰는 방식. 제일 돈 많은 여인이 먼저 아파트를 얻어 가장 큰 방을 쓰고 두 번째 여인과 세 번째 여인에게 차례로 다음 방을 빌려 주고 돈을 받았다는 것. 그때부터 그렇게 살았더란 말이지. (y에서 옮김2021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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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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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책은 얇고 분량은 적은 편, 하나의 제목 아래 실린 글도 짧다. 형식적으로는 읽기에 부담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글의 분량이 짧다고 후다닥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무겁고 두껍다. 허술하게 넘어갈 문장이 안 보인다. 좋아하는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어느 하나 고를 수가 없는, 어느 하나 포기하지도 못하는, 촘촘하게 엮인 교양의 문장들. 책이 좀 어려워진다.

내 교양을 헤아린다. 어쩔 수 없다. 남이 가진 교양은 내가 알 바가 아니고, 판단도 비판도 할 처지가 아니고 나는 내 교양만 생각한다. 내가 가진 교양, 내가 놓친 교양, 내가 갖고 싶은 교양, 내가 영영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교양, 교양들.

서늘하게 내 온 몸과 정신을 스치고 지나간다, 교양의 자락들이, 언어의 가치들이. 나는 정신을 좀 더 차리고 살고 싶고 좀 더 고마운 마음으로 세상에 답을 하고 싶다. 이 책의 작가가 쓴 '언어의 무게'를 읽던 중에 새로 구해서 본 책이다. 이 작가의 책을 읽고 있다는 이것만으로도 내 의식은 충분히 고양된다.

삶의 형태와 그에 대한 평가는 종종 그 언어권에서 대표적인 비유들을 통해 표현되며 인간은 매우 친밀한 사이에서 쓰는 말이나 욕설, 음란한 말을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말로 나타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알 때 비로소 그 언어권에 완전히 동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P20

교양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지구의 다른 한쪽, 다른 사회나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집단에서는 선과 악을 다르게 생각하며 다르게 느낀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도덕적 정체성도 우연히 이루어졌으며 역사적 임의성을 띤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서 만들어집니다. - P21

어떤 행복이 있는지 알아볼까요? 세계를 조금 더 잘 이해하고 그 세계 안에서 자신의 방향성을 더 잘 세우는 것, 어리석은 미신을 떨쳐냈을 때 느낄 수 있는 해방감, 역사적 인식을 향해 새로운 문을 활짝 열어주는 책을 읽을 때 느끼는 행복, 다른 곳에서는 인간의 삶이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가 안겨주는 감동, 자신의 경험을 자신만의 방식과 언어로 느낄 때의 황홀한 기쁨, 어느 한 순간 자신의 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채게 되었을 때의 신선한 행복, 그동안 달려오던 궤도에서 이탈해 내면의 모습을 바꾸고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때의 느낌을 일궈냈을 때의 해방감, 사회적 상상력을 길러 도덕적 감수성에 관한 자신의 내적 지평을 넓혔을 때 겪게 되는 예기치 못한 경험 같은 것들을 들 수 있습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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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8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6-11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랑크푸르트행 승객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허형은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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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작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실망한 책이다. 시작은 장대하였으나 끝은 미미하였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구성이었다. 뭔가 아주 서서히 그러면서도 거대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였는데, 이 많은 인물들과 설정들을 다 어떻게 풀어 나가려고 펼쳐 놓으셨나 읽으면서도 조마조마했는데, 갑자기 확 끌어내 버리고 마는 결말이라니. 아무리 히틀러를 소재로 삼았다고 해도 황당했다. 혹시 번역하면서 내용의 일부를 줄였나? 이런 의심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정도로. 제목이 근사해서 먼저 구입한 책이었는데, 쩝.

어쩌면 비슷한 소재나 내용의 영화를 이미 봐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계를 움직이고 지배하는 이들이 있다는 설정, 그 중에 꼭 누군가가 혼자서 세계를 지배하겠다고 나서고 나머지 사람들이 모여서 그 악인을 막아 낸다는 이야기들. 요즘 영화에서야 지구 바깥에서 적들이 쳐들어오는 설정이지만 이 작가가 활동하던 시대만 해도 지구 안에서 각 나라끼리 이리저리 다투던 시절이니. 적의 역할은 주로 냉전시대의 소련이나 2차 세계대전의 독일에서 맡곤 했고. 이제는 이런 싸움에 진절머리가 날지언정 새롭거나 두려운 정도는 아닌 것이니.

