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잔 인생 한입 29
라즈웰 호소키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늘 마시고 먹는 이야기. 이번 호에서 눈여겨 본 페이지는 ‘산뜻하게’이다. 작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산뜻한 것’과 ‘산뜻하지 않은 것’을 나누어 놓았는데 흥미로웠다. 술을 좋아하는 소다츠(혹은 작가 자신)를 생각하는 마음도 잘 나타나 있고 나름대로 내 것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것을 산뜻하다고 혹은 산뜻하지 않다고 여기는 걸까? 이 물음을 두고 답을 떠올려 보는 일 자체가 나에 대한 탐구 과정의 하나가 아닌가 싶기도 했고. 


각각의 에피소드를 볼 때는 이런저런 말할 거리가 생긴다 싶다가도 어떤 표시를 해 두지 않으면 다음 장에 밀려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이렇게 읽은 내용을 금방 잊어버리는 내 기억력의 한계를 나는 이제 다행스럽게 여긴다. 어쩌면 자꾸 잊어버리고 있으니 읽었던 것을 다시 읽어도 또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일상생활에서 이런 식으로 기억력이 퇴화된다면 걱정거리가 늘어나는 것이겠지만 아직 이런 징조는 안 보이니 이 또한 다행이고.   


상대가 누구든지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좋아하는 음식과 술을 마시는 정취는  언제 보아도 흐뭇한 모습이다. 사사로운 걱정거리는 있어도 큰 시련은 없는 처지여야 할 것이고 일상을 유지할 만큼 경제적 조건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고 남들에게 밉상이 될 만큼 잘못 처신하지는 않았어야 함께 할 수 있을 테니. 현실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장면일수록 만화를 통해서라도 자꾸 봐야겠다. 이 정도가 큰 낙이다. (y에서 옮김202312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술 한잔 인생 한입 28
라즈웰 호소키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구들과 또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즐거워보이는 주인공 소다츠. 일을 열심히 한 후의 한 잔이나 휴일에 마시는 한 잔이 삶의 기쁨인 것처럼 보이는데 충분히 납득이 된다. 더더구나 요즘 같은 시절이라면. 


게다가 맛있는 안주도 덤이다. 식당에서 사 먹든 집에서 만들어 먹든 혼자 먹든 같이 먹든 오직 먹고 마시는 일에 충실한 주인공의 사정이 부러울 따름이다. 만화라서 더 편하게 다가온다. 가벼운 듯 보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고, 이렇게 쉬워 보이는 일도 어려운 바탕이 채워져야만 가능하다는 짐작에 술 한 잔 마시고 싶다는 바람이 절로 일어나니까. 


연애도 승진도 관심 없어 보이는 주인공 소다츠. 약간씩 이런 내용이 언급되는 때가 있기는 하지만. 이대로 잘 늙어 갔으면 좋겠다. 책 한 권에 사계절이 다 담겨 있으니 1년이 채워진 셈인데, 나온 책 권수를 이 단위로 셈하면 소다츠의 나이가 엄청 들어버리는 상황인데,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안 되는 모양이다. 모든 책의 내용이 1년 안에 다 담겨 있고 그걸 계절별로 며칠씩 뽑아 놓은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혼자 쓸데없는 궁리를 한다. 소다츠는 영영 늙지도 않겠네. (y에서 옮김202312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길 위에서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6
잭 케루악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방황하는 청춘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개인적으로 '길'을 좋아하고, 길 따라 떠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내 젊은 어떤 날에 방황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큰 꿈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이루고자 했던 목표에 수월하게 도달했고, 이제까지 그 목표 안에서 성취하며 만족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방황이라는 말 자체가 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 말에는 내가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에 대해 너그럽지 못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다.

다른 책에서 이 책을 호기심 느끼도록 소개받았고,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평들도 좋은 편이어서, 특히 제목과 배경에 이끌려 읽게 되었는데, 사실 2권을 읽을 일이 좀 아득하다. 무엇보다 내 마음에 드는 여정이 아닌 탓이다.    

1950-60년대의 미국 젊은이의 방황기. 그때 그곳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잭 케루악처럼 살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근사하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가진 것 없이도 길을 나설 수 있고 차를 얻어 타고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었던 시절. 배가 고프면 즉석에서 일자리를 구해 일을 하고 밥을 먹을 수 있었던 시절. 영원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니라면, 젊어 한때의 경험이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괜찮지 않겠는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 부분에서는 꽤 보수적이며 완고한 사람인가 보다. 내 마음이 더 넓어서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방황하는 청춘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참, 왜 이러고 사는 것인지.' 싶은 안타까운 마음밖에 생기지 않으니.

