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의 작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실망한 책이다. 시작은 장대하였으나 끝은 미미하였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구성이었다. 뭔가 아주 서서히 그러면서도 거대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였는데, 이 많은 인물들과 설정들을 다 어떻게 풀어 나가려고 펼쳐 놓으셨나 읽으면서도 조마조마했는데, 갑자기 확 끌어내 버리고 마는 결말이라니. 아무리 히틀러를 소재로 삼았다고 해도 황당했다. 혹시 번역하면서 내용의 일부를 줄였나? 이런 의심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정도로. 제목이 근사해서 먼저 구입한 책이었는데, 쩝.어쩌면 비슷한 소재나 내용의 영화를 이미 봐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계를 움직이고 지배하는 이들이 있다는 설정, 그 중에 꼭 누군가가 혼자서 세계를 지배하겠다고 나서고 나머지 사람들이 모여서 그 악인을 막아 낸다는 이야기들. 요즘 영화에서야 지구 바깥에서 적들이 쳐들어오는 설정이지만 이 작가가 활동하던 시대만 해도 지구 안에서 각 나라끼리 이리저리 다투던 시절이니. 적의 역할은 주로 냉전시대의 소련이나 2차 세계대전의 독일에서 맡곤 했고. 이제는 이런 싸움에 진절머리가 날지언정 새롭거나 두려운 정도는 아닌 것이니. 이야기도 돌고 돈다. 돌고 도는 중에도 어떤 작가는 새로움을 부여하고 어떤 작가는 식상한 전개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하지. 읽는 입장에서는 이렇다저렇다 쉽게 말할 수 있어도 쓰는 사람은 얼마나 머리를 쥐어짜야 할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도 못 할 일이고, 또 짐작할 필요도 없기는 하고. 결국 작가도 다른 사람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하다. 표절과 새로움의 경계 선에서 자신의 영역을 어떻게 구분짓느냐 하는 과제가 남기는 하겠지만. (y에서 옮김2020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