이야기도 돌고 돈다. 돌고 도는 중에도 어떤 작가는 새로움을 부여하고 어떤 작가는 식상한 전개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하지. 읽는 입장에서는 이렇다저렇다 쉽게 말할 수 있어도 쓰는 사람은 얼마나 머리를 쥐어짜야 할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도 못 할 일이고, 또 짐작할 필요도 없기는 하고. 결국 작가도 다른 사람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하다. 표절과 새로움의 경계 선에서 자신의 영역을 어떻게 구분짓느냐 하는 과제가 남기는 하겠지만. (y에서 옮김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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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만큼 성공한다 - 김정운교수가 제안하는 주5일시대 일과 놀이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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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라디오 시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이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선했다. 논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게 했는데, 기회가 닿으면 이 책을 읽어 봐야지 했던 것을 읽게 된 것.

막상 책을 다 읽고 나니 처음 기대했던 것만큼 울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면에서 나는 이 작가가 주장하고자 하는 부분을 이미 상당히 실천하고 있는 듯했다. 한 마디로 나는 지금도 잘 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잘 놀 것이고, 놀 준비를 하는 데도 늘 열심인 사람이니 무엇이 아쉬우랴.

나는 어쩌다가 언제부터 혼자 잘 놀게 되었을까. 혼자서 영화도 보고, 혼자서 식당에도 가고, 혼자 구경도 다니고, 혼자 차 안에서 음악도 들을 줄 알고, 그러다가 혼자 잘 줄도 알고, 혼자서 시내를 돌아다닐 줄도 알고,... 정말 아쉬운 게 없다. 남편이 섭섭해 할 정도로.

가끔 주위에 보면 혼자서는 무언가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혼자서는 식당에 못 가서 굶는다거나, 혼자서는 쇼핑도 할 수 없다거나, 혼자 있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해 한다거나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혼자서 공부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가 혼자 놀 줄 모르고,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들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서 공감했다. 특히 놀 줄 모르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들볶고 있다는 내용, 요즘 아이들은 노는 방법을 모른다는 내용, 우리나라 어른들은 놀 줄도 모르고 논다는 것에 대해 너무 무식하다(? 나의 표현임)는 내용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놀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나는 혼자 좀 있어 봤으면 좋겠다. 만 24시간만이라도. (y에서 옮김200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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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살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윤정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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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게 많으면 좋을까 어떠할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는 게 많다 싶으면 좋아 보이기는 하겠는데(아는 게 많아 보이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입장이라) 정작 본인도 그런 넉넉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걸까.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자신이 아는 바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또 만족하는 수준도 다르겠지만, 이 작가의 글을 읽을 때면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양도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늘 든다. 아는 게 많은 작가라면 펼쳐 보일 세상도 그만큼 넓고 깊을 테니까.

이번에는 마술이다. 어렸을 때 마술 쇼를 텔레비전으로 본 적 있는데 나는 그때부터도 마술이라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눈속임이라는 것에 영 언짢았던 탓이다. 마치 내가 속아서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것 마냥. 남을 속이는 일은 하면 안 된다고 배운 게 절대적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남을 속일 만큼의 기술을 갖지 못한 내가 딱해서 미리부터 미워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 마술사가 아무리 현란한 기술을 가졌다고 해도 그저 사기꾼 정도로밖에 안 보였고, 직업인으로서의 마술사 입장에서는 괜한 오해를 받는 억울한 처지에 놓인 것일지도.

다시 말하지만 이번 책의 요건은 마술의 기술을 이용한 범죄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화자인 마플 여사의 활약을 바탕으로 범죄에 이용된 마술의 원리를 풀어서 보여 준다. 눈에 보이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을 이용한다는 설정. 마술사가 직접 등장하는 것은 아닌데 마술은 이용되고 있다. 이를 알아채는 마플 여사. 결국 작가가 마술에 대해 이만큼의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겠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싫어도, 작가라면 두루두루 알고 있어야 하는, 알면 알수록 글을 쓸 때 더 도움이 된다는, 이런 식의 자질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고.

돈이 너무너무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무엇이 있을까. 기부하는 것 말고, 그 돈을 이용해서 어떤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사명감이나 책임감이나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기여 정신을 갖고서. 이 소설을 읽다 보니 내가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고민을 하게 되기도 한다. 허무하지만 또 그럭저럭 재미있는 요소다. (y에서 옮김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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