젊은 남자들의 영혼을 일부 엿본 것 같다. 무슨 생각으로 그 무료해 보이는 일상을 견디고 있는지, 그것도 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가 호감을 느낄 만한 삶의 방식은 아니구나 싶다. 나라는 사람은 방황조차도 계획과 의지와 실천과 보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y에서 옮김20110526)

그다음 일이야 알 게 뭐람 - P127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고,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기 마련이다. - P2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술 한잔 인생 한입 27
라즈웰 호소키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살기 위해 먹고 마시는 사람도 있고, 먹고 마시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다. 극단적인 한쪽 편에 선 사람은 없을 것이고 대체로 한쪽에 가까운 채로 살아갈 텐데. 살기 위해 먹는 쪽에 아주 가까운 나로서는 한때 먹기 위해 산다는 사람들의 마음과 욕망과 해방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먹어야 한다는 것일까, 의아함이 더 컸던 탓. 


지금도 아주 다 알아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먹는 즐거움이라는 게 대략 어떤 것인지 좀 알게 된 듯하다. 혼자 먹는 즐거움도 같이 먹는 즐거움도. 술이라는 것도 같이 떠들썩하게 마시기 위한 조건인 줄로만 알았지 혼자만의 삶에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술주정뱅이나 술을 마시고 저지르는 이들의 나쁜 사고들에 부정적인 감정이 너무 많았던 셈이다.  


혼자 느긋하게 좋아하는 안주와 술을 마시는 기쁨. 얻을 수 있다면 얻는 게 좋겠다. 안주를 직접 마련하는 재미도 그럴 듯하다. 소다츠가 집에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술 한 잔을 위해 이렇게 정성들여 안주를 만든다고? 그런데 또 따지고 보면 이런 즐거움이나마 자꾸자꾸 얻는 것이 또 삶의 보람이 아닌가 한다. 우리처럼 보통의 사람들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소소한 이벤트와 기쁨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방법밖에 없을 테니. 긴 생이든 그렇지 못한 생이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쨌든 잘 살아 있도록. 


먹고 마시는 대신 나는 계속 읽어 나가겠다. 한 잔 술의 황홀함이든 기막힌 맛을 지닌 안주의 달콤함이든 내게는 이 만화에 실린 에피소드들이 바로 그 맛을 주고 있으니. (t에서 옮김202309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 건강하게 살다 가장 편안하게 죽는 법
우에노 지즈코 지음, 이주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구가 권한 책인데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처하는 태도와 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태도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이 차이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기회였다. 


고독사라는 말 대신에 재택사라는 말을 쓰자고 하는 작가. 수긍이 된다. 병원이나 시설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대신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자는 작가의 권고도 받아들이고 싶다. 부모의 죽음을 처리하는 쪽은 내가 확실하겠지만 내 죽음만큼은 내가 처리할 수 없으므로 준비에도 한계가 있다. 내가 살아서 전하는 뜻이 죽음 이후에 이루어지게 될지 나로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든 책을 읽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병원으로 가든지 요양원으로 가든지 집에서 보호를 받든지 분명히 하나 이상은 선택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므로. 피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시대, 이제는 죽음까지도 내가 통제하는 범위 안에 들여 놓아야 할 시절이다. 


잘 죽는다는 것이 잘 사는 일과 같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죽음 자체가 크게 두려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렵다면 사는 일에 미련이 많다는 증거일 수도. 더 잘 살고 싶다거나 더 갖고 싶다거나 더 알려지고 싶다거나 더더더 하는 욕심이 있는 한 죽고 싶지 않을 테니까,  아니 죽을 수 없다 싶을 테니까.


정말 잘 살아야 한다. 사는 동안 잘 살아 있어야 한다. 스스로도 잘 살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잘 하고 가까운 사람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도 적절한 거리를 지켜가면서 잘 지내고. 나쁜 마음은 어쨌든 물리쳐 가면서. 


사람은 결국 혼자 죽는다는 사실, 어디에 있든 죽는 순간에는 혼자일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사실만 인정해도 혼자 죽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지는 않게 될 것 같다. 고독사가 문제가 아니라 고독하게 사는 동안이 문제라는 말, 오래 또 깊이 남을 것이다. 우리네 정치나 사회망에서도 제대로 대처해야 할 대목이고. (y에서 옮김202